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기후위기/인류세 읽기] 『야성의 부름』 잭 런던, 1903.

D-29
감사합니다! 어떤 작품을 작품 그 자체로 보기 보다는, 작가와 시대 배경에 너무 치우쳐서 해석하는 거 아닌가 하는 우려가 들기는 했습니다...만, 기후위기와 인류세라는 관점에서 읽어보겠다는 목적 의식을 가지고 읽는 모임이라, 막 달려보았습니다. ^^;
완독했습니다. 그런데.. 음..;;; 5장의 결말도 조금 불편했지만 6장에서도 조금 불편해지네요.. 예전에는 눈여겨보지 않았던 Yeehats에 대한 백인우월주의나 인종차별적인 시선도 엿보이고.. 이런 Law of club and fang이 혹시 백인들의 식민지화를 정당화시키는 social darwinism을 반영한 게 아닌지 고민이 됩니다.. 전 심지어 벅이 집요하게 사슴을 죽이는 부분에서도 좀 불편해지더라구요..;;
네, 저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시대적 한계, 백인이라는 개인의 한계라고 보아야하지 않을까 싶기도 하고요. 중요한 지점을 짚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써주신 'Law of club and fang'은 곤봉과 송곳니의 법칙이죠. 잭 런던에 금광에 있을 때 읽었던 책 중의 하나가 다윈의 『종의 기원』이었다고 합니다. 잭 런던은 사회주의자이기도 해서, 이런 적자생존, 진보를 향해 일직선으로 나아가는 사관 같은 것들을 가지고 있었고 이 책에도 많이 반영되어 있다는 평이 있더군요. 사실 이해츠 족을 표현하는 방식도 그렇고, 벅이 사냥을 하거나 이해츠 족을 죽이는 부분에서는 잭 런던이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벅이 반인반개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영화같은 데서 밖에 못 봤지만, 개들이 공격할 때 무자비해보이긴 했습니다. -,-;;
전 moose가 결국 서서히 지쳐 쓰러지고 그 사슴 동료들도 결국 낙오된 그를 버리고 가는 걸 보고서도 참 무자비하다는 생각이 들더라구요.. 물론 그건 인간중심의 생각일 뿐이겠지만.. 그런데 이해츠 족이 굳이 그렇게 그들을 덮친 것도 좀..;; 오히려 백인들이 인디언들의 땅과 생명을 덮쳐오고 점령해온 것일텐데..;; 예전에 어릴적 읽을 때는 이런 걸 놓쳤던 것 같아요..
Mercy did not exist in the primordial life. It was misunderstood for fear, and such misunderstandings made for death. Kill or be killed, eat or be eaten, was the law; and this mandate, down out of the depths of Time, he obeyed. He was older than the days he had seen and the breaths he had drawn. He linked the past with the present, and the eternity behind him throbbed through him in a mighty rhythm to which he swayed as the tides and seasons swayed.
야성의 부름 63,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As you love me, Buck. As you love me ... It was the answer, in terms, not of speech, but of love.
야성의 부름 70,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John Thornton asked little of man or nature. He was unafraid of the wild.
야성의 부름 73,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But especially he loved to run in the dim twilight of the summer midnights, listening to the subdued and sleepy murmurs of the forest, reading signs and sounds as man may read a book, and seeking for the mysterious something that called-called, waking or sleeping, at all times, for him to come.
야성의 부름 76,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There is a patience of the wild-dogged, tireless, persistent as life itself-that holds motionless for endless hours the spider in its web, the snake in its coils, the panther in its ambuscade; this patience belongs peculiarly to life when it hunts its living food;
야성의 부름 81,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Besides, it was not the life of the herd, or of the young bulls, that was threatened. The life of only one member was demanded, which was a remoter interest than their lives, and in the end they were content to pay the toll.
야성의 부름 82,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He had killed man, the noblest game of all, and he had killed in the face of the law of club and fang.
