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그믐] 2주차 토론, 이번엔 MZ의 시선으로 찢어보려 생성형 AI의 도움을 좀 받았습니다. 제가 여태 너무 딱딱하게만 글을 쓰진 않았나 반성하는 차원의 '변신'입니다!
이번 『두 개의 논어』 속 주자와 다산의 해석 차이는 마치 '꼰대 상사 vs 실무형 팀장'의 대결 같아 흥미진진하네요. 짧고 굵게 제 생각 공유합니다!
1. 🐯 리더십: 고민은 배송만 늦출 뿐, '자로형' 가보자go! 🚀 요즘 세상은 속도전이잖아요. 주자처럼 완벽하게 각 재다가 골든타임 다 놓치는 것보다, 다산이 픽한 자로의 '저돌적 실행력'이 지금 메타에 딱입니다. 일단 저지르고 실패하면 피드백해서 다시 뛰는 게 훨씬 힙하죠. 좌고우면하지 않는 '돌파력'이야말로 우리 조직에 필요한 진짜 갓생 리더의 조건이라 생각해요!
2. 💰 부(富)와 도덕: '자본주의 세례' 받은 자공이 정답! 💰 사실 주자님, 입으론 "청빈"을 외쳤지만 실제론 베스트셀러 인세와 본인 소유 인쇄소 운영으로 엄청난 부를 쌓은 '풀소유 CEO 겸 대지주'였다는 반전 팩트! 그래서인지 맹자 쌤의 '유항산 유항심(有恒産 有恒心)', 즉 "통장이 든든해야 멘탈도 안 흔들린다"는 말이 더 와닿네요. '텅장'이면 박시제중(博施濟衆)도 불가능하죠. 정당하게 벌어 폼나게 베푸는 다산의 실용주의가 진짜 도덕 아닐까요?
3. 🧘♂️ 안회의 즐거움: '중꺾마'는 쿨한 현실 수용에서 나온다! 🧘 가난해도 고요한 주자의 '명상 메타'는 솔직히 갓생러에겐 좀 어렵고요. "이게 내 운명이네? 근데 어쩔?" 하고 툭 털어버리는 다산의 쿨한 태도가 훨씬 와닿아요. 가난을 사회 탓, 운명 탓 안 하고 주어진 현실을 긍정하며 킵고잉(Keep going)하는 것! 이게 바로 멘탈 터지는 시기를 견디는 진짜 '중꺾마(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라고 생각합니다.
🎯 한 줄 요약: 주자님은 '이상주의 원칙주의자', 다산님은 '현실 밀착형 실무자' 같네요. 저는 역시 다산의 현실 갓생 모먼트에 한 표 던집니다! 다른 분들은 어떤 리더와 마인드셋을 픽하셨는지 댓글로 알려주세요! 😊
[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D-29

작가와책읽기

김영사
작가와책읽기님의 댓글이 정말 정말 힙하네요! AI를 활용해 고전을 현대적인 '갓생' 트렌드와 연결한 시도가 너무 좋은데요?! 특히 주자와 다산의 대립을 '꼰대 상사 vs 실무형 팀장'으로 비유하신 점이나, 안회의 불천노(不遷怒)를 '중꺾마'로 해석하신 부분은 이 책의 핵심을 요즘 언어로 완벽하게 풀이해주신 것 같습니다. 특히 주자를 '풀소유 CEO'라고 표현하신 부분에서는 빵 터졌습니다. 공허한 도덕보다 '텅장'을 채워 '박시제중'하겠다는 다산의 실용주의가 작가와책읽기님 덕분에 훨씬 설득력 있게 다가옵니다.

