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D-29
화제로 지정된 대화
2장 天에 대한 질문드립니다. 1. 내면의 양심인가, 절대자의 시선인가? (하늘을 대하는 태도) 주자는 '하늘(天)'을 우주 만물을 관통하는 '자연의 이치(천리)'로 보았습니다. 따라서 주자에게 '하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내 마음속의 양심과 본성을 잃지 않으려는 내면적 노력을 의미합니다. 반면 다산은 하늘을 인간의 선악을 감시하고 심판하는 '인격적 주재자(상제)'로 보았습니다. 다산에게 '하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나를 지켜보는 절대자의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을 조심하는 것(신독)을 뜻합니다 . 여러분은 삶에서 올바른 길을 가려 할 때, "내 안의 양심이나 원칙(주자)"을 더 의식하시나요, 아니면 "나를 지켜보는 외부의 시선이나 절대적인 존재(다산)"를 더 의식하시나요? 어느 쪽이 도덕적 행동을 하는 데 더 강력한 동기가 된다고 생각하시나요? 2. 지천명(知天命) :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것 vs 나의 소명을 아는 것 공자는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고 했습니다. 주자는 이를 "우주와 만물이 돌아가는 근본 원리를 완전히 이해하게 된 상태"로 해석하여, 지적인 깨달음의 완성으로 보았습니다. 하지만 다산은 이를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구체적인 정치적·문화적 사명을 자각한 상태"로 해석했습니다. 여러분이 생각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지천명)'은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통달하여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상태(주자)"에 가까운가요, 아니면 "내 남은 생을 바쳐 완수해야 할 구체적인 과업이나 소명을 발견하는 것(다산)"에 가까운가요? 질문에 국한하지 않은 다양한 의견도 너무 소중합니다. 또한 답하기 어려운 미션은 넘기셔도 됩니다. 자유롭게 글을 남겨주세요.
@모임 그믐 회원 분들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제가 먼저 스타트를 끊어봅니다. 1. 저는 주자의 방식인 내 안의 '양심'을 믿고 싶습니다. 외부의 시선이나 벌이 무서워서 하는 행동은 왠지 타율적인 것 같아요. 내 마음이 편안하기 위해서, 내 본성을 지키기 위해서 올바른 선택을 할 때 비로소 진정한 자유를 느끼는 것 같습니다. 물론 그만큼 유혹에 흔들리기도 쉽지만요. 2. 여기서는 다산의 손을 들어주고 싶습니다. 단순히 세상 돌아가는 원리를 아는 것에 그치지 않고, 그 안에서 '나의 소명'을 찾아내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앎이 아닐까요? 공자가 천하를 주유하며 고생을 사서 했던 것도, 결국은 자신이 깨달은 이치를 세상에 실현하려는 소명 의식 때문이었을 테니까요. 다른 분들의 '하늘'은 어떤 의미인지, 또 '어른이 된다는 것'은 어떤 느낌인지 정말 궁금합니다.
1. 내면의 양심인가, 절대자의 시선인가 외부의 시선이나 절대적인 존재가 내면화되어 내 안의 양심이되는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인간동물의 행위의 기준이 되는 도덕/가치/양심 등은 모두 인간의 발명품이라는 글을 오랫동안 읽어왔습니다. 그리고 프로이트식으로 말하면 이것이 내면화 되어 우리의 초자아를 형성하는 것이 아닐까요. 2. 지천명에 관하여 어른이 된다는 것(지천명)이 무엇인지에 대한 답도 저는 역시 주자와 다산 양쪽의 모두 해석을 뒤섞어 대답하고자 합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이치를 통달하여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상태"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인격적 성숙을 이루어야만 얻을 수 있는 상태입니다. 한편 인격적 성숙을 이루고 원만하게 살아가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회나 공동체에 무관심하다면 철저히 개인적인 삶이라 할 수 있겠지요. 저는 나이를 먹어가면서 갈수록 중요한 것은 우리의 공동체/사회이구나 그것을 깨닫고 있습니다. 행복이란 결국은 사회적 행복이었어요. 제 모든 행복은 사회에서 비롯됨을 구구절절 깨닫고 있습니다. "내 남은 생을 바쳐 완수해야 할 구체적인 과업이나 소명"은 결국 사회적 삶에 연결된다고 보아요. 작가 데이비드 브룩스의 말을 빌리자면 '두 번째 산'에 올라이 (공동체와 얽힌) 과업이나 소명을 발견하는 것이 진정으로 성숙한 인간상[우리 시대에 필요한 어른상]이라고 봅니다.
