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기후위기/인류세 읽기] 『야성의 부름』 잭 런던, 1903.

D-29
저도 실은 아무리 내기 때문이라고하지만 벅을 이렇게 혹사시키다니?하고 이 부분에서 좀 의아했어요.. ;
그러게요. 저도 좀 마음에 걸렸습니다. 시대의 한계일까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벅이 오 분 만에 천육백 달러를 손턴에게 벌어 주자 손턴은 그동안 진 빚을 다 갚고 동료들과 함께 늘 가고 싶었던 동부로 갈 수 있게 되었다. 전설적인 잃어버린 광산이 있는 그곳은 그 지역만큼 오래된 역사를 간직한 곳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그곳을 찾아 떠났으나 발견한 사람은 거의 없었고 갔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람도 꽤 있었다.
야성의 부름 p.110,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아, 이게 복선이었군요…
네... 스토리를 어느 정도 알고 보니, 이렇게 차곡차곡 쌓아가는구나 하는 게 보이는 것 같습니다. 장단점이 있네요. ^^;
벅은 며칠씩 캠프를 벗어나 밖에 머물면서 잠을 잤다. 한번은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분수령을 지나 목재와 개울 들이 흩어져 있는 넓은 땅에 들어섰다. 그는 그곳에서 일주일 동안 야생의 형제가 남긴 흔적을 찾아 헤맸다.
야성의 부름 p.118,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벅을 야성의 존재로 단숨에 탈바꿈시켜버리는 것이 아니라. 야성을 찾아가는 벅의 모습을 한 걸음씩 보여주는 잭 런던의 치밀한 서술이 감탄스럽습니다. 저자는 이런 변화 그 자체를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그들은 벅이 캠프를 걸어 나가는 것을 바라보았다. 그러나 그들은 벅이 숲의 비밀 속으로 들어섰을 때 그에게 일어난 즉각적인 무서운 변모는 보지 못했다. 그는 더 이상 걷지 않았다. 그는 한순간에 야생동물이 되어 나무 그림자들 사이에서 나타났다 획 사라졌고, 스치는 그림자처럼 고양이 발로 살금 살금 돌아다녔다. 그는 모든 은신처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알았고 뱀처럼 배로 기어가다가 펄쩍 뒤어 한순간에 공격하는 법을 알았다. 그는 둥지에 들어 있는 새를 잡을 수도 있고 잠든 토끼를 죽일 수도 있고 나무로 펄쩍 날아가 앉기 직전의 작은 얼룩다람쥐를 공중에서 덥석 입에 물 수도 있었다. 얼음이 녹기만 하면 연못 속에 있는 어떤 물고기도 그의 먹이였고 댐을 수선하는 어떤 비버도 그에게서 빠져나가지 못했다. 그는 악의가 있어서가 아니라 먹기 위해서 그것을 죽였다. 그는 자신이 스스로 잡은 것을 먹고 싶었다. 그래서 그의 행동에는 유머가 숨어 있었다. 그는 거의 다 잡은 다람쥐를 놓아주고 그 다람쥐가 공포에 떨며 나무 꼭대기로 도망치는 것을 훔쳐보기를 좋아했다.
야성의 부름 p.121,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벅, '지킬박사와 하이드'네요. ^^;
근데 또.. 생각해보면 캘리포니아 농장과 스스로 자기가 먹을 걸 자급자족해야 하는 알래스카 야생의 생활과는 다른 자세로 살아야하는 건 맞는 것 같아요.. 어찌보면 '야생'의 행동, '야성적'이란 말도 우리 인간이 만들어 낸 개념이 아닐까 해요..
네, 야생, 야성... 이런 개념은 특히 서양적인 개념인 것 같습니다. 우리 동양에는 이런 개념이 없지요?!
멀리서 날카롭게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공중으로 퍼져 나갔고 곧이어 비슷하게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일제히 들렸다. 조금 있으니 소리가 더 가까워지고 커졌다. 다시 한 번 벅은 그 소리가 기억 속에서 끈질기게 들려왔던 다른 세상의 부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 부름, 여러 곡조가 합쳐진 부름이었고 어느 때보다 더 유혹적이고 절실하게 울려 퍼졌다. 처으으로 그는 부름에 복종할 준비가 되었다. … 인간 그리고 인간의 어떤 요구도 그를 더 이상 묶어 놓지 못했다.
