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힐마 아프 클린트> 전시를 봤습니다. 안현배 미술사학자에게 몬드리안 보다 먼저 추상화를 그린, 잘 알려지지 않은 스웨덴 여성화가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꼭 전시를 보라고 했고, 제가 거주하는 부산현대미술관에서 열렸습니다. 오픈하고 한 달 뒤에 갔는데도 전시 도록을 판매하지 않아 궁금했는데, 있었군요. 전시 제목이 "적절한 소환"이라는 점에서 왜 소환일까?라는 의문을 가지긴 했습니다. 전시장을 리뷰어처럼 자세히 보지는 않았지만, 기억에 남는 구조는 창을 내어 건너 편을 볼 수 있는 방이 있었습니다. 여성 화가로서 삶에 대한 이야기를 더 많이 했다고 느끼지는 못했습니다. 다만 다른 전시회와 달리 안내 책자가 2가지 타입이 있었습니다. 한 권은 QR 을 찍으면 거의 모든 작품을 볼 수 있었고요, 한 장은 펼치면 그림 한장이 됩니다. (벽에 붙여 놓았어요.) 그래서 '적절한 소환'이라는 말이 세상에 드러나지 않은 작가를 소개하는 자리구나, QR로 편리하게 접속해서 작품과 해설을 보고, 그림 한 장도 줘서 널리 알려지기를 원한다고 생각했답니다. 그러곤 집에 와서 『위대한 여성 예술가들 』(을유출판사, 절판)에 힐마를 찾아보니 <그룹 X, 1번, 재단화>가 실려 있었습니다.
<서리북 클럽> 세 번째_편집자와 함께 읽는 서리북 겨울호(20호) 누가 여성을 두려워하랴
D-29

르네오즈

borumis
오! 부럽습니다. 부산 전시를 보셨군요. 요즘 QR이나 오디오가이드를 활용한 전시 설명이 잘 되어 있어서 참 좋더라구요. 확실히 책을 직접 읽어본 분이 읽는 서평처럼 전시회를 직접 보신 분이면 글의 느낌이 다르게 와닿을 것 같아요. 하긴 보통 화가가 영매에 대한 관심이 있어서 소환이라고 생각하긴 힘들 것 같아요. 화가의 삶의 궤적을 알아보는 것도 어느 정도 중요한 관람 포인트같습니다. 다만 그게 여성이라는 이유 때문에 작품보다 더 관심의 비중이 과하게 쏠리는 걸 걱정한 듯합니다. 안그래도 궁금했던 여성 화가였는데 우리나라에서 처음 선보인 전시회를 이번 페미니즘 특집에서 다룬 게 참 좋네요.

서리북editor
부산에서 열려서 가보지 못했는데 부럽습니다!!! 힐마의 그림과 서사를 통해서 우리나라 여성 작가들의 지금을 짚으신 점이 참 좋았어요. 현시원 선생님이 말씀하신 작가분의 전시가 열리면 꼭 참여하고 싶어졌습니다.

borumis
미리 브뤼노 라투르의 리뷰를 읽었는데.. ㅎㅎㅎ 질문하고 싶은 게 많아서 나중에 한꺼번에 묻겠습니다. 실은 그믐에서 STS 책들을 읽으면서 브뤼노 라투르의 책들을 꽤 읽어봤는데 그 중 홍성욱 교수님이 번역하신 책도 있었습니다.
판도라의 희망: https://www.gmeum.com/meet/2501
젊은 과학의 전선: https://www.gmeum.com/meet/2520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https://www.gmeum.com/meet/2458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 인문학 편지: https://www.gmeum.com/meet/2479
안타깝게도 이번 리뷰에서 나온 '존재양식의 탐구'는 아직 안 읽었네요.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판도라의 희망 및 젊은 과학의 전선 등은 영어로 읽지 않았으면 어떤 부분은 무슨 소린지 모를 정도로 번역이 이상했습니다. ㅜㅜ (그래서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일부러 영어 스캔본을 찾아 읽었습니다)
이번 책은 그렇지 않기를 바라고 있긴 한데..;;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에서 홍성욱 교수님이 직접 쓰신 글을 읽으면 잘 이해가 가고 브뤼노 라투르의 영어판 책은 이해가 가는데 왜 브뤼노 라투르의 한글 번역본은 이렇게 이해하기 어렵게 번역했는지 잘 모르겠습니다;; 브뤼노 라투르가 말한 translation의 문제가 이런 것일까요?

