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님 말씀대로 2부도 훌륭했지만, 3부는 정말 기대 이상으로 좋네요(아직 다 읽지는 못했지만요!). 學이라는 글자 하나에 이토록 풍부한 의미가 담길 수 있다니 놀랍습니다. 특히, '學이란 차근차근의 점진적 걸음이다'라는 문장이 책을 시작한 저에게 큰 울림을 주었어요. 편집자님과의 여정이 끝난 후에도 혼자서 차근차근 완독해 보려 합니다. 올해 안에 꼭 다 읽을게요!
[벽돌책 독파] 주자와 다산의 대결 <두 개의 논어> 편집자와 함께 읽기
D-29
리버풀

김영사
@리버풀 님, 3부에서 '學'의 깊이를 발견하셨다니 편집자로서 정말 기쁩니다! 저도 '차근차근의 점진적 걸음'이라는 그 표현이 참 좋았습니다. 책에서도 나오지만, 공자조차 자신은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천재'가 아니라, '옛것을 좋아해 부지런히 배우는 노력파'라고 했었죠. 우리라고 서두를 필요가 있을까요? 리버풀님의 '점진적 걸음'을 저도 멀리서나마 끝까지 응원하겠습니다. 올해 안에 완독, 꼭 해내실 거예요!
루나보름
저도 응원하겠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 가다 보면 목적지에 도달해 있을 겁니다.

신나는아름쌤
안회편으로 접어들었는데 3주 미션을 먼저 해야겠네요~^^;; 부지런히 따라가보겠습니다~♡♡ 읽을수록 흥미진진입니다~♡


김영사
@신나는아름쌤 님, 이번 주도 등판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책 분량이 많아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지요? 꼭 3주 미션을 따라가지 않으셔도 됩니다. 계속해서 즐기면서 읽어주세요~! 흥미진진하다는 말씀이 언제나 저를 춤추게 합니다. 감사합니다.
루나보름
오랜만에 색연필을 들고 싶게 만드는 멋진 노트입니다.

김영사
@모임 <두 개의 논어>를 함께 읽는 모든 분들, 이 책이 벽돌책이라 진도 나가기가 쉽지 않지요? 주차 활동에 참여해주시면 더 좋지만, 진도 때문에 참여하기 힘드시다면, 현재까지 읽은 내용에 대한 감상평도 좋습니다. 문장수집도 좋고요. 3주차가 되면서 모임 참여가 저조해져서 모임지기로서 지금까지의 활동을 되돌아보게 됩니다. 혹시 질문이 너무 어렵다면 그에 대한 피드백도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최대한 반영하여 질문을 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우주먼지밍
아아아 ㅠ_ㅠ 네넵
먼저 활동이 저조해서 무척 송구스럽습니다
책을 열심히 읽고 있어요!
이 대작, 역작을 읽을 수 있는 귀한 기회를 정말정말 감사히 여기고 있답니다…
활동이 저조한 이유, 즉 변명을 늘어놓아 보자면 ㅠ_ㅠ
매주 한편 매주 질문들에 대한 제 나름의 답을 달아보려고 하다가 쉽지가 않아서 주저주저 하다가.. 이렇게 되어버렸어요 흑..
질문에 대한 답을 썼다가 지웠다가 꽤 반복했어요. ㅠㅠ
모임이 끝나기 전까지 어떻게든 하나씩 답을 할 예정입니다!!!
편집자님 죄송합니다 ㅠ_ㅠ
먼저, 그래도 지금까지 느낌을 조금 언급해보자면!!
먼저 저는 주자의 해석보다는 다산의 해석에 거의 대부분의 밑줄을 긋고 있습니다.
저는 꽤 큰 규모의 관료제 특징을 보이는 곳에서 꽤 오래 일하고 있는데요~그래서 다산의 <논어> 해석에 관한 한형조 교수님의 설명을 읽고 있노라면..구구절절 이해가 됩니다.
저는 동양의 경전에 대한 앎이 거의 없는 일자무식 상태인 독자로서 이 책을 읽게 되었어요. 그래서인지 제일 처음 만났던 ‘아하!’ 모먼트는 바로 경학, 즉 고전 해석이란 변화의 비판의 도구로 쓰였다는 부분입니다.
제가 속한 조직에서도 어떤 업무를 추진함에 있어, 그것이 아무리 사안이라 할지라도 모든 시작은 그간의 추진 경과 조사, 배경 및 맥락, 이전 사례 검토 거든요~
유교의 세상에서 고전의 ‘새로운’해석이 사회 전체에 심각한 파장을 일으켰기에, 그렇게 우리 조상들..이 경전 해석을 놓고 피튀기며 싸웠구나…보다 깊게 이해가 됩니다!
최고의 정치학자, 다산! 제가 지금 이 책을 읽어가면서 가장 재미있는 부분입니다

