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사육제라는 제목에 대해서
사육제를 카니발 carnival 이라고 하지요. 식인은 카니발리즘 cannibalism 이라고 합니다. 한글로는 같은 단어를 공유해서 저는 카니발이라고 하면 식인부족들이 제물을 앞에 두고 춤을 추는 제식행위에서 발전했을 거라는 막연한 생각을 갖고 있었더랬습니다. 그런데 카니발은 고기를 먹어치운다는 의미로 40일간의 금욕기간인 사순절 전에 마지막으로 고기를 먹으며 즐기는 방탕한 축제를 의미한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습니다. 문제는 차이를 알게 된 후에도, 아마도 날고기를 먹는 장면이 상상되어서인지 식인부족이 불을 피워놓고 그림자를 드리우며 춤을 추는 모습이 같이 겹치곤 하더라고요. 신기하게도 제게는 이 소설에서 카니발과 카니발리즘의 이미지가 계속 겹칩니다.
"어둠이 베어 먹다 말고 뱉어 놓은 살덩어리 같은 달이 떠 있었다. 이지러진 달의 둥근 면은 핏기 없이 누리끼리했고, 베어져 나간 단면에는 검푸른 이빨 자국이 박혀 있었다. 그 깊숙한 혈흔을 타고 번져 나온 어둠의 타액이 주변의 천체들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마치 어둠에 가려 보이지 않는 거대한 날짐승이 도시를 한 입씩 집어삼키고 있는 것 같았다"
"낯익은 어둠의 창날이 명환의 얼굴과 몸뚱이를 날카롭게 베어내리고 있었다"
"명환은 이 자리에서 어둠 속에서 노려보고 있곤 했다. 명환의 눈빛은 주술사의 그것과 흡사했다"
"명환의 몸뚱이는 지척에 있었지만 그의 혼은 알지 못하는 다른 곳을 헤매고 있는 것 같았다"
"저기 어떤 사람이 죽어 있어"
"----더 견딜 수 없어서 죽였어."
이 도시의 어둠은 누군가에게는 반짝이고 아름다운 불빛을 주지만 대개는 무언가를 삼키고 베어물고 뱉어내고 상처를 내는 날짐승 같은 포식자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주인공들은 그런 포식자가 없는 햇빛이 가득한 낮을 견디지 못합니다. 유월의 기류는 유황가스처럼 숨통이 막히고 혈관이 뜨거워질 정도의 미친 여인 같은 태양이 있어서 헐떡일 수 밖에 없는 피곤함입니다. 햇빛은 따스한 존재라기 보다 '얼음가루' 같고 '쏘는 듯'하며 '깨어진 술병조각'처럼 날카로운 존재입니다.
그런데 밤은 "이제 모든 것을 용서받은 것처럼 더 이상 죄지을 필요도 뉘우칠 필요도 없는 생기"를 품은 시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둠은 낮의 햇빛보다는 숨을 틔우는 존재이기에 포식자임에도 불구하고 낮보다 덜 폭력적입니다. 그렇다고 마냥 포근한 것 만은 아닙니다. 불빛과 혓바닥을 날름거리는 혼돈스러움이 공존하죠. 그래도 어둠은 끝까지 몰린 빈자들에게 허용된 마지막 안식처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D-29

베오
내로
윽, 이제 카니발하면 베오님이 말한 이미지가 생각날 것 같은... ㅠㅠ 물론 이 단어를 많이 쓰진 않지만...ㅎㅎ
그리고, 이어 진 베오님의 해석은 정말 놀랍네요. 빈자는 뜨거운 낮에서도 위로를 받기 힘들고, 그나마 더위가 식힌 (그럼에도 포식자가 있는) 어둠이 마지막 안식처일 거라는 마지막 주장. 명환이 영진의 베란다에서 마지막으로 말했던 대사가 떠오르네요. '참 조용하구나.'
