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믐밤] 43. 달밤에 낭독, 체호프 2탄 <세 자매>

D-29
동시에 그런 생각들도 했습니다ㅋ 스스로 시들었다고 생각하는 설익은 과일 같았달까요...ㅎ;;;
신입생들을 보며 자신이 늙었다고 한탄하는 대학교 4학년생을 보는 기분이었습니다. ^^
우리는 이제 어떤 인생을 살게 되는 것일까, 어떤 운명이 우릴 기다리고 있을까……. 소설을 읽으면 모든 게 너무도 빤히 보이는데, 정작 내가 사랑하게 되니까, 누구에게서도 답을 구할 수가 없어. 결국 자기 일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거야……. 올가 언니 그리고 이리나……. 고백했으니까 이제부터 침묵할게……. 고골의 광인처럼 나도…… 침묵할 거야…….
안톤 체호프 <세 자매>
우리 도시는 이미 200년이나 존속했고, 오늘날은 10만 명의 주민이 살고 있지만 다 거기서 거기인 사람뿐, 과거든 현재든 단 한 사람의 고행자도, 예술가도, 학자도 없을 뿐더러, 조금이라도 질투를 불러일으키거나 닮고 싶은 유명인 한 사람 없어……. 오직 먹고, 마시고, 잠자다가 마침내 죽고 말지……. 또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도 똑같이 먹고, 마시고, 잠자고. 권태에 질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추악한 거짓 소문과 보드카, 카드놀이, 소송으로 일상을 채우지.
안톤 체호프 <세 자매>
아내는 남편을 속이고, 남편은 거짓말을 하면서, 아무것도 못 본 척, 못 들은 척하지. 이런 끔찍한 천박성은 자식들에게도 나쁜 영향을 미쳐 아이들의 내면에 깃들어 있던 신성한 불꽃을 꺼트려버리지. 그렇게 해서 아이들 역시 똑같이 보잘것없는, 죽은 인간이 되는 거야. 그들의 아버지와 어머니처럼 말이지…….
안톤 체호프 <세 자매>
어제 대학로 성대 부근 안똔체홉극장에 가서 연극 『세자매』를 관람하였습니다 수백 번의 관극 경험이 있지만, 그 어느 때보다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휴우! 안똔체홉극장은 객석이 50석도 채 되지 않는 초미니 공연장으로, 제가 가본 작은 극장들인 선돌극장 (134석), R&J 씨어터 (130석) 보다 훨씬 작아 깜짝 놀랐습니다 성대 사거리 안쪽 골목 건물에 사진처럼 (다소 기괴한 느낌의) 간판과 배너를 지나 지하로 내려가면 작은 카페 공간과 공연장이 숨어 있었습니다 "도"스토옙스키를 읽는 "박"식한 "사"람들의 모임, "도박사"를 그믐에서 진행한 이후, 은평구에 위치한 '살롱 도스또옙스끼', 노원구에 위치한 '브론테 살롱', 전주와 부산에 각각 위치한 '서점 카프카', '책방 카프카의 밤' 등, 작가 이름을 딴 책방이 전국 어디어디에 있는지 찾아본 적이 있었거든요 이름을 그대로 차용한 책방은 예상보다? 많지 않다 싶었는데, 서대문구에 위치한 '피터캣'을 비롯, 무라카미 하루키를 오마주하는 책방 등도 있었습니다 어떤 작가를 얼마나 좋아하면 그 이름을 따는 위험?