우주먼지밍님, 동양의 고전과 서양의 현대 철학(심리학)을 넘나드는 놀라운 통찰력을 보여주시네요! 특히 혼자만 고고하게 도를 닦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과 부대끼며 그 안에서 과업을 발견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지천명'이자 어른의 모습이라는 말씀에 100% 공감합니다. 데이비드 브룩스의 '두 번째 산' 비유도 정말 찰떡입니다. 나를 위한 성취(첫 번째 산)를 넘어 타인을 위한 헌신(두 번째 산)으로 나아가는 과정이 곧 공자가 걸었던 길이 아닐까 싶습니다. 깊은 통찰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매번 질문과 상관없는 댓글만 남기다가 처음으로 편집자님의 질문에 나름대로 답을 적어봅니다. 1. 저는 "내 안의 양심이나 원칙"을 우선시하고 싶지만, 정작 행동할 때는 "나를 지켜보는 외부의 시선"을 더 의식하게 되곤 합니다. 무언가를 하려다 멈칫하게 되는 순간도, 대개 누군가 나를 보고 있지 않을까 하는 우려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2. 오십이 됐다고 해서 "세상의 이치를 통달해 마음에 흔들림이 없는 상태"가 되기는 쉽지 않아 보입니다. 그 정도면 거의 열반의 경지가 아닐까 싶거든요. 오히려 다산이 말한 의미가 제가 오십이 됐을 때 지향하고 실천할 수 있는 현실적인 목표라는 생각이 듭니다. 결국 제 마음은 다산의 해석으로 기우네요. 팬심을 조금 보태긴 했지만, 그 마음을 빼고 보더라도 다산의 이야기가 훨씬 깊이 와닿습니다.
리버풀님, 드디어 질문에 대한 첫 답변을 남겨주셨군요! 정말 반갑고 감사합니다. 다산의 해석에 마음이 기우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릅니다. 팬심을 빼고 보더라도 다산의 이야기가 더 와닿는 이유는, 그가 '땅에 발을 디딘 철학'을 했기 때문이겠죠. 1번 답변을 읽으며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우리는 모두 내면의 양심만으로 살고 싶어 하지만, 솔직히 누군가 보고 있을 때 더 착해지니까요. 다산도 바로 그런 나약함을 알았기에, 하늘이 보고 있다는 긴장감을 그토록 강조하셨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3부 1장 「學」의 여운이 너무나 크게 남는지라, 《論語》〈陽貨篇〉에 보면, 공성께서 자로(仲由)에게 하신 말씀을 Excel 표로 정리해 봅니다. 이 말씀에 감히 저는 아무런 반박의 여지가 없었습니다. 原文為「子曰:『由也,女聞六言六蔽乎?』對曰:『未也。』『居,吾語女。 好仁不好學 其蔽也愚 好知不好學 其蔽也蕩 好信不好學 其蔽也賊 好直不好學 其蔽也絞 好勇不好學 其蔽也亂 好剛不好學 其蔽也狂
작가와책읽기님, 육언육폐(六言六蔽)를 통해 3부 1장 '學'의 핵심을 정리해주셨네요. 아무리 좋은 仁도, 勇도, 直도 배움이 받쳐주지 않으면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는 공자의 통찰은 반박의 여지가 없는 것 같습니다. 특히 자로처럼 열정이 넘치는 사람에게는 이 가르침이 날카로운 조언이었을 것 같습니다. 3부 1장에서 느꼈던 여운을 이토록 완벽한 구절로 정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두 개의 논어』 2장 「天」에 대한 독해 — 하늘을 의식하는 방식과 지천명의 의미 ◐ 2장 「天」은 ‘하늘이 무엇인가’를 설명하는 장이 아니다. 이 장은 오히려 인간이 무엇을 의식하며 살아야 하는가를 묻는다. 주자와 다산의 해석은 그 출발점이 다르다. 주자는 하늘을 우주 만물을 관통하는 자연의 이치(天理)로 본다. 