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D-29
정환은 그동안 자신의 앙상한 희망을 혹사했다. 곰이나 원숭이 같은 짐승들을 먹이지 않고 채찍으로 다스리는 곡예사 처럼 정환은 자신의 희망을 함부로 다루고 소모했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환의 지친 육체를 괴롭히는 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무작정의 희망이었다. p245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진달래 능선, 한강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1.29~1.31] 마지막 단편, <붉은 닻>, 상처가 붉게 타오르는 시간 안녕하세요, 내로입니다. 우리는 드디어 마지막 정거장, <붉은 닻>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3주간 우리는 '미래가 없는 자들', '아픈 사람들',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쩌면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뻐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이 마지막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녹슬어버린 닻이 석양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고. 1월의 마지막 3일, 그 장엄한 풍경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Mission 1. 당신의 마음속에도 '붉은 닻'이 있나요?] 주인공 동식은 서해안 갯벌에서 "잔뜩 녹이 슨 채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거대한 닻"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해 떠밀려온 배들이 버리고 간, 상실과 고독의 거대한 무덤처럼 보입니다. 동식은 그 닻이 마치 제 가슴에 꽂힌 듯한 통증을 느끼죠.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어딘가에 정박하지 못한 채 갯벌에 박혀 녹슬어가고 있는 '붉은 닻' 같은 기억이나 감정이 있나요? 꺼내기도 무겁고, 버려두자니 아픈 그 마음의 닻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Mission 2. "왜 너는 변하지 않았냐" ] 동식은 동생 동영에게 묻습니다. "왜 너는 변하지 않았냐." 동식은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세상에 적응하려 애쓰며 변해갔지만, 동생은 여전히 어둠 속을 헤매며 과거의 상처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식의 이 물음은 우리에게도 향합니다. 세상에 맞춰 적당히 무뎌지고 변해가는 것은 '성장'일까요, 아니면 '타협'일까요? 반대로 상처를 안고 변하지 않는 동영의 모습은 미성숙함일까요, 아니면 순수함을 지키려는 몸부림일까요? 여러분에게 '변하지 않음'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Mission 3. 상처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흉물스럽게 녹슬어 있던 닻들이 저녁 노을을 받자, 마치 "날카로운 닻들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붉게 빛납니다. 상처와 고통의 상징이었던 닻이,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내뿜는 순간이죠. 우리가 한 달 동안 들여다본 '지독한 슬픔'들이 결국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절망 속에서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빛나는 희망, 혹은 작가가 말한 '화해의 밝은 전망'을 여러분은 이 소설 어디에서 발견하셨나요?
1. 인생을 살면서 했던 몇가지 아쉬웠던 선택들은 고비고비마다 생각납니다. 특히 제가 한 선택이 아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제 뜻에 어긋나게 해야만 했던 선택이 가장 가슴이 아픕니다. 2. 적당히 무뎌지는 것은 타협이고 성숙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숙이라고 하면 외부가 아닌 아닌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동영의 모습은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지키겠다고 생각했으니 미성숙이라기보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3. 이 소설을 포함한 책 전체가 슬픈 내용을 소재로 했지만,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자신의 마음 속에 희망과 힘을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마키아벨리1 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인생의 서늘함과 무작위성,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선택으로 인한 비참들이 느껴져요. 생각보다 아리게 다가왔는지 일상에서 드문드문 생각나기도 했어요. 앞으로 그믐에서 계속 뵙겠습니다~
1. 어릴 때는 있었던 것 같은데요. 축복과도 같은 망각이 그 닻을 다 바스러지게 한 것 같습니다. 과거의 사건들이 제게 미치는 영향은 이제 조금 서글프거나 안타까운 에피소드 정도인 것 같아요. 2. 제가 느꼈을 때 동식과 동영은 다만 시기가 다른 것 뿐이지 결국 현실에 맞춰 변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동영이가 "형은 왜 아팠어? 왜 술을 마셨어."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동식이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고 있을 때 동영이가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하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동식이 온전히 본인만의 세상에서 타락했다가 회복할 때 동영이는 가족이라는 세상 속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계속 받아온 것 같아요. 또한 형처럼 슬픔을 방출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혼자 어둠속을 배회하고 고통을 억누르며 감내하는 성향인 것 같기도 하구요. 이런 이유로 동영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게 동식보다 오래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라서 동영의 모습은 미성숙한것도, 순수함을 지키려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단지 동식보다 더 깊은 상처를 받아서 딛고 일어나는 것이 오래걸리는 것 같아요. 3. 책 마지막에 평론가가 이 단편집이 관통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말했는데요. 요약하자면 '주변인의 죽음을 자책으로 내면화하여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들이, 유사한 고통을 가진 타인을 보며 본인의 애도가 자멸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극복을 위해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평론을 보며 슬픈 과거를 딛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1)문제점을 스스로 깨닫는 것 (2)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타인의 존재 (3)극복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타인을 보면서 내 모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나의 취약한 점, 문제점이 보이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딱 이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 때 그 미묘한 혐오의 감정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트라우마나 상처를 파악한 후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화해의 밝은 전망'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결국 화해는 내 내면 속에서 치열하게 일어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일타강사처럼 잘 정리해주셨군요..! 저도 종종 이유 없이 싫어지는 사람이 있어요. 지금은 이상하게 생각나지 않지만.. 제가 쇼츠를 보다가 홱 넘기기도 하고, 굳이 '관심 없음'을 클릭하기도 했다는 것을 떠올립니다. 그런데 그런 행동들이 내 안의 트라우마나 상처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말티가 깊이 숙고한 성찰 덕분에 저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그러한 행동을 기회(?!)로 성찰의 시간을 가져봐야겠어요. 그리고 마지막 문장... 아...ㅎㅎ 너무 멋지네요. "결국 화해는 내 내면 속에서 치열하게 일어나는 게 아닐까!"