작가와책읽기
🧐 [주자]에 대한 참고 자료를 하나 공유합니다. 주자(朱子)의 반전 정체, 한마디로 요약하면 "입으로는 '무소유'를 말하지만, 실제론 송나라 출판계를 씹어먹은 '풀소유' CEO"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주자는 현대 기준으로 봐도 상당한 '자산가'이자 '베스트셀러 작가'였습니다. 단순히 가난을 즐기라고 했던 안회와는 사는 월드(World)가 달랐죠. MZ 스타일로 팩트 체크 들어갑니다!
1. 📚 출판계의 '넘사벽' 1타 강사 : 주자는 당시 송나라 출판 시장을 장악한 메가 히트 저작권자였습니다. 그가 쓴 『사서집주(四서集註)』는 당시 수험생들의 필수템이었고, 본인이 직접 인쇄소를 운영하며 책을 찍어 팔아 막대한 수익을 올렸습니다. 요즘으로 치면 '스타 강사 인강 + 교재 독점 판매'로 돈을 번 셈이죠.
2. 🏠 거대 가문을 이끄는 '갓물주' : 주자는 단순히 선비로 산 게 아니라, 수백 명의 식솔과 제자들을 거느린 대지주였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그가 운영한 서원(학원)과 가문의 규모는 어마어마했고, 이를 유지하기 위한 토지와 자금력이 상당했습니다.
3. ⚖️ "나는 되고 너는 안 돼?" (내로남불 논란) : 주자가 강조한 '존천리 멸인욕(存天理 滅人欲 ; 하늘의 이치를 지키고 인간의 욕망을 없애라)'은 사실 본인 같은 기득권보다는 일반 민중이나 하급 관리들에게 요구된 덕목에 가까웠습니다. 정작 본인은 풍족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학문에만 전념할 수 있었던 거죠.
🎯 요약하자면?
주자는 "안회처럼 가난해도 즐겁게 살아라"라고 가르쳤지만, 본인은 "자공처럼 비즈니스(출판/지주)에 성공한 재력가"의 삶을 살았습니다. 넘사벽 자산가로서 경제적 풍요를 누렸지요.
그래서 다산 정약용 선생이 주자의 이런 공허한 '정신 승리'보다는, 정당하게 돈을 벌어 실질적으로 사회를 돕는 실용주의를 강조한 거예요. 우리 다산 형님이 보기에 주자의 가르침은 좀 '가식적'이라고 느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김영사
이 글도 AI의 힘을 빌리신 건가요? ㅎㅎ 주자가 단순한 학자가 아니라 '인쇄소 운영 + 베스트셀러 저자 + 대지주'였다는 표현은 다산이 왜 그토록 주자학의 이중성을 비판하고 실용주의를 외쳤는지 이해하는 데 결정적인 열쇠가 되는 것 같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주자가 '경제적 자유를 이룬 갓물주'였기에 학문에만 전념하며 이상적인 도덕론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라면, 다산이 보기에 그건 현실을 모르는 혹은 알면서도 외면하는 기만으로 보였을 수도 있겠습니다.

작가와책읽기
“ 공자는 어떤 세상을 꿈꾸고 있었을까? 그가 생각하는 정치적 이상은 무엇일까? 다음은 有道한 세상의 청사진을 보여준다. 안회의 克己復禮 자공의 博施濟衆처럼, 최고의 지침은 들을만한 수준이나 자격이 되었을 때 비로소 발화되는 것이다. ”
『두 개의 논어 - 철학자 주자와 정치가 다산, 공자의 가르침을 논하다』 Page 254, 한형조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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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책읽기
본문 254 Pgae에 子曰: "可與言而不與之言, 失人. 不可與言而與之言, 失言. 知者不失人, 亦不失言." (<위령공>7장)
공자가 말했다. "말 해야 할 사람에게 말을 아끼는 것은 사람을 잃는 것이고, 그게 아닌 사람에게 말하는 것은 말을 잃는 것이다"
이러한 성현의 말씀을 이어, 저의 직계 11대조로서 조선 중기에 문신으로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시, 의병을 일으키시어 노블레스 오블리쥬를 실천하신 안방준 할바님(증 이조판서 문강공)은 이런 유훈을 남기시었습니다.


김영사
안방준 조상님의 유훈을 읽어보니, <논어>의 결과 맞닿아 있네요. 이런 흥미로운 자료, 늘 환영합니다. 모임을 다채롭게 만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와책읽기
@김영사 禮, 잘 알겠습니다. 늘 정성으로 가득한 댓글로 맞장구를 쳐 주셔서 가일층 힘이 납니다. 일신우일신 법고창신으로 보은의 길을 걷겠습니다. 오늘 우체국으로 향하는 버스 터미널에서 한동안 안보이던 묘령의 어떤 분을 만났습니다. 서로를 모르는 제게 갑자기 이렇게 훅~~들어 오더군요. "혹시 道를 아십니까~?" 새삼스럽지만 소스라치게 놀랐어요. 제 손에 들려있는 『두 개의 논어』을 살며시 보여주기만 할 뿐 아무런 말은 하지 않았지만 제 속으로는 이미 이런 말을..." 뙠~!" 아아아 태극이여~~ 육신은 이미 지천명을 넘어 이순의 길을 바라보거늘 아직 마음은 불혹의 철없는 지경임을 자책하고 맙니다.


