질문 감사해요 진제님. 조금의 tmi를 해볼게요. 서른이 분기점이었어요. 그때 딱 코로나가 터졌고요. 그때까지 세상이 바라는 욕망을 원하며 살았다고 판단해 평생 직장(교직)을 관뒀고, 이후 1년간 공들였던 사업(차량업)도 접었습니다. 그동안 쌓은 모든 노력과 파이프라인을 제로로 만든 후 다시 시작했어요. 그때 바닥으로 내려온 저를 믿어준 여자친구(현재 아내) 덕분에 마음의 동요를 덜 일으키며 다시 시작할 수 있었어요. 이후 반 년 동안 벌어진 일 중 가장 큰 사건은 "결혼"이고, 아내가 일하러 나갔을 때 혼자 집에서 "관찰 및 실험"을 하는 일이었어요. 구상하고, 읽고, 도전하고, 실패하고의 반복이었습니다. 지금은 오전에 책을 쓰고, 오후에는 교육 서비스(청소년 대상)를 운영하고 있어요. 3월에는 연고가 없는 제주도로 이사를 가요. 저희만의 터전을 바닥부터 꾸려보려구요.
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D-29
내로
진제
아닛! 교직에 차량업, 이젠 무연고 지역에서의 새출발까지... 인생의 중요한 분기점에서 과감히 야간열차에 몸을 맡기며 치열히 지내오신 것 같아요. 저도 언젠가 내로님처럼, 중요한 분기점에서 꼭 필요한 곳으로 가는 야간열차를 찾아타고 싶습니다. 아직까진 제 껍질이 뭔지, 애초에 속살은 어떻게 생겼는지도 잘 모르겠어요. 언젠가는, 정말 언젠가는 지금의 생활에서 벗어나 꼭 새로운 도전을 해보고 싶다는, 그런 막연한 바람이 제 마음속에서 꿈틀거리네요...!
@내로 님처럼 서로를 신뢰하고 바닥부터 터전을 꾸려나가는 일도 함께 해나가는 두 분의 모습도
@JIN 님처럼 서로를 가장 소중하고 지켜주고 싶은 사람으로 대하는 부모님의 모습 도 참 아름답습니다. 부럽습니다.
GoHo
이제껏 살아오고 다져오던 세계를 바꾼다는 것은..
영현이 달리는 열차에 뛰어 오르는 것처렴 사력을 다하는 용기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책.. 교육..
@내로 님의 제주살이를 무작정 응원하겠습니다 ..^^bb
진제
[3번 질문]
전 제가 관습형 인간이라 믿습니다. 저의 평온한 일상 루틴에 새로운 변수가 생기는 게 탐탁치 않거든요. 하지만 이따금 찾아오는 특별 이벤트에 본능을 맡기기도 합니다. 더 중요한 게 무엇인지, 가족인지, 일인지, 가족의 일이라도 양해를 구할 수 있는 건지 등등 우선순위를 비교해서 결정하는 것 같네요. 모든 의무를 내팽겨치고 달려나간다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열차에 탑승하겠습니다. 그렇게 내 의무와 내일 뒷감당을 해야 할 나를 배신하는데서 오는 카타르시스(?)가 또 있긴 하더라고요... 내가 없어도 지구와 회사는 잘 돌아가니 걱정말라 하는 우스갯소리에 힘입은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 뜬금없지만, 저는 야간열차를 읽으면서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이 떠올랐어요. 왠지, 무거움과 가벼움이라는 단어가 소설 속 동걸과 영현에게 대입되더라고요. 영현은 언제든 떠날 수 있는 인물로, 동걸은 가족을 부양할 의무와 죄책감에 눌려 사는 인물로 말이에요. 동걸이 스스로 삶의 무게를 조금 가볍게 해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 별개로, 동걸이 마지막에 '누런 종이봉투'에 담아, '그의 손에서 그의 바수어진 젊음이 진눈깨비처럼 흩날리'게 하려는 것이 무엇일지 궁금합니다. 동생이나 어머니께서 돌아가시고, 그 유골을 색바랜 봉투에 담아 동해 바다에 뿌리려던 걸까요? (근데 허술하게 종이봉투에 유골을 담아간다는 상상은 비약인 거 같네요)
* 모든 무거움으로부터 해방된, 그러나 역설적이게도살아가게 만드는 원동력이 없어진 그는 이제 야간열차를 타고 가 생을 마무리하려는 걸까요? 돌려줘야 할 게 있다는 건, 그동안 자신이 동생에게 빚졌던 목숨을 이제 동해 바다에 함께 돌려준다는 의미일지도 모릅니다.
