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의 보너스입니다. 교토에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이 여행을 간다고 얘기들었습니다. 저도 이태 전 봄에 정말 오랜만에 교토를 들렀는데 정말 한국 관광객들이 많더군요. 특히 4월경 교토를 가면 다카세강 또는 다카세가와(高瀬川)라고 교토 시내의 일부 구간을 남북으로 가로지르는 운하에 벚꽃이 특히 아름다워서 사진을 많이 찍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 강이라기에는 조금 좁은 물길이 실은 '바로 바로' 스미노쿠라 료이와 아들 스미노쿠라 요이치가 후시미라는 교토 남쪽에서 교토 시내 중심까지 연결하여 물자 수송을 편하게 하기 위해 조성한 물류용 운하입니다. 그러니까 책에서 언급한 프로젝트 파이낸싱의 대표적인 공사였습니다. 17세기 초반에 만들어져서 19세기까지 사용되다 이후 물류 수송용으로는 사용이 중단되고 지금은 관광 스팟이 되었습니다.
일본에는 어떻게 되어서 이런 민간 토건 공사가 가능했고 조선에는 그런 사례가 없는가는 실은 사회제도와 관련이 있는 대단히 복잡한 문제입니다. 전국시대의 번(藩)이 거의 독립 국가처럼 유럽인들에게 비춰졌다면, 에도 바쿠후 시대의 번은 실은 요즘의 대기업/재벌기업 같은 패턴을 보입니다. 에도 바쿠후는 사쓰마 같은 대형 번의 재정을 탕진하게 하여 힘을 빼기 위한 정책을 계속 실행했습니다. 각 번은 끊임없이 자금을 차입하고 수익 사업을 해서 번의 재정을 지탱했습니다. 그래서 스미노쿠라 같은 민간 자본이 성장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에도, 교토, 나고야 같은 대도시에 국한된 것이긴 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18세기에는 인플레이션이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어 화폐 개혁을 여러차례 단행해야 했습니다. 조선은 비교하자면 반대로 극도로 안정적인 레벨을 추구하는 중앙집권형 관료체제였던 것 같습니다. (심지어 귀신도 원한이 있으면 자기가 복수를 하는게 아니라 고을 원님(국가권력)에게 호소를 하죠) 책에서 여러번 말씀드렸듯이 각각 서로 사정이 있었다고 할까요. 대답은 한번 적접 더 찾아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혹시 봄에 교토를 가시면 다카세가와의 벚꽃 수로길을 한번 걸어보시기 추천드립니다. 다카세가와의 모습을 담은 유투브 클립입니다: https://youtu.be/ChG-PcW2B_A?si=wUVT7vV6qAiSXrVa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