연한커피
“ “밤하늘은 숨이 막히도록 어두웠다. 베란다 방에서 여러 번 밤을 지새워본 나는 아파트촌 위의 하늘이 가장 어두울 때를 지나서 새벽이 동튼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가장 지독한 어둠이 가장 확실한 새벽의 징후임을 나는 수차례 보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나는 새벽을 의심했다. 고질병을 가진 사람이 한차례의 통증이 지나갈 때마다 죽음을 확신하듯, 나는 얼마 안 있어 지나가고 말 어둠이 영원할 것만 같다는 절망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 ”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 127,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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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한커피
여수의 사랑도 기간 맞춰서 읽었는데 시간에 쫓겨 참여는 하지 못했습니다.
어둠의 사육제는 읽는 기간이 끝나기 전에 읽어서 짧게나마 생각을 남겨봅니다.
1. 아름답다고 생각하면서도 무인가게에 켜진 등도 많고 불을 켜지 못할 사람들도 있을거란 생각이 들어 현대 문명의 폐해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는 편에네요.
(베오 님께서 석관이라고 표현하셨던데 저도그에 가까운 감상인듯 합니다.)
2. 잘 모르는 사람, 그렇게나 삶을 증오하는 이의 선물을 기쁜 마음으로 받을 만한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명환이 한 일이 (영진의 입장에서 봤을 때)위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드네요.
3. 그것이 희망일까요...? 삶과 희망에 배신당한 이는 (영진이건 명환이건) 타인이 들이미는 희망이나 위로가 폭력으로 느껴질 거라고 생각합니다.
힘든 이에게 진짜 위로란, 이야기를 들어주며 오래 곁을 지키는 것이라 생각하는데
2에서 제시된 것처럼 '마음의 거리'를 제대로 지키지 않으면 어려운 일이겠지요.
내로
@연한커피 님 반갑습니다. 이야기를 들어주며 오래 곁을 지키는 일이, 저도 참 위로라는 생각이 들어요. 책 <모모>가 생각이 나네요. 앞부분 조금 읽어놓고 이 책을 언급해서 좀 그렇지만.. 우리가 모모처럼 경청하는 태도를 가진다면, 세상이 좀 더 따뜻해질 것 같기도 해요. 요즘은 돈 버느라, 또 돈 버느라 다들 남 신경을 거의 안쓰고 살지요.
GoHo
"저기 어떤 사람이 죽어 있어"
"......더 견딜 수 없어서 죽였어." p137
명환은 이미 자기 삶의 결말을 완성해서 봉인해두었던 것 같은데..
왜 기다렸을까.. 무엇을 기다렸을까..
'얼굴이 희고 웃음이 헤 픈 아이의 백일잔치..
좋아서 얼굴이 발개지도록 웃고 또 웃는..
분주히 주방을 오가는 소리..
더운물로 그릇 씻는 소리..
명랑하게 흥얼거리는 소리..'
'미련'이 되어버린 그 '희망' 어린 삶..
명환은 집을 핑계로 그곳에서 꿈꾸었던.. '삶을 완성'하고 싶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봤습니다..
자신의 죽음을 위해서 영진에게 '집'을 주려던 것이 아니라..
명환은 영진에게 '삶'을 넘겨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불이 꺼졌군"
영진은 명환에게 불을 켜라고 외치지만 명환은 영진이 그 불을 켜고 반짝이는 삶을 완성해주길 바랬던 것이 아니었을까..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네요..
내로
와, 제가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을,, 이렇게 아름답게 표현해주셨네요ㅠㅠ 정말 그럴 것 같아요. 그렇다면 명환에게는 자신의 옛추억이 다른 사람에게 행복이 될 수도 있다는 마지막 희망을 영진에게 걸었던 거네요.
GoHo
인간의 법에 순교한 자들
당신은 슬픔의 요람에서 태어나 불행의 품과 억압의 집에서 자란 사람입니까? 눈물에 젖은 마른 빵 조각을 먹고 있습니까? 피와 눈물이 섞인 고인 물을 마시고 있습니까?