김영사
작가와책읽기님, 댓글이 유머와 깊이, 그리고 삶의 연륜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한 편의 수필 같네요. 특히 "도를 아십니까?"라는 질문에 말없이 <두 개의 논어> 책 표지를 보여주셨다는 대목에서 그분이 얼마나 겸연쩍었을까 생각도 듭니다.ㅎㅎ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공유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와책읽기
감사합니다 👄 그제 김영사 편집 팀장님께 발송한 제 졸저 소포는 오늘 회사 동료이신 서포 김만중 선생께서 받으셨다는 우체국 확인 문자를 받았습니다.

김영사
@작가와책읽기 님, 인사가 늦었습니다. 잘 받았습니다. 오늘부터 조금씩 읽어나가겠습니다. 새 책은 정말 가슴 뛰게 만듭니다. 설레는 마음으로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보겠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다니엘
<논어>는 공자뿐만 아니라 제자들의 개성도 꽤 확연하게 드러난다는 점에서 독특한 경전 같습니다. 성인의 제자로는 예수의 제자들이 유명하지만, 막상 4대 복음서에선 베드로 정도 빼고는 딱히 누가 두드러지거나 구분이 된다는 인상은 못 받았거든요. 유학이 인간관계와 교육을 중시한다는 점이 공자의 직접적 언행뿐만 아니라 제자들을 표현하는 방식을 통해서도 전달되는 것 같아요.

김영사
다니엘님, 동감입니다. <논어>는 좌충우돌하는 제자들과의 티키타카가 살아 있는 드라마 같습니다. 책에서도 공자가 같은 질문("들으면 바로 행할까요?")에 대해 성격이 급한 자로에게는 "부형이 계신데 어찌 바로 하느냐"고 누르고, 소극적인 염구에게는 "바로 행하라" 하고 등을 떠미는 장면이 나오죠. 제자 한 명 한 명의 기질을 파악하고 그에 맞춰 이끌어주었던 공자의 '맞춤형 교육'이 있었기에, 2500년이 지난 지금도 우리가 자로의 용기와 자공의 언변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 것 아닐까 합니다.
고운17
뒤 늦게 알게 되어 1차는 이미 지나간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참여가 가능할까요?

김영사
@고운17님 안녕하세요? 네 지금이라도 참여 가능합니다. 현재 진도는 반 정도 나갔습니다. 내일부터 3주차가 시작됩니다. 서설 정도만 읽으시고 3부부터 시작하셔도 문제 없습니다. 참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니엘
전 2부를 읽으면서 특히 '문질빈빈'이란 말이 많이 와닿더라고요.
(301~302쪽 중) 공자는 기본적 품성 못지않게, 문화적 도야가 그만큼 중용하다고 말한다. 忠信이 바탕(質)이라면, 거기 好學이 문화(文)로 보완되어야 한다. 그런 점에서 문질빈빈文質彬彬, 둘 중 하나도 결여될 수 없다. (...)
質은 순박, 진정, 인간의 기본 품성, 로열티와 신뢰(忠信) 등을 가리킨다. 文은 이에 대해 언어, 지식, 예절, 에티켓, 인문적 자질, 사회적 기술을 가리키고, 때로 자연 그대로(野)에 대한 문화적 특질(文)을 총칭하기도 한다.
내재돼 있는 자연스러운 마음이랄까, 그런 것의 선한 측면도 중요하겠지만, 동시에 그걸 표현하고 세련되게 가꾸는 방식도 상당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그러면서도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가식적으로 보이거나, 반대로 거칠고 무례해 보일 수 있고요. 그래서 둘 다 중요하다는 '문질빈빈'이 정말 탁월한 메세지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영사
내면의 진정성(질)과 외면의 세련됨(문)이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점을 지적하며, "어느 한쪽에 치우치면 가식적이거나 무례해 보인다"는 다니엘님의 해석은 공자의 말씀을 우리 삶에 바로 적용할 수 있게 해주는 훌륭한 통찰인 듯싶습니다. 특히 '내면의 선함도 중요하지만, 그걸 표현하고 가꾸는 방식도 중요하다'는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진심만 앞세우면 자칫 거칠어 보일 수 있고, 세련된 매너만 앞세우면 가식적으로 보일 수 있는데,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어른의 태도(君子)가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 모임도 서로에게 '질(진심)'과 '문(배려)'을 다하는 문질빈빈한 공간이 되었으면 좋겠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김영사
안녕하세요, 김영사 모임지기입니다.
<두 개의 논어> 독서모임 3주차입니다.
2주차에 참여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올립니다.
3주차는 '3부 공자의 사상, 1장 學~2장 天'까지입니다.
먼저 1장 學에 대한 활동부터 시작하겠습니다.
1. '착해지는 공부' vs '유능해지는 공부'
책에 따르면 주자는 배움(學)을 "잃어버린 본성을 되찾고 내면의 악을 씻어내는 과정(수양)"으로 보았습니다. 반면 다산은 배움을 "효도, 공경, 그리고 구체적인 직무 능력을 익히는 훈련(실무)"이라고 해석합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진정한 '공부'의 목적은 무엇인가요? "더 나은 인격을 갖춘 사람이 되는 것(주자)"과 "세상에 쓰임이 되는 유능한 사람이 되는 것(다산)" 중 현대 사회에서 더 필요한 배움은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시나요?
2. '위기지학(爲己之學)' : 나를 위한 공부란?
공자는 "옛날의 학자는 자기를 위해서(爲己) 했는데, 요즘 학자는 남을 위해서(爲人) 한다"고 했습니다. 주자는 이를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공부가 아니라, 내 마음의 평화를 찾는 공부"로 해석했습니다. 하지만 다산은 "나 자신을 훌륭하게 키워서, 남을 편안하게 해주는 실력을 갖추는 것"으로 해석하며, '나를 위함'이 곧 '남을 위할 준비'라고 보았습니다.
여러분은 책을 읽거나 공부를 할 때, "나 자신의 내면적 만족과 힐링(주자)"을 추구하시나요, 아니면 "나의 성장이 타인과 사회에 기여하는 결과(다산)"로 이어지기를 바라시나요?
질문에 국한하지 않은 다양한 의견도 너무 소중합니다.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금주 금요일에 '2장 天'에 대한 활동 내용을 올리겠습니다.

