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정체성을 버려야할 때라는 말이 아주 쓰디쓴 충고처럼 들려요. 그러나 현실은 생각 이상으로 가혹할 수 있고, 그로인한 파괴가 당사자를 포함해 더 많은 사람을 고통으로 이끈다면, 그런 조언을 해줄 사람이 있다는 것마저도 그사람에게는 행운일지도 모르겠어요.
한강, 『여수의 사랑』 : 미래가 없는 자들을 위한 2026년의 시작
D-29
내로

반달
“ 일백 평가량 되어 보이는 대지에 나무를 파낸 수십 개의 구덩이가 있었다. 담장 가까운 곳에는 목련나무와 말라붙은 진달래 관목들이 우거져 있었으며, 넘실거리는 불길 속에는 향나무와 단풍나무의 줄기와 뿌리가 있었다. ”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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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다음날 퇴근해 집에 들어섰을 때 정환은 목련나무 한 그루가 불길에 싸여 있는 것을 보았다. 황씨는 첫 대면 때와 마찬가지로 모닥불 앞에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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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황씨는 매일 아침 자신이 파내어 버린 캄캄한 구덩이 속을 들여다보고 앉아 있었으며, 울음을 터뜨린 다음날이면 나무 한 그루를 불살랐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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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이날 퇴근을 서둘러 돌아온 정환은 저문 마당에 아직 남아 있는 진달래나무를 보았다. 그것을 둘러싼 수십의 구덩이들은 음험한 입을 벌리고 누워 내려앉는 땅거미를 삼키고 있었다.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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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달
마당의 나무들과 구덩이를 묘사한 부분을 읽을 때마다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 집이 떠오릅니다
JIN
Mission 1.
황씨의 행동은 기이하다기보다는 오히려 더 서글프게 느껴졌습니다.
“오죽하면...”이라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상실을 견디는 방법이 얼마나 절박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아직 제 삶에서 인상 깊게 떠올릴 수 있는 애도의 풍경은 많지 않습니다.
내로
상실을 견디는 방법이라고 하시니,, 문득 줄리언반스의 <사랑은 끝나지 않는다>가 떠올라요. 총 3부로 이뤄진 논픽션? 픽션?의 경계가 불분명한 책인데, 죽은 아내에 관한 책이라고 소개했지만 2부가 끝날 때까지 아내 얘기가 나오지 않아요. 내내 '하늘을 날은 최초의 사람들'에 대해 지루하게 이야기를 늘어놓아요.(제가 워낙 줄리언반스를 좋아하지만 지루했네요.. ㅠ당시 컨디션이 그랬는지도 모르겠어요.) 마침내 3부에서 아내 이야기가 시작되는데... 아내가 어떤 존재였는지에 대해 비유를 써 표현한 문장에서 대놓고 울고 말았어요. 그 책을 통해 소설가의 애도 방식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그녀 덕분에 작가 자신이 날아오를 수 있었다, 고 말하지 않았지만 충분히 느낄 수 있었고, 각자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애도 방식이 있을 수 있구나 생각하게 돼요.
JIN
Mission 2. 제게 ‘진달래 능선’에 가장 가까운 장소는 고등학교인 것 같습니다.솔직히 말하면 좋은 기억보다는 나쁜 기억이 더 많았고, 그래서 가능한 한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공간이었습니다. 한동안은 학교와 관련된 악몽을 자주 꿀 정도로 제게는 분명 도망치고 싶은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몇 년 전, 우연히 그 시절 유독 잘해주던 선배를 다시 만나게 되었고 인연이 이어져 연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그 사람과의 기억 덕분인지 한때는 고통으로만 남아 있던 그 장소와 시간이 지금의 저를 만들어준 배경처럼 느껴지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모두 지나간 이야기지만 그 경험은 제게 하나의 새로운 시각을 남겼습니다. 어떤 장소나 기억도 한 가지 의미로만 남지는 않는다는 것, 도망치고 싶었던 공간이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래서 고등학교는 더 이상 제게 고통의 공간만은 아닌 복잡한 감정이 함께 얽힌 저만의 ‘진달래 능선’이 된 것 같습니다.
내로
"어떤 장소나 기억도 한 가지 의미로만 남지는 않는다는 것, 도망치고 싶었던 공간이 시간이 지나 전혀 다른 얼굴로 다가올 수도 있다는 사실"
말씀하신 이런 종류의 깨달음은 철저히 개인의 것인 것 같아요. 누구나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잖아요. 또, 성숙의 지표일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기도 해요.
