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0.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D-29
그렇게 동아시아의 이야기를 동아시아만의 맥락으로 보지 않고 좀더 넓은 시각으로 읽으면, 어쩌면 그동안 보이지 않았던 것들이 같이 보일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더 나아가 조선, 아니 우리 자신의 이야기도 좀더 복합적으로 다시 보일 것 같습니다.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17, 딜런 유 지음
하멜의 이야기는 오랫동안 조선의 폐쇄적이고 무능한 대외 대책을 강조하는 예로 알려져 있습니다. ... 문제는 당시의 조선은 대단히 민감한 상황 속에 있었다는 것입니다. 이 일이 있기 전의 50년 동안 일본과 청나라라는 무력 국가와 남북으로 전쟁을 각각 2번씩 4번이나 치러냈습니다. 어찌 보면 17세기 전반의 조선은 지속적인 전쟁 상태에 있었다고 해도 될 정도입니다. ... 그러니까 그때는 그때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죠.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41, 딜런 유 지음
읽어보면 뭔가 미묘하게도 벨테브레이와 하멜이 알고 있던 세계가 완전히 다른 것이 이 대화에서 여실히 드러납니다. .... 이 두 일행 간의 시차는 20년인데 어쩌면 전혀 다른 평행세계 속의 네덜란드인들 같지 않습니까?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55, 딜런 유 지음
화제로 지정된 대화
내일 1월 9일 금요일은 3장 '남만인의 등장'으로 넘어갑니다. '검은 배를 타고 온 불랑기'까지 읽습니다. 59쪽부터 89쪽까지입니다. 17세기 초 그러니까 1604년 6월 14일 조선과 조우한 포르투갈 사람의 이야기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앞의 연표를 보시면 알겠지만, 1598년 왜란이 마무리되고 여전히 선조가 다스리던 때였죠. 작년(2025년) 4월에 읽었던『세계를 향한 의지』의 주인공 셰익스피어가 런던으로 와서 한창 왕성하게 작품 활동과 연기 활동을 하면서 승승장구할 때이기도 합니다. :)
앗, 그게 그때인가요? 이렇게 줄긋기를 하시니 더 의미가 다가오네요. ㅇㅋ!
여기서 언급한 지명 중에 보동가류는 포르투칼, 감하는 일본어 발음으로 아마카와 즉 마카오이고 가보자는 카보차 즉 캄보디아 장기는 앞으로 많이 등장할 나가사키를 의미합니다. 해귀는 임진왜란 때 명나라군 소속으로 참전하여 이미 조선에서도 화제가 되었던 흑인 혹은 말레이인을 의미합니다.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딜런 유 지음
앞서 간략히 말한 것처럼 <화한삼재도희>의 아마항 즉 마카오의 남만인들은 동아시아 전역에서 좀더 엄밀히 말하자면 불랑궤 또는 불랑기라고 불렸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는 15세기에 소위 '대항해시대'의 문을 연 이베라아반도인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글 중에 나오는 검은 배를 의미하는 흑선 또는 오박은 당시 포르투갈이 자랑하던 대형 원양 항해용 선박 카라카 또는 나우가 선체에 검은색 방수용 역청을 칠하여 '검은 배'로 불린 것인데 일본에서는 이후에도 주로 서양에서 오는 외국 선박을 부르는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훗날 미국 해군의 페리 제독이 일본에 와서 쇄국의 빗장을 풀었을 때도 '흑선래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였습니다.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딜런 유 지음
이 책 덕분에 '흑선래항'의 용어의 기원을 알수 있어 참 좋습니다.
불랑기의 등장은 이렇게 상당히 폭력적입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예의를 모르고 행패를 부렸다고 해도 어린아이를 빼앗아 먹이로 삼았다는 묘사는 좀 심하군요. 하긴 근대에 들어와서도 조선에서까지 서양 선교사들에 대한 이런 루머가 돌았으니 어쩌면 인류가 갖고 있는 나와 다른 외부인에 대한 근원적인 공포인가 싶기는 합니다. 이야기는 점점 미운 짓만 골라 하는 골칫덩어리로 이어집니다.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딜런 유 지음
다른 외부인에 대한 근원적 공포라는게 오랫동안 이어져 왔군요. 요즘은 혐중분위기가 언급되고 있는데 예전 6.25 이후 친미적 분위기는 외부인인데도 왜 그렇게 모두가 동경하고 좋아했던 걸까요??? 어떤 사회 심리학과 관계있나 문득 궁금해집니다....^^
저 이 부분 읽고 뒷부분 읽고 있는데, 계속 기억도 안 나고 헷갈립니다. 쪽지시험 보고 책 읽으면 아마 안 헷갈리고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만...