1. 이젠 지나간 일입니다. 몇 년을 그 닻의 잔재 속에 살아왔습니다. 역설적이게도 지나간 그 시절에서 지금의 삶의 태도를 배웠고, 일반적이지 않은 무던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니 무작정 후회하고 미워하기도 애매합니다. 이젠 날 움켜쥔 이 닻도 붉게 녹이 슬었습니다. 더 이상 더 깊숙이 찍지도, 찢지도 못하리라 생각합니다. 완전히 빼낼 수는 없겠지만, 종종 찾아와 이 닻을 볼 때, 이리 아름다울 수도 있었구나, 하고 싶습니다. 2. 동영에게는 '변하지 않음'이 정신적 괴로움으로부터 본인을 보전하려는 시도였지 않을까요. 더 나아가 사실 동영에게는 형에게 말하지 않은, 파도 소리 없는 바다나 숨죽이고 타오르는 산불 같은 분노가 내면에 이글거리고 있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전 동영의 이런 행위가 성장도, 타협도, 순수함의 보전도 아닌, 자기 보전과 절제를 위한 몸부림이라고 두둔하고 싶습니다. 그렇기에 다시 삶을 살아내기 위해, 그 상처를 직면하고 담담히 받아들이게 되는 시간이 찬찬히 찾아오길 바랍니다. 동식이 육체적 죽음 앞에서 삶의 키를 돌렸듯, 동영에게도 무언가 계기가 주어지길 바랄 뿐입니다. (전 개인적으로 동식과 동영의 어머니의 모습에서 말로 품기 힘든 무게의 사랑을 느꼈어요. 이 소설의 뒷이야기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계속 진행된다면, 이런 어머니와의 어떤 사건을 계기로 동영도 세상에 다시 적응하려 애쓰게 될 것 같습니다.) 3. 지독한 슬픔 가운데 피어나는 밝은 전망은 이 순간이 영원하지 않으리라는 막연한 믿음 같습니다. 분명 무언가 변화가 있긴 할 거라는 생각. 붉은 닻이 바다에 잠기는 때도 있다는 것. 한창 어두운 때와 밝을 때, 그리고 그 사이의 황혼도 찾아온다는 것 말이에요. 다만...! 마냥 낙관적인 생각에 빠지자는 건 절대 아닙니다. 다만 묵묵히, 담담히 그 닻을 껴안고 살아보자는 다짐입니다. 먼훗날 지금 이 시점을 되돌아보면, 그땐 이 닻이 그렇게 흉물이었던 건 아니구나. 녹슨 이 철덩어리가 붉은 빛을 내는 순간도 있구나, 할 수 있게 말입니다.
동영에게도 무언가 계기가 주어지길 바랄 뿐이라는 말이,,, 가슴을 저미는 느낌을 주네요.
[붉은 닻] 수많은 목선들이 썩어 간 배들의 무덤 같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스러져 사라지지 않고.. 검붉게 녹슨 채 서로에게 닻을 내려 기대어 지탱하고 있는.. 왠지 두 형제의 과거와 현재 같습니다.. '젊은 날의 방황이 유난히 깊은 낙인을 찍어놓는 사람이 있는데 동식이 바로 그런 경우였다. 영혼과 육신 중 어느 쪽이냐 하면 동식의 경우는 육신 쪽에 낙인이 찍혔다.' p269 육신에 낙인이 찍힌 형 동식.. 영혼에 낙인이 찍힌 동생 동영.. 검붉게 녹슨 채 서로 배회하듯 지탱하고 있는.. ' "왜 넌 변하지 않았냐." "형은 왜 아팠어?" "왜 술을 마셨어." 불타는 닻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고 있었다. 한 사내의 검붉은 그림자가 그 속에서 너울너울 춤추며 걸어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p300 종국에 꺼내 묻는 답 없는 질문으로 두 형제의 녹슨 붉은 닻도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것 같았습니다.. 너울너울 그들 형제도 새로운 걸음을 떼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언제까지나 뜨겁고 붉게 타오를 한강의 문장 중에서도 가장 정수만을 뽑아 문장을 수집해 주시고, 이야기하지 않은 작가의 이야기를 한강 작가님 대신 들려주시는 것 같아서,, 가끔 아…. 하고 멍을 때렸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묵묵히 깊이 들여다보시는 모습에 놀랍고 감탄했습니다. 다음 기회에 다른 모임으로 새롭게 만나 뵙겠습니다. 영광이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에필로그] 2026년의 첫 달을 보내며 "새해를 가장 슬픈 마음으로 시작하자"던 우리의 낯선 실험이 끝났습니다. 어떠셨나요? 슬픔의 바닥을 치고 올라온 우리는, 이제 조금 더 단단해진 마음으로 2월을 맞이할 수 있을까요? 마지막 책장을 덮으며, 여러분의 마음속에 남은 '붉은 닻' 하나를 댓글로 남겨주세요. 그동안 함께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에필로그를 보니.. 여수에서 긴 여행을 마치고 떠나야'만' 하는.. 출발하기 직전의 버스를 마주하고 있는 것 같은.. 왠지모를 쨍그렁한 마음이 벌써부터 드네요.. 남은 시간 더 애착을 갖고 붙들어봐야겠습니다..