당신은 냉혹한 인간의 법에 의해 아내와 자식을 버리고, 지도자들이 의무라고 잘못 부르는 탐욕을 위해 전쟁터로 나아가야 하는 군인입니까?
당신은 삶의 부스러기에 만족하고, 양피지와 잉크를 소유한 것에 행복을 느끼며, 고향에서 낯선 이방인처럼 동족에게 알려지지 않은 채 살아가는 시인입니까?
당신은 사소한 죄로 어둡고 좁은 감옥에 갇혀, 인간을 타락시켜 교화하려는 자들에게 유죄 판결을 받은 죄수입니까?
당신은 하나님께서 아름다움을 주셨지만, 부자들의 저속한 욕망에 사로잡혀 속아서 몸만 사고 마음은 사지 못한 채 고통과 불행 속에 버려진 젊은 여성입니까?
만약 당신이 이들 중 하나라면, 당신은 인간의 법에 순교한 자들입니다. 당신은 비참하며, 당신의 비참함은 강자의 불의와 폭군의 불의, 부자의 잔혹함, 그리고 음탕하고 탐욕스러운 자들의 이기심의 결과입니다.
사랑하는 연약한 이들이여, 위로받으십시오. 이 물질 세계 너머에는 정의와 자비, 연민과 사랑으로 가득한 위대한 힘이 존재합니다.
당신은 그늘에서 자라는 꽃과 같습니다.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당신의 씨앗을 햇살 속으로 옮겨주면, 당신은 그곳에서 다시 아름답게 피어날 것입니다.
겨울 눈에 덮인 앙상한 나무처럼 너희는 낡았지만, 봄이 오면 푸른 옷을 입혀줄 것이며, 진실은 너희의 웃음을 가리고 있는 눈물의 장막을 걷어낼 것이다. 고통받는 형제들이여, 나는 너희를 내게로 이끌고 사랑하며, 너희를 억압하는 자들을 규탄한다.
칼릴 지브란, "스승의 목소리"
https://polarabicpoetry.tumblr.com/post/153133925876/of-the-martyrs-to-mans-law-are-you-one-who-was

스승의 목소리'상처입은 가슴을 달래는 영혼의 묘약'이라고 평가되는 칼릴 지브란의 글 중에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책. <a href="/catalog/book.asp?ISBN=8970632905"><예언자></a>처럼 길이는 짧지만 깊은 울림이 남는 언어들로 채워져 있다.

지혜여, 나는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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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Q1.
예전에는 일부러 서울의 야경을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멀리서 보면 반짝이고, 멋있다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었죠. 하지만 요즘 회사 생활을 처음 해보면서 그 불빛들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누군가는 하루를 마무리하고 불을 끄는 시간에, 누군가는 여전히 불을 밝힌 채 치열하게 버티고 있기 때문에 보이는 빛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특히 학원가를 지날 때면 그 감정이 더 선명해집니다..ㅎㅎ
큰 건물 하나가 통째로 학원인데, 밤 10시가 넘도록 빼곡하게 켜진 불빛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먼저 들고, 동시에 치열했던 제 과거가 겹쳐 떠오르기도 합니다.
명환에게 야경이 마지막 위로였다면, 지금의 저는 영진에 더 가까운 시선으로 이 도시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멀리서 보면 아름답지만 가까이 다가갈수록 서글픈 아우성처럼 들리는 도시..? 그 아이러니가 제가 생각하는 어둠의 사육제인 것 같습니다.
내로
"아름 답다, 그러나 서글프다" 라는 거잖아요. 어른이 되어가고 있는 주인공이 뱉을 것 같은 대사에요.
JIN
Q2.
저는 기본적으로 타인에 대한 신뢰를 쉽게 형성하는 편은 아닙니다. 과거의 여러 경험 때문인지, 스스로를 조금 폐쇄적인 사람이라고 느낄 때도 있습니다. 물론 누군가와 충분한 시간을 두고 교류하며 마음을 열게 되면 그때는 호의를 감사하게 받아들이고 저 또한 그만큼 돌려주고 싶어 합니다.