김영사
@우주먼지밍 님, 죄송해하실 필요 전~혀 없습니다! 썼다 지웠다 반복하셨다는 그 말씀에서, 책을 얼마나 진지하고 깊이 있게 대하고 계신지가 느껴져서 오히려 제가 더 감사합니다.
특히 대규모 관료제 조직에 몸담고 계신다는 점은 이 책을 읽는 데 있어 엄청난 무기가 될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다산은 '철두철미한 관료적 자의식'을 가진 인물로 묘사됩니다. 주자가 고고한 철학자였다면, 다산은 현장에서 보고서 쓰고 결재받으며 치열하게 고민했던 '행정가'라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업무 추진할 때 '이전 사례 검토'가 필수인 것처럼, 우리 조상들이 왜 경전 해석을 두고 피 튀기며 싸웠는지 이해하게 되셨다는 말씀 에 이 책을 편집한 보람을 느낍니다! 우주먼지밍님이야말로 다산의 마음을 가장 잘 알아주는 '지기(知己)'가 아닐까 싶네요. 남은 기간, 부담 갖지 마시고 천천히 한 걸음씩만 와주세요. 응원합니다!

우주먼지밍
아..편집자님 정말정말 댓글 감사합니다 ㅠ_ㅠ
이 책을 읽어가면서 감탄을 연속하였습니다.
이 대작을 저술하신 고 한형조 교수님에 대한 존경심,
제자님이 이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가슴 뭉클한 상황,
무려 책의 편집자님이 이끌고 계신 수준 높은(!!!) 독서 모임에 참여하고 있다는 것 등이 복합적으로 얽혀 들어오면서,,,
댓글을 달고 있는 제 자신을 계속 의식하게 되었어요.
(…아무도 절 신경 안쓰는 걸 알지만요..)
그믐 북클럽에서는 항상 그 무언가를 의식하게 됩니다 .아무말 대잔치를 잘 못하게 되어요. ㅠㅠ 평소 쓰는 독후감에는 아무말 대잔치 정말 잘하는데 말이에요.
돌이켜보니 책이라는 존재, 책이라는 그 광할한 우주, 책 한 권이 만들어지기 까지 관여하는 무수히 많은 인연의 고리 등에 대한 ‘경외심’에서 비롯되었는 걸 알게 되었어요.
그러나 편집자님을 기운나게 만들어 드리기 위해서, 또 이 귀한 책을 읽을 기회를 받았다는 것에 대한 보답을 위해선… 수준 떨어지는 답이라도.. 무엇이라도 댓글을 달아야 함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편집자님 댓글 정말로 감사합니다.
저같은 평범한 독자는 이런 댓글 하나하나가 정말로 귀하고 감사합니다. :)

김영사
우주먼지밍님, 편집자로 일하면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 책의 무 게와 가치를 온마음으로 느껴주시는 독자분을 만날 때입니다. 제 댓글이 귀하고 감사하다고 하셨지만, 우주먼지밍님이 보여주신 정성에 비하면 아주 작은 메아리에 불과합니다. 책을 향한 그 '떨림'을 고백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제 눈에는 우주먼지밍님의 솔직한 고백이 그 어떤 학술적 분석보다 빛나 보입니다. 부담감은 조금 내려놓으시고, 편안하게 목소리를 들려주세요. 그 목소리가 저를, 그리고 우리 모임을 춤추게 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다니엘
3주차 2. '위기지학(爲己之學)' : 나를 위한 공부란?
공자가 말한 나를 위한 공부는 '자발적인 공부'를 가리킨다고 생각합니다. 즉, 알고 익히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누릴 줄 알아야지 공부를 출세나 돈벌이를 위한 수단으로만 여겨선 안 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공부가 개인의 내적 만족으로 끝나는 것만을 지향했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다산이 설파해듯 공자의 지향은 결국 나라와 백성을 평안케 하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공부하는 자세와 공부의 목적을 구분해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공부하는 자세는 '나의 기쁨과 발전'에 초점이 있어야 하지만 배우고 익힌 것의 쓰임은 세상을 위해서. 조금 타협적으로 보이지만 그래서 전 주자나 다산이나 다 어느 정도 맞는 애길 한 게 아닌가 싶네요.