* 작품 공통으로 등장하는 진눈깨비는, 어쩌면 인물들의 '바수어진 젊음'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역사의 상처에서 태어나 단 한 번도 존재의 가벼움을 느껴 보지 못한 현대인, 그들의 삶과 사랑에 바치는 소설. 존재의 가벼움과 무거움, 어느 쪽이 옳은가. 니체의 영원한 재귀는 무거움이지만 실제요, 진실이다. 반면 우리의 삶은 단 한 번이기에 비교도 반복도 되지 않아 깃털처럼 가볍다. 질투 없이는 사랑할 수 없는 약한 테레자, 사비나의 외로운 삶. 토마시에게 테레자는 무거움이요 사비나는 가벼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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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
저도 동걸이 들고왔던 봉투에 무엇이 담겨있을까, 생각했는데 잘 모르겠어요. 저는 진제님이 추론한 '유골' 해석도 좋아요. 동생을 떠나 보내고 자신은 해방되는, 그런 장면이요. 특히나, 처음 눈이 쌓였던 장면과 달리 마지막 장면에서는 비가 내리고, 묵은 때가 씻겨 나가며, 온전히 '나'가 드러나 이야기가 다시 시작되는, 그런 결말이요.
GoHo
저도 유골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의 손에서 그의 바수어진 젊음이 진눈깨비처럼 흩날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p196
동걸의 몫까지 일을 하다가 사고로 인해 의식불명의 생을 살아가는 쌍둥이 동생은 동걸의 바수어진 젊음이지요..
동생에 대한 미안함 죄책감.. 배신을 꿈꾸며 살아가는 자신에 대한 경멸 증오..
탈주를 꿈꾸는 야간열차의 기차바퀴소리는 스스로에 대한 죄의식이 환청과 이명이라는 고통으로 나타나 동걸을 주저앉게 하는 것 같습니다..
"동해"
"거기 돌려주어야 할 것이 있어." p196
탁 트인 바다 자연으로 동생을 돌려보내고자 한 것 같습니다..
갇힌 몸속에서 해방되어 자유롭도록..
한편으로 왜 '동해' 였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는데..
저는 한강 작가의 글에서 종종 이모, 삼촌.. 부모님 세대의 정서를 봅니다..
23살의 나이에 윗세대의 삶이 투영되어 있는 것 같다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얗고 누런 머릿수건을 동치고 탈곡하는 아낙네들..'
/여수의 사랑 p55
동해바다..
작가 이전 세대들에게는 청춘의 일탈과 해방의 이상향..