세계 지리나 국가에 대한 맥락이 없던 17세기에 이방인들이 다양한 이름으로 불렸고 기록으로 남아있네요. 여송 (필리핀 루손섬)에서 온 스페인 사람 (여송에서 온 남쪽 오랑케), 아마항 (마카오)에서 온 포르투갈인, 흑선을 타고 온 불랑인 (프랑크인)들. 당시에는 여송에서 왔는지, 아마에서 왔는지, 어떤 배를 타고 왔는지가 중요한 지표였던거 같아요.
여송연이 여송에서 만든 담배였다니! 여송은 루손이었고… 신기합니다
안녕하세요!! 작년 말에 바쁘다는 핑계로 몇 달 참여하지 못하다가 올해 새롭게 들어왔습니다. YG 모임은 여전히 성황 중이네요. 보기 좋습니다. ㅎㅎㅎ. 새해 새 마음으로 함께 달려 보시죠!!
포르투갈은 1530년대에 푸젠의 아모이 즉 샤먼과 닝보를 뚫고, 명에서 왜구를 토벌하는 데 불랑기포를 제공하여 거들기도 하면서 광둥의 샹산아오 즉 마카오에 슬금슬금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부터 중국에 미운털이 박힌 불랑기라는 이름을 16세기 중반 '푸더우리자' 즉 포르투갈로 세탁하여 해적 블랙리스트에서 빠져나온 후 얼렁뚱땅 세금을 내는 식 교역의 상대로 마침내 인정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87-88, 딜런 유 지음
우리가 옛날이야기를 들을 때 가까운 과거는 시간을 잘게잘게 쪼개지만 더 멀리 과거로 거슬러 갈수록 시대를 뭉뚱그려서 포인트만 생각을 하게 됩니다. 21세기의 우리에게 17세기와 18세기 같은 과거는 100년 단위의 옛날 일이 되어버리지만, 당연히 1650년대의 사람들에게는 한 세대 전의 1620년대의 일 역시 옛날 일이 되는 것이죠. 지금의 우리는 ‘비슷한 시기’에 조선에 표착했다고 생각하지만, 하멜에게는 그새 옷도 말도 달라진 벨테브레이가 겪은 일이 옛날 일이었을 것처럼 말입니다. 마찬가지로 1600년대의 동아시아 바다는 1620년대와는 또다른 세계가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62쪽, 딜런 유 지음
오 저도 이 곳 밑줄쳤어요. 진짜 최근에 응답하라 1988을 보면서 최근 역사는 1988이든 1994이든 너무 다르게 느껴지는데.. 옛날 생각하면 조선 전기랑 후기 사이 500년이 흘렀는데도 비슷비슷하게 느껴지기도 하더라구요;;
맞아요. 몇백 년 전의 과거와 그 속에서 살다간 사람들을 그냥 한뭉터기로 생각하기 쉽다는 걸 이 대목을 읽고 알았네요. 책에도 써있듯이 그들도 우리처럼 각자 생생하게 숨쉬고 먹고 마시고 변화하며 살았던 사람들인 것을
그런데, 여기 흥미롭게도 불랑기가 여송왕에게서 땅을 속여 빼앗는 장면에서 소가죽 한 장이라고 하고 허락은 받은 후 큰 땅을 차지하였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이 사건을 중국학자 티머시 브룩은 『베르메르의 모자』에서 스페인인들이 원래 로마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에 나오는 카르타고 여왕 디도의 얘기를 이용하여 소가죽 한 장 덮을 만큼의 땅을 허락받은 후 가죽을 가늘게 잘라 땅을 크게 이어 두른 후 약속이라면서 그 땅을 차지한 것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정말 그런 속임수를 썼던 것일까요? 아니면 이 이야기는 훗날 미화되어 전해진 것일까요?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69쪽, 딜런 유 지음
충격 속에서도 디도는 도주를 준비하고 친구들을 모았어요. 폭군을 심히 증오하거나 몹시 두려워하는 자들은 모두 모였어요. 그들은 출항할 준비가 되어 있던 배들을 빼앗아 황금을 실었어요. 그리하여 탐욕스런 퓌그말리온의 보물은 바다 밖으로 실려 나갔으며, 한 여인이 이 일을 이끌었지요. 그들은 지금 그대가 거대한 성벽들과 신도시 카르타고의 성채가 솟아오르는 것을 보고 있는 이곳으로 와서는 황소가죽 한 장으로 덮을 수 있는 만큼 땅을 샀어요. 그 일 때문에 이곳은 ‘황소가죽’이라고 불리지요.
아이네이스 제1권 아이네아스 일행이 카르타고에 도착하다, 베르길리우스 지음, 천병희 옮김
아이네이스'로마의 평화'로 표상하는 인류사의 가장 절묘한 한 시대를 증언하면서 인류가 걸어야 할 길을 가리켜 보인 위대한 길잡이로 평가받는 로마 시인 베르길리우스의 서사시 <아이네이스>의 완역본. 2004년 첫 출간된 책의 개정판이다. 초판이 번역의 충실함에 있어 딱히 흠잡을 데가 없다고 평가받음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번역을 위해 문장 하나하나 다듬은 옮긴이의 노고가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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