JIN
Mission 3.
저는 인간이란 결국 시행착오 끝에 배움을 얻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답이 없다는 사실조차도, 직접 부딪히고 헤매본 뒤에야 비로소 알게 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빈손으로 끝날 가능성을 알면서도 우리는 쉽게 ‘찾기’를 멈추지 못하는 것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평소에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을 마음에 품고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전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색하는 사람만이
조금 더 깊은 배움에 닿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결과가 실패로 남더라도 그 과정을 경험한 사람은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답을 찾지 못하더라도 찾으려 했다는 사실 자체가 삶을 조금은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로
자신을 정의하는 단어가 있다는 것은 꽤 '멋'진 일인 것 같아요. 저는 '비로소'라는 단어를 참 좋아해요^^
GoHo
어찌할 수 없는 무력한 희망으로 허공을 올려다보았다.
.....정임아.
어디서 이렇게 가난한 얼굴로 자라났느냐. 지금은 이디서 이렇게 가난한 얼굴로 살고 있느냐. p238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진달래 능선,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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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Ho
“ 정환은 자신의 성장 과정이나 환경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 편으로, 가까이 지내는 동기들도 그 형편을 알지 못했다. 그것은 정환이 선택한 외로움이었다. 정환의 삶은 비밀로 이루어져 있었다. 가난과 폭력으로 얼룩진 가계를 버리고 달아나기로 몰래 결심했던 그 순간부터 비밀은 그의 삶을 지탱하는 중심 추와 같은 것이 되어버렸다. p239 ”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진달래 능선,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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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로
저도 이 문장 접어뒀어요. 다시 읽어도 좋아요!
GoHo
“ 정환은 그동안 자신의 앙상한 희망을 혹사했다. 곰이나 원숭이 같은 짐승들을 먹이지 않고 채찍으로 다스리는 곡예사 처럼 정환은 자신의 희망을 함부로 다루고 소모했다. 한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죽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정환의 지친 육체를 괴롭히는 것은 절망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은 무작정의 희망이었다. p245 ”
『여수의 사랑 - 2024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개정판』 진달래 능선, 한강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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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내로
[1.29~1.31] 마지막 단편, <붉은 닻>, 상처가 붉게 타오르는 시간
안녕하세요, 내로입니다.
우리는 드디어 마지막 정거장, <붉은 닻>에 도착했습니다.
지난 3주간 우리는 '미래가 없는 자들', '아픈 사람들', '어둠 속을 헤매는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어쩌면 읽는 내내 마음 한구석이 뻐근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한강 작가는 이 마지막 소설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녹슬어버린 닻이 석양을 만나면 어떻게 되는지 아느냐고.
1월의 마지막 3일, 그 장엄한 풍경 속으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Mission 1. 당신의 마음속에도 '붉은 닻'이 있나요?]
주인공 동식은 서해안 갯벌에서 "잔뜩 녹이 슨 채 서로에게 기대어 있는 거대한 닻"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정박할 곳을 찾지 못해 떠밀려온 배들이 버리고 간, 상실과 고독의 거대한 무덤처럼 보입니다. 동식은 그 닻이 마치 제 가슴에 꽂힌 듯한 통증을 느끼죠.
여러분의 마음속에도 어딘가에 정박하지 못한 채 갯벌에 박혀 녹슬어가고 있는 '붉은 닻' 같은 기억이나 감정이 있나요? 꺼내기도 무겁고, 버려두자니 아픈 그 마음의 닻에 대해 이야기해 주세요.
[Mission 2. "왜 너는 변하지 않았냐" ]
동식은 동생 동영에게 묻습니다. "왜 너는 변하지 않았냐."
동식은 아픈 몸을 이끌고 어떻게든 세상에 적응하려 애쓰며 변해갔지만, 동생은 여전히 어둠 속을 헤매며 과거의 상처 안에 머물러 있었기 때문입니다.
동식의 이 물음은 우리에게도 향합니다. 세상에 맞춰 적당히 무뎌지고 변해가는 것은 '성장'일까요, 아니면 '타협'일까요? 반대로 상처를 안고 변하지 않는 동영의 모습은 미성숙함일까요, 아니면 순수함을 지키려는 몸부림일까요? 여러분에게 '변하지 않음'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Mission 3. 상처는 희망이 될 수 있을까요?]