따라서 하늘을 두려워한다는 말은 외부 존재에 대한 공포가 아니라, 내면의 양심과 본성을 잃지 않으려는 자기 성찰의 태도를 뜻한다. 도덕은 외부에서 강제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 안에서 스스로를 규율하는 힘이다. 반면 다산은 하늘을 인간의 선악을 살피는 인격적 주재자(上帝)로 본다. 하늘은 나를 지켜보고 있으며, 인간은 그 시선을 의식하며 행동을 삼가야 한다. 여기서 도덕은 내면의 자율성보다 신독(愼獨)이라는 긴장감에서 비롯된다. 아무도 보지 않을 때조차 스스로를 경계하는 태도가 강조된다. 그러나 이 둘은 상반되는 관점이 아니라, 도덕이 작동하는 두 개의 축에 가깝다. 내면의 양심만으로 인간은 쉽게 느슨해지고, 외부의 시선만으로 인간은 쉽게 위선에 빠진다. 주자의 하늘이 방향을 잡아 준다면, 다산의 하늘은 행동을 바로잡는 긴장을 부여한다. 도덕은 이 두 힘이 함께 작동할 때 현실 속에서 유지된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이 책의 저자 한형조의 역할이 분명해진다. 그는 주자와 다산의 해석을 단순히 병렬로 소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오히려 두 해석이 서로를 비추도록 배치함으로써, 독자가 ‘하늘’을 관념으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삶의 태도로 체험하도록 만든다. 『두 개의 논어』에서 주자와 다산의 긴장은 학설의 차이가 아니라, 독자의 내면에서 윤리적 감각을 흔들어 깨우는 장치로 기능한다. 이 책이 고전 해설서가 아니라, 고전을 통해 독자의 삶을 재배치하는 사유의 장이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 지점에서 책의 후반부에 등장하는 다산의 한 문장이 이 논의를 결정적으로 재정렬한다. 다산은 공자의 평생 학습을 꿰는 원리가 주자가 말한 ‘천리(天理)’가 아니라 ‘충서(忠恕)’라고 말한다. 유교를 한 글자로 집약한다면 ‘理’가 아니라 ‘恕’여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곧 공자가 의식한 하늘이 형이상학적 질서가 아니라, 타인을 대하는 태도로 귀결된다는 뜻이다. 공자가 「논어」 〈팔일〉편에서 말한 구절, 「獲罪於天,無所禱也」 하늘에 죄를 지으면 빌 곳이 없다 는 바로 이 지점을 정확히 가리킨다. 하늘은 제사를 통해 달랠 수 있는 대상이 아니라, 이미 인간의 삶 속에서 드러나는 윤리적 기준이다. 하늘을 의식한다는 것은 곧, 타인을 향한 나의 태도를 끊임없이 점검하는 일이다. ◑ 지천명(知天命)에 대한 해석 공자가 “오십에 천명을 알았다(五十而知天命)”고 한 말에 대해, 주자는 이를 우주의 근본 원리를 통달한 상태로 해석한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지적 완성의 경지다. 그러나 다산은 이를 하늘이 자신에게 부여한 구체적인 소명을 자각한 상태로 본다. 세상을 이해하는 것보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가를 아는 것에 가깝다. 이 해석은 매우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세상을 많이 아는 사람보다, 자신이 해야 할 일을 분명히 아는 사람이 더 단단해 보이기 때문이다. 지천명은 철학적 통찰이라기보다, 이제 더 이상 망설이지 않고 자기 몫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순간처럼 느껴진다. ● 2장 「天」에 대한 최종 인식 : 개인적 성찰 2장 「天」을 통해 드러나는 것은 ‘하늘’이라는 관념이 아니라, 인간의 삶을 지탱하는 윤리적 구조다. 