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복식 선교' 가 아닌 예수회 선교 사업?에 대해 읽으니 대단하신 신부님들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 나라의 언어 사회 전통 사상을 공부하고 현지화 전략을 짜고.. 현지 권력자들과 줄다리기를 하고, 로마를 설득해야 하고.. 엄청난 역량의 '파드래' 였던 것 같습니다... 종교의 힘을 다시금 느낍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0.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D-29
aida

stella15
저도 어제 크리스탕으로서 요부분들 읽으면서 흥미롭고 대단하다 싶었어요. 그러면서 그 유명한 엔도 슈샤크의 이 책이 생각이 났는데 그 배경이 딱 책의 배경과 겹치더군요. 저는 소설로는 읽지 못 했고 여러 해 전 영화로 봤는데 왜 배교할 수 밖에 없었는가가 정말 진진하게 묘사가 되어 숙연해던 영화입니다. 감독이 마틴 스콜세지 감독인데 이런 진지한 영화 만들 사람이 아닌 것 같은데 다시 한번 보게되는 계기가 됐죠.
지난 주말엔 고 안성기 배우 추모 특집이라고 해서 TV에서 <청년 김대건> 잠깐 잠깐 봤는데 김대건 신부가 예수회 소속인지는 모를겠으나 마카오에서 공부했던데 왜 그랬는지도 이 부분을 읽으니까 조금 이해가 가겠더군요.
근데 조경남의 <난중잡록> 찾아봤는데 못 찾겠더군요. ㅠ

침묵기독교인들이 심하게 박해받았던 17세기 일본. 그런 와중에 많은 사람의 신뢰를 얻으며 선교활동을 펴던 포르투갈 예수회 소속 신부 페레이라의 배교 사실이 알려진 다. 확인을 위해 잠복한 제자 로드리고는 수많은 고난과 갈등을 겪고... 하나님은 어찌하여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만으로 죽어가는 수많은 이들을 외면한 채 침묵하고만 있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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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umis
앗 스텔라님 찌찌뽕 ㅎㅎㅎ

꽃의요정
전 <침묵> 책도 영화도 봤는데, 종교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작품이었어요. 박해받는 이들에게 주인공 신부가 '배교'하라고 그러지 않으면 처참하게 죽을 뿐이라고 했을 때, 신자들이 "저희가 예수님을 믿는 건 죽은 후의 삶이 영화롭기 때문이지 않나요? 그럼 이 고통스러운 삶에서 벗어나 빨리 죽을수록 좋은 게 아닌가요?"란 대답에 신부가 고뇌하던 장면을 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배교한 후에도 버리지 못했던 믿음...꼭 저 같습니다. 음??
'예수회'에 대한 얘기는 '두교황' 영화를 보고, 알게 되었는데...알게 되기만 했습니다. ^^;;

두 교황2005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죽음으로 가톨릭 추기경들은 콘클라베를 위해 바티칸으로 모인다. 세번의 투표 끝에 보수적인 입장에서 가톨릭 신앙을 추구하는 강경파 라칭거가 교황 직위를 얻게 된다. 하지만 재임 기간 중 성직자들이 재 단 소년들을 괴롭히고 바티칸의 기밀 유서가 유출되는 등 전무후무한 교회 스캔들에 휩싸인 라칭거는 자진해서 교황직을 내려놓고자 한다. 비슷한 시기, 스스로가 가진 마음의 짐 때문에 추기경직을 사퇴하려는 베르고글리오가 라칭거를 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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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tella15
와, 요정님은 그것까지 기억하고 계시는군요! 전 오래 전에 봐서 그렇게 디테일한 것까지는 잘 기억하지 못합니다. 책도 본다 본다해놓고 못 보고있는데 이번에 이 책 보니까 보고 싶어지더라고요.
사실 순교는 어떤 면에선 정말 잔인한 것 같긴 하더라고요. 그냥 순요한 영웅으로 남느니 배교한 죄인으로 평생 속죄하며 사는 것도 의미있는 건 아닌가 그런 생각도 해 보고요. ㅋ 제가 뭘 알겠습니까? ㅠ 저 시대에 비하면 신앙 갖기 좋은 시대인데도 갈등이 더 많은 것 같습니다. 아예 신앙을 모르고 살면 모를까. 그러면서 사람은 익어 가는 것이겠죠? 볼게 많아서 좋네요. ^^