덕분에 제가 지금 느끼는 미묘한 감정이 과연 '쨍그렁하다'고 표현할 수 있을 것만 같아요. 아주 쨍그렁한 밤이에요^^ 동시에 저는 그런 기대도 갖고 있어요. @GoHo 님의 ID 뒤에 me를 붙이면 'Go home'이 되는 것처럼 먼 여행을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복귀하여 다시 생활인으로서 정진해야 하는 부지런한 하루, 그런 날들이 줄 또 다른 '경험'들요. 그것이 무엇을 내게 선사할 지 알 수 없지만 '미래의 내가 필요로 한다'는 배움의 마음으로 나아가고 싶어요. (성장 욕구에는 왜 끝이 없는지..)
'@GoHo 님의 ID 뒤에 me를 붙이면 'Go home'이 되는 것처럼 먼 여행을 떠난 후 다시 집으로 복귀..' 와~~ 한번도 이렇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습니다.. GoHo + me 나를 덧붙여 Go home.. 나의 안식처로 돌아가는.. 잊을 수 없는 의미를 부여해 주셨네요.. 감사합니다~^^bb
선물처럼 받아주셨군요^^ (집이 최고.. 저도 오늘 제주집을 확정하고.. 내일 계약하고, 드디어 모레 집으로 돌아갑니다.. Go home!!!)
한강 작가의 책을 읽으며 슬프지만 뭔가 먹먹하게 포근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고통받는 주인공 옆에 항상 비슷한 어려움을 겪는 조연들이 등장하고, 결말에는 대부분 희망의 붉은 닻이 있었기 때문에 뭔가 위로가 되었던 것 같아요. 매번 새해는 더 좋을거라는 막연한 희망을 가지고 시작하지만 막상 지내다보면 좋은 일만 있지는 않은데요. 그럴 때마다 항상 숨 쉴 수 있는 구멍이 어디엔가는 언젠가는 있을거라는 느낌을 가지고 한 해를 시작하는 것 같습니다. 의미깊은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슬픈 이야기들이 우리의 숨통을 의도치 않게 틔워줬다면, 그것은 우리가 슬픔 그 자체를 내버려두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마치 앞서 말씀해 주신 자신의 트라우마를 '직면'하는 것처럼요. 그믐 처음 독서 모임을 <여수의 사랑>으로 함께해주셔서 감사했습니다.
이 책을 읽는 동시에, 지난해부터 직장에서 어려운 일이 있어서 힘들었습니다. 하지만 어제 세미나 참석과 저녁시간에 고등학교 반창회 참석으로 기분전환을 했습니다. 작품 속 닻 처럼 인생에 큰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지만 제 경우는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난 것이 마음을 단단하게 만드는데 도움을 준 것 같습니다.(한간 작가님의 작품과 함께)
새해를 대하는 자세가 달라진 거 같아요. 예전에는 근거 없는 희망과 설렘이 가득했다면, 지금은 또 한차례 찾아올 어둠을 적요하게 수용할 준비를 하는 기분이에요. 신기하게도 이런 자세가 삶에 주어진 복 하나하나를 더 잘 알아차리고, 감사하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감사와 행복이 넘칩니다. 모임에서 많은 분들과 묵직한 대화를 주고받으며, 삶을 향한 사랑이 한층 무르익은 것 같아 감사합니다. 책 한 권을 이토록 깊게 읽어본 건 처음인 것 같아요. 함께 해주신 분들 덕분입니다! 상당히 늦었지만(?)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D
또 한 차례 찾아올 어둠을 제공하는 '삶'에 대해서...대담히도 '삶을 향한 사랑'이라고 하시니, 삶 자체를 긍정하며 나아가려는 태도가 뭉클하네요! 여러모로 진제님의 삶에 있을 여러 가지 일들에, 아주 기분 좋은 예감을 하게 됩니다. 응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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