야성의 부름 85, 잭 런던 지음, 임종기 옮김
* 유콘 퍼스트 네이션 (First Nations in Yukon region. https://tinyl.co/4Iba) 클론다이크 금광 지역에 살던 선주민들이 강제 이주 당했다는 얘기를 앞의 글에서 조금 언급한 적이 있는데요, borumis님이 짚어주시지 않았다면, 깜빡하고 그냥 지나칠 뻔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더 찾아보니 엄청난 일들이 있었고, 지금은 이 일대 지역을 ‘유콘 퍼스트 네이션’(Yukon First Nations)라고 부르네요. ‘퍼스트 네이션’은 캐나다에서 선주민을 지칭할 때 쓰는 용어입니다. 여기에 이누잇과 메티스는 포함되지 않습니다. ‘유콘 퍼스트 네이션’은 특정 지리 구역이라기보다, 유콘 전역에 걸쳐 예로부터 살아온 14개 선주민 공동체를 통칭하는 명칭입니다. 소설 『야성의 부름』에 나오는 ‘이해츠’(Yeehats)족은 가상의 이름이지만, 실제로 금광 지역에 살았던 선주민 트론데크 흐위친(Tr’ondëk Hwëch’in) 족을 참조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골드러시 이후 정부와 경찰은 이들을 원래 거주지에서 하류인 ‘무스하이드’(Moosehide)로 강제 이주시킵니다. 심각한 것은 이주민들이 가져온 천연두, 홍역, 독감, 결핵 같은 감염병에 선주민들이 감염되면서 인구가 급격히 감소했다는 것입니다. 19세기 말 약 8천 명이었던 선주민 인구가 20세기 초가 되면 1,500명 수준으로 떨어집니다. 이것은 종족이 사라질 수도 있는 궤멸적인 수준이었습니다. 광부와 상인, 행정 인력 등 수많은 외부인들이 클론다이크 지역으로 몰려들면서, 원래는 선주민이 다수였던 이 지역에서 선주민들은 소수가 됩니다. 자신들의 거주지에서 쫓겨났을 뿐 아니라, 사냥터와 고기잡이 장소, 이동 경로까지 모두 빼앗기게 됩니다. 금광을 찾아온 사람들은 자원과 소유권을 강탈했을 뿐만 아니라 금을 채굴하기 위해 강을 굴착하고, 나무를 자르고, 시설물을 설치하면서 선주민들의 생활 기반도 파괴했습니다. 골드러시 이전, 칠쿠트 지역의 경우 이 지역에 살던 틀링깃 족이 이 길의 통행과 교역을 통제했는데, 골드러시가 시작되면서 통제권 상당 부분을 외지인들에게 빼앗겼다고 합니다. 골드러시 초기에는 일부 선주민들이 운반 노동자, 안내인, 사냥물 공급 같은 일을 하면서 수입을 얻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더 몰려들면서 경쟁이 더 심해졌고 선주민들이 밀리게 되었습니다. 현재 유콘은 캐나다의 준주(Territory)이며, 그 안에서 ‘유콘 퍼스트 네이션’이라 불리는 선주민 공동체들이 자치 정부 형태로 권한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배경을 살펴보면 1993년 ‘유콘 포괄 토지청구 협정’(Umbrella Final Agreement; UFA)라는 협정을 맺었는데, 그 내용은 토지 소유권 인정, 자치권 확보, 사법/행정 권한 등이 포함됩니다. 부족의 전통을 가르치는 교육 커리큘럼도 직접 운영하고 조세권, 사법체계도 전통적인 방식을 도입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 협정은 1973년 유콘 선주민 지도자들의 문제 제기로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이들이 오타와 연방 정부에 “우리는 조약을 맺은 적도, 땅을 넘긴 적도 없다”는 선언이 담긴 보고서를 제출했다고 합니다. 이 선언이 실제 협정으로 이어지기까지 20년이 걸렸다는 사실은, 그 과정이 얼마나 지난했는지를 보여줍니다. * 사진 : 유콘 퍼스트 네이션 지역, 유콘 도슨 지역의 선주민. 1898년. * 자료 참조 : https://en.wikipedia.org/wiki/First_Nations_in_Canada https://en.wikipedia.org/wiki/Indigenous_peoples_in_Canada
이런 역사가 있는데, 잭 런던은 선주민 사람들을 침입자처럼 그려놓았군요. 벅이 인간 세계를 떠나 야성의 세계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만들기 위해 손턴과의 극진한 사랑과 이해츠족의 사건을 만든 것 같기는 한데, 실제로 선주민에 대해서 적대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옳지 않은 활용이네요. 저는 손턴이, 장난(?!)이기는 했지만, 벅이 얼마나 자기 말을 잘 듣고 서로 신뢰하는 지 보여주려고 벅 더러 수십 미터 절벽을 뛰어내리라고 명령하는 장면도 좀 놀라웠습니다. 만에 하나라도 떨어질 수도 있는데 어떻게 그런 걸 시킬 수가 있을까요. 소설이니까 그러려니 하지만, 실제라면 절대 용납할 수 없습니다. 해리슨 포드가 출연하는 영화를 보면, 이런 불편할 수 있고 논란이 될 수 있는 부분은 거~의 다 없앴습니다. ^^;