과학에 도전하는 과학 - 과 학기술학(STS)을 만든 사람들흔히 과학은 객관적이고 단일하며 보편적이라 여겨진다. 과학기술학(STS)은 이에 도전한다. 과학기술학자들은 ‘진리’는 왜 진리라 여겨지는지, ‘법칙’은 어떻게 법칙이 되었는지에 의문을 가지고 그 맥락을 들여다본다.

판도라의 희망 - 과학기술학의 참모습에 관한 에세이휴머니스트와 서울대학교 홍성욱 교수가 기획한 과학, 기술, 사회를 생각하는 STS collection 시리즈 세 번째 책으로, 과학전쟁에서 공격받았던 라투르가 고뇌 끝에 보여주는 과학학(과학기술학)과 과학에 대한 생각을 담고 있다.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 편지 - 인간과 자연, 과학과 정치에 관한 가장 도발적인 생각모순과 미스터리로 가득 찬 과학의 속살을 들여다보다. 과학과 인문학을 넘나드는 통합적 사유의 새로운 패러다임. ‘논란 속의 과학’을 단순한 찬성이나 반대에서 벗어나 정치-사회적 관계까지 포괄하는 인문학의 지평에서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책이다.

젊은 과학의 전선 - 테크노사이언스와 행위자 - 연결망의 구축있는 그대로의 과학지식 생산과정을 분석한 작업의 결과물이다. 이것은 과학자들이 어떻게 보다 더 강력한 레토릭을 구사하며, 더욱 더 강고한 요새를 점령하려 애쓰고, 어떻게 이질적인 행위자들 사이의 네트워크를 크게 확장시키는가에 대한 추적 보고서다.
책장 바로가기

서리북editor
번역은 반역이라는 말이 맞는 듯한 순간들이 있죠! 그래도 어려운 책에 바투 다가가게 해주는 역할이 서평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서리북editor
@모임 안녕하세요, 독자님들!
벌써 그믐 모임의 마지막 주차에 접어들었습니다...!! 책을 받아 보신 후 단숨에 읽으신 독자님도 계시고, 조금씩 독서를 음미하신 독자님들도 있는 것 같습니다. 각자의 독서 방식으로, 감상을 나누는 재미가 모임의 가장 큰 강점이라는 생각입니다.
4주차는 홍성욱 선생님이 '고전의 강' 코너에 쓰신 『존재양식의 탐구』전사를 읽을 차례입니다!
책 자체도 어렵고, 다루는 이론도 복잡하다 보니, 20호와 21호에 걸쳐 서평이 실릴 예정입니다. 전사(前史)인 만큼 큰 틀에서 이해하고 읽으면 좋을 내용이 담겼습니다. 조금씩 읽다 보면, 매듭이 탁! 풀리는 지점을 만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하나의 글은 '창간 5주년 기념호 원고 미리 읽기'입니다. 3월 출간 예정인 5주년 창간기념호는 편집위원 선생님들의 특집 리뷰를 중심으로, 지나온 5년과 앞으로의 5년을 예감합니다. 각자의 전장에서 써 내려가신 서평은 모임 기간에 편집이 되면 미리 읽기가 가능하겠지만, 일정상 마지막 주차는 '고전의 강'으로 채워야 할지도 모른다는 말씀 올립니다!
2026년, 올해의 첫달 마지막 주인 만큼 독자님들의 이야기를 풍성하게 들려주세요!

