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기후위기/인류세 읽기] 『야성의 부름』 잭 런던, 1903.

D-29
멀리서 날카롭게 짖는 소리가 희미하게 공중으로 퍼져 나갔고 곧이어 비슷하게 날카로운 울음소리가 일제히 들렸다. 조금 있으니 소리가 더 가까워지고 커졌다. 다시 한 번 벅은 그 소리가 기억 속에서 끈질기게 들려왔던 다른 세상의 부름이라는 것을 알았다. 바로 그 부름, 여러 곡조가 합쳐진 부름이었고 어느 때보다 더 유혹적이고 절실하게 울려 퍼졌다. 처으으로 그는 부름에 복종할 준비가 되었다. … 인간 그리고 인간의 어떤 요구도 그를 더 이상 묶어 놓지 못했다.
야성의 부름 p.129,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1898년, 잭 런던이 클론다이크를 떠나 캘리포니아로 돌아온 뒤 발표한 금광에 관한 초기 단편들은 관심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몇 년 뒤 출간된 『야성의 부름』은 큰 반향을 일으켰고 잭 런던에게 성공을 가져다 주었지요. 불과 몇 년 사이에 사람들의 관심이 금광에서 멀어진 이유는 무엇이었고, 몇 년 후에는 왜 다시 잭 런던의 이야기에 공감을 하게 되었을까요? 중요한 배경 중 하나로, 미국-스페인 전쟁을 꼽을 수 있습니다. 1898년 2월, 쿠바 아바나 항에 정박해있던 미국 군함 메인호가 폭발했고, 이를 계기로 4월에 전쟁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미국의 군함은 왜 스페인의 식민지였던 쿠바에 머물고 있었을까요? 당시 쿠바에서는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 활동이 이어지고 있었고, 이들은 미국의 지지와 지원을 받고 있었습니다. 미국은 자국민 보호를 명분으로 1898년 1월 메인호를 아바나에 파견했고, 얼마 후 그 배가 폭발하자 미국은 스페인을 배후로 지목했습니다. 언론은 이를 자극적으로 보도하며 대중의 분노를 증폭시켰습니다. 이러한 사태의 배경에는 1823년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천명한 ‘먼로주의’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먼로주의는 요즘 ‘돈로주의’로 다시 회자되고 있기도 하지요. 먼로주의는 제임스 먼로 대통령이 그 해 연두교서에서 밝힌 내용으로, 그 핵심은 유럽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손을 떼라는 내용입니다. 신흥 제국주의 국가로 성장하던 미국과 유럽 제국주의 국가들이 충돌하게 된 것입니다. 미국-스페인 전쟁은 1898년 4월에 시작되어 8월에 끝났고, 두 나라는 제3국인 프랑스 파리에서 평화 조약을 맺습니다. 그 결과, 미국은 쿠바의 독립을 지원하는 한편, 필리핀, 괌, 푸에르토리코도 획득해 태평양과 카리브해로 세력을 넓혔습니다. 메인호의 정확한 폭발 원인이나 배후는 오늘날까지도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이 시기는 잭 런던이 클론다이크에서 돌아온 때와 정확히 겹칩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금광에서 해외 전쟁과 영토 확장으로 옮겨갔고, 런던의 금광 이야기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습니다. 동시에 미국은 내부 자원 추출을 넘어, 글로벌 자본주의와 제국주의적 팽창이라는 새로운 궤도에 본격적으로 올라서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외면받았던 잭 런던의 금광 이야기가 1903년에 이르러 큰 반향을 일으킨 이유는 무엇일지 궁금해집니다. 추측해보건대, 전쟁도 끝나고, 금광 러시도 멈추고, 사람들은 빠른 경제 성장과 기술 변화, 반복되는 불황 속에서 점차 피로를 느끼고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때 자신들이 걸어온 길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잭 런던의 책이 나온 게 아닐까요? 금광 채굴에 직접 뛰어들었던 사람들, 프랑수아와 페로 같은 우편배달부, 식당이나 술집/여관을 운영했던 사람들, 각종 물자들을 제조해서 팔았던 사람들, 트램과 철도를 건설했던 사람들, 그 모든 사람들의 친구들과 친지들의 마음 속에 불안과 피로, 반성이 쌓여가고 있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1890년대~1920년대는 소위 ‘진보시대’(progressive era)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잭 런던의 소설은 그 진보시대 초기에 출간되었고, 그 이전 시대, 즉 1870년대~1900년 경까지를 일컫는 ‘도금 시대’(Gilded Age)에 대한 반성이 미국 사회 전반에서 일고 있었습니다. ‘도금시대’란 겉은 도금을 해 화려하지만 속은 썩은 시대라는 뜻으로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가 붙인 이름입니다.(그들의 책 『도금 시대』에서 유래. 원제 : 『The Gilded Age: A Tale of Today) https://en.wikipedia.org/wiki/The_Gilded_Age:_A_Tale_of_Today 도금 시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 거대 기업의 독점, 부패와 환경 파괴에 대한 반성이 있었고, 1900년대 들어서는 정부가 직접 역할을 하기 위해 나섰고, 정치, 경제, 사회, 노동 등 각 분야에서 개혁을 시행하게 됩니다. 『야성의 부름』은 바로 그 시대의 불안과 질문을 건드렸던 이야기였던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길은 개척인가, 후퇴인가, 회복인가, 진보인가? 