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외계 문명권으로부터의 지구 방문이 단 한 건도 없었다고 믿기에는 지구의 나이 45억 년은 너무 길다. 과거 어느 때엔가 먼 외계의 문명권의 이상하게 생긴 비행체가 태양계로 와서 지구의 상공에 높이 떠 정찰하다가 지상으로 천천히 내려앉는 모습을 머릿속에 그리다 보면, 문득 당시 지구에 누가 살고 있었을까 궁금해진다. ”
『코스모스』 p.581~582,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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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les
“ 우리의 은하수 은하에만 물경 3000억 내지 5000억 개의 별들이 있다고 하는데, 지적 생물이 거주할 수 있는 행성을 거느린 별이 어찌 태양 하나뿐이라고 단언할 수 있겠는가? 기술 문명의 출연 역시 은하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일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은하는 기술 문명의 열기로 가득 찬 공간일지도 모른다. ”
『코스모스』 p.594~595,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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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les
범은하적 척도에서 볼 때 우리 지구 문명이야말로 가장 뒤쳐진 후진 문명일지 모른다.
『코스모스』 p.614,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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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les
그들과의 만남은 십중팔구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기 쉽다.
『코스모스』 p.621,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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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ircles
외계 문명의 실체를 알아낼 수 있다. 우리 은하에 외계 문명이 수없이 많으며, 그 하나하나마다 지구와는 깜짝 놀랄 정도로 다른 형태의 생물들이 살지도 모른다.
『코스모스』 p.626,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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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도
“ 별이란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은 아기의 웃음만큼이나 자연스러운 것이다. ~ 이 시대의 아주 특별한 점은 이 질문에 어느정도 그럴듯한 답을 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책과 도서관은 이러한 질문의 답이 무엇인지 밝혀 주는 수단이다. ”
『코스모스』 7장 P.331,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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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프레도
오랫동안 자연에 대한 종교의 피상적인 해석 자연을 이해하려는 인간의 본능을 가로막아 왔다.
『코스모스』 7장 P.342,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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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nry1318
코스모스 10장 '영원의 벼랑 끝'을 읽으며
빅뱅을 모르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물론 어린아이들이나 연세가 많은 사람들은 모를수도 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을 알거라고 믿는다. 요즘 빅뱅에 관하여 깊은 생각에 빠져있다. 이해를 못하는건지 내가 빅뱅에 대한 태클을 건건지는 모르겠지만 들어보면 납득이 갈만한 생각이다.
빅뱅이론이 무었인지 물어본다면 양성자들과 전자들이 서로 부비부비하다가 펑! 하고 터지며 우주가 팽창한다고 할것이다. 그렇다면 그 양성자와 중성자는 어디에서 온것일까? 그전에도 우주가 있었다가 수축했다고 하더라도 그럼 그 우주도 빅뱅이 있었다는 거니 재귀함수같은 구조가 된다. 그렇다면 처음부터 1번 빅뱅이 일어나기 위한 공간과 양성자와 전자가 필요하다. 그럼 그 공간과 양성자 전자의 기원은 무었이란 말인가? 이 내용의 답을 찾고 있는 천문학자가 있을까? 아니면 이생각은 내가 최초인걸까?
10장에서는 이 내가 잘 알지 못하던 전파망원경의 세계에 빠지게 해주었다. 황홀한 우주는 눈으로만 볼수있을줄 알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우주의 세계가 상당히 멋있을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쓰면서 든 생각인데 동물들이 보는 우주는 다르지않을까? 동물들은 인간이 보는 가시광선 영역 이상을 본다고 알고있다. 그렇다면 동물들에게는 우리는 전파망원경으로 보는 우주가 육안으로 볼수있지않을까? 어쩌면 외계인들은 가시광선보다 넓은 영역을 보며 우주선을 타고 우주를 여행할수 있지 않을까?
이오난사
혹시 기간이 끝나면 여기 있는 글은 모두 사라지나요....? 좋은 글들이 많아서 두고두고 보고 싶은데...방법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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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난사
지구와 지구인이 자연에서 그리 대단한 존재가 아니라는 통찰은 위로는 하늘에 떠 있는 별들의 보편성으로 확장됐고 옆으로는 인종 차별의 철폐로까지 이어졌다.
『코스모스』 380p,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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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이오난사님의 대화: 혹시 기간이 끝나면 여기 있는 글은 모두 사라지나요....? 좋은 글들이 많아서 두고두고 보고 싶은데...방법이 있을까요?
이번에는 12장을 읽었습니다. 12장은 11장에서 다룬 외계 문명에 대해서 더 자세하게 다루었습니다.