borumis
아하~! 그래서 이번 기사를 읽으면서 정작 이 책에 대한 내용은 별로 없는 것 같고 그 전사(prehistory)에 있는 이론만 많은 듯 한 게 그런 이유군요. 마침 21호부터 구독 신청해서 다행입니다.
저도 reference를 이전에 '지시'로 번역했다가 이번에 '참조'라고 번역한 이유가 궁금했는데, 다른 의미로 쓰인 걸까요?
그리고 203쪽에서 ANT가 '인식론보다 존재론에 방점을 찍는 것'이라고 했는데 이게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일까요? 과학이 '묘사하는' 것보다 테크노사이언스가 '만들어 내는' 세계에 주목한다는데, 테크노사이언스가 만들어내는 것은 우리가 인식하는 것 또한 포함되는 것 아닐까요?
그리고 204쪽에서 '존재자가 이해관계를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네트워크의 연결과 단절이 이해관계를 만들어낸다.'고 했는데, 이 문장이 이해가 안 가요. 안그래도 판도라의 상자에서도 파스퇴르 이전에는 세균이 존재하지 않았고 람세스2세가 결핵균으로 죽었다고 할 수도 없다는 이런 비실재적 주장도 이해가 안 갔는데.. 우리가 그것을 과학적으로 이해/파악/발견하기 전에는 세균이나 결핵균이 없었다는 것은 마치 너의 이름으로 부르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는 김춘수의 시처럼 존재론보다는 인식론적 주장이 아닌가요? '관계적' 존재론이라고는 하지만 결국 관계는 인식을 통한 것 아닐까요?
온토
홍성욱, 『존재양식의 탐구』 서평
『존재양식의 탐구』라는 거대한 산을 오르는 데 큰 도움이 되는 서평이었습니다. 『존재 양식의 탐구』는 라투르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어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입니다. 홍성욱 교수님도 말씀하셨지만 행위자네트워크 이론가로서의 라투르와 존재론의 철학자로서의 라투르는 그 결을 상당히 달리 하기 때문입니다. 홍교수님은 이 글에서 후자를 상세히 설명하면서 『존재양식의 탐구』의 전사라고 할 만한 이론적 궤적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라투르에게 영향을 미친 여러 학자들의 이론도 소개해주어서 개념들의 계보를 알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다음 편에 『존재양식의 탐구』를 본격적인 다룬다고 하니 큰 기대를 안고 기다리겠습니다. 한 가지 간단한 질문이 있습니다. reference 를 참조라고 번역하셨는데 『판도라의 희망』이나 『존재양식의 탐구』에서 지시로 번역되어 있습니다. 어떤 차이인지 궁금합니다.

borumis
또, 209쪽 주석에서 '양상(modality)이 양식(mode)에서 나온 것(mode--> modal-> modality)임을 상기해보면, 그의 이런 논의와 '존재양식의 탐구 '사이에 있는 희미한 연결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는데 이 의미를 이해 못 했어요. 양상이 양식에서 나왔기 때문에 양상은 진리조건을 다르게 하는 양식이라는 것인가요?

borumis
217쪽의 이 문장 또한 이해가 안 갔는데요. 일단 그레마스의 발화 개념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부재의 흔적이 현재를 가능하게 하는 과정'이 무슨 소린지 모르겠습니다.
그레마스의 발화 개념을 '부재의 흔적이 현재를 가능하게 하는 과정'으로 재해석하고 발화에 대한 이러한 재정의 에 근거해서 세계를 구성하는 존재들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다양한 '발화 체제(regimes of enunciation'를 탐구했다

borumis
그리고 간단한 약어에 대한 질문인데요. 221쪽의 변신(MET)는 무엇의 약자인가요? PRE는 preposition 전치사를 가리키는 것 같은데.. 혹시 metamorphosis?
그리고 마지막 질문이 제가 계속 브뤼노 라투르나 기타 STS 책을 읽으면서 궁금했던 건데요. 이런 세계가 왜 필요한가요? 21호에서 더 구체적으로 나올까요?

