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D-29
"애도하는 이의 마음이 아이가 서 있는 곳 아닐까 싶습니다.." 이 마음이 코옥 박히면서, @말티 가 알려주신 15년 함께했던 강아지를 허공에서 매만지던 아버지가 떠오르네요. 그 아버지의 마음이 전이된 오랜 습관이 참..
[진달래 능선] Q3.. 삶은 빛과 같아서 그런 것 같습니다.. 직진 밖에 할 수 없는.. 역행 할 수 없는.. 빛도 삶도 직진으로 이어지는 소멸을 향해 갑니다.. 직진해야 하는 우주적 운명이기에.. 나아가기 위한 날개짓들을 하며 살아가는 게 아닐까 싶네요.. 그리고 이상하게도.. '정환은 자신의 희망을 함부로 다루고 소모했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p245 희망이라는 씨앗불이 가늠되지 않는 거리에서 늘 깜빡거리고 있지요..
정말 그렇습니다. 소멸을 향해 나아가지만 나에겐 어쩌면 전부인 것 같은 몇몇 희망들에 매달려 나아가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늦었지만,, 늦게나마 미션을 수행하고 갑니다...! 1. 전 이 기이한 애도에서 가슴이 아렸습니다. 꿈에서 만난 딸에게 전달되길 바라며 나무를 태운다니요... 그렇게라도 애도하지 않으면, 마음을 달랠 무언가를 찾지 못하면 도저히 살 수가 없으니 그랬지 않을까 했습니다. 2. 특별한 장소가 있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대신 계절이 변할 때마다 이중적인 감정을 느끼는 것 같아요. 꽃샘추위마저 떠나보내고 연분홍 빛깔 휘날리기 시작하는 봄 하늘, 기습적으로 여름이 끝났음을 체감케 하는 선선한 가을 공기에 유독 그럽니다. 변함없이 찾아왔던 그 온도와 습도 속에서 괜히 싱숭생숭해지더라고요. 3. 사실 이번 모임에 참여하기 직전까지도 모든 게 헛되다는 생각에 빠져있었어요. 답은 없구나, 난 무엇 하나 단정지을 수 없구나. 결국 시간 지나면 다 사라질 것들인데. 난 뭘 위해 이리도 아득바득거렸나. 이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합니다. 어찌 완전무결한 모범답안 하나로, 내 인생의 모든 선택을 완벽히 해낼까요. 그럴 수 없습니다. 그건 내가 인간인 이상 어쩔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고 담담하게 살려고 합니다. @JIN 님의 말씀처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나아갑니다. 부딪히고 넘어지고 때론 진작 방향을 틀었어야 한다며 돌아가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고민하며 나아갔다면, 답이 없다는 걸 알고도 답에 가까워지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면, 결코 빈손으로 끝나지 않을 거란 기묘한 확신이 있습니다. 요즘 제일 간절히 바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진제님. 아주 잠깐인데 먼 곳을 다녀오신 것 같습니다 ㅎㅎ 저는 진제님처럼 계절의 경계를 체감하며 살아오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이제는.. 시간과 계절을 고스란히 느끼며 살아가보고 싶습니다. @GoHo 님이 얘기했던.. 왠지모를 쨍그렁한 마음을 계절마다 껴안는다면 다음 계절이.. 희망처럼 기다려질 것 같네요.
말씀하신 '기묘한 확신'은 사실상 알량한 희망들의 집합체이지 않을까, 생각해 봤어요. 모든 게 헛되고, 사실 희망이란 것도 허공처럼 잡을 수 없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그렇기에 내가 의미를 부여하는 것들, 남이 보면 하찮은 것들이 오히려 내게는 삶의 이유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빈손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기묘한 확신에서... 저는 어떤 이미지가 그려졌는데요. 한 사람이 무엇이든 쥘 수 있을 것 같다는, 쥐어도 좋다는 그런 여유와 포용을 가지고 주먹을 담담히 쥐며 걷는 모습이요.