저자는 45억년 지구의 역사에 외계 생명체가 한번도 방문한적이 없는 것은 말이 안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고서는 이집트 상형 문자가 장 프랑시스 샹폴리옹에 의해 해독된 과정을 설명합니다. 과거 이집트 문자가 해독되기 전의 상황과 지금의 상황은 다를게 없습니다. 차이점을 굳이 찾는다면 메세지가 어떤 방식으로 다가오느냐에 밖에는 없습니다. 고대 이집트 문자를 해독할 때와 지금의 상황은 바로 고대 문명으로부터의 메세지를 찾는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외계 문명의 메세지를 찾고 있습니다. 외계 문명이 아주 멀리 떨어져 있으니 외계 문명의 메세지를 고대 문명의 메세지라고 할 수 있겠죠. 외계 문명의 메세지를 찾아내기 위해 과학자들은 저자가 책을 쓰던 당시부터 현재까지도 전파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집트 상형 문자는 이미 이름을 알고 있던 고대 이집트 인물들의 묘비석과 그리스어와 함께 상형 문자가 적혀있던 '로제타석'을 활용해서 해석할 수 있었다는데, 지금 우리에게는 과연 무엇이 로제타석의 역할을 해줄까요? 안타깝게도 지금껏 과학자들은 외계 문명의 신호를 단 한번도 찾아내지 못했다네요. 와우 시그널을 포함한 여러 외계 문명의 신호를 찾아낸 것처럼 보인 사건들이 모두 오해로 밝혀졌데요. 하루빨리 전세계의 수많은 전파망원경 중 하나에라도 외계 문명의 신호가 포착되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애초에 외계 문명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래서 등장한 것이 '드레이크 방정식', 외계 문명의 존재 가능성을 계산하는 식입니다. 이 식의 값은 은하수 속 별들의 총수에 행성이 있을 확률, 생명 탄생 확률, 지적 문명의 발생 가능성과 지속 기간 등의 여러 요소들을 곱해서 구할 수 있습니다. 저자의 계산을 따라간다면 현재 존재하는 외계 문명은 10~10^7개 정도입니다.
외계 문명이 정말 이 정도만큼 있다면 충분히 외계 문명을 찾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드레이크 방정식은 정확한 값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문제점으로 인해 현재는 그리 중요하게 쓰이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결국 외계 문명이 존재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군요. 만약 외계 문명이 있더라도 그 문명이 목성처럼 완전히 다른 환경에 있어 과학이 다른 방향으로 발달해 있어서, 외계 문명을 찾을 때 우리처럼 전파를 사용하지 않고 다른 방법으로 외계 문명을 찾고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럼 우리는 외계 문명이 있더라도 그들을 결코 찾아내지 못할 것 같습니다. 과연 외계 문명을 탐색하는 행동이 의미있는 것일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외계 문명의 탐색이야말로 실패해도 성공하는 사업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탐색에 실패한다더라도 생명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자는 우리가 분명 외계 문명의 신호를 찾아낼 수 있을거라고 확신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자는 신호가 소수의 형태일 것이고, 같은 문명이 보낸 것이라면 엇비슷한 모양일 것이라고 구체적으로 이야기합니다. 더 나아가 외계 문명이 아스텍 문명을 없애버린 스페인과 같은 행동을 하지는 않을지 진심으로 걱정하며 우리가 외계 문명에 구성원과 정보를 주고 받는 미래까지 상상합니다.
외계 문명의 발견에 대해서 아직 의심이 가기는 하지만 희망을 버리기에는 이른 듯 합니다. 아직 외계 문명을 찾으려고 시도한지 채 100년이 안되었으니까요. 이오니아 이후 다시 과학이 깨어나기까지 2000년이 걸린 것처럼 외계 문명을 찾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릴 것 같아요. 저도 저자처럼 먼 미래, 외계 문명을 찾고 그들과 교신하는 날을 상상해봅니다. 지구를 넘어서 우주로 나아가는 그 날, 인류에게는 어떤 세상이 펼쳐질지 궁금합니다.
말코손바닥사슴
생명의 기원과 진화는 별의 기원과 진화와 그 뿌리에서부터 서로 깊은 연관을 맺고 있다.
『코스모스』 9장 별들의 삶과 죽음, 458쪽, 칼 세이건 지음, 홍승수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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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코손바닥사슴
우주와돌고래님의 대화: 개인적으로 생각하건데, 이건 인생관을 통용하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더 나은 내일의 나를 꿈꾸는 사람이라면 흔히 열린 마음과 귀를 지니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앞으로 나아가기를 추구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 같다. 이 반대인 닫힌 귀로는, 우물 안의 개구리처럼 현재에 만족할테니 말이다.
@우주와돌고래
그러게 말입니다.
저 글귀를 보면 '과학하기'가 보편적 윤리에 가깝다는 생각마저 듭니다.
"우리는 어느 누가 근본적이고 혁신적인 사고를 할지 미리 알지 못하기 때문에 누구나 열린 마음으로 자기 검증을 철저히 해야 한다."
일가를 이룬 이들의 전문성은 당연히 존중해야 하고,
반지성주의는 지양해야 하지만
때때로 아마추어, 초심자가 혁신을 일으키고,
전문가는 편향이라는 늪에 빠지기도 하죠.
이러한 현실 조건 속에서 문제 해결에 진심이라면,
최대한 사심을 거두고 의견을 말하고 듣는 문화적 토대가
결국 '공익'이구나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