서리북editor
21호에 이어서 리뷰가 연재될 예정이지만, 아직 원고 입수가 안 된 상태여서 저도 자세한 말씀은 드리기 어려울 듯합니다 ㅠㅠ

borumis
아, 넵! 갑자기 제가 제일 궁금했던 질문으로 끝나서... 투비 컨티뉴드 같은 예고편같아서요.^^
실은, 그믐에서 판도라의 희망 읽었을 때부터
(https://www.gmeum.com/meet/2501 ) 홍성욱 교수님께 묻고 싶은 게 많아서;; 이번 모임에서 필자에게 질문할 수 있는 걸 가장 기대했거든요. 질문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제가 이런 기본 철학적 지식이나 이해력이 많이 딸려서..;;천천히 기다리겠습니다!

서리북editor
21호에 이어지는 리뷰에서는 궁금증이 해소되실지 궁금합니다! 혹 리뷰에 나오지 않은 질문들은 홍성욱 선생님께 따로 질문해서 알려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온토
metamorphosis (변신) 맞습니다
온토
황희선, 『모든 것의 새벽』 서평
<인상 깊은 구절>
우리가 단순히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사회적 불평등의 기원에 관한 질문의 기원은 무엇인가?'라고 묻는다면" 계몽주의는 유럽 고유의 발명품이 아니 라 주로 예수회 선교사였던 유럽인들과 이들을 감명시킨 달변가 아메리카 선주민들 사이의 대화에서, 즉 유럽의 사회 제도에 대한 선주민 비평(indigenous crigitue)의 효과로 출현했다는 점이 시사된다. 저자들에 따르면 이런 대화를 통해 당시 유럽의 도덕 신학적 우주에서는 상 상할 수 없던 평등이라는 관념이 서구로 유입되었다. (160-161쪽)
저자들은 책 초반부에 이렇게 적었다. 평등을 '성취'한 삶은 어떤 모습일지 구체적인 상을 바로 떠올리기 힘들다고. 불평등은 역사 적 필연이라는 신화가 그 이유의 일부다. 억압이 발생하는 지점이 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은 상상력의 영토에서 밀려나는 것이다. ( 164쪽)
인류 전체의 가능성을 시야에 두고 볼 때 우리가 추구할 수 있는 사회의 형태는 생각보다 훨씬 다양하고 그 모두가 불평등한 모습도 아니라는 것이다. ( 164쪽)

illisu
함께 읽기 기록 | 공기를 읽는 시간
이번 《서울리뷰오브북스》 겨울호를 조금 천천히 읽었습니다. 속독이 몸에 밴 저에게 정독은 여전히 기술이 아니라 태도에 가까운 일입니다. 그래서, 속도와 효율이 기준이 된 시대에, 2026년의 나는 의도적으로 읽는 속도를 늦추고 있습니다.
서리북 이번 호의 「편집실에서」는 그런 저의 읽기 방식을 다시 확인하게 했습니다. ‘잡지는 공기(公器)’라는 문장 때문에 모임에 문을 두드렸고, 이 잡지가 어떤 입장을 주장하기보다 서로 다른 사유가 함께 숨 쉬는 조건을 만들고자 한다는 편집의 윤리를 분명히 읽을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가 ‘여성’을 다루는 방식 역시 선언이 아니라 질문에 가깝게 느껴졌습니다. 2015년에서 2025년까지의 10년은 이미 정리된 과거라기보다, 여전히 감당해야 할 시간에 가깝기에 이 시기... 사건이 연속된 시간이기보다는, 보이지 않던 구조와 인식의 층위가 더 이상 외면될 수 없게 된 시간이 아니었나 싶어 안타까운 시간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도 이 10년은 사회의 변화와 분리되지 않은 채 지나왔기에 이번 호의 표지에 등장하는 보라색 깃발을 보며, 저는 자연스럽게 기르치는 아이들을 떠올렸습니다. 어제 아이들이 좋아하는 색 중 하나인 보라색 옷을 입고 갔는데, 아이들이 "보라색, 보라색, 내가 좋아하는 보라색" 등 좋아하는 색이라고 표현하더군요.
그래서 이 색이 더 이상 투쟁의 언어로만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어지네요~ 미래의 아이들, 특히 미래의 여성들이 맞이할 시간 속에서 보라색이 경고가 아니라 가능성을 가리키는 색이기를 바라며, 아이들과 함께 맞이할 10년 뒤를 함께 떠올립니다.
이 잡지가 던지는 질문들이 현재를 설명하는 데서 멈추지 않고, 미래의 읽기와 사고로 이어질 수 있을지를 생각해 봅니다.
천천히 읽는다는 것은, 지금의 답을 정리하기보다 앞으로의 질문을 남겨두는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ㅡ 느리게 읽은 처음의 글