그래서 문득 떠오른 노래.. ^^;
[송창식 - 고래사냥]
https://youtu.be/c17ZcY0pvA8?si=U79BBeA5GYg2oIkC
진제
앗... 저도 어릴 때 어른분들이 이 노래 들으시는 거 자주 봤어요ㅎㅎ
GoHo
우리는 어느새 한 걸음씩 물러서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p186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야간열차,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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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Ho
나는 혼자였다. 혼자라는 것은 피가 끓고 눈이 부신 젊음이 있을 때나 고통스러운 것이었지 이제는 내 몸에 잘 맞는 껍질이었다. 그 껍질 속에서 나는 편안했다. p187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야간열차,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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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크
1. 오늘을 버티게 해주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을 해보았더니, 아무래도 하다보니 되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더 깊은 내면의 동기가 있지 않을까 하여 고민해보았더니, 완벽한 나 - 실제로 달성할 수 있는지, 어떤 것이 완벽한 나인지는 별개의 문제이지만요 - 에 대한 환상이 있는 것 같습니다.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하고, 일도 한다면 언젠가는(?) 멋진 자신이 될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인것 같습니다. 질문에서 말하는 지금 당장 떠날 수 없는 곳이라기 보다는 도달할 수 없는 곳이지만, 마음속에 이런 희망을 품고 있는 것만으로도 귀찮고 힘든 것들을 잘 버티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2. "원래 다 그러고 살아."라는 말은 제가 정말 싫어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 말은 뭐랄까 사회화, 성숙, 세상살이를 대표하는 것이 되어버린 기분입니다. 사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도 괜찮지 않지만, 단단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괜찮은 척하고 있는 것이겠죠. 영현이 사회에 적응하는 혹은 적응당하는 모습을 비겁한 '타협'이라고 보는 것은 영현에게 지나치게 가혹한 것 같습니다. 영현도 편안해하고, 적응했다고는 하지만 현재 자신의 모습과 본질적인 자신과의 괴리감에 불편함을 느끼고 있었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에서 기차에 올라탄 것이겠죠. 그런 감정이 아예 올라오지 않도록 억압하고 있던 것 같습니다. 억압이 성숙인 것인가 하면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영현이가 그저 억압하고 있는 중인 것 같습니다.
2026년의 저는 비교적 얇은 껍질을 쓰고 있는 것 같습니다. 꽤나 솔직한 편이고 직설적으로 저를 잘 드러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3. 지금은 기차에 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 아직 현실에서 하고 있는 것들이 재미가 있고, 모든걸 내던지고 떠날 정도는 아닌 것 같습니다 ㅎㅎ
진제
저도 원래 다 그러고 산다는 말 너무너무 싫어합니다...
내로
많은 사람(특히 청춘)이 "미래"를 위해 현실을 버티는 것 같습니다. 저도 한때 그랬고, 자주 말하고 다니기도 했었어요. 상상에는 힘이 있으니까요. 지금도 그러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런데 달라진 점은, 과거에는 현실의 비루한 삶의 업그레이드 버전을 "미래"로 상정했었다면, 지금은 하나의 가능성으로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아요. 마치 상자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모르겠지만 손을 넣는 느낌으로요. 이건 마치 삶에 대해서, 그리고 나 자신에 대해서 여전히 '기대'하고 있는 '어린 아이의 마음'일 지도 모르겠지만, 음, 저는 그런 "미래"를 생각하고 있습니다.
JIN
Mission 1.
요즘 대학생이 하기에는 다소 구시대적인 이야기처럼 들릴 수도 있겠지만..ㅎㅎ 저는 몇 년 전부터 행복한 미래의 가정을 제 삶의 환상으로 품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만 연애나 결혼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한때는 그런 것들 자체에 회의적인 입장이었던 적 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혼자 살게 되며 가끔 부모님 댁에 가서 두 분을 뵐 때마다
“아 나도 부모님처럼 살면 참 좋겠다”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마음에 스며들었습니다. 부모님과 함께 둘러앉아 차 한 잔 마시며 밀린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즐거워서 시간이 정말 빠르게 흘러갑니다. 그리고 그때마다 아빠 눈에는 여전히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처럼 보이고, 엄마 눈에는 아빠가 가장 지켜주고 싶은 사람으로 비쳐진다는 게 딸의 입장에서는 너무도 분명하게 느껴집니다. 흔히 결혼 바이럴 같다고도 하죠 ㅎㅎㅎ
그래서 언젠가는 나도 저런 삶을 살 수 있겠지, 그런 미래를 누리기 위해 지금은 경제적/심리적 기반을 차근차근 마련해보자는 생각으로
일과 공부를 병행하며 지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미래의 화목한 가정“이라는 것이 당장 떠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을 버티게 해주는 저만의 ‘야간열차’입니다.