설령 이 길이 맞다 하더라도,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그런 질문들이 이 작품에 담겨 있었기에, 『야성의 부름』은 그 시대에도, 그리고 지금에도 여전히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는 이야기로 남아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크 트웨인과 찰스 더들리 워너가 함께 쓴 책 『도금 시대』(1873)는 작년에 나온 번역서가 있네요. 『도금 시대: 오늘을 비추는 이야기』 김현정 옮김. 2025. 구텐베르크 출판사. 친구 사이였던 두 사람이, 요즘엔 좋은 소설이 없어라고 한탄하면서, 우리가 써보자 하고 쓴 책이라고 합니다. 오래된 책이라 구텐베르크 사이트에서 원서를 받을 수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볼 수 있는 버전이 읽기 좋게 잘 돼 있습니다. 삽화도 함께 있어서 그림 보는 재미가 있네요. https://www.gutenberg.org/files/3178/3178-h/3178-h.htm
와, 작품을 시대와 함께 통찰하게 해주는 귀한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도금 시대>도 읽어보고 싶어졌어요. (메인호 폭발 사건은 스페인이 한 짓이 아닐 듯하네요. 미국은 이후 베트남에서도 통킹 만 사건을 조작해서 전쟁을 일으켰죠. 이라크 침공을 할 때도 대량살상무기 운운하는 뻥을 쳤고요.) <야성의 부름>이 건드린 질문들은 120년이 더 지난 지금도 유효한 것 같습니다. “우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이 길은 개척인가, 후퇴인가, 회복인가, 진보인가? 설령 이 길이 맞다 하더라도, 그 끝에는 무엇이 기다리고 있는가?” @르구인 님의 글에서 이 대목이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질문의 답을 알면서도 모른 척, 부와 편리함을 향한 욕망에 눈과 귀를 질끈 닫고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치닿는 느낌이랄까요. 황금을 찾아 클론다이크로 몰려든 사람들, 전설의 잃어버린 광산을 꿈꾸다 썩은 사금자루들만 남기고 가버린 손턴처럼요.
감사합니다~ 읽으면서 의문 나는 것들을 찾아보니 새롭고 재밌는 역사와 배경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따라나오더라고요. 그리고 이렇게 모임을 하면서 읽으니 더 찾아보게 되네요. '... 썩은 사금자루'! 느낌이 확! 옵니다. @.@
매번 이렇게 정성스레 배경지식을 찾아주시니 황송할 따름입니다. 확실히 팽창과 성장에 대한 의문과 회의가 자라나고 있던 시대가 야생의 부름의 인기와 무관하지 않았을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날 우리가 이 책을 읽는 의미도 있는것 같구요.
감사합니다! 어떤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보기 보다는, 작가와 시대 배경에 너무 치우쳐서 해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는 했습니다...만, 기후위기와 인류세라는 관점에서 읽어보겠다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읽는 모임이라, 막 달려보았습니다. ^^;
완독했습니다. 그런데.. 음..;;; 5장의 결말도 조금 불편했지만 6장에서도 조금 불편해지네요.. 예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Yeehats에 대한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적인 시선도 엿보이고.. 이런 Law of club and fang이 혹시 백인들의 식민지화를 정당화시키는 social darwinism을 반영한 게 아닌지 고민이 됩니다.. 전 심지어 벅이 집요하게 사슴을 죽이는 부분에서도 좀 불편해지더라구요..;;
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시대적 한계, 백인이라는 개인의 한계라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중요한 지점을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써주신 'Law of club and fang'은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이죠. 잭 런던에 금광에 있을 때 읽었던 책 중의 하나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었다고 합니다. 잭 런던은 사회주의자이기도 해서, 이런 적자생존, 진보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사관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 책에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평이 있더군요. 사실 이해츠 족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고, 벅이 사냥을 하거나 이해츠 족을 죽이는 부분에서는 잭 런던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벅이 반인반개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같은 데서 밖에 못 봤지만, 개들이 공격할 때 무자비해보이긴 했습니다. -,-;;
전 moose가 결국 서서히 지쳐 쓰러지고 그 사슴 동료들도 결국 낙오된 그를 버리고 가는 걸 보고서도 참 무자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그건 인간중심의 생각일 뿐이겠지만.. 그런데 이해츠 족이 굳이 그렇게 그들을 덮친 것도 좀..;; 오히려 백인들이 인디언들의 땅과 생명을 덮쳐오고 점령해온 것일텐데..;; 예전에 어릴적 읽을 때는 이런 걸 놓쳤던 것 같아요..