borumis
예전에 '스피드리딩'이라는 속독 기술에 대해 배우게 되었는데, 속독도 어떤 때는 필요하지만.. 갈수록 정보가 범람하는 세상에서 속독보다 정독이 진정 필요한 때가 온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특히 정보는 범람하는데 소통은 단절되거나 에코챔버처럼 메아리치다 고립되어 가는 현대사회에서 정독하면서 스스로 또는 서로에게 질문하고 소통하는 게 갈 수록 중요해질 것 같아요. @illisu 님의 사려깊은 기록에 대해, 그리고 여성을 이번 호에서 다루는 방식에 대해 읽으며 저도 많은 생각으로 이어지는데, 저도 더이상은 투쟁의 언어와 선언으로만 고독하게 울리지 않고 함께 다른 이들과, 그리고 미래와 소통하고 토론하며 나아갈 길을 모 색하는 변화를 책들과 이 책들을 읽고 소통하는 독자들과 함께 찾아가고 싶어지네요.
우주리뷰상 수상작을 쓰신 분이 한강 작가의 작품을 통해 아이들에게 어떻게 역사에 대해 가르칠까 고민하다 이 책을 읽게 되었다고 하시던데 @illisu 님도 아이들을 선생님으로서 정말 미래 세대의 가능성을 염두에 둔 글 같아서 그런 선생님들에게 배우는 아이들의 미래가 한층 더 밝을 것이라고 희망을 품어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서리북editor
@모임 오늘도 날이 몹시 춥지요. 독자님들 건강은 안녕하신지요?
말씀드렸다시피 21호는 5주년 창간기념호로 나올 예정인데요. 창간호, 1주년 기념호처럼 텀블벅 펀딩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다양한 리워드와 얼리버드로 혜택을 안겨드릴 계획입니다!
문득, 상세페이지 구성 중 독자님들의 목소리를 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서울리뷰오브북스>를 잘 모르는 예비 독자님들을 위해 서리북을 읽어 보고, 독서 모임에도 참여해 주신 여러분의 목소리면 더할 나위 없을 듯합니다!
해서 예정 주차가 끝나는 이번 주, <서울리뷰오브북스>에 대한 여러분의 의견을 들려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어떤 점이 좋았는지, 아쉬운 지점은 없으셨는지, 서평의 힘이 무엇이라고 생각하 시는지, <서리북>만의 매력은 무엇인지 등등 떠오르는 생각과 의견을 남겨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남겨 주신 목소리는 텀블벅 상세페이지 구성에만 쓰일 예정입니다! 20호 독서 모임이 마무리에 다다른 지금 여러분들의 생각을 마음껏 이야기해 주세요!

