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북플러스] 7. 무성음악_수림문학상 작가와 함께 읽어요

D-29
그런 특별한(!) 이유가 있었군요. 어쩌면 김밥집 아주머니가, 뭐가 제일 맛있냐는 질문에 무심하게 "다 똑같아. 한 줄? 두 줄?" 했던 그 장면처럼, 그런 느낌의 어떤 도시인 경주가 '한 줄'이 되었나 보군요. 답변 감사합니다^^
ㅎㅎㅎ 찰떡같은 비유네요. 네, 바로 그겁니다.
하필이면 또는 다행히도 그 두 사람. 바로 그 지점에서 불가항력적으로 운명 지워진 하나의 삶은 출발한다.
무성음악 <하필이면 다행히도> p.96, 오선호 외 지음
아이들 어릴 때, 한밤 중에 열이 철철 끓는데 시럽 해열제를 약과 함께 주는 하얗고 조그마한 플라스틱 숟가락에 담아서 먹이며, 어찌할 바를 몰라 발만 동동 구르던 순간을 기억했습니다. "아빠도 아빠가 처음이라. 미안해.." @박이강 작가님의 <하필이면 다행히도> 속 자신의 존재를 모르는 아빠를 만나러 가는 딸의 이야기가, 제겐 스릴러 처럼 읽혔습니다. 이야기가 끝날 때 까지 손에 땀을 쥐고 딸을 알아볼까, 아빠에게 먼저 자신을 들어낼까, 하는 조바심과 안타까움으로 조용히 카페 그녀가 바라다 보이는 자리에서 숨죽이며 그녀 한번, 창밖 건너편 한번, 번갈아 보며 읽어내려갔습니다. 확실히 이야기가 다른 이야기로, 대화가 생각으로 오가는 경계가 보이진 않는데, 읽다보면 자연스레 읽어낸 문장들이 머릿 속에서 이리저리 자리를 찾아 흐르고, 자연스레 편집되면서 실시간으로 뇌 안쪽 어두운 벽면에 영사기로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신기하게도. 그렇게 다 읽고 나서는, 엉뚱한 생각들이 또아리를 틀며 꼬리에 꼬리를 물었습니다. 자녀가 부모를 선택할 수 없듯, 부모도 자녀를 선택할 수 없는 거 아닌가? 어릴 적 잘 사는 친구네 놀러가서는 여기가 우리집이고 제네 부모님이 우리 부모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하기도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주변에서 그렇게 십 수 년을 노력해도 아이를 갖지 못하는 이들도 있고, 하룻밤 실수(?)로 들어선 아이로 깊어진 고민에 격랑의 시간을 보내는 이들도 있습니다. 어찌 보면, 우리는 살면서 과연 무엇을 선택이나 할 수 있는 존재들인가 싶어질 지경입니다. 인구절벽의 작금의 현실에 '부모 자격시험'이 시행된다면 과연 어떨까 하는 상상도 했습니다. 몇 년 동안 낙방을 거듭하는 고시생들 같은 부모들을 위한 학원들이 노량진에 생길까? 아니면 애 키우기 이렇게나 힘든데 오히려 잘되었다며 딩크족들만 양산되는거 아닐까? .... 그렇게 택시를 타고 고속버스 터미널로 향한 그녀는, 그렇게 서울로 가버리곤 끝이었을까? 가끔 생각나는 아빠의 구부정한 걸음걸이를 떠올리며, 그때의 치통을 떠올리며,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일 거 같던 그를 다시 보러 (혹은 만나러) 경주행 버스를 타지 않았을까?... 정말 그 아빠란 사람은, 그녀가 자신의 딸이란 걸, 나중에라도 정말로, 절대로 몰랐을까? 그녀의 엄마가, 만취한 밤에 어쩌면 그에게 전화해서 딸의 존재를 이야기했는데 까맣게 잊어버린건 아니었을까? 정말 내내 그렇게 가슴에 뭍고 자신만의 비밀로 간직하고만 살았을까?.... 책의 마지막 문장에 도착해서 이러저러한 상상과 생각이 꼬리를 물며 확장해가도록 이야기를 지어준 작가님,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PS. 그녀와 그녀 아빠의 뒷이야기는 더 안해주실거죠? ㅎㅎ