벅의 하울링과 우리의 다정함 퇴근길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 각자의 공간으로 흩어지기 직전의 짧은 시간, 그곳은 묘하게 무겁고 적막합니다. 누구 하나 먼저 인사하지 않고, 서로의 눈보다는 빠르게 변하는 층수 표시기만 바라봅니다.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살면서도 이웃의 이름조차 궁금해하지 않는 인간의 고립이 그 침묵 속에서 선명하게 드러납니다. 그 차가운 적막을 가르는 것은 뜻밖에도 강아지 한 마리였습니다. 녀석은 세차게 꼬리를 흔들며 낯선 사람들 사이를 올려다봅니다. 까만 눈동자와 시선이 마주치는 순간, 어색함에 굳어 있던 인간들의 표정에 찰나의 온기가 스칩니다. 낯선 존재를 경계하기보다 반가움으로 먼저 다가오는 저 작은 생명만이 이 공간에서 유일하게 본연의 본성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 장면에서 잭 런던의 소설 <야성의 부름>을 떠올린 것은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사람을 좋아하는 본성. 주인공 '벅'이 본성을 찾는 이야기가 겹쳐 보입니다. 저 강아지도 만약 혹독한 설원에 던져진다면 주인공 ‘벅’처럼 잠들어 있던 야성을 깨우게 될까요? 늑대의 하울링을 토해내며 투쟁하는 존재로 변하게 될까요? 그것은 단순히 개가 늑대가 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문명이라는 표피 아래 억눌려 있던 본질적 감각이 환경에 의해 호출되는 순간에 관한 기록입니다. 흥미롭게도 생물학적으로 개와 늑대의 유전적 차이는 거의 없다고 합니다. 진화인류학자들은 인류가 정착 생활을 시작하던 시기, 인간의 거처 주변을 맴돌던 늑대 중 일부가 인간과 공존하는 쪽을 택했고, 그 선택이 오늘날의 ‘개’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공격성보다 사회성이, 고립보다 협력이 생존에 유리했던 진화의 결과입니다. 여기서 관점의 차이가 드러납니다. 잭 런던은 벅의 귀환 지점을 ‘야생의 늑대’로 설정했습니다. 투쟁과 정복이 본성의 핵심이라 본 것입니다. 반면 현대 과학은 개의 본성을 ‘인간과 공존하는 다정한 늑대’로 정의합니다. 본성을 무엇으로 규정하느냐에 따라 존재의 의미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흐릅니다. 야생을 기준으로 삼으면 본성은 투쟁이 되고, 관계를 기준으로 삼으면 본성은 협력이 됩니다. 그렇다면 인간의 본성은 어디에 더 가까울까요? 오직 살아남기 위한 야성일까요, 아니면 함께 살아가기 위한 다정함일까요? 소설 후반부, 벅과 존 숀턴의 관계는 이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제공합니다. 혹독한 생존의 법칙을 체득한 존 숀턴은 벅이 학대받는 순간 자신의 안전을 뒤로하고 그를 지켜냅니다. 벅 또한 주인을 위해 얼음처럼 차가운 강물에 몸을 던지고, 500kg이 넘는 썰매를 끌어내는 기적을 보여줍니다. 이 뜨거운 교감은 단순한 야생의 법칙으로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이는 브라이언 헤어가 말한 명제,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라는 주장과 맞닿아 있습니다. 인류가 문명을 이룬 핵심은 날카로운 이빨이 아니라, 서로를 돌보는 협력이었기 때문입니다.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는 문명의 시작을 ‘부러졌다가 회복된 흔적이 있는 원시인의 다리뼈’에서 찾았습니다. 야생에서 다리가 부러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합니다. 그럼에도 뼈가 아물었다는 사실은 누군가가 그를 위해 먹이를 구해주고, 포식자로부터 지켜주며 정성껏 돌봤다는 증거입니다. 문명은 총이나 바퀴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은 '돌봄의 흔적'에서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것입니다. 알래스카의 설원을 달리는 벅의 뒷모습을 따라가다 다시 현실의 엘리베이터로 돌아옵니다. 협력과 다정함이 생존의 열쇠였던 조상들과 달리, 우리는 편리함이라는 문명 속에서 오히려 서로를 단절시키며 고립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쩌면 진짜 본성을 잃어버린 존재는 문명 안에서 타인에 대한 감각을 닫아버린 우리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강아지와 주인이 먼저 내립니다. 저는 멀어지는 뒷모습을 향해 손바닥을 들어 조용히 배웅합니다. ‘안녕, 잘 가.’