김영사
다니엘님, '알고 익히는 것 자체에서 기쁨을 누릴 줄 알아야 한다'는 말씀, 정말 공감합니다. 억지로 하는 공부가 아니라, 내 안의 호기심과 성장을 위해 하는 '자발적인 공부'야말로 공자님이 말씀하신 '위기지학'의 참뜻이 아닐까 합니다. 그렇게 채워진 내면의 힘이 결국엔 흘러넘쳐서 타인과 세상을 이롭게 한다는 말씀이 참 따뜻하게 다가옵니다. 다산의 실용성도 좋지만, 가끔은 주자처럼 아무 목적 없이 책 읽는 즐거움 그 자체에 빠져보는 것도 필요한 것 같습니다!

작가와책읽기
📘 『두 개의 논어』에 대한 비평적 독해 : ‘學’과 삶의 장(場)
— 작가와책읽기 | 신춘문예 등단 문학평론가
『두 개의 논어』(한형조, 김영사, 2025)는 단순한 고전 해설서가 아니다. 이 책은 고전을 다시 읽는 방법을 해설하는 메타 텍스트이며, 동시에 텍스트 자체가 다시 사유의 장(場)으로 작동하도록 설계된 현대적 독서 실험이다. 공자 이후 2,500년에 걸쳐 축적된 해석의 전통이 주자와 다산이라는 두 거장의 대립적 독법을 통해 압축되고, 그 긴장이 다시 오늘의 독자에게 사유의 에너지를 전이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고전을 “닫힌 권위”가 아니라 “열린 운동장”으로 복원한다.
특히 3부 1장 「學」은 『논어』의 첫 문장을 다루는 장이면서, 동시에 이 책 전체의 철학적 토대를 형성하는 핵심부다. 이 장에서 ‘學’은 더 이상 시험 대비나 교양 축적의 문제가 아니라, 어떤 존재로 살아갈 것인가를 설계하는 삶의 기술로 재정의된다.
1. 주자와 다산: ‘學’에 대한 두 개의 방향
주자에게 배움은 잃어버린 본성을 회복하는 내면 정화의 과정이다. 인간은 본래 선하지만 기질과 욕망이 이를 흐린다. 독서, 성찰, 경건한 자기 점검은 마음을 맑게 하여 본래의 도덕적 질서를 회복하게 한다. 주자의 ‘學’은 윤리적 복원 프로젝트이며, 인간 내면의 투명성을 회복하려는 긴 수양의 여정이다.
반면 다산에게 배움은 사회 속에서 작동하는 실천 기술이다. 효도, 공경, 직무 수행, 행정 능력, 재정 운영, 정치 판단은 모두 학습의 대상이다. 다산의 ‘學’은 인간을 제도적 책임 주체로 성장시키는 훈련이며, 윤리는 현실 운영 능력과 분리되지 않는다. 학문은 곧 사회를 작동시키는 기술이다.
주자의 학문이 ‘내면의 정합성’을 향한다면, 다산의 학문은 ‘현실의 작동성’을 향한다. 한쪽은 인간의 도덕적 깊이를, 다른 한쪽은 사회의 구조적 안정성을 지향한다.
2. 한형조의 개입: ‘學’을 존재의 장치로 읽다
한형조는 이 두 해석을 단순히 병렬 비교하지 않는다. 그는 ‘學’을 하나의 존재 형성 장치(anthropotechnics)로 읽는다. 인간은 태어날 때 완성된 존재가 아니라, 텍스트를 읽고, 관습을 해석하고, 제도를 통과하며 끊임없이 자기 자신을 재구성한다. 고전 독해는 과거의 권위를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현재의 자기 존재를 재설계하는 실천이다. 여기서 ‘學’은 더 이상 지식 축적이 아니라, 자기 형성의 기술, 곧 삶을 편집하는 기술이 된다.
3. 동서 비교 1차 축: Plato – Aristotle – Michel Foucault
『두 개의 논어』 1장 「學」의 구조는 동서양을 관통하는 인간 학습 모델의 보편 구조와 겹친다.
① 내면 정화 (Plato / 주자): 플라톤에게 배움은 영혼이 이데아를 회상하는 과정이며, 주자에게 학문은 본래의 도덕 본성을 복원하는 수행이다. 둘 모두 진리는 외부가 아니라 인간 내면에 잠재되어 있다.
② 실천 기술 (Aristotle / 다산): 아리스토텔레스는 덕을 습관화된 행위로 이해했고, 다산 역시 윤리를 사회적 기능과 분리하지 않는다. 배움은 삶의 기술이며, 정치·경제·윤리는 실천 속에서 형성된다.
③ 존재 설계 (Foucault / 한형조): 푸코는 주체가 권력·담론·훈련 장치 속에서 구성된다고 보았고, 한형조 역시 고전 독해를 존재 재구성의 장으로 읽는다. 인간은 스스로를 만드는 존재다.
4. 계보 확장: 사유의 계열들
이러한 삼각 연결 구조는 서양 사상사에서도 반복된다.