이 소설의 백미는 마지막 장면입니다.
흉물스럽게 녹슬어 있던 닻들이 저녁 노을을 받자, 마치 "날카로운 닻들이 불타고 있는" 것처럼 붉게 빛납니다.
상처와 고통의 상징이었던 닻이, 가장 아름다운 빛을 내뿜는 순간이죠.
우리가 한 달 동안 들여다본 '지독한 슬픔'들이 결국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요? 절망 속에서도 아주 미약하게나마 빛나는 희망, 혹은 작가가 말한 '화해의 밝은 전망'을 여러분은 이 소설 어디에서 발견하셨나요?

마키아벨리1
1. 인생을 살면서 했던 몇가지 아쉬웠던 선택들은 고비고비마다 생각납니다. 특히 제가 한 선택이 아닌 다른 사람들 때문에 제 뜻에 어긋나게 해야만 했던 선택이 가장 가슴이 아픕니다.
2. 적당히 무뎌지는 것은 타협이고 성숙은 아닌 것 같습니다. 성숙이라고 하면 외부가 아닌 아닌 자신의 결정이 중요하다고 생각됩니다. 동영의 모습은 자신이 자신의 모습을 지키겠다고 생각했으니 미성숙이라기보다는 몸부림이라고 생각합니다.
3. 이 소설을 포함한 책 전체가 슬픈 내용을 소재로 했지만, 무너지지 않고 버티는, 자신의 마음 속에 희망과 힘을 지켜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라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내로
@마키아벨리1 님이 말씀하실 때마다 인생의 서늘함과 무작위성, 인간의 연약함 그리고 선택으로 인한 비참들이 느껴져요. 생각보다 아리게 다가왔 는지 일상에서 드문드문 생각나기도 했어요. 앞으로 그믐에서 계속 뵙겠습니다~
말티
1. 어릴 때는 있었던 것 같은데요. 축복과도 같은 망각이 그 닻을 다 바스러지게 한 것 같습니다. 과거의 사건들이 제게 미치는 영향은 이제 조금 서글프거나 안타까운 에피소드 정도인 것 같아요.
2. 제가 느꼈을 때 동식과 동영은 다만 시기가 다른 것 뿐이지 결국 현실에 맞춰 변화할 것 같습니다.
마지막 장면에 동영이가 "형은 왜 아팠어? 왜 술을 마셨어." 라고 말하는 것을 보면서 동식이 술과 담배에 찌들어 살고 있을 때 동영이가 정서적으로 많이 불안하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동식이 온전히 본인만의 세상에서 타락했다가 회복할 때 동영이는 가족이라는 세상 속에서 부정적인 영향을 계속 받아온 것 같아요. 또한 형처럼 슬픔을 방출하는 스타일이 아니라 혼자 어둠속을 배회하고 고통을 억누르며 감내하는 성향인 것 같기도 하구요. 이런 이유로 동영은 슬픔을 딛고 일어나는 게 동식보다 오래걸리지 않을까 싶습니다.
따라서 동영의 모습은 미성숙한것도, 순수함을 지키려는 것도 아닌 듯 합니다. 단지 동식보다 더 깊은 상처를 받아서 딛고 일어나는 것이 오래걸리는 것 같아요.
3. 책 마지막에 평론가가 이 단편집이 관통하고 있는 주제에 대해 말했는데요.
요약하자면 '주변인의 죽음을 자책으로 내면화하여 고통스럽게 살아가고 있는 주인공들이, 유사한 고통을 가진 타인을 보며 본인의 애도가 자멸적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극복을 위해 나아가는 이야기'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이 평론을 보며 슬픈 과거를 딛고 나아가기 위해서는 (1)문제점을 스스로 깨닫는 것 (2)그것을 깨닫게 해주는 타인의 존재 (3)극복을 위한 노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요.
타인을 보면서 내 모습이 보일 때가 있습니다. 보통은 나의 취약한 점, 문제점이 보이는 것 같아요. 누군가를 싫어하는 것은 그 사람에게서 내가 싫어하는 내 모습이 보이기 때문이라는 말이 딱 이 상황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 때 그 미묘한 혐오의 감정을 피하지 않고 직면하고, 내면 깊숙한 곳에 있는 트라우마나 상처를 파악한 후 극복을 위해 노력하는 과정이 '화해의 밝은 전망'을 의미하는 것 같아요. 결국 화해는 내 내면 속에서 치열하게 일어나는게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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