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홉 외 차후, 우리들_예브게니 이바노비치, 거장과 마르가리타_미하일 불가코프를 읽습니다
겨울에 읽는 러시아 문학1
D-29
돌단모임지기의 말
돌단
안녕하세요^^모임지기입니다.
이 책에는 단편들이 수록돼 있는데 표제로 되어 있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부인」부터 나눠 볼까 해요.
돌단
로맨스의 탈을 쓴 성장소설
요약
안나는 남편과의 관계에 대해 염증을 느끼고 구로프는 여성과 인생 전반에 질서가 없고 다소 염세적으로 각각 지내다, 휴양지에서 만나게 된다. 자기 부인이 아닌, 안나라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평소 습관대로 꾀고 나서야 다른 면모의 여성인 안나를 통해, 자기를 들여다 보는 실존적 어둠을 통과하는 과정을 겪는다. 다시 만날 수 없다 여기고 휴양지에서 헤어진 후 현실에 돌아와 자신이 속한 삶이 가식적이라고 느낀다. 재회하지만 숨어서 만날 수밖에 없는 자신들을 보고 구로프는 괴로워 한다.
혹시 채팅에 주저하신다면.... 다음 질문을 드려봅니다.(ㅎㅎ정답은 없습니다)
견딜 수 없는 굴레에 빠진 적이 있으신가요?
내가 진실하게 되는 순간을 최근 언제 맞이하셨는지요?
일상을 공감하며 마음을 토로하게 되는 대상은 과연 누구였나요?
돌단
남자 구로프는 아내를 ‘저급한 인종’이라 부르며 사이가 좋지 않다. 다른 여자와도 바람을 심심치 않게 피운다. 젊은 남자의 정염에 대하여 쓴 글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설레게 하는 정염에 대하여, 그리고 소설 이후의 처신에 관하여는 독자로서도 조심스럽다. 소설에서 이후의 서사가 그려져 있지 않다. 구로프 스스로 자기에게 도움이 되는 방향을 찾지만 현실은 바뀌지 않고 소설이 맺는다.
자신에게 두 개의 생활이 있다고, 안나를 만나러 가며 생각한다. 하나는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볼 수 있는 공개된, 상대적 진실과 상대적 거짓으로 가득 찬 주위 사람들과 닮은 생활’이다. 또 하나는 ‘은밀하게 흘러가는 생활이다. 우연히 이상하게 얽힌 어떤 사정에 의해 그에게 소중하고 흥미로우며 반드시 있어야 하는 것, 그 속에서라면 그가 진실하고 또 자신을 속이지 않아도 되는, 그의 생활의 핵심을 차지하는 그런 모든 것은 다른 사람에게 알려질 수 없다.’(마지막에서 세 번째 페이지)라고 쓴다.(과연 알려지는 게 불가능할까? 나라면 ‘다른 사람에게 알려지기도 한다’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 둘 사이에 희망이 있다면, 진실을 진실로 대할 수 있는 가능성을 가졌다는 것이다 머리가 세어지고 나서야 ‘예전에 그는 슬플 때면, 머리에 떠오르는 온갖 논리로 자신을 위로했다. 하지만 이제는 논리를 따지지 않고 깊이 공감한다. 진실하고 솔직하고 싶을 따름이다’(마지막 페이지)라고 되내인다.
관계의 책읽기
이 소설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실제의 삶에 가식을 느끼고 로맨스 또는 불륜을 통해 새로운 삶에 희망을 가지지만, 인물들이 처해 있는 현실, 즉 그들 삶의 사실이 아직 변하지 않은 점이다. 어떤 희망을 갖는 상황이 절망적이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러나 냉정하게 바라보면, 구로프 자신에게 다른 여자들보다 좀 더 친절하고 사려깊었던 한 여자를 만난 게 전부이지 않은가. 구로프는 안나가 없이도 잘 살 수 있는 부류로 보인다(그는 언제나 여자들에게 본래 모습으로 보이지 않았다 여자들은...마지막 페이지).
‘어찌 그들의 생활이 파괴되지 않았다고 할 수 있겠는가?’(마지막에서 두 번째 페이지) 자신의 삶의 사실 속에서 자꾸 거짓을 보게 되고, 숨어서 진행되는 둘의 만남. 그런데 이미 안나를 만나기 이전부터 파괴된 각자였다. 보기 싫을 것들을 계속 거부할 수 있을까. 그동안 그들이 그저 남들이 보기에 잘 살고 있었을 뿐, 스스로는 삶에 대한 고민이나 반성도 없이 그저 건강하고 부유하게 잘 살고 있었던 것은 아닌가.
나 자신과의 관계혁명이란, 소설에서처럼 나와 상대의 감정을 직면하고 받아들일 때 시작된다. 바로 자신의 감정과 화해하는 일이다. 영상 3도의 ‘눈이 내리는 사실’을 통해, 상층부의 영하에서 눈이 만들어지는 걸 안다. 안나를 통해 알게 된 나의 현실(역, 안나의 경우도 마찬가지)과 ‘견딜 수 없는 굴레’(마지막에서 네 번째 문장), ‘이제야 겨우 아주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 시작됐다(마지막 문장)’에 속한 지상의 사실을 하나로 인정하고, 현실의 진실로 만드는 힘이 필요하다, 즉 내 모습은 과거와 현재의 통합된 현실로 드러나는 일이기도 하기에 말이다. 나아가 나 또는 개인의 사명과도 연관이 있다.
돌단
영하3도의 현실이 또한 지상 영상3도에서 드러날 때(눈), 이를 함께 감당할 뿐만 아니라 누릴 수 있다고 여겨지는 이는 누구인 가? 그러한 경험이 있다면 말해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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