@Henry 님의 이 글을 읽으며 많은 생각이 듭니다. 작가가 만든 인물의 입장을 작가 자신보다 더 넓고 더 깊이 보는 독자가 있을 수 있구나 감탄하게 됩니다. 이렇게 다각도로 상상과 관점을 확장해 나가실 수 있는 분이라면 이 친구의 앞으로의 이야기도 저보다 더 잘 쓰실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부모도 자녀를 선택할 수 없는 거 아닌가? 라는 질문은 이 작품을 쓰는 동안 미처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부모 자식간의 관계에 있어 부모는 상처를 주는 잠재적 가해자 그리고 자식은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상처받는 피해자라고 생각하는 상투성에 제가 함몰되었었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 ‘어찌 보면, 우리는 살면서 과연 무엇을 선택이나 할 수 있는 존재들인가 싶어질 지경입니다’라는 사유 역시 고개를 끄덕이게 되고요. ‘다행히도’ 이 이야기가 상상과 생각에 꼬리를 물게 했다면, 그건 저의 역량이 아니라 헨리님의 역랑이겠죠. 정성 어린 리뷰 너무 감사드려요.
밀도 높은 이야기를 만나 이런저런 상상과 생각을 주저리주저리 적어내린 제 글에 감탄 씩이나 해주셔서 그저 감사할 따름입니다.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들 많이 지어내 주세요. 그 과정에서 작가님도, 그 세상을 마주하는 독자들도 모두 행복하길, 그렇게 바라봅니다.
감사합니다. @henry 님 덕에 이 추운 날씨도 두렵지 않은 온기를 얻었어요.
나는 가만히 중얼거렸다. 10점. 아니, 기권.
무성음악 <하필이면 다행히도> p.120, 오선호 외 지음
묻고 싶다. 자신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어떤 이를 부모로 만나는 건 과연 정당한 일인가. 한 사람의 삶이 그런 턱 없는 우연성에 기초한다는 건 엄청난 부조리 아닌가. 그게 신이 하는 일이라면 인류가 대동단결해 너무 폭력적이지 않냐고 항의라도 해야 할 일 아닌가 말이다.
무성음악 <하필이면 다행히도> p.112, 오선호 외 지음
남자의 첫인상은 뭐랄까, 그가 빠져나온 건물 같았다. 지방 소도시의 시장통 골목에 있는 낡은 상가 건물. 바랜 간판들을 덕지덕지 붙인 채 사람들이 휴대폰을 신형으로 바꾸고 머리를 하고 빵을 사는 동안 천천히 늙어 버린 건물 말이다.
무성음악 p.93, 오선호 외 지음
이 문장을 꼭 공유하고 싶었어요. 아버지의 첫 인상이 단박에 이해가 된 찰떡같은 비유여서 넘 재밌었거든요.
그리고 101쪽에 공원 장면... 아버지라는 미지의 사람을 찾으러 갔는데, 점심을 먹은 아버지가 동네 할머니 할아버지들과 다를 바 없이 나무에 몸을 부딪히고 철봉을 하는 모습. 너무나 무심하고 일상적인 '아버지'의 모습을 바라보는 나. 표현할 수 없는 그 허탈한 마음. 그냥 지나가는 장면 같지만 인상 깊게 남았어요.
그동안 오선호 작가님, 김수영 작가님과 함께 나눈 풍부하고 재미있는 대화를 제가 어떻게 이어가지 할지 걱정됩니다. 제 작품은 별로 할 얘기가 있을까 싶기도 하고요. ㅋ 아무튼 반갑습니다. 책을 읽는 방법으로 정독, 낭독, 재독 등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이렇게 고급독자들이 모여 작품에 대해 깊이있는 의견을 나누는 것 또한, 그걸 눈동냥하는 것만으로 책을 깊이있게 읽는 방법이라는 걸 깨닫게 되네요.