그런 점에서 영진의 선택이 어느 정도 이해되었습니다. 명환의 제안은 겉으로 보면 분명 ‘복’처럼 보이지만 영진에게는 본능적으로 껄끄럽고 불편한 감정이 먼저 들었을 것 같습니다. “대체 왜?”라는 질문이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을 것 같고요.
그리고 이야기가 후반부로 갈수록 명환의 제안에 담긴 속내를 영진이 짐작하게 되면서 그 불편함은 더 커졌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집은 선물같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짊어지기엔 너무 무거운 타인의 고통과 미련이 담긴 짐처럼 느껴졌을지도 모릅니다. 명환이 자기 손을 비우기 위해 그 무게를 영진에게 넘기려는 것처럼, 일종의 회피 수단으로 자신이 이용되는 건 아닐까 라는 생각도 들었을 것 같네요.
그래서 영진이 도망치듯 거절한 것은 호의 자체를 거부했다기보다는(애초에 순수 호의도 아니었겠지만..) 감당할 수 없는 깊이의 어둠 속으로 함께 들어가기를 거부한 선택에 더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마음의 거리 관련해서는 개인적으로 이미 생각해본 적이 있는 물음이었는데 이 단편을 읽으며 더 확고해진 것 같습니다. 타인의 고통 앞에서 지켜야 할 마음의 거리는 <나 자신이 무너지지 않을 수 있는 선>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내가 무너지면 그 모습을 보는 타인의 고통도 더 커질테고, 나조차도 같은 고통의 수렁에 빠지게 될테니까요..
JIN
Q3.
저는 개인적으로 피상적인 위로를 듣는 것도 건네는 것도 그리 좋아하지 않습니다. “다 잘 될 거야” 같은 말들이 진심으로 하는 위로라기보다는 무관심에서 나오는 말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영진이 시집을 던져버린 이유도 비슷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문장들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전혀 보지 않은 채 무관심한 상태로 던져진 말처럼 느껴졌기 때문이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영진은 ‘희망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상태를 무시한 채 던져진 ‘말뿐인 희망’을 거부한 것이라고 느꼈습니다.
제가 살아오면서 느끼게 된 것은 진짜 위로는 말을 많이 하는 데서 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침묵 속에서 함께 있어 주는 것, 충분히 들어주고 바라봐 주는 태도, 함부로 재단하지 않는 적절한 거리감. 위로의 본질이 여기에 있지 않나 그런 생각이 갈수록 들더라고요..
영진이 원했던 것도 어쩌면 그런 종류의 위로가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내로
다만 '함께'있기를 바랐던 '자흔'이 기억나네요. 영진도 그런 종류의 위로를 바랐을 것 같아요.
루크
Q1. 서울, 특히 강 아래쪽은 사람이 정말 많고 밤이면 사육제 (카니발)처럼 휘황찬란한 밝은 빛들로 뒤덮이는 곳입니다. 처음에는 그런 불빛들에 압도당했지만 점차 불빛들에 익숙해지면서 사람들을 보게 되었습니다. 휘황찬란한 불빛들 아래 지하철로 내려가는 사람들의 표정은 무표정이었고, 피곤에 쩔은 표정이었습니다. 소위 서울의 야경은 야근의 빛이라는 말처럼, 휘황찬 서울의 야경은 영진이 느끼는 것처럼 서글픈 아우성 같다고 느낀적이 있습니다.