borumis
서울리뷰오브북스는 만날 칭찬 일색이기만 한 서평(이라기보다는 광고;;)에 질려서 서울대 생명과학부 홍성욱 교수님과 정치외교학부 김영민 교수님이 New York Review of Books (NYRB)과 London Review of Books(LRB)처럼 실제로 책을 분석하고 평하는 서평 계간지를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 만든 서평계간지다. NYRB나 LRB는 2주마다 나오지만 서울리뷰오즈북스(서리뷰)는 봄여름가을겨울에 한 번, 즉 연4회만 나오는 게 아쉽지만 그래도 이런 진정성 있는 서평계간지가 독서 인구(특히 비문학 독서인구)가 나날이 줄어드는 대한민국에 있는 게 어디냐?하는 생각에 구독하기 시작했다.
다른 책의 독서에 쫓겨서, 그리고 미리 스포일 당하게 싫어서 서리북 리뷰를 다 읽지는 못했지만 (그리고 거기서 소개된 책은 다 못 읽었지만;;) 그래도 내가 읽은 책이 한 권이라도 있으면 서평가의 시선으로는 어떻게 읽었을지 궁금해져서 구매해왔다. 책장 공간이 항상 부족해서 최근 잡지들은 아직 전자책으로 안 나와서 선뜻 구매하지 못했지만 예전 과월호들은 전자책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다른 잡지들은 pdf 여서 나처럼 눈이 안 좋은 사람은 전자책으로 보기 힘든데 서리북은 epub file이어서 전자책으로도 보기 좋다.
이번에 내가 관심있는 주제: 페미니즘에 관련된 책들이 특집리뷰로 다루어지고 (주디스 버틀러 책빼고 3권 다 읽어본 책) 예전에 브뤼노 라투르의 다른 책들(판도라의 희망, 브뤼노 라투르의 과학인문학편지, 젊은 과학의 전선)을 읽으면서 홍성욱 교수님의 브뤼노 라투르 리뷰에도 관심이 가서 그믐 독서모임에서 2026년의 시작과 함께 겨울호 20호를 읽기 시작했다.
리뷰한 책등을 앞표지에 싣는 걸 보면 어느 정도 두께의 책인지 가늠할 수 있다. 이전에 서리뷰 책들은 다소 엄청난 벽돌책이나 어렵고 전문적인 책들도 있었지만..(실은 그래서 서리뷰가 다른 서평에서 다루지 않는 걸 다룬다는 점에서 더 고맙다)
다행(?)히 이번 특집 리뷰의 책들은 다들 비교적 얇은 책들이거나 그렇게 어렵지 않은 책들이다. 심지어 난해한 문체로 악명높은 주디스 버틀러의 '젠더 트러블'을 읽다가 포기했던 나도 이번 주디스 버틀러의 책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가 쉽게 읽힐 정도였고, 그중 제일 두꺼운 '조지 오웰 뒤에서'도 벽돌책 모임에서 대부분 다 금방 완독했을 정도로 빠른 페이스로 읽어나가는 책이다.
어쩌면 이것은 우리가 이제 '젠더 트러블'이 쓰인 당시보다 더 복잡하지만 더 성숙한 전환점에 도달해서 그런 걸수도 있겠다.
더이상 우리는 책 '암컷들'에서 얘기한 여성 학자들의 연구결과나 여성에 대한 생물학적 사실들이 감추어지지 않고 차츰차츰 가부장제에서 왜곡되고 무시되었던 것들을 발견하면서
이제 '커리어 그리고 가정'에서 4단계로 나뉜 페미니즘의 역사 속에서 여성이 '가정'의 자리만 지키지 않고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시대 속에서 더 넓은 세상과 마주해야하기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주디스 버틀러의 난해한 문체를 누스바움 등의 학자들이 비판했던 것처럼, 이제 우리는 더 정치적인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학문의 상아탑에 고립되어 그저 허공을 향한 외침인 페미니스트 선언(feminist manifesto)에 그치지 않고 소통(communication)과 설득(persuasion)을 위해 더 사회적 맥락에 맞는 언어를 써야할 것 같다. 안그러면 페미니즘이 미래로 더 나아가거나 동료를 얻기는 커녕 주디스 버틀러가 '누가 젠더를 두려워하랴'에서 경고했듯이 모호한 언어 속에서 구성된 무지와 두려움이 보수적이고 가부장적 파시즘을 위해 악용될 수도 있다.
