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독서 #3 <라스트 울프>

D-29
말하자면 잠을 깨자마자 즉시 모퉁이를 돌아가서, 거기에서 시작하여 거기서 끝을 내었다 - p. 10, 라스트 울프
왜냐면 어떻게 무엇이 그렇게 그를 무겁게 내리누르는지 묘사할 수 있겠는가, 생각하는 일을 그만둔 지도 아주 오래되었다고 어떻게 설명할까, 일의 형세가 설핏 처음으로 감이 잡혔던 그때 이후로, 그가 존재에 대해 지녔던 지각은 뭐든 그저 존재의 이해할 수 없는 허무함을 상기시키는 지각이며, 그 자체로 세상 종말의 시간까지 무한정 반복된다는 것을 이해했다고 설명하나, 아니, 이는 우연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범한 힘이, 지치지 않고 득의만면한, 정복될 수 없는 힘이 작동하여 문제들을 넣거나 무효화시키지도 않으며 다만 오히려 어둑한, 악마 같은 의도가 개입되듯, 무언가가 일들의 핵심 속에 깊이 박혀 있어, 일들 사이를 엮고 있는 관계의 편제 속에, 그들의 의도라는 악취가 원자 하나하나에까지 배어들었다, 이는 저주였다, 지옥살이의 한 형태, 세상은 멸시감의 산물이라, 생각하기 시작하는 이의 뇌를 두드려대었다, 그리하여 그가 더 오래 생각할수록, 더 이상 생각하지 말자고 깨우치게 된 것이었다. 이것이 어딘가로 이어지는 것도 물론 아니다, 그가 어디를 보거나 그가 어느 방향으로 돌아서거나, 모조리 스며든 악취가, 거기 악취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최종적인 판단 역시, 세상과 동연同延하여, 목적으로 충만하며, 허무함과 멸시감을 담고 있었고, 사상가로 출발했던 사람은 삶의 매분 매초에 허무함과 멸시감을 영원토록, 의식하고 있어야 하였다, 반대로 생각을 다 접고 단순히 사물들을 바라만 보려 해도, 생각은 새로운 형태로 돌연히 나타나니, 다른 말로,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든지 혹은 생각을 하지 않든지 달아날 길은 없었다, 왜냐면 그는 어느 쪽이든 생각의 포로로 남아 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악취가 그의 코를 후벼 파 죽을 맛인데, 그러니 사건들은 단순히 그들의 자연스러운 경과를 따르는 거려니 하고 자신을 달래는 길 외에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 p.30~31, 라스트 울프
그냥 두려워진 것이다, 그 사람이 나중에 한 말을 보면, 늑대가 거기 있을 때 가장 절실히 두려운 게 아니라, 아직 도달하기 전의 시간이 두렵다고, 늑대들이 내려와 도착할 조용한 사잇길 외에 아무것도 안 보일 때가 두렵다고 했다, - p.62, 라스트 울프
그리고 진짜 겨울이 닥치고 성탄절이 다가오자 그는 마침내 그의 삶을, 아주 깊디깊은 무지 속에 푹 잠겨, 쥐락펴락 남들 휘두르는 대로 마냥 복종하고, 살아왔구나, 신성한 섭리의 질서를 따르고 있다고, 그렇게 세상이 해로운 세상과 유익한 세상으로 나뉜다고 굳게 믿으며 살았구나, 알아차렸다. 하지만 실제 양쪽 카테고리가 다 똑같이 극악무도하고 무자비한 참학慘虐에서 기원한 것을, 둘 다 깊은 곳에 지옥의 빛이 도사린 것을, 꼭 그처럼 얼마지 않아 그는 인간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부서지기 쉬운 평화도 아니고, '심장이 내리는 진정한 분부'도 아님을 저릿하게 깨달았다. 왜냐면 그 모든 것은 그저 저 아래 온통 꿈틀대는 '핏빛 혼돈에 뒤엉킨 대중'을 가리는 투명한 막에 지나지 않았다. 그렇게 떨어진 사람에게 확 피어오르는 연민이 휩쓸고 지났다. 똑같이 이 연민에 이제껏 자신을 법의 폭압에 족쇄처럼 채우던 충의에 대해 반발심이 일었다. 그는 이제 인간의 계산을 넘는 더 높은 법칙이 있어야만 한다고 믿었기 때문에, 아마 그가 영원히 혼자 남아 있을 수밖에 없을 경계를 넘어서 버렸다. - p. 95, 헤르먼.. 사냥터 관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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