Q2. 영진은 명환을 만나기 전 인숙언니에게 사기를 당하고 인간미가 없어지는 경험을 합니다. 마치 인숙언니처럼 변한 자신의 얼굴을 보는 것, 괄괄한 중년 여성을 보며 왠지 동일시하는 기분을 느끼기도 합니다. 하지만 명환의 집을 받으면 명환이 죽게 되는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명환의 집을 받을 정도로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잃어버리지는 않은 모습입니다. 호의라고 부르는 것이 옳은지도 잘 모르겠으나, 명환의 호의는 영진에게 내민 구원이 아니라, 어쩌면 방아쇠를 눌러달라는 책임감없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Q3. 영진은 사기를 당하기 전, 대학 진학에 대한 꿈, 스스로 독립하는 꿈, 부모님께 자랑스레 돌아가는 꿈처럼 희망을 품고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사기 이후, 영진은 이모집에 얹혀 살게됩니다. 이러한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는 시를 봤을 때, 시가 자신을 조롱하는 것처럼 느꼈을 것 같습니다. 특히 그 시를 통해 희망을 품고있던 자신을 바라보고 그 상황을 반추하게 되었을 것 같습니다. 자신이 갖고 있던 희망 때문에 조심하지 못했고, 결국 이 차디찬 베란다로 이끌어갔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 희망을 던져버린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다 잘될거야",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는 말을 들었을 때 화가 난 적이 종종 있었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도 내가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없다고 느껴지고, 상황이 변화하지 않으니 미래가 긍정적으로 다가올 이유가 없으므로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없다고 느낄 때 듣는 "긍정적으로 생각해"는 마치 조롱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그때 제가 듣고 싶었던 말은 "그래도 넌 잘할 수 있어" 였던것 같습니다. "긍정적으로 생각해"는 상황이 변할 수 없으니 잘 받아들이고, 잘 수용하고, 너를 상황에 잘 맞추라는 의미라고 생각됩니다. 하지만 "그래도 넌 잘할 수 있어"는 상황이 힘들지라도 잘 이겨내고 어쩌면 상황을 스스로 바꿀 수도 있음을 내포하는 격려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진짜 위로란 그저 상황의 받아들임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바꾸어낼수 있다고 위로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베오
어둠의 사육제에 관한 그 외 이런저런 단상들
1. 한강 작가님은 '적요한' '고즈녁'이란 단어들을 좋아한다.
2. 지질린 - 지질리다 (피동) - 지지르다 (능동) : 꺾여 눌린
3. 검은 고양이는 인숙의 투사였다가 명환의 투사이기도 하다 (좀 더 복잡하다)
4. 체머리를 떨다 - 처음 들어보는 말인데 무슨 뜻인지 바로 알겠는 표현.
5. 모래알이 씹히는 것 같은 충혈된 눈 - 누구나 겪었을, 그래서 몸의 기억을 불러일으키는 또 하나의 일상성 묘사
6. 할리우드 영화의 마지막 급반전 처럼 나는 순식간에 억대 부자가 되는 것이었다 => 그랬더라면 이것을 데우스 엑스 마키나라 부를 수 있었을까?
7. "---- 내가 사랑할 수 있는 건 저 야경 뿐이라는 거요." - 왜 야경을 사랑하지? 불을 켜지 않는 그의 방에서 볼 수 있는 것이 야경뿐이라서?
8. "저곳 어디에건 나는 들어갈 수 있겠구나. 그 생각이 더 괴로운 거라오" - 7번과 연계해서 아내와 꾸렸을 가정의 불빛을 상징하는 거라서 사랑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디에겐 들어갈 수 있다는 생각은 이제 돈이 있어서 실제로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 그 생각이 괴로운 것은 그것이 아내와 태어나지도 못한 아이의 죽음값이라서.
GoHo
번외.. 작가님 본관이 청주.. 그러나 고향은 광주..
'나는 청주에서 버스를 두 번 타고 들어가야 하는, 그러나 사십여 가구에 붙박이 주민만 백여 명에 이르는 평야 지대 마을에서 태어났다.' p75
[ 청주 한씨 ]
https://www.grandculture.net/cheongju/dir/GC00201983
화제로 지정된 대화
내로
[1.19~1.22] 세 번째 단편, <야간열차>를 기다리며
안녕하세요, 내로입니다. 주말 잘 보내셨나요?
우리는 여수를 지나, 어둠이 내려앉은 도시를 지나, 이제 세 번째 역에 도착했습니다.
오늘부터 읽을 작품은 <야간열차>입니다.
이 소설에는 두 명의 친구가 등장합니다.