우주먼지밍
20대 30대 때까지만 해도 저는 입 밖으로 꺼낼 수 있는 삶의 태도(내지는 방향성)가 없었습니다. 마음에 품고 있는 막연한 그림 같은 것은 있었만요. 그러다가 40살을 넘겨 처음으로 삶의 태도 하나를 정했어요. 누가 물으면 다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삶의 태도요. 바로 '읽는 사람'이 되겠다 내지는 '읽는 삶을 살겠다'였습니다. 여기에는 책을 통해 스스로를 끊임없이 가르치겠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1번) '착해지는 공부' vs '유능해지는 공부'
제가 추구해온 공부는 겸손을 가르치기에 '착해지는 공부'였으며, 기존의 앎의 세계를 허물고 새로운 것을 채워주었기에 '유능해지는 공부' 이기도 했습니다.
제게 '읽는 삶'은 즉 공부하는 삶입니다. 저는 어려운 책을 통해 생전 처음 들어보는 무언가를 공부하는 것을 정말로 좋아합니다. 이것보다 순수한 기쁨은 아직 잘 발견하지 못했어요.
거창하게 들릴까 봐 이 말도 해야겠네요. 제가 읽고 배우는 속도는 어마어마하게 느립니다. 읽어도 금방 까먹습니다. 저는 우수한 지능과 일억 광년 떨어져 있어요. 단지 우치다 다쓰루 선생님이 말씀하시는 '무지, 무방비,' 무구'를 골고루 가지고 있을 뿐입니다.
제가 읽어온 책은 제가 얼마나 모르는지를 끊임없이 알려주었기에 겸손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었습니다.
착해지는 공부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그리고 감사하게도 우리 세상에는 온갖 분야의 커뮤니케이터들이 있습니다. 출판사는 이 귀한 분들을 찾아내어 협업한 뒤 세상의 온갖 앎들과 발견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여 '교양서'라고 불리는 아름다운 물건을 만들어 유통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런 책들을 너무나 사랑하는 독자입니다.
저는 이 책들의 도움을 일터에서 자주 확인합니다. 이 책들은 공교육을 받던 시절 배워보지 못한 '생각하는 방법'을 조금씩 가르쳐 줬습니다. 우리나라의 평범한 사무직들도 비록 거창한 것이 아닐지라도 매 순간 맡은 업무 영역에서는 실무적 판단을 내리도록 요구받습니다. 책으로 지속해왔던 더딘 공부는 분명히 도움이 되었습니다. 제가 동료들과 보다 원활하게 소통하고, 맡은 일을 파악/분석하고, 보고서를 쓸 때 도움을 주었습니다. 다른 말로 유능해지는 공부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2번) '위기지학(爲己之學)' : 나를 위한 공부란?
앞서 말한 '읽는 삶을 살겠다'는 것은 책의 533페이지에 나오는 '타인을 위한 학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길'을 살겠다는 것과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요새는 '보여주는 독서'를 하는 분들도 꽤 있던데 저의 더딘 읽는 속도는 삶은 타인의 인정받기에는 너무나 없이 부족합니다.
저의 읽는 삶은 '남의 인정을 받고 세속적 가치를 얻는데 노력하는 대신, 나의 '존재'를 각성하고 그 의미를 최고도로 인간화하는 데 온 힘을 쏟'(533페이지)는 삶입니다. 그래서 타인의 인정이나 관심이 별로 필요치 않습니다.
* 위로를 주는 읽기와 배움을 주는 읽기
20대 때만 해도 위로를 주는 글들을, 이를테면 힐링 에세이류를 종종 읽었어요. 그러나 30대를 넘어가니 단순히 위로만 주는 글은 전혀 와닿지 않았어요. 내가 겪는 고통의 기원은 어디일까.(역사적이고 사회적이며 문화적인 것이었습니다). 나의 우울은 공적인 것이었습니다.(<우울 : 공적 감정>을 사서 읽었지요! 여기에서) 우리의 사회는 도대체 무슨 문제들이 얽히고설켜있을까. 인간의 역사는 왜 이토록 고통으로 가득 찼나. 내가 가진 생각은 어디에서부터 어디까지 편견으로 가득 찼나. 만약 제가 고민한 정도가 1 정도라고 한다면 우리 세상에는 1000, 100000, 10000nnnn 만큼 고민한 사람들의 글들이 가득했어요. 제게 내면의 만족은 '책을 열심히 읽어서 이만큼이나 읽었구나'하는 나르시시즘적인 만족이 아닙니다. 저는 책을 통해 과거의 저와 점점 멀어지는 것이 최대의 만족입니다. 우리 세상에는 이토록 많은 문제들, 고통들, 아픔들, 억울함 들, 이야기들, 사랑들, 희생들이 가득했구나... 그러한 것들을 읽으면서,,, 제가 알던 좁은 앎의 세계가 허물어지는 것을 보고 거기서 만족을 얻습니다.
제가 학을 통해 느낀 내면의 만족은 거의 대부분 사회적인 앎과 만족으로 확장되었습니다. 제 개인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되니 가족과 동료와 직장과 사회와 나라들에 대한 연민이 생겼어요. 언제부턴가 '어떻게 그럴 수가?'가 아니라 '그럴 수도 있지'라고 생각하게 되었어요. 20대 때 저를 열받게 했던 동료가 지금은 별로 열받지 않습니다. 20대 때는 눈물 나게 만들었던 상사의 발언이 지금은 별로 타격이 없습니다. 제 신분이 노예가 아닌 것, 어머니 세대에 비해 공교육의 기회가 넓었던 것, 전쟁터에 태어나지 않은 것들 제 삶은 기막히게 우연적이고 행운으로 가득 찼습니다. 지금도 이 세상에는 드론 폭탄의 공격으로 온몸이 찢겨 죽어가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음... 쓰고 보니 이 책에서 읽은 내용을 활용해서 썼다기보다는 그냥 평소의 제 주관적인 감상만 나열했네요 ㅠㅠ....