그리고 단지 주관적이고 추상적인 외침에서 벗어나서 객관적이고 실질적인 근거와 연구를 통해 페미니즘의 근본적 토대가 될만한 것을 쌓아가야 한다. 이것은 단지 생물학 뿐만이 아니라 사회학, 경제학, 심지어 문학과 철학 및 예술 등 다방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이마고 문디: 이미지로 읽는 세계는 영화나 미술 등에 대한 리뷰인데 이번에는 칸딘스키나 몬드리안보다도 훨씬 더 일찍 추상미술을 개척했지만 많이 알려져 있지 않은 여성화가 힐마 아프 클린트의 부산 전시회를 소개했다. 계간지의 특성상 전시작품의 색감을 볼 수 없는 흑백 삽화가 아쉬웠지만 전시회의 공간 구성이 전달하고자 한 의미, 그리고 흔히 여성 화가의 전시에서 하듯이 여성 예술가들의 삶만이 아닌 작품 자체에 조명을 비추는 게 더 필요할 것이라는 비평도 흥미로웠다.
그 외에도 알라딘을 통해 일반 독자들이 응모한 우주리뷰상 수상작 중 우수작 2편을 실었는데, 생각보다 너무 예리한 분석과 통찰력에 놀랐다. 그 중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리뷰는 단지 20세기 미국사회의 모습 뿐만 아니라 21세기 대한민국 부모들에게서 느껴지는 성공에 대한 집착과 불안,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미래 아이들에게 미칠 여파에 대한 경종을 울려서 정말 이 리뷰는 많은 부모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그리고 또한 어떤 역사 선생님이 한강 작가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제주 4.3을 아이들에게 가르칠 생각으로 우선 읽은 오카 마리의 '기억 서사' 리뷰는 역사적 상처를 이해하기 위한 의지와 이에 대한 세심한 고민을 보여주기도 하지만, 우선 이런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적이지 않나하고 새삼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문지혁 작가와 요조 작가의 책을 읽는 사람도 서점도 사라져가는 이 세상에서 (심지어 그 커다란 영풍문고까지 문을 닫다니!) 그래도 오늘도 책을 읽고 책을 쓰고 책방 문을 여는 작가와 책방지기의 나는 대체 왜 계속 홀로 이 짓을 하고 있나?하면서 되물어도 결국 겸허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는 짧은 에세이가 비슷하게 어쩔 수 없이 이렇게밖에 살 수 없는, 동지의식을 느끼게 하며 당신은 혼자가 아니라고 응원의 메시지를 보내고 싶었다.
마지막으로 이 계간지의 창시자(?)이자 내가 브뤼노 라투르 책의 난해한 번역체와 씨름하게 만들었던 홍성욱 교수님의 '존재양식의 탐구' 리뷰로 마무리했다.
솔직히 '존재양식의 탐구' 책 자체를 리뷰한 것보다 전사前史(prehistory)이고 브뤼노 라투르의 ANT 이론 등에 대한 개괄적으로 소개한 맛보기일 뿐이어서 앞으로 21호에서 나올 듯한 본격적으로 라투르의 철학을 분석하는 것을 기대해야겠다. 이렇게 나는 미끼(?)를 물고 낚시당한 것인가.. 싶지만 솔직히 말해서 홍성욱 교수님의 다른 책은 꽤 명확하게 쓰시는 반면 브뤼노 라투르의 글을 번역하거나 이 사람의 연구를 소개할 때 다소 모호하고 현학적으로 표현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서 (반면 라투르의 책을 영어로 읽었을 때는 그런 느낌이 안 났다!) 지레 겁이 나기도 한다. 부디 이후에 나올 글들은 좀더 철학이나 STS학에 낯설은 독자에게 친근한 글이 되길..
작성
게시판
글타래
화제 모음
지정된 화제가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