향팔
@꽃의요정 님의 글을 읽으니, 책 초반에 나왔던 연암 박지원의 글이 떠오르네요. <침묵>도 꼭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28쪽) “이에 일본 민중들이 그 설을 한 번 듣고서 염세적인 생각에 휩쓸리어 제 몸뚱이 보기를 표류하는 뗏목이나 부러진 갈대 줄기처럼 여겨, 세상일에 구애받지 않고, 사는 것이 즐거운 줄도 모르며, 칼에 죽거나 형에 죽는 것을 도리어 자신의 영화로 여겼다.”

꽃의요정
향팔 님도 이런 문장을 보관하는 창고가 따로 있으신 거죠? 정말 아름다운 문장이에요.
혜화동돌담
김대건 신부님은 조선 교구 첫 방인 사제 입니다. 조선의 선교는 "파리외방전교회"라는 단체가 맡아서 사제를 양성했어요. 교황청은 전교지역에 수도회에 각각 선교를 맡겼었는데, 일본은 예수회가, 조선은 파리 외방전교회가 맡았습니다. 마카오에는 파리외방전교회의 신학교가 있었답니다.

stella15
아, 그렇군요. 고맙습니다. 저는 마카오가 그렇게 신학이 발달한 곳이라곤 생각하지 못 했습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습니다. 그곳은 카지노와 마약으로 유명하다는 인식이 있어서.

오구오구
맞아요 저도 마카오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되더라구요. 마카오 가본적이 없지만 한번 가 보고 싶었어요.

오구오구
“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왕실은 기본적으로 기독교의 이름을 걸고 이슬름과의 전쟁을 통해 형성된 국가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선교의 방침도 '정복적 선교'랄까요, 우선 점령하고 기독교로 개종시킨다는 방침을 시행하고 후원했습니다. 남아메리카에서 행해진 이런 방식의 점령과 식민지화, 강제 개종의 패턴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119, 딜런 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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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 마테오 리치는 루쿠이의 인맥으로 명나라 유학자들과 접촉하게 되면서 중국의 고전을 공부합니다. 그러면서 점차 기존의 루지에리 방식의 불교를 차용한 접근법을 폐기하고 가톨릭 신앙과 중국 유학이 공존하는 방법을 고려하게 됩니다 ”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123, 딜런 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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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구오구
“ 우선 선교회의 조직상 중국 선교부는 일본 선교부의 하위조직이었습니다. 그런데 맡오 리치의 유교적 접근 방법이 대성공을 거두자 지나치게 현지화를 하여 원래 교리가 왜곡되는 부분이 있는 것이 아닌가 하고 우려의 목소리가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133, 딜런 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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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1월 14일 수요일은 3장의 '찾았다! 전설의 크리스탕'부터 '이츠러예족의 발견'을 읽습니다. 144쪽부터 184쪽까지입니다. 정말, 이번에 읽은 부분은 저는 생전 처음 듣는 얘기라서 '오!' 하고서 신기해 하면서 읽었답니다. 괜히 말을 덧붙이면 스포일러가 되니 그냥 읽고, 감탄하세요! @적륜재 님 리스펙트입니다. :)

향팔
정말로, 연신 감탄하고 있습니다.