다양한 의견과 정보를 접하면서 함께 책을 읽을 수 있어 즐거웠습니다.
멋진 리뷰네요. RAMO님의 글을 읽으면서 말씀하신 것처럼 환경이 존재를 어떻게 변화시키는 지를 다시 한번 생각해보게 되었어요. 이 책을 읽은 뒤부터 지나치며 '귀엽다'고 보았던 반려견들이 다시 보이더라구요. 저 녀석들의 야성은 어떤 모습일까? 란 생각도 들구요. 좋은 감상평 잘 읽었습니다.
글 감사히, 그리고 아주 찡하게 잘 읽었습니다. 마치 한 편의 초단편 소설을 읽은 듯한 여운이 남네요. 120년 전 잭 런던이 알래스카 설원에서 캐낸 질문이, 오늘날 우리가 매일 오르내리는 엘리베이터 안의 풍경과 절묘하게 '통!' 하고 맞닿는 지점에서는 전율이 돋습니다. '띵-' 하는 소리와 함께 현실로 돌아오는 마지막 문장까지 완벽하게 몰입되었습니다. 우리는 현대 문명의 결핍을 과학기술이나 거창한 사회학적 담론으로 채우려 애쓰지만, 사실 우리를 구원하는 건 말씀하신 협력, 다정함, 그리고 타인/타자와의 연결 감각이라는 근본적인 가치임을 요즘 들어 더 절실히 깨닫고 있습니다. 특히 라모님께서 ‘부러졌다 회복된 다리뼈'를 사례로 들어 문명의 기원을 짚어주신 부분은, 점점 더 고립돼가는 현대인들이 주목해야 할 지점이 아닐까 싶습니다. 모임을 마무리해가는 이 시점에, 우리의 본성을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깊이 있는 글로 정리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야생을 기준으로 삼으면 본성은 투쟁이 되고, 관계를 기준으로 삼으면 본성은 협력이 된다는 말씀과 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와 연결시키신 점이 인상깊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동작을 멈추는 것, 떠나 버리는 것, 생물의 목숨을 앗아 가는 것, 그것이 죽음이라는 걸 벅은 알았다. 그는 손턴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그에게 커다란 공허감을 주었다. 그 공허감은 배고픔과 비슷했으나 벅은 아프고 또 아팠다. 어떤 음식으로도 채울 수 없는 아픔이었다. 때로 이해츠 족의 시체를 바라보며 생각에 잠길 때 벅은 그 아픔을 잊었다. 그리고 자신을 자랑스럽게, 지금까지의 경험 가운데 가장 자랑스럽게 느꼈다. 그는 가장 고귀한 사냥감인 인간을 죽였다. 그것도 곤봉과 송곳니가 지배하는 법칙에 따라 죽였다. 그는 호기심에 가득 차서 죽은 몸들에 코를 대고 흥흥거렸다. 이렇게 쉽게 죽을 수 있다니. 에스키모개들을 죽일 때보다 훨씬 더 쉬웠다. 곤봉과 창과 화살이 없다면 인간은 결코 그의 맞수가 될 수 없었다. 이제부터 인간이 손에 창과 화살과 곤봉을 들고 있지 않을 때에는 전혀 그들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다.
야성의 부름 128쪽,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해마다 여름이면 한 방문객이 그 계곡을 찾는데 이해츠 족은 그 사실을 모른다. 그놈은 찬란하게 빛나는 털로 뒤덮인 커다란 늑대인데 다른 늑대들과 비슷하면서도 어딘지 다르다. 그는 홀로 부드러운 숲을 건너 나무들 사이에 있는 공터로 내려간다. 썩은 사슴 가죽 자루들에서 누런 물줄기가 흘러나와 땅에 스며드는데, 주위에 풀들이 기다랗게 자라나 있고 식물들이 우거져서 그 누런 색깔을 보이지 않게 가린다. 그는 여기에서 잠시 동안 뭔가 생각하다가 떠나기 전에 한 번, 아주 길고 슬프게 운다.
야성의 부름 132쪽, 잭 런던 지음, 권택영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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