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그냥 확 짧고 굵게 때리는 첫번째 만남의 빨강 스웨터 남자가 디개 인간적으로 보이던 순간이었어요.. 이렇게 지겹도록 죽음을 향해 질질 고통을 끌고 가는 이런 고문을 하느니..
예전에 무서운 상사보다 무능력한 상사가 더 싫다는 말이 여기서 생각나더라구요.
[소설로 기후위기/인류세 읽기] 『야성의 부름』 잭 런던, 1903.
D-29

borumis

향팔
휴.. 빨강 쉐타남도 소금물 우편팀도 전부 선녀로 만들어버리는 쌩양아치 패밀리의 위력..

모시모시
개념없는 패밀리들의 행동에 진저리치고 있을 즈음이라 저는 그들이 땅 속으로 사라져버렸을 때 아주 통쾌했습니다. (죄없이 같이 빠져죽은 개들 너무 불쌍해요..)

르구인
칠쿠트와 화이트패스가 조금 헷갈려서 찾아봤습니다. 둘 다 스캐그웨이 바로 위쪽이고, 미국 영토에서 캐나다 영토로 넘어가서 만나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지도 참조 : https://maps.app.goo.gl/9ASsXjnXDZSrcMxbA
칠쿠트는 너무 가파르고 험난해서 개썰매로는 갈 수 없고 사람들이 짐을 지고 넘는 경로고, 화이트패스 쪽이 말이나 개가 짐을 끌고 넘어가는 경로네요.
사진을 보시면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올라가는데요, 이쪽이 칠쿠트 경로입니다. 해리슨 포드가 나오는 영화 초반에 바로 이 장면이 연출되기도 합니다. 엄청난 사람들이 엄청난 짐을 지고 금을 찾으러 줄을 서서 갑니다.
마지막 사진이 화이트패스인데, 이곳도 아주 험했고 짐을 끌고 가던 개, 말들이 많이 죽었다고 해서 '죽은 말들의 계곡'(Dead Horse Trail)이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ㅠㅠ
사진 출처
https://en.wikipedia.org/wiki/Chilkoot_Pass




르구인
칠쿠트의 공중 화물용 트램웨이(Chillkoote aerial tramway)
https://en.wikipedia.org/wiki/Chilkoot_Trail_tramways
사진을 보시면 칠쿠트 경로의 산 위로 이상한 선이 있습니다. 찾아보니, 공중 화물용 트램 같은 것이라고 하네요. 처음에는 도르래를 이용했고, 나중에는 석탄이나 가솔린을 이용한 증기기관도 쓰고, 전기도 썼다고 합니다. 사진은 모두 1898년도 사진입니다.
여러 회사들이 경쟁적으로 트램을 놓기도 했는데, 1900년도 되기 전에 모두 폐쇄됩니다. 1900년이 되면 ‘화이트패스-유콘 노선’ 철도가 놓이게 되기 때문입니다. 철도 회사가 이런 트램웨이 회사들을 인수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White_Pass_and_Yukon_Route
클론다이크 금광은 자원을 추출하기 위해 사람과 동물, 자원과 사회기반이 빠른 속도로 투입되고 변해가는 모습을 노골적으로 볼 수 있었던 현장이라고 해야겠습니다.