서커스의 불을 토하는 사나이처럼 뜨겁게 타오르다 부러져버린 동걸,
그리고 식어버린 재처럼 세상에 적응해 '잘 맞는 껍질'을 쓰고 살아남은 나(영현).
어쩌면 우리 안에는 이 두 모습이 다 들어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소설은 앞선 작품들보다 조금 더 시리고, 조금 더 우리의 '지나온 시절'을 아프게 건드립니다.
물론, 앞선 두 작품이 워낙 강렬해서 상대적으로 ‘가벼운’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책을 읽으시면서 아래 세 가지 질문을 마음에 품어보세요.
[Mission 1. 나를 살게 하는 '환상'이 있나요?]
동걸은 술자리마다 "태백선을 타고 바다로 가는 야간열차" 이야기를 무용담처럼 늘어놓았지만, 정작 한 번도 타본 적이 없었습니다. 반면 주인공 영현은 혼자서 그 기차를 타봤지만 "모든 것은 꿈이었다"며 허무해하죠.
동걸에게 야간열차는 실제로 타는 기차가 아니라, 삶을 견디게 해주는 '유일한 비상구(환상)'였는지도 모릅니다.
여러분의 삶에도 동걸의 '야간열차' 같은 존재가 있나요?
지금 당장 떠날 수는 없지만,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오늘을 버티게 해주는 나만의 '환상'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Mission 2. '껍질' 속에 안주하고 있나요?]
동걸은 일찍이 영현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이 세계에 가장 잘 적응할 녀석이야."
그 예언대로 영현은 청춘의 열정을 버리고 사회에 안착합니다. 그리고 혼자라는 외로움조차 "내 몸에 잘 맞는 껍질"이라 여기며 편안해하죠.
여러분은 영현의 이런 모습을 어떻게 보셨나요?
세상에 무뎌지고 적응해가는 과정은 어른이 되는 '성숙'일까요, 아니면 비겁한 '타협'일까요?
사회인으로 살아가는 2026년의 여러분은 어떤가요? 혹시 나를 보호하기 위해 단단한 '껍질'을 뒤집어쓰고, 그 안에서 안도하고 있지는 않으신가요?
[Mission 3. 지금, 기차에 오르시겠습니까?]
소설의 마지막, 영현은 떠나는 동걸을 배웅만 하려다 충동적으로 달리는 기차의 난간을 잡고 올라탑니다. "기차 바퀴 소리가 고막을 찢었다"는 문장으로 소설은 끝이 나죠. 영현은 "나는 여전히 껍데기였다"고 고백했었지만, 마지막 순간만큼은 본능적으로 몸을 던졌습니다.
자, 여기 2026년의 청량리역이 있습니다.
지금 여러분에게 어디로든 떠날 수 있는 편도 티켓이 주어진다면, 그리고 저 앞에 기차가 경적을 울리며 출발하고 있다면...
여러분은 영현처럼 그 '야간열차'에 몸을 실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승강장에 남아 손을 흔드시겠습니까?
—
어둠을 뚫고 달리는 기차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번 한 주도, '야간열차' 안에서 서로의 안부를 묻겠습니다.
편안한 밤 되세요.

마키아벨리1
1. 몇 년전까지는 어느 순간 좋은 선배 (또는 리더)를 만나 훌륭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가 있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살아왔지만, 나이가 든 현재는 그런 기회가 없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하루하루를 버티는 삶 (그 날 하루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2. 현재는 제가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아닌 버티는 삶을 살고 있으니 비겁한 타협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다고 생각됩니다.
3.사실 어디로 가는 티켓인지에 달렸는데, 현재 마음은 아주 나쁘지 않으면 현재를 벗어나 떠나고 싶은 마음이 더 강합니다.
내로
어쩌면 하루에 충실한 삶이 최선의 삶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그 이상으로 애써 살려고 하면 유지가 힘들고, 또 그 이하로 산다고 해도 만족감이 떨어질 것 같거든요. 그리고, 실례가 안된다면 마키아벨리님의 진정으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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