까지 감수하면서 사업체를 운영할까 싶은 생각을 했습니다만, 안똔체홉극장이야말로 이름 그대로 체홉을 들이파고 쪼개고 분석해서 올리는 극장이더군요! (안똔체홉극장에서 2019년과 2022년에 올렸던 연극 『세자매』에 대한 기사입니다 이번 공연에도 그대로 해당되는 내용이 많네요 같은 배우님이 쭉 출연하시는 경우도 포함해서요) https://www.kpinews.kr/newsView/1065542656103099 https://www.interview365.com/news/articleView.html?idxno=104231 특별한 경험이었던 가장 큰 이유는,,, 19시 공연 시작을 19시 30분으로 착각해 여유를 부리다 19시 15분에야 건물 지하로 내려간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ㅠㅠ 작은 무대에서 웃고 이야기하며 대사하는 소리가 대기 공간까지 들려 순간 아차! 싶었지요 대형 모니터로 보니 이리나의 명명일 장면이 한창이었는데요, 문제는 아직 무대에 등장하지 않은 배우님들이 헤어와 의상 분장 상태로 대기 공간에 함께 계신 거였어요 그땐 당황하고 송구스러워 잘 몰랐지만, 관람을 마치고 보니 함께 계셨던 분들은 페도니크, 로데, 그리고 페라폰트였습니다; 페도니크 배우님은 군복을 입고 기타를 든 채로 제게 "잠시 후 막간 때 안내해 드릴 테니 그때 입장 하시면 됩니다"라고 말씀하신 후, 기타와 사진기를 들고 1막의 마무리에 출연하러 무대로 입장하시더군요 ㅎ 소위님들이 가버리신 후 저는 페라폰트 배우님과 같이 머물렀는데, 그분이 의회 수위인 것을 전혀 모른 채, 러시아스러운 차콜색 코트를 입으신 노인이네? 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답니다 쩝... 다수의 배우들, 캐릭터들에 적응하느라, 현실과 상당히 동떨어진 듯한 (철학 논쟁, 200년 후 300년 후 미래 논쟁, 갑작스러운 춤과 노래...) 대사와 장면을 익히느라 관극 초반에는 잘 집중하지 못했는데요, 2막 중반부터 서서히 몰입되었습니다 오글?거리는 대사를 계속하는 마샤와 베르기닌, 빌런 나타샤와 지질한 안드레이를 포함해, 모든 배우의 열연 덕분에 그랬던 것 같아요 보드카를 마시는 장면에서는 정말 쓴 듯, 취한 듯 연기했고, 마샤와 이리나는 쉴 새 없이 눈물을 흘렸습니다 관극을 마치고 나와 전훈 연출이 직접 번역한 대본집을 여러 권 샀습니다 [그믐연뮤클럽] 9기 "살아 있는 자를 수선하기" 모임과 연관이 있는 체홉의 미발표작 『플라토노프』도 번역되어 있었는데 마침 절판이라 아쉬웠습니다 모든 캐릭터를 완벽히 이해, 하진 못했으나 살아 숨쉬는 모습 그대로 완벽히 인지, 했다는 점에서 정말 특별한 경험이었습니다 체홉의 작품들을 끊임없이, 꾸준히 올리는 극단과 공연장이라, 이후에도 또 찾게 될 것 같습니다
15명의 배우가 작은 무대를 가득 채운 커튼콜, 안똔체홉극장의 전훈 연출가가 직접 번역한 대본집들, 그리고 익숙한 도선생님을 포함해 러시아 문호들 얼굴이 그려진 (좀 섬뜩한 ㅋㅋ) 쿠션 사진입니다 :) 극장에서는 공연 전 사전 안내 로 상세 페이지도 보내 주셨고, https://sites.google.com/view/3sisters 공연 후 각 막의 배경에 대한 해설도 보내 주셨는데요, https://sites.google.com/view/acas2014/ACDC/newsletter 1막의 명명일, 2막의 카니발, 3막의 대화재, 4막의 결투에 대한 역사적 배경이나 사회적 의미가 잘 설명되어 있어요!
저 쿠션에 엉덩이 대면 혼날 거 같네요~ 뿡이라도 했다간...컥
지연입장 할 때 혼날까 봐 엄청 걱정했는데, 러시아 털모자만큼이나 따뜻하게 맞아 주셨어요!