르구인
* 잭 런던은 왜 ‘벅’의 이야기를 쓴 걸까요?
작품에 대한 해석은 독자의 자유이지만, 저자가 어떤 시대적 배경과 문제의식을 가지고 집필했는지 아는 것은 시대를 이해하는 훌륭한 창이 됩니다. 특히 『야성의 부름』처럼 시대적 배경이 짙게 깔려 있는 작품은 더욱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잭 런던은 클론다이크를 다녀온 뒤, 어떤 생각으로 ‘벅’의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까요? 기록에 따르면 그는 클론다이크에서 약 10개월간 체류했습니다. 실제로 금 채굴권을 얻기는 했지만 실질적인 수익을 거두지는 못했고, 괴혈병으로 잇몸이 부어오르는 등 건강도 악화됩니다.
잭 런던에 클론다이크로 간 것은 1897년 여름이었고, 금광을 떠난 때는 이듬해인 1898년 늦봄이었습니다. 그는 유콘강을 따라 3천 킬로미터가 넘는 거리를 뗏목으로 내려와 캘리포니아로 돌아옵니다.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 런던은 금광에서의 경험을 신문사에 보내지만, "이제 알래스카는 유행이 지났다"는 얘기만 듣습니다.
이후에 발표한 첫 이야기가 개의 이야기였던 것을 보면, 그의 마음속에 클론다이크에서 본 개들의 기억이 강하게 남아있었던 것 같습니다. 1902년, 그는 먼저 「Diablo - A Dog Story」라는 단편을 발표합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주인을 살해하는 잔혹한 개 '바타르’입니다.
바로 이어 잭 런던은 새로운 이야기를 집필하기 시작합니다. 그것이 바로 『야성의 부름』입니다. 일부 연구자들은 잭 런던이 개의 명예를 회복시켜야겠다는 결심을 한 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클론다이크를 떠난 지 5년 정도 후에 책이 나왔으니, 그곳의 경험이 숙성된 기간은 3~4년 정도로 될 것 같습니다.
벅에게는 실존 모델이 있었습니다. 런던이 클론다이크에서 만난 본드 형제의 개였죠. 소설 초반의 평화로운 판사 집의 풍경 역시 그 형제들의 집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런던이 애초에는 단편을 염두에 두고 집필을 계획했지만, 글을 시작하자 작가 자신도 통제할 수 없을 만큼 글이 쏟아져 나와 결국 3만 단어가 넘는 중편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훗날 런던은 그 척박하고 인간 군상들이 모두 모여 있는 금광에서 "나 자신을 발견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런 자신의 경험과 모습이 벅에게 투영되었다고 봐야 할 겁니다. 급변히는 문명의 한가운데서 자기 자신도 벅처럼 적응을 강요받고, 사용되고, 소모되었으며 결국 버려지는 존재라고 느꼈을지도 모릅니다.
후대인으로서 우리는 그 역사를 공간적/시간적으로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자연과 생명을 체계적으로 동원해 소모해 온 인간 문명의 궤적을 살펴보고, 현재 우리의 관심사이자 문제인 기후위기와 인류세적인 질문을 덧붙여 읽을 수 있습니다. 당시의 정치/경제적 상황, 이 지역에 설치된 공중 트렘, 레일이나 철도같은 산업기술과 여러 회사들의 경쟁도 이런 궤적 속에서 이해할 수 있는 사례가 될 것입니다.
사진 (출처 : wikipedia)
- 왼쪽 : 벅과 스피츠의 죽음의 대결. 1902년 판에 수록된 삽화.
- 오른쪽 : 칠쿠트를 넘는 사람들
시대 배경 참조 : https://en.wikipedia.org/wiki/The_Call_of_the_Wild



모시모시
“ 그의 근육은 활력으로 넘쳐흘렀고 강철로 만든 용수철처럼 타다닥 날카롭게 튀어올랐다. 기쁨과 자 유로움으로 홍수처럼 찬란히 온몸에 가득 찬 생명력이 드디어 폭발하고 순수한 황홀감 속에 산산이 흩어져 세상 속으로 풍요롭게 넘쳐흘렀다. ”
『야성의 부름』 185p,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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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모시
제 자리에 있는 벅을 보는것 같아서 기분이 좋습니다.

르구인
1997년 영화는 아직 못 봤지만, 2020년 영화에서 벅이 손턴과 지내면서 늑대들과도 교류하고 자연을 마구 뛰어다니는 모습이 정말 보기좋았습니다.