작가님, 반갑습니다! 부모자격시험에서 저는 애초에 심사위원 자격도 박탈 당할 것 같다고 생각해요. 저는 제가 좋은 부모가 될 수 있을지 잘 모르겠거든요. 저도 잘 모르는데 남을 심사할 수 있을까요? 그래도 반드시 평가해야 한다면, 너무 바쁘더라도 하루에 최소 1시간은 온전히 자신의 가족과 시간을 보내는 데 쏟는 사람을 고르고 싶어요. 같이 밥을 먹어도 좋고, 잠자기 전에 이야기를 나눠도 좋아요. 그냥 가족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진 사람. 어쨌든 아이가 커갈수록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별 거 안 했어도 가족과 보냈던 시간인 것 같아요. 그게 사랑을 전하는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그 기억을 가지고 있으면 아이도 자신의 아이에게 또 사랑을 전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는 자신의 유전자를 받은 아이가 커 가는 걸 지켜보는 기쁨을 누리지 못했지만, 어쨌거나 인생에서 가장 잘했다고 믿는 결정이 하나쯤 있다는 건 좋은 일이겠지.
무성음악 p.122, 오선호 외 지음
저는 주인공이 이런 결정을 내린 걸 보고 큰 충격을 받았어요. '가족의 인생을 진심으로 존중해주는 것' 살다 보면 그게 정말 어려운 것 같아요. 책에서도 '하필이면 또는 다행히도 그 두 사람'이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주인공은 이 결정을 통해 '다행히도' 그 사람이었다고 인정해주는 것 같아서 그 사랑에 감탄했어요. 비록 자신은 그 사랑을 못 받았지만 말입니다. 그래서 작가님이 재미없는 주제를 고른 것 같다 했지만 저는 여운이 많이 남았습니다. 가족은 가장 가깝지만, 그래서인지 가장 알 수 없는 존재인 것 같기도 해요. '우연'으로 묶인 관계지만, 그렇게 까지 다채로운 감정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존재가 있다는 게 제가 이 지구를 살아가는 이유인 것 같습니다.
@에브382 님, 반갑습니다. 맞아요. 같이 보낸 좋은 시간의 축척이야말로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죠. 그리고 재미없는 주제가 아니었다고 해주시니 감사합니다. 저는 주인공이 부모선택권을 포기하는 결정이야말로 부모결정권이 없이 태어나는 인간의 운명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거라고 보았습니다. 하필이면 또는 다행이도에 얽매이지 않는 자기 주체에 대한 인식이 결국 삶을 대면하고 나가는 데 필요한 힘이라는 걸요.
혹여 사적인 질문이 될 것 같아서 조심스럽긴 하지만 저는 작가님이 왜 '아빠와 딸'의 이야기를 썼는지 궁금했습니다. 가족 관계면, '엄마와 딸'도 있을 수 있고, '형제자매'도 있을 수 있는데 이 이야기에서는 왜 이 관계를 선택했는지 궁금했어요.
개인적으로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느끼는 결핍이나 상실감이 반영된 것도 사실이긴 한데요. 그보다는 제게 모녀 서사는 그 자체로 어떤 강력한 장르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상투적인 이야기가 될 것 같았어요. 지방에서 치과를 하며 혼자 사는 중년의 인물에 남자가 더 어울리기도 했고, 전제적인 설정상 아빠와 딸의 이야기가 여러모로 더 낫겠다고 판단했던 것 같아요.
남자의 첫인상은 뭐랄까, 그가 빠져나온 건물 같았다. 지방 소도시의 시장통 골목에 있는 낡은 상가 건물. 바랜 간판들을 덕지덕지 붙인 채 사람들이 휴대폰을 신형으로 바꾸고 머리를 하고 빵을 사는 동안 천천히 늙어 버린 건물 말이다.
무성음악 p.93, 오선호 외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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