① 주자형 계열: 아우구스티누스(내면 성찰), 플로티노스(영혼 상승)
② 다산형 계열: 존 듀이(경험·실천 교육), 한나 아렌트(행위의 공적성)
③ 한형조형 계열: 피에르 아도(철학=삶의 훈련), 후기 하이데거(존재의 실천), 니체(자기 형성)
‘學’은 단지 지식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이 자신을 어떤 존재로 만들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임이 분명해진다.
5. 생몰 연대를 고려한 6면 비교 렌즈
① 주자(1130–1200) ↔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 : 둘 다 정전·주석·교육체계를 통해 학문을 표준화했다. 지식은 질서이며, 윤리는 체계 속에서 안정된다. 학문은 사회의 규범 인프라다.
② 다산(1762–1836) ↔ 제러미 벤담(1748–1832) : 둘 다 제도 설계자형 지식인이다. 추상적 도덕보다 행정, 법, 정책, 효과가 중요하다. 학문은 사회를 개선하는 도구다.
③ 한형조(1958–2024) ↔ 베르나르 스티글레르(1952–2020) : 둘 다 현대 문명의 위기(기술·사회·기억)를 고전/인문 재해석으로 대응한 철학자다. 이들에게 학문은 존재를 지키는 전략이다.
이러한 6면적 사고의 3각 연결 비교는 『두 개의 논어』 1장 「學」이 단지 동양 사상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 보편의 학습 구조를 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6. 결론 : '學'은 인간을 설계하는 기술이다 — 공자로 돌아가다
공자는 『논어』의 첫 문장을 이렇게 시작한다.
「學而時習之 不亦說乎」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이 문장은 흔히 ‘공부의 즐거움’을 말하는 격언처럼 소비되어 왔다. 그러나 『두 개의 논어』가 주자와 다산의 긴장된 해석을 통해 복원하는 것은, 이 문장이 단순한 학습 윤리가 아니라 인간 형성의 구조 선언이라는 점이다. ‘學’은 지식을 축적하는 행위가 아니라, 반복되는 실천(習)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다시 빚어가는 과정이다. 여기서 기쁨(說)은 성취의 감정이 아니라, 존재가 제자리를 찾아가는 안정감에 가깝다.
공자는 또 이렇게 말한다.
「吾十有五而志于學」 나는 열다섯에 학문에 뜻을 두었다.
‘志’는 목표가 아니라 방향이다. 공자에게 학문은 직업 준비도, 시험 준비도 아닌, 인생 전체의 궤도를 설정하는 최초의 결단이었다. 배우는 행위는 곧 살아가는 방식의 선택이며, 인간이 어떤 존재로 형성될 것인가를 스스로 결정하는 윤리적 약속이었다.
그리고 공자는 학습의 균형을 이렇게 경고한다.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배우기만 하고 생각하지 않으면 어둡고, 생각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여기서 공자는 지식과 사유, 실천과 성찰, 경험과 원리 사이의 순환 구조를 이미 제시한다. 이는 주자의 내면 수양과 다산의 실천 기술이 충돌하면서도 결국 하나의 구조로 수렴하는 지점이며, ‘下學而上達’이라는 공자의 학문 모델이 단선이 아니라 왕복 운동임을 보여준다.
마지막으로 공자는 이렇게 자신의 삶을 회고한다.
「下學而上達 知我者其天乎」 나는 아래에서 배우고 위에 이르렀다. 나를 알아주는 것은 하늘뿐이로다.
‘아래에서 배운다’는 것은 일상의 삶, 인간관계, 실패, 책임, 노동, 정치, 갈등 속에서 학습한다는 뜻이다. ‘위에 이른다’는 것은 추상적 이념이 아니라, 삶 전체가 하나의 의미 체계로 통합되는 경지다. 공자의 학문은 관념적 상승이 아니라, 삶을 통과한 존재적 상승이다.
이 네 문장을 종합하면, 공자가 말한 ‘學’은 다음과 같이 정의될 수 있다.
" 學이란 인간이 자기 삶을 반복적으로 훈련하여, 자기 자신을 책임질 수 있는 존재로 형성해 가는 기술이다."