하늘은 형이상학이 아니라, 인간의 태도를 통해 드러나는 윤리적 기준이다. 주자의 하늘은 내면을 단단하게 하고, 다산의 하늘은 행동을 긴장시키며, 다산이 강조한 ‘충서’는 그 모든 하늘 의식이 결국 사람 사이의 관계로 귀결됨을 보여준다. 지천명을 지나 이순을 목전에 둔 나이에 이 장을 읽으며, 공자의 말이 비로소 다른 울림으로 다가왔다. 이제 하늘의 이치를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사람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왔는가를 돌아보게 된다. 양심과 시선, 이치와 소명, 성찰과 실천의 문제는 모두 결국 인간관계 속에서 드러난다. 공자가 말한 하늘은 멀리 있지 않았다. 그것은 언제나 사람 사이에서 나를 시험하고 있었다. 하늘은 언제나 나의 말투에 있었고, 나의 선택에 있었고, 나의 태도에 있었다. 그래서 2장 「天」은 하늘에 대한 철학이 아니라, 인간이 어떻게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으로 읽힌다. 나는 그동안 사람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왔는가. 공자는 제나라 경공이 정치를 묻자 이렇게 답했다. 齊景公問政於孔子。孔子對曰:君君,臣臣,父父,子子。 하늘의 이치를 설명하지 않았다. 대신, 사람의 자리를 말했다. 은하수의 가장 빛나는 별, 공자가 말한 ‘하늘을 의식하는 삶’은 결국 각자가 자기 자리에서 사람답게 사는 일로 나타나야 한다는 뜻이었다. 이 「天」에 대한 장을 덮는 순간, 비로소 깨닫게 된다. 공자가 말한 하늘은 머리로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기준이었다는 사실을. 하늘을 의식한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묻고 또 묻는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작가와책읽기님, 한형조 교수님이 이 글을 보셨다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요? 저 또한 작가와책읽기님의 글을 읽으며 몇 번 전율이 일었습니다. "이 책은 고전 해설서가 아니라, 고전을 통해 독자의 삶을 재배치하는 사유의 장이다"라는 말씀처럼, 작가와책읽기님은 텍스트를 읽는 것을 넘어 삶으로 체화하는 과정을 완벽하게 보여주시네요. 지천명의 해석을 '자기 몫의 책임을 받아들이는 순간'으로 읽어내신 부분은 많은 분에게 큰 위로와 용기가 될 것 같습니다. 머리가 아닌 삶으로 읽어낸 공자의 하늘, 그 귀한 깨달음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우리 모임의 깊이가 한 뼘 더 깊어졌습니다. 작가와책읽기님의 댓글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논어 해설서' 같아서, 저도 모르게 옷깃을 여미고 읽게 됩니다.
과분한 말씀에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저 책이 좋아 따라 읽었을 뿐인데, 이렇게 따뜻하게 대해 주셔서 오히려 제가 더 큰 용기를 얻습니다. 『두 개의 논어』가 얼마나 깊은 사유의 장인지, 편집장님의 말씀을 통해 다시 느끼게 됩니다. 저는 텍스트를 따라갔을 뿐인데, 그 길을 이렇게 의미 있게 받아 주셔서 감사할 따름입니다. 함께 읽는 이 모임 덕분에, 고전이 책 속에 머무르지 않고 삶의 자리로 실천하는 경험을 하고 있습니다. 좋은 책과, 좋은 독자들과, 좋은 질문을 열어 주신 김영사와 편집장님께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감사의 인사를 정중히 올립니다.