르구인
네, 6장에서 자연을 뛰어다니는 벅의 모습을 행복하고 찬란하게 그려주고 있어서, 작가에게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르구인
이제 『야성의 부름』 읽기, 마지막 3주차를 앞두고 있습니다. 남은 이야기를 읽어가면서 책 전체에 대한 이야기도 나누고 깊은 질문도 주고 받고 어려운 주제도 건드려보면 좋겠습니다.
하나의 소설을 읽는 방법도 바라보는 측면도 아주 다양할텐데요, 이 모임에서는 기후, 생태, 인류세 같은 주제를 더 많이 고민해보면 좋겠습니다.
이 소설의 배경이 되는 1900년 전후의 시기는, 자본이 빠른 속도로 축적되고 과학기술이 발달하면서 모든 것이 상승하기 전에 발판을 다지는 기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요즘 많이 사용하는 용어로 말을 하자면, ‘대가속’의 전조 정도로 표현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20세기 중반, 그러니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치, 경제, 사회, 자연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지표가 지수함수적으로 상승하게 되는데, 이 경향을 일컬어 ‘대가속’의 시대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뉘여놓은 하키 스틱 모양을 닮았다고 해서 하키스틱 그래프라고도 하는데요.
https://en.wikipedia.org/wiki/Hockey_stick_graph_(global_temperature)
아래 동영상에서도 하키스틱 모양을 그림 위에 놓고 재미있게 설명을 하고 있네요.
https://www.youtube.com/watch?v=1JAOXTOwjdY
그래프를 보면 본격적으로 솟구치는 것은 1950년대 쯤부터이지만, 늦어도 1800년대 정도부터 그래프가 슬금슬금 올라가고 있습니다.
(그래프 출처: https://www.resilience.org/stories/2019-08-19/what-is-earth-for)
클론다이크 금광 같이 자원을 집중적으로 추출하던 현장이, 당시에 전세계에 걸쳐 수없이 많았을 겁니다. 석탄, 석유, 이런 저런 광물들, 보석들, 비싸거나 필수적인 작물들 등 자원이 발견되고 사람들이 몰려가고 온갖 정보와 돈과 기술이 집약적으로 투입되는 현장이 바로 대가속을 가능하게 했던 바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 단순하지만 쉽지 않은 질문을 몇 개를 던져봅니다.
- 여러분은 『야성의 부름』이라는 소설이 어떤 이야기라고 생각하시나요? 작가의 관점이나 주제의식과 관련 있이/없이, 기후위기나 인류세와 관련 있이/없이, 내가 보는 『야성의 부름』은 어떤 이야기인가? 이 소설을 한 문장으로 표현해본다면 어떤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지 짧은 문장 만들기를 해봐도 좋겠습니다.
- 금광이라는 추출의 현장에서 벅은 무엇이었을까요? 클론다이크라는 춥고 험한 지형의 금광에서, 벅 같은 개들은 환경에 적응하지 못한 말들을 대신해 그 일을 대신하게 됩니다. 이렇게 일을 하다가 지치고 힘이 빠지면 대체되고 팔리고 죽어 나갔습니다. 이런 개들은 인간에게, 인류 문명에 그리고 자연에 어떤 존재였을까요?
- 벅은 야생으로 돌아가지만, 인간은 금을 찾든 빈손이든 결국은 다시 도시로, 문명의 세계로 돌아갑니다. 그렇게 보면 벅의 이야기는 일종의 판타지라는 생각도 듭니다. 다시 도시로 돌아간 잭 런던은 벅에게 자신의 꿈을 투영한 걸까요?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의 꿈이나 정체성을 비춰보고자 한다면 어떤 존재에게 투영시켜야할까요?
(이미지 출처 : https://www.resilience.org/stories/2019-08-19/what-is-earth-for)


르구인
나누고 싶은 질문, 문제, 소설의 대목 등 자유롭게 제기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위에 던진 질문 중 마지막 질문에 대해서 지금 언뜻 AI가 떠오르네요. 이미 수많은 SF 작품들에서 AI에 우리의 질문과 고민을 투영해오고 있기도 하고요.

모시모시
https://v.daum.net/v/GiZA0nqFrt?f=p
저는 알래스카 클론다이크 금 채굴 러쉬 보면서 요즘 뉴스에 종종 나고있는 북극항로 이슈가 생각났어요.
요컨대, 북극항로 기회인가 위기인가 이런 프레임인데, 지구 온난화로 북극항로가 가용하게되어 각국이 경쟁적으로 개발하려고 하고있지만(또는 걔중에는 환경보호를 이유로 북극항로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회사도 있습니다), 무분별한 북극항로 개발 및 이용은 북극 환경과 생태계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경고도 계속되고 있다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이번에는 어떤 선택을 하게될까요?

르구인
어려운 질문을 해주셨습니다. ㅠㅠ
북극항로가 열리는 것은 기휘위기의 결과이고, 물길이 열리면 배는 갈 수 밖에 없을 겁니다. 그리고 그 길과 그 길에 놓인 자원을 이용하는 기업이나 나라가 이익을 가져가겠지요.
정말 어려운 문제입니다. 15~16세기 이후, 유럽 국가들이 대서양 항로를 개척할 때 누가 막을 수 있었겠는가? 우주로 끝없이 위성이며 우주선이며 쏘아올리는 소위 선진국들과 그 나라의 초거대 기업들의 행위를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해서, 이런 문제에 대해 얘기를 하지 말아야 하거나, 할 필요가 없다거나, 해도 아무 소용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우리 시대와 문명의 증인이니 보고 듣고 생각한 것을 계속 얘기하고 고민하고 드러내야 하고, 그것이 해야할 일 중의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얘기가 좀 무거워졌네요. ^^;
하림
덕분에 좋은 책을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저는 이 책이 벅의 영웅적서사로 읽혀서 읽다보니 인류세와 전혀 상관없이 영웅적 출생-고난-극복-초월로 읽히더라구요. 결국 야생의 부름으로 인간의 동료로서의 개-썰매를 끄는 수단으로서의 개-썰매를 끄는 것을 거부함으로 또하나의 정체성에서 벗어나 인간을 스스로 사 랑하게 된 동반자로서의 벅-야성의 부름으로 늑대의 길을 걷게 된 벅-자신을 얽은 모든 종류의 속박에서 벗어나 “유령“으로 존재하게 된 초월하는 존재가 된 벅. 이 과정들을 따라가는 여정이 아주 즐거웠습니다.