Mercy did not exist in the primordial life. It was misunderstood for fear, and such misunderstandings made for death. Kill or be killed, eat or be eaten, was the law; and this mandate, down out of the depths of Time, he obeyed. He was older than the days he had seen and the breaths he had drawn. He linked the past with the present, and the eternity behind him throbbed through him in a mighty rhythm to which he swayed as the tides and seasons swayed.
야성의 부름 63,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As you love me, Buck. As you love me ... It was the answer, in terms, not of speech, but of love.
야성의 부름 70,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John Thornton asked little of man or nature. He was unafraid of the wild.
야성의 부름 73,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But especially he loved to run in the dim twilight of the summer midnights, listening to the subdued and sleepy murmurs of the forest, reading signs and sounds as man may read a book, and seeking for the mysterious something that called-called, waking or sleeping, at all times, for him to come.
야성의 부름 76,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There is a patience of the wild-dogged, tireless, persistent as life itself-that holds motionless for endless hours the spider in its web, the snake in its coils, the panther in its ambuscade; this patience belongs peculiarly to life when it hunts its living food;
야성의 부름 81,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Besides, it was not the life of the herd, or of the young bulls, that was threatened. The life of only one member was demanded, which was a remoter interest than their lives, and in the end they were content to pay the toll.
야성의 부름 82,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He had killed man, the noblest game of all, and he had killed in the face of the law of club and fang.
야성의 부름 85,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유콘 퍼스트 네이션 (First Nations in Yukon region. https://tinyl.co/4Iba) 클론다이크 금광 지역에 살던 선주민들이 강제 이주 당했다는 얘기를 앞의 글에서 조금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borumis님이 짚어주시지 않았다면, 깜빡하고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찾아보니 엄청난 일들이 있었고, 지금은 이 일대 지역을 ‘유콘 퍼스트 네이션’(Yukon First Nations)라고 부르네요. ‘퍼스트 네이션’은 캐나다에서 선주민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여기에 이누잇과 메티스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유콘 퍼스트 네이션’은 특정 지리 구역이라기보다, 유콘 전역에 걸쳐 예로부터 살아온 14개 선주민 공동체를 통칭하는 명칭입니다. 소설 『야성의 부름』에 나오는 ‘이해츠’(Yeehats)족은 가상의 이름이지만, 실제로 금광 지역에 살았던 선주민 트론데크 흐위친(Tr’ondëk Hwëch’in) 족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골드러시 이후 정부와 경찰은 이들을 원래 거주지에서 하류인 ‘무스하이드’(Moosehide)로 강제 이주시킵니다. 심각한 것은 이주민들이 가져온 천연두, 홍역, 독감, 결핵 같은 감염병에 선주민들이 감염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19세기 말 약 8천 명이었던 선주민 인구가 20세기 초가 되면 1,500명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이것은 종족이 사라질 수도 있는 궤멸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광부와 상인, 행정 인력 등 수많은 외부인들이 클론다이크 지역으로 몰려들면서, 원래는 선주민이 다수였던 이 지역에서 선주민들은 소수가 됩니다.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사냥터와 고기잡이 장소, 이동 경로까지 모두 빼앗기게 됩니다. 금광을 찾아온 사람들은 자원과 소유권을 강탈했을 뿐만 아니라 금을 채굴하기 위해 강을 굴착하고, 나무를 자르고, 시설물을 설치하면서 선주민들의 생활 기반도 파괴했습니다. 골드러시 이전, 칠쿠트 지역의 경우 이 지역에 살던 틀링깃 족이 이 길의 통행과 교역을 통제했는데,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통제권 상당 부분을 외지인들에게 빼앗겼다고 합니다. 골드러시 초기에는 일부 선주민들이 운반 노동자, 안내인, 사냥물 공급 같은 일을 하면서 수입을 얻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더 몰려들면서 경쟁이 더 심해졌고 선주민들이 밀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유콘은 캐나다의 준주(Territory)이며, 그 안에서 ‘유콘 퍼스트 네이션’이라 불리는 선주민 공동체들이 자치 정부 형태로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배경을 살펴보면 1993년 ‘유콘 포괄 토지청구 협정’(Umbrella Final Agreement; UFA)라는 협정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토지 소유권 인정, 자치권 확보, 사법/행정 권한 등이 포함됩니다. 부족의 전통을 가르치는 교육 커리큘럼도 직접 운영하고 조세권, 사법체계도 전통적인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협정은 1973년 유콘 선주민 지도자들의 문제 제기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오타와 연방 정부에 “우리는 조약을 맺은 적도, 땅을 넘긴 적도 없다”는 선언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 선언이 실제 협정으로 이어지기까지 20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는지를 보여줍니다. * 사진 : 유콘 퍼스트 네이션 지역, 유콘 도슨 지역의 선주민. 1898년. * 자료 참조 :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Nations_in_Canada https://en.wikipedia.org/wiki/Indigenous_peoples_in_Canada