작가와책읽기님, 남겨주신 '세상에서 가장 다정한 감사'를 받고 나니, 제가 편집자로서 걸어온 시간이 헛되지 않았음을 느낍니다. 아무리 좋은 책도 읽어주는 독자가 없다면 그저 종이 묶음에 불과하겠지요. 이 책이 '깊은 사유의 장'이 될 수 있었던 건, 텍스트를 삶으로 가져와 실천해주신 작가와책읽기님 같은 독자님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저야말로 이 귀한 여정을 함께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편집장님, 훌륭한 책을 만들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 또 다른 신간이 출시되면 다시 시절인연이 닿기를 마땅히 소원합니다.
책과 독자가 만나는 일도, 이렇게 우리가 모임에서 마음을 나누는 일도 모두 귀한 인연이 닿아야 가능한 일이겠지요. 작가와책읽기님과의 시절인연이 이번 책에서 멈추지 않고, 다음 책, 그다음 책으로도 이어지기를 저 또한 간절히 바랍니다.
'공자가 말한 하늘은 머리로 이해하는 대상이 아니라, 삶으로 드러나는 기준이었다는 사실을. 하늘을 의식한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에게 어떤 사람이었는지를 묻고 또 묻는 일이라는 것' 하나뿐인 하루를 어떤 소명으로 살아가야 할지..묻고 또 묻는 소중한 기회에 오늘도 감사합니다~♡♡♡
분주하고 지친 하루에 맞는 시원한 냉수 같은 구절입니다.
당대의 공자는 天의 의미에서 '상제'를 배제하지는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당시는 수많은 나라들이 갈라져 싸우고 전쟁이 잦았던 시기잖아요. 그렇게 목숨이 위태로운 난세에 자신이 길이 옳다는 의지를 견지하고 당당히 외치기 위해선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만으로는 부족했을 것 같아요. 하늘이 알고 인정해줄 것이라는 감각이 필요했으리라 생각합니다. 天에 되도록 특정한 인격을 부여하지 않으려고 한 뜻은 비치지만 내면의 양심으로 한정하지는 않았다고 봅니다. 반면 송대에는 내면을 더 강조해도 되는 시대였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남송이 금과 대치하고 있었다고는 하나 춘추전국시대처럼 중국 내에서 계속 전쟁이 있었던 건 아니니까요. 그런 시대적 상황이 天을 상제보다는 내면의 양심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강화했다고 생각합니다. 즉, 저는 시대적 요청에 의해 유학적 개념의 뉘앙스가 달라진 게 아닐까 하는 의견이네요.
다니엘님, 정말 명쾌한 해석입니다! 유학의 개념이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시대와 호흡하며 진화해왔다'는 점을 정확히 짚어주셨네요. 전쟁터 같은 난세에는 '지켜보는 하늘'이 필요했고, 사유가 깊어진 송대에는 '내면의 하늘'이 필요했다는 다니엘님의 정리는 天의 난해함을 단번에 해결해주는 열쇠 같습니다. 그렇다면 전쟁 같은 경쟁 사회를 사는 지금의 우리에게는 다시금 다산의 '인격적 하늘'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드네요. 귀한 의견 감사합니다!
저도 學의 매력에 무릎을 치며 감탄,감동,감사,감격의 4감을 느끼고 있어요~♡ 질문의 답은..읽을수록 주자의 시선과 의견에 마음이 기우는것을 느끼는 중이긴한데..1번 질문은 완전 주자의 시선(내면의 양심)이 더 중요한 것 같고,2번은 주자의 흔들림 없는 자세로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다산의 소명 실행을 위해 習(새의 날개짓)을 멈추지 않아야..하지 않을까로..정리해보며~남은 學이 줄어드는게 아까워 아껴 읽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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