내로
너무 멋진 분들이네요. 실제 자녀의 입에서 그런 말이 흘러나와야 "찐"이죠. 결혼 바이럴이라는 표현은 처음 듣는데, 진정한 바이럴이겠어요 ㅎㅎ 어떻게 그런 관계가 가능한 지 따로 상담하듯 물어보셔도 좋겠어요. 뭔가 비밀이 숨겨져있을 수도...!
GoHo
'엄마처럼은.. 아버지처럼은.. 안 살거야'가 흔한 대사 같은데요..ㅎ
@JIN 님 가족은 정말 멋지네요..
“아 나도 부모님처럼 살면 참 좋겠다”
부모님들께서 굉장히 자랑스러워하는 자녀이실 것 같아요..
JIN
Mission 2.
지금의 저는 따지고 보면 영현과 꽤 닮아 있는 사람인 것 같습니다. 인턴 생활을 하며 가장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가 “어떻게 그렇게 항상 무던해?”라는 말이었는데요. 사람을 많이 마주하는 일을 하다 보니 정말 다양한 유형의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적지 않게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동료 인턴들 중에는 회사에서 울음을 터뜨리는 친구도 있었고, 스트레스를 그대로 표정에 드러내는 친구, 상처를 크게 받는 친구도 있었습니다. 사실 사회에 첫발을 내딛는 시기이니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그런 모습을 지켜보면서, ‘솔직함’이 사회에서는 때로 흠이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조금 일찍 알게 된 것 같습니다. 그래서인지 제 덤덤한 반응이 오히려 마음에 들기 시작했습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마인드를 바꾸자.” 이 말은 제 모토 중 하나인데, 무조건 참고 견디자는 뜻이 아니라 정말로 바꿀 수 없는 상황이라면 스스로를 덜 다치게 하자는 의미입니다.
불과 4~5년 전만 해도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이렇게 변해 있더라고요. 누군가는 이를 솔직함을 감추기 위한 ‘껍질’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저는 이런 태도로 살아가니 내면도 한결 평온해졌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훨씬 수월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예전에 ‘솔직함’이라는 이름으로 했던 행동들 중 미성숙한 분노 표출에 불과했던 것들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처럼 무던해지고 사회와 어느 정도 발을 맞춰갈 수 있게 된 상태를 성숙에 더 가까운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진제
저도 그렇게 무던할 수 있는 껍질이 간절합니다. 상황을 바꿀 수 없다면 내 마인드를 바꾸자... 메모...
JIN
Mission 3.
아주 현실적으로 답하자면 저는 그 야간열차에 절대 오르지 않을 것 같습니다..ㅎㅎㅎ
저는 제 일상의 루틴을 굉장히 소중하게 생각하는 편이고 그 루틴을 지켜내는 것 자체에서 희열을 느끼는 사람입니다. 물론 예상치 못한 일로 변화가 생겨 조정해야 할 때도 있지만, 제 의지로 큰 변화를 선택하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아마 동걸처럼 친구가 아니라 가족이나 연인이라면 선택이 달라졌을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저에게는 목적 없는 여정보다는 오늘 하루를 잘 살아내는 작고 단단한 일상이 더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2026년의 청량리역에 서 있다면 저는 기차에 몸을 싣기보다는
승강장에 남아 손을 흔들며 제 자리로 돌아갈 것 같습니다.
내로
탑승한 동걸과 영현에게 손을 흔들며,, 저희는 그 다음 단편 <질주>를 읽으러 가볼까요! ㅎㅎ

반달
“ 아버지를 비롯하여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나의 미래를 걱정했다. 나는 남들이 하는 취직 공부나 학점 관리에 마음을 써본 적이 없었다.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았다. 나는 아무것도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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