이런 역사가 있는데, 잭 런던은 선주민 사람들을 침입자처럼 그려놓았군요. 벅이 인간 세계를 떠나 야성의 세계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손턴과의 극진한 사랑과 이해츠족의 사건을 만든 것 같기는 한데, 실제로 선주민에 대해서 적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옳지 않은 활용이네요. 저는 손턴이, 장난(?!)이기는 했지만, 벅이 얼마나 자기 말을 잘 듣고 서로 신뢰하는 지 보여주려고 벅 더러 수십 미터 절벽을 뛰어내리라고 명령하는 장면도 좀 놀라웠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떨어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런 걸 시킬 수가 있을까요. 소설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실제라면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해리슨 포드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면, 이런 불편할 수 있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다 없앴습니다. ^^;
벅의 하울링과 우리의 다정함 퇴근길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지기 직전의 짧은 시간, 그곳은 묘하게 무겁고 적막합니다. 누구 하나 먼저 인사하지 않고, 서로의 눈보다는 빠르게 변하는 층수 표시기만 바라봅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도 이웃의 이름조차 궁금해하지 않는 인간의 고립이 그 침묵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차가운 적막을 가르는 것은 뜻밖에도 강아지 한 마리였습니다. 녀석은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낯선 사람들 사이를 올려다봅니다. 까만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어색함에 굳어 있던 인간들의 표정에 찰나의 온기가 스칩니다. 낯선 존재를 경계하기보다 반가움으로 먼저 다가오는 저 작은 생명만이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본연의 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장면에서 잭 런던의 소설 <야성의 부름>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본성. 주인공 '벅'이 본성을 찾는 이야기가 겹쳐 보입니다. 저 강아지도 만약 혹독한 설원에 던져진다면 주인공 ‘벅’처럼 잠들어 있던 야성을 깨우게 될까요? 늑대의 하울링을 토해내며 투쟁하는 존재로 변하게 될까요? 그것은 단순히 개가 늑대가 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명이라는 표피 아래 억눌려 있던 본질적 감각이 환경에 의해 호출되는 순간에 관한 기록입니다. 흥미롭게도 생물학적으로 개와 늑대의 유전적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진화인류학자들은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던 시기, 인간의 거처 주변을 맴돌던 늑대 중 일부가 인간과 공존하는 쪽을 택했고, 그 선택이 오늘날의 ‘개’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공격성보다 사회성이, 고립보다 협력이 생존에 유리했던 진화의 결과입니다. 여기서 관점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잭 런던은 벅의 귀환 지점을 ‘야생의 늑대’로 설정했습니다. 투쟁과 정복이 본성의 핵심이라 본 것입니다. 반면 현대 과학은 개의 본성을 ‘인간과 공존하는 다정한 늑대’로 정의합니다. 본성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존재의 의미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릅니다. 야생을 기준으로 삼으면 본성은 투쟁이 되고, 관계를 기준으로 삼으면 본성은 협력이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요? 오직 살아남기 위한 야성일까요, 아니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다정함일까요? 소설 후반부, 벅과 존 숀턴의 관계는 이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혹독한 생존의 법칙을 체득한 존 숀턴은 벅이 학대받는 순간 자신의 안전을 뒤로하고 그를 지켜냅니다. 벅 또한 주인을 위해 얼음처럼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지고, 500kg이 넘는 썰매를 끌어내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이 뜨거운 교감은 단순한 야생의 법칙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는 브라이언 헤어가 말한 명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주장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이룬 핵심은 날카로운 이빨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협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문명의 시작을 ‘부러졌다가 회복된 흔적이 있는 원시인의 다리뼈’에서 찾았습니다. 야생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뼈가 아물었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그를 위해 먹이를 구해주고, 포식자로부터 지켜주며 정성껏 돌봤다는 증거입니다. 문명은 총이나 바퀴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돌봄의 흔적'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알래스카의 설원을 달리는 벅의 뒷모습을 따라가다 다시 현실의 엘리베이터로 돌아옵니다. 협력과 다정함이 생존의 열쇠였던 조상들과 달리,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문명 속에서 오히려 서로를 단절시키며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진짜 본성을 잃어버린 존재는 문명 안에서 타인에 대한 감각을 닫아버린 우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강아지와 주인이 먼저 내립니다. 저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 조용히 배웅합니다. ‘안녕, 잘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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