FiveJ
"경로를 추정하면 페르시아에서 일단의 유대인 집단이 아프가니스탄-인도 북부를 거쳐 중앙아시아를 통해 중국으로 들어왔을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고 합니다" 와 유대인이 중국에서 신앙을 지키며 살고 있었군요,, 놀랐습니다

거북별85
“ 이후는 거의 드라마 <무인시대>같은 분열 왕국의 뻘짓 릴레이가 이어진 후 기원전 720년경 아시리아의 침공으로 북쪽 이스라엘 왕국이 먼저 사라지고 다시 기원전 600년경 전후 바빌로니아의 침공으로 그나마 명맥을 잇던 남쪽의 유다 왕국도 사라집니다. 보통 민족의 이산을 의미하는 '디아스포라'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것은 이 바빌로니아에 의한 유다 왕국의 해체, 포로, 분산 재배치를 말합니다. 그래서 이후 스스로를 같은 신세로 인식한 흑인 노예들에 의해 흑인 영가로 "바빌론 강가에 앉아 우리는 울었지, 시온을 기억하면서"라는 구절이 자주 불리는 모티브가 되기도 합니다. ”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딜런 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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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 유럽 중근세 역사에서 처음에는 세파담이 상당히 눈에 뜁니다. 세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에 나오는 유대 상인 샤일록도 시기적으로 16세기의 지 중해 연안 베네치아라면 거의 100퍼센트 세파딤으로 볼 수 있을 정도입니다. 어, 세파딤이라면 이베리아반도가 근거지라면서 웬 베네치아냐고 할라치면 이런 뒷이야기가 있습니다. 스페인가 포르투칼은 레콩키스타 기간, 특히 근세 15세기 후반부터 16세기 동안 종교재판을 통해 이교도를 솎아내면서 골치 아픈 유대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간단히 두가지 옵션을 제시했습니다. 개종 아니면 추방, 상당수가 가톨릭으로 개종을 하였지만 개종을 해도 의심의 눈초리가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고 해서 이들 중 일부가 상대적으로 종교적 압박이 적은 네덜란드나 이탈리아의 해양 상업국가로 이주했고 역시 토지 소유를 할 수 없으니 무역이나 금전대출업에 종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샤일록도 그런 케이스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베네치아에는 처음으로 유대인들의 구역인 게토가 만들어졌고 지금도 그 흔적이 관광지로 남아 있습니다. ”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딜런 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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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 다른 유럽 국가들도 대동소이하게 역시 비슷한 방식의 유대인 문제 해결, 그러니까 개종 또는 추방을 시도했습니다. 따라서 16세기 이후 상당수의 세파딤 유대인들은 상대적으로 압박이 적은 신대륙으로 건너가거나 혹은 종교개혁의 와중에 스페인, 포르투갈과 대적한 신교 국가들로 몰렸습니다. 그중 가장 종교저거으로 관용적이었던 곳이 네덜란드공화국이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은 그래서 한때 '유럽의 예루살렘'이라고 불리면서 자체 율법학교를 갖춘 세파딤 공동체가 형성될 정도로 큰 세파딤 유대인 거주지가 되었습니다. 암스테르담의 세파딤 유대인들은 네덜란드 독립의 지도자 오라녜의 왕자들을 재정적으로 지원했고 이에 대한 반대급부로 국가 수장과 유사한 스타트허우더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그런 다음 네덜란드의 무역 부흥에 힘을 보태 환지중해 지역에 형성된 기존의 세파딤 유대인들의 네트워크인 모로코-북아프리카-레반트-이탈리아를 연결하는 역할을 담당했을 정도입니다. ”
『항해사 흰닭, 파드레, 그리고 오렌지 반란군의 기이한 모험 - 16~17세기 동아시아와 유럽의 만남』 딜런 유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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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북별85
가끔 역사속에서 등장한 네덜란드를 보면 어떻게 하면 기존의 선입견이 종교적으로 관용적이었고 작은 나라가 동인도 회사라는 것을 만들어 세계에 나갈 생각을 했을까 항상 궁금하더라구요... 일반적인 유럽의 모습과 다른 행보를 취할수 있었던 역사적 배경이나 환경적요인이 있었을까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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