야성의 부름 p.129,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1898년, 잭 런던이 클론다이크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뒤 발표한 금광에 관한 초기 단편들은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 출간된 『야성의 부름』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잭 런던에게 성공을 가져다 주었지요. 불과 몇 년 사이에 사람들의 관심이 금광에서 멀어진 이유는 무엇이었고, 몇 년 후에는 왜 다시 잭 런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되었을까요? 중요한 배경 중 하나로, 미국-스페인 전쟁을 꼽을 수 있습니다. 1898년 2월,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해있던 미국 군함 메인호가 폭발했고, 이를 계기로 4월에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미국의 군함은 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에 머물고 있었을까요? 당시 쿠바에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고, 이들은 미국의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1898년 1월 메인호를 아바나에 파견했고, 얼마 후 그 배가 폭발하자 미국은 스페인을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언론은 이를 자극적으로 보도하며 대중의 분노를 증폭시켰습니다. 이러한 사태의 배경에는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천명한 ‘먼로주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먼로주의는 요즘 ‘돈로주의’로 다시 회자되고 있기도 하지요. 먼로주의는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그 해 연두교서에서 밝힌 내용으로, 그 핵심은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손을 떼라는 내용입니다. 신흥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던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충돌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스페인 전쟁은 1898년 4월에 시작되어 8월에 끝났고, 두 나라는 제3국인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 조약을 맺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쿠바의 독립을 지원하는 한편,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도 획득해 태평양과 카리브해로 세력을 넓혔습니다. 메인호의 정확한 폭발 원인이나 배후는 오늘날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잭 런던이 클론다이크에서 돌아온 때와 정확히 겹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금광에서 해외 전쟁과 영토 확장으로 옮겨갔고, 런던의 금광 이야기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미국은 내부 자원 추출을 넘어, 글로벌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적 팽창이라는 새로운 궤도에 본격적으로 올라서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외면받았던 잭 런던의 금광 이야기가 1903년에 이르러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추측해보건대, 전쟁도 끝나고, 금광 러시도 멈추고, 사람들은 빠른 경제 성장과 기술 변화, 반복되는 불황 속에서 점차 피로를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잭 런던의 책이 나온 게 아닐까요? 금광 채굴에 직접 뛰어들었던 사람들, 프랑수아와 페로 같은 우편배달부, 식당이나 술집/여관을 운영했던 사람들, 각종 물자들을 제조해서 팔았던 사람들, 트램과 철도를 건설했던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의 친구들과 친지들의 마음 속에 불안과 피로, 반성이 쌓여가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1890년대~1920년대는 소위 ‘진보시대’(progressive era)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잭 런던의 소설은 그 진보시대 초기에 출간되었고, 그 이전 시대, 즉 1870년대~1900년 경까지를 일컫는 ‘도금 시대’(Gilded Age)에 대한 반성이 미국 사회 전반에서 일고 있었습니다. ‘도금시대’란 겉은 도금을 해 화려하지만 속은 썩은 시대라는 뜻으로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가 붙인 이름입니다.(그들의 책 『도금 시대』에서 유래. 원제 : 『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 https://en.wikipedia.org/wiki/The_Gilded_Age:_A_Tale_of_Today 도금 시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거대 기업의 독점, 부패와 환경 파괴에 대한 반성이 있었고, 1900년대 들어서는 정부가 직접 역할을 하기 위해 나섰고, 정치, 경제, 사회, 노동 등 각 분야에서 개혁을 시행하게 됩니다. 『야성의 부름』은 바로 그 시대의 불안과 질문을 건드렸던 이야기였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길은 개척인가, 후퇴인가, 회복인가, 진보인가? 설령 이 길이 맞다 하더라도,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런 질문들이 이 작품에 담겨 있었기에, 『야성의 부름』은 그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로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가 함께 쓴 책 『도금 시대』(1873)는 작년에 나온 번역서가 있네요. 『도금 시대: 오늘을 비추는 이야기』 김현정 옮김. 2025. 구텐베르크 출판사. 친구 사이였던 두 사람이, 요즘엔 좋은 소설이 없어라고 한탄하면서, 우리가 써보자 하고 쓴 책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책이라 구텐베르크 사이트에서 원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버전이 읽기 좋게 잘 돼 있습니다. 삽화도 함께 있어서 그림 보는 재미가 있네요. https://www.gutenberg.org/files/3178/3178-h/3178-h.htm
와, 작품을 시대와 함께 통찰하게 해주는 귀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도금 시대>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메인호 폭발 사건은 스페인이 한 짓이 아닐 듯하네요. 미국은 이후 베트남에서도 통킹 만 사건을 조작해서 전쟁을 일으켰죠. 이라크 침공을 할 때도 대량살상무기 운운하는 뻥을 쳤고요.) <야성의 부름>이 건드린 질문들은 1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길은 개척인가, 후퇴인가, 회복인가, 진보인가? 설령 이 길이 맞다 하더라도,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르구인 님의 글에서 이 대목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질문의 답을 알면서도 모른 척, 부와 편리함을 향한 욕망에 눈과 귀를 질끈 닫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치닿는 느낌이랄까요. 황금을 찾아 클론다이크로 몰려든 사람들, 전설의 잃어버린 광산을 꿈꾸다 썩은 사금자루들만 남기고 가버린 손턴처럼요.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의문 나는 것들을 찾아보니 새롭고 재밌는 역사와 배경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모임을 하면서 읽으니 더 찾아보게 되네요. '... 썩은 사금자루'! 느낌이 확! 옵니다. @.@
매번 이렇게 정성스레 배경지식을 찾아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확실히 팽창과 성장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자라나고 있던 시대가 야생의 부름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 책을 읽는 의미도 있는것 같구요.
감사합니다! 어떤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보기 보다는, 작가와 시대 배경에 너무 치우쳐서 해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는 했습니다...만, 기후위기와 인류세라는 관점에서 읽어보겠다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읽는 모임이라, 막 달려보았습니다. ^^;
완독했습니다. 그런데.. 음..;;; 5장의 결말도 조금 불편했지만 6장에서도 조금 불편해지네요.. 예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Yeehats에 대한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적인 시선도 엿보이고.. 이런 Law of club and fang이 혹시 백인들의 식민지화를 정당화시키는 social darwinism을 반영한 게 아닌지 고민이 됩니다.. 전 심지어 벅이 집요하게 사슴을 죽이는 부분에서도 좀 불편해지더라구요..;;
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시대적 한계, 백인이라는 개인의 한계라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중요한 지점을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써주신 'Law of club and fang'은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이죠. 잭 런던에 금광에 있을 때 읽었던 책 중의 하나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었다고 합니다. 잭 런던은 사회주의자이기도 해서, 이런 적자생존, 진보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사관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 책에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평이 있더군요. 사실 이해츠 족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고, 벅이 사냥을 하거나 이해츠 족을 죽이는 부분에서는 잭 런던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벅이 반인반개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같은 데서 밖에 못 봤지만, 개들이 공격할 때 무자비해보이긴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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