50인이 들어가는 정말 작은 극장이군요. 자칫 배우가 더 많은 거 아닐까 걱정이 되기도 하는데 관람 상태가 계속 '대기'라고 알려주시는 걸 보면 이런 작은 공간을 소중히 여기시고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이 많은 것 같아 다행이다 라는 마음도 듭니다. 각 막에 대한 해설도 정말 유용하네요. 내일 낭독 전에 여기서 나온 내용들 참고해서 아는 척(?)을 좀 해 봐야겠습니다.
공연 전후로 이렇게 친절하게!! 공연전 3시간 영상 보니까 배우님들 왠지 친근하고 좋네요..!!! 12,1월 생일자 할인이 있어요!!!! 싱기방기. (난 왜 9월생이지....ㅋㅋ)
감사해요! 생생한 후기와 각 막의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의미 설명, 내용 이해에 큰 도움이 되었어요! 푸쉬킨 또한 결투로 사망했다는 러시아 결투의 깨알 정보까지 흥미진진해요.
와!! <세자매> 후기 감사합니다~ 저도 링크타고 들어갔는데 역시 예약대기였습니다~^^;; <안똔체홉극장>이라니 너무 멋집니다!! @수북강녕 님 덕분에 또 소중한 보물같은 극장을 찾았습니다♡ @수북강녕 님은 그믐의 보물임을 매번 인증하시네요~^^
링크로 연결해 주신 기사 잘 읽었습니다. 배우들의 사진 속에서도 마샤가 누구인지 잘 보이네요.^^ 관극과 관람된 해프닝이 수북강녕 님은 쩔쩔매셨겠지만 그저 멀찍이서 읽는 저로서는 재미있었습니다. ㅎㅎ
와아, 배우님들과 함께 대기하는 신기한 경험!! 공연장 가까이 가면서 공연 시작된 거 알고 얼마나 놀라셨을지... ㅎㄷㄷㄷ 사진만 보면 그렇게 작은 것 같은 느낌은 들지 않는 것 같아요. 보고싶다아 :)
옛날에 선돌극장에서 <안티고네>를 보면서 이렇게 작은 극장은 어떻게 유지되는 걸까 궁금했었는데 50석 극장이라니... 어떻게 유지될까요? 어쨌든 몰입감은 엄청날 것 같습니다!
마샤:  어머니 얼굴이 어땠는지 조금씩 기억이 흐려져 가요. 우리들도 그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에게서 잊혀가겠죠. 베르쉬닌:  그래요, 그렇겠죠. 그런 게 바로 우리의 운명이지요.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에게 심각하고 의미심장하며 매우 중요한 것처럼 보이는 일도, 세월이 흐르면 잊히거나 하찮아지고 말지요. (사이)  흥미로운 건 미래에 무엇이 고상하고 중요한 것으로 남을지, 무엇이 하찮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남을지 그 누구도 확언할 수 없다는 겁니다. 코페르니쿠스나 콜럼버스의 발견도 처음에는 쓸모없고 우스꽝스러운 것으로 보이지 않았습니까? 반대로 어떤 바보가 휘갈겨 쓴 공허한 헛소리가 오히려 진리처럼 보일 때도 있지요. 그러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는 지금의 우리 생활도 미래엔 이상하고, 불편하고, 어리석고, 모호한 것으로, 심지어 사악한 것으로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1막> 중에서
안톤 체호프 <세 자매>
안똔체홉학회 페이스북에도 여러 대사나 장면이 올라와 있네요 https://www.facebook.com/acas2014/
안드레이:  모스크바 레스토랑의 큰 홀에 앉아 있으면, 내가 아는 사람도, 나를 아는 사람도 없지. 그러면서도 조금도 자신이 서먹서먹하게 느껴지지 않아. 그런데 여기서는 모두가 나를 알고, 또 나도 그들 가운데 모르는 사람이 없는데, 서로 남남이나 다를 바 없거든……. 이방인……. 외로운 이방인 신세지.
안톤 체호프 <세 자매> <2막> 중에서
이 마음을 알 것만 같네요...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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