주자의 학문은 이 기술을 내면 윤리의 정련 장치로 정교화했고, 다산의 학문은 이를 사회 운영의 실천 기술로 확장했으며, 한형조의 독해는 이를 현대적 존재 설계의 사유 장치로 다시 열어 놓는다.
그러나 그 모든 해석의 출발점과 귀착점은 결국 공자다. 공자에게 배움은 지식을 소유하는 일이 아니라, 자기 삶을 감당할 수 있는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이다. 우리는 더 많이 아는 존재가 아니라, 더 깊이 책임지는 존재가 되기 위해 배운다.
『두 개의 논어』 1장 「學」이 오늘의 독자에게 던지는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바로 이것이다.
"배움은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존재의 형성이다. 공부는 성적이 아니라, 삶의 구조를 만드는 일이다. 그리고 학습의 최종 성과는 성공이 아니라, 자기 삶을 스스로 떠받칠 수 있는 인간이 되는 것이다."
공자가 말한 ‘學’은 지금도 끝나지 않았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가, 다시 어떤 인간이 될 것인지를 묻는 가장 오래되고도 가장 급진적인 질문이기 때문이다. 아아,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이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신나는아름쌤
아후 늘 방대하고 폭 넓게 사유할 수 있도록 이끌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영사
@작가와책읽기 님의 글은 서평을 넘어선 하나의 철학 에세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동양의 고전을 서양의 현대 철학과 가로세로로 엮어내는 지적 사유의 깊이가 엄청나네요.
특히 '學은 정보의 축적이 아니라 존재의 형성'이라는 통찰은 마음에 새길 만한 명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두 개의 논어>를 단순히 주자와 다산의 대결로만 보지 않고, 플라톤-아리스토텔레스-푸코로 이어지는 서양 철학의 계보와 연결하여 '인간 학습의 보편 구조'로 확장하신 시각에 감탄했습니다.
특히 한형조 교수님과 베르나르 스티글레르를 연결하여 '현대 문명의 위기에 대응하는 전략으로서의 학문'을 도출해내신 부분은, 한형조 교수님이 살아서 보셨다면 무척 흐뭇해하셨을 같습니다.
이 책이 고전을 '닫힌 권위'가 아니라 '열린 운동장'으로 복원한다는 말씀처럼, 작가와책읽기님 덕분에 이 모임이 단순한 독서 모임을 넘어 거대한 지적 사유의 장이 된 것 같습니다.
귀한 글 나눠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신나는아름쌤
"어떤 존재로 만들 것인가라는 존재론적 질문임이 분명해진다." 다시 정독합니다~♡♡ 푸코의 구조주의까지 동서양을 아우르는 탁월한 비교로 더 깊어지게 해주셔서 다시금 감사드려요~♡♡♡


작가와책읽기
아름쌤님, 다정한 관심과 응원의 댓글 감사합니다 , 고맙습니다. 덕분에 더욱 신나는 시간이 되었어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 하세요.

신나는아름쌤
오늘도 짧은 독서 후 출근^^;
조삭비야를 새기며~삭비문으로 아가들 이끄는 피리부는 아름쌤 노리하러 다녀오겠습니다~^^/ 윗글들 정독 후 미션답도 주말까지 완성해보겠습니다~♡♡


김영사
출근 전 틈새 독서라니, 정말 존경스럽습니다! '피리 부는 아름쌤'이라니 상상만 해도 아이들이 졸졸 따르는 행복한 풍경이 그려지네요.ㅎㅎ 아이들에게 즐거운 에너지 듬뿍 전해주고 오세요. 주말에 남겨주실 미션 답변도 아름쌤님만의 생생한 이야기로 채워질 것 같아 벌써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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