르구인
네~ 훌륭한 이야기는 그 자체만으로 재미있게 읽히고 의미를 가질 수 있는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도 그 안에 의미를 담아내고 우리가 찾아낼 수 있게 하죠. 잭 런던은 정말 대단한 스토리텔러라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한 때 진돗개+풍산개의 후손을 키운 적이 있는데요, 목줄을 하고 산책을 하다가 놓치는 바람에 이 녀석이 질주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녀석이 꽤 커서 사람들이 상당히 놀라기 때문에 따라 잡으려고 엄청 달리기를 해서 따라갔었습니 다.
그런데, 세상에나 이 녀석이 근처의 꽤 가파른 야산으로 질주를 하면서 올라가더군요! 제가 한 번도 못 본 그 녀석의 '야성'이라고 해야할까요?! 너무나 놀랍기도 하고, 인간이 다른 동물에게 씌우는 속박이 얼마나 큰 것인가 그때 좀 느꼈고, 좁은 담 안에 가둬 살게 하는 것이 미안해졌더랬습니다.

향팔
“ 넓은 가슴과 하얀 송곳니와 긴 털을 가진 벅은 존 손턴의 모닥불 옆에 앉아 있었다. 그러나 벅의 뒤에는 온갖 종류의 개들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 있었다. 반은 늑대인 개들과 야생 늑대들이 성급하게 길길이 뛰며 벅이 먹는 고기의 풍미를 맛보 았고 그가 마시는 물을 탐냈고 그와 함께 바람 냄새를 맡았고 숲 속 거친 삶이 만들어 내는 소리들을 듣고 그에게 말해 줬다. 그들은 벅의 기분을 좌우하고 행동을 지시했으며 벅이 누우면 함께 누워 잠이 들었다. 그와 함께 그리고 그를 넘어서서 꿈을 꿨고, 스스로 벅의 꿈속으로 들어가 그 꿈을 가득 채웠다. ”
『야성의 부름』 96쪽,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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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이 그림자들이 벅에게 너무나 강력하게 명령해서 인간과 인간의 요구 들은 날마다 그에게서 멀어졌다. 숲 속 깊은 곳에서 벅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신비롭게 떨리고 유혹하는 소리를 자주 들은 벅은 모닥불과 그 주변의 다져진 흙에서 등을 돌려 숲 속으로 뛰어들고 싶었다. 소리가 어디에서 오는지, 왜 들리는지 그는 알지 못했지만 야성의 부름은 계속되었다. 숲 속 깊은 곳으로부터 들리는 절체절명의 소리였기에 그는 어디로 그리고 왜라는 물음을 던지지도 않았다. 그러나 부드럽고 매끄러운 흙과 초록빛 그늘을 자주 접하면서 손턴에 대한 사랑이 커진 벅은 다시 불 가로 돌아섰다.
오직 손턴만이 벅을 붙잡아 두었다. 나머지 사람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
『야성의 부름』 96쪽,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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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시모시
이런 찐사랑♡ 저는 반려동물 키워본적이 없어서 잘 모르지만가장 순수한 형태의 사랑 중 하나일것 같아요.

향팔
찐사랑 맞쥬! 모시모시님 글을 읽고 벅이 손턴을 왜 그리도 “미칠 듯이” 사랑했는지 생각해봤어요. 손턴이 벅의 목숨을 구해주었다는 것, 손턴이 벅을 도구로 여기지 않고 진심으로 돌봐주었다는 것에 더해, 그 둘의 관계는 상호 공감과 구원을 바탕에 둔 동반자 관계였던 것 같아요. 지배와 종속이 아닌, 서로를 향한 자발적 마음으로 단디 묶인 파트너십이라고 할까요. 더구나 손턴도 어느 정도 “서둘지 않고 인디언처럼” 살아가는 영혼이라 벅과 통하는 점이 있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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