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G님의 대화: @도롱 @향팔 저도 이 책 읽고서 가장 자극 받았던 대목이에요. 저도 항상 궁금했거든요. '정말 유럽이 중국에 팔 물건이 없어서? 도대체 은에 왜 그렇게 집착했는지.' 그런데 이 책 읽으면서 그 부분은 확실히 정리가 되었답니다.
208~210쪽에도 린스호턴과 함께 그 내용이 자세히 나오죠! 향팔 님께서 언급하신 부분 다시 인용해 봅니다.
“ 중국은 14세기 후반 1:4~!:5, 16세기 초 1:6, 17세기 초 광둥 지방 1:5.5~1:7. (금-은 교환) 비율이 전 세계 다른 지역의 반 이상입니다. 이 말은 그러니까 은값이 두 배 이상으로 높다는 얘기죠.
(…)
포토시에서 생산한 은을 스페인으로 가져와서 유럽 시장에서 유통시키는 것보다, 마닐라로 가져가서 이런저런 항해의 리스크 비용을 치르더라도 중국에 가져가면 산술적으로 대략 2배의 차익을 가져옵니다. 실제 17세기의 네덜란드가 동인도로 진출하는 데에 굉장히 큰 역할을 한 얀 하위헌 판 린스호턴은 인도 고아에서 근무하는 동안 부모에게 보낸 편지에 “여기 인도 고아에서 중국이나 일본까지는 여기서 리스본으로 가는 거리만큼 되는데, 지금 제게 금화 200, 300두카트가 있다면 그곳에서는 바로 600, 700두카트가 됩니다”라고 이 상황을 전하고 있을 정도입니다. 실제로 이 차익의 기회가 스페인과 마카오-마닐라 및 마닐라-푸젠, 일본-마카오-포르투갈 라인들을 모두 일확천금의 광기로 몰고 간 것이라고 보는 연구들이 있습니다.
최근의 연구들은 인도에서도 중국으로 은이 유입되었고, 전통적인 지중해-오스만 제국에서 중앙아시아 루트를 통해서도 은이 상당량 중국으로 유입되었다고 합니다. 심지어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조선에서도 은이 중국으로 흘러 들어갔다고 했을 정도이니 그야말로 은의 블랙홀이랄까요. 그렇게 보면 이 시기에 은이 중국으로 유입되고 대신 대량의 금이 이 기간 내내 중국에서 유출되어나온 것이 설명이 되고, 왜 ‘은’인가에 대해서 ‘유럽이 중국에 팔 물건이 없어서’라고 하는 예전의 주장은 근거가 약해진다고 볼 수 있습니다. ”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3장, 208~210쪽, 딜런 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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