김영사
우주먼지밍님, 마지막에 '주관적 감상만 나열했다'고 걱정하셨지만, 저는 오히려 이 글이야말로 책의 내용을 삶으로 완벽하게 번역해내신 글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20대 때 저에게는 '세상을 밝히는 거대한 빛'이라는 거대하고 막연한 꿈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고 책을 읽어가며, 이제는 그저 '주변을 돌보고 베푸는 따뜻한 곁'이 되는 것으로 삶의 방향을 잡았습니다. 우주먼지밍님이 개인의 내면에서 사회적 연민으로 시선을 확장해가는 과정과 참 닮아 있지 않나 생각이 드네요.
책을 읽어도 금방 까먹는다고 하셨지만, 걱정하지 마세요. 저 역시 그렇거든요.ㅎㅎ 하지만 그 잊힌 문장들은 사라지는 게 아니라 우리 무의식 속에 켜켜이 쌓여 결정적인 순간에 힘을 발휘한다고 믿습니다.
또한, '느리게 읽는다'는 건 흠이 아니라 그만큼 '꼼꼼하게 읽는다'는 방증이 아닐까요? 느리고 단단한 독서가 이미 우주먼지밍님을 '유능하고 착한 사람'으로 만들고 있는 것 같습니다. 깊은 울림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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