정환은 그동안 자신의 앙상한 희망을 혹사했다. 곰이나 원숭이 같은 짐승들을 먹이지 않고 채찍으로 다스리는 곡예사처럼 정환은 자신의 희망을 함부로 다루고 소모했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죽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정환의 지친 육체를 괴롭히는 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무작정의 희망이었다. 의지나 가능성과는 무관한 성질의 감정이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245, 한강 지음
그때 정환의 머리를 스친 생각은, 봄과 여름과 가을을 이자가 어떻게 견디었을까 하는 것이었다. 황씨의 모습은 이 삭막한 겨울의 뜰과 너무도 잘 어우러져 있어서, 만일 이곳에 봄이 온다면 전혀 낯선 사물이 되어버릴 것 같았다. 남은 나무들의 수효는 눈에 띄게 줄어 있었다. 봄이 오기 전에 저 나무들은 모두 불태워지고 황씨의 육신도 얼어붙은 겨울의 구덩이 속으로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정환은 이상한 두려움을 느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p.250, 한강 지음
약봉지를 털어 넣을 때마다 정량의 체념을 함께 복용했던 것은 그것만이 자신의 무모하고 무기력한 희망을 잠재워줄 것임을, 그리하여 병을 쾌차시켜줄 것임을 스스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진달래 능선>, p246, 한강 지음
1. 죽은 이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지만, 어떤 것도 해줄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황씨는 절망감에 휩싸였을 것입니다. 그러다 진달래꽃이 눈에 들어와 태워 딸에게 보내주는 방식을 통해 위로를 받고 있는 것 같습니다. 현실에서는 파괴이지만 파괴를 통해 사랑을 보내고, 본인은 위안을 받는 행동인 것 같습니다. 고대에서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것과 유사하다고도 생각됩니다. 아직은 인상적인 애도의 풍경이 없는 것 같습니다. 2. 초등학교 4,5학년 때 갑자기 시골로 이사를 갔었습니다. 거기의 아이들은 제게는 좀 사나웠다고 생각되었고, 시골 학교이다 보니 학년 당 한 반밖에 없어 내내 같은 반이 유지되는 학교였습니다. 그래서 대전에 살던 제게는 적응하기가 조금 어려웠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다시 대전에 돌아가자고 투덜거렸던 기억이 납니다. 2년 간 지내다가 부모님의 직장문제로 다시 대전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초등학교 때 추억을 떠올린다면 그 곳이 주로 떠오릅니다. 사물놀이, 미술부, 뒷산에서 놀았던 추억 등등. 다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생각하면 추억이 몽글몽글 나는 곳입니다. 3. 정답이 없는 상황에서, 정답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계속 몸을 움직일 수밖에 없는 것은, 이미 스스로가 정답을 찾는 나로 본인을 정체화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찾아 헤매는 것만이, 찾아 헤맬 때만이 살아있다고 느끼게 되어버렸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서 얻는 것도 있을 것이고, 묵은 감정을 승화시킬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 스스로를 파괴할 정도에까지 이르렀다면, 고통스럽겠지만 그 정체성을 버려야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자연이 아름답지만 사나운 구석이 있듯이 시골 아이들도 그런 성정을 지녔던 것 같습니다. 제주도 서남쪽은 다른 곳과 달리 거칠고 세찬 바람이 불어서 근처 지역의 도민들도 치를 떤다고 해요. 그 바람에 버티고 사는 서남쪽 사람들은 얼마나 억세고 거칠까요. 그런 곳에 도시 사람이 섞여 들면 적응하기가 오죽할까요.
그 정체성을 버려야할 때라는 말이 아주 쓰디쓴 충고처럼 들려요. 그러나 현실은 생각 이상으로 가혹할 수 있고, 그로인한 파괴가 당사자를 포함해 더 많은 사람을 고통으로 이끈다면, 그런 조언을 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마저도 그사람에게는 행운일지도 모르겠어요.
일백 평가량 되어 보이는 대지에 나무를 파낸 수십 개의 구덩이가 있었다. 담장 가까운 곳에는 목련나무와 말라붙은 진달래 관목들이 우거져 있었으며, 넘실거리는 불길 속에는 향나무와 단풍나무의 줄기와 뿌리가 있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다음날 퇴근해 집에 들어섰을 때 정환은 목련나무 한 그루가 불길에 싸여 있는 것을 보았다. 황씨는 첫 대면 때와 마찬가지로 모닥불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황씨는 매일 아침 자신이 파내어 버린 캄캄한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으며, 울음을 터뜨린 다음날이면 나무 한 그루를 불살랐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이날 퇴근을 서둘러 돌아온 정환은 저문 마당에 아직 남아 있는 진달래나무를 보았다. 그것을 둘러싼 수십의 구덩이들은 음험한 입을 벌리고 누워 내려앉는 땅거미를 삼키고 있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마당의 나무들과 구덩이를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마다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 집이 떠오릅니다
Mission 1. 황씨의 행동은 기이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오죽하면...”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상실을 견디는 방법이 얼마나 절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직 제 삶에서 인상 깊게 떠올릴 수 있는 애도의 풍경은 많지 않습니다.
상실을 견디는 방법이라고 하시니,, 문득 줄리언반스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가 떠올라요. 총 3부로 이뤄진 논픽션? 픽션?의 경계가 불분명한 책인데, 죽은 아내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했지만 2부가 끝날 때까지 아내 얘기가 나오지 않아요. 내내 '하늘을 날은 최초의 사람들'에 대해 지루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아요.(제가 워낙 줄리언반스를 좋아하지만 지루했네요.. ㅠ당시 컨디션이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침내 3부에서 아내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아내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비유를 써 표현한 문장에서 대놓고 울고 말았어요. 그 책을 통해 소설가의 애도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녀 덕분에 작가 자신이 날아오를 수 있었다, 고 말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 방식이 있을 수 있구나 생각하게 돼요.
Mission 2. 제게 ‘진달래 능선’에 가장 가까운 장소는 고등학교인 것 같습니다.솔직히 말하면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더 많았고,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공간이었습니다. 한동안은 학교와 관련된 악몽을 자주 꿀 정도로 제게는 분명 도망치고 싶은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우연히 그 시절 유독 잘해주던 선배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인연이 이어져 연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과의 기억 덕분인지 한때는 고통으로만 남아 있던 그 장소와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배경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모두 지나간 이야기지만 그 경험은 제게 하나의 새로운 시각을 남겼습니다. 어떤 장소나 기억도 한 가지 의미로만 남지는 않는다는 것, 도망치고 싶었던 공간이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더 이상 제게 고통의 공간만은 아닌 복잡한 감정이 함께 얽힌 저만의 ‘진달래 능선’이 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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