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D-29
왜 본의 아니게 저지른 잘못으로 이렇게 심한 고생을 해야 하는가?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그 답은 없었다. 생각이 더욱 복잡해질 뿐이었다. 그는 내다 버린 자신의 쌍둥이들이 떠올랐다. 그 아이들이 무슨 죄가 있단 말인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49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자네는 자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사람이라 생각하는가? 평생 동안이나 추방당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얌도 자식까지도 모든 것을 잃은 사람도 있다는 것을 아는가? 난 한때 아내가 여섯이었지. 지금은 왼쪽과 오른쪽도 구별 못 하는 저 여자 아이밖에 남지 않았지. 내가 아이들을, 내 젊고 팔팔했던 시절에 낳은 아이들을 몇이나 땅에 묻었는지 아는가? 스물둘이야. 난 목을 매지 않고 아직도 살아 있네. 자네가 이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사람이라고 생각한다면, 내 딸 아케우니는 쌍둥이를 몇이나 낳고 버렸는지 물어보게나. 여자들이 죽으면서 부르는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좋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60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지금 완독했습니다. 이 책에서의 무자비한 침입은 종교라기 보단 공권력이네요. 뭐 항상 그렇지만요. 마지막 부분에 치안판사의 역할이 커지면서 아프리카 지역에 파견된 치안판사의 고뇌와 제국주의를 그린 '야만인을 기다리며'가 다시 읽고 싶어졌습니다. 영화도 꽤 재미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야만인을 기다리며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74권. 2003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J. M. 쿳시의 대표작. 어느 제국의 변경 도시를 통치하는 치안판사인 '나'의 자기고백적 서사를 통해 제국주의의 모순을 비판하고 제국에 공모하는 개인의 허위를 폭로한다.
바바리안점령지 치안관 ‘마크 라이런스’는 원주민과 함께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던 중 잔인한 국경 부대가 들어와 원주민 말살 정책을 펼치고 한순간에 마을의 평화는 사라진다. 마크는 우연히 부상을 당한 원주민 여자 아이를 만나게 되고 그녀를 구하기 위해 인생을 건 고독한 여정을 시작하는데...
치안판사 얘기를 해주시니 드는 생각인데... 3장에서 판사가 자리를 비우고나서 오콩코와 원로들이 당한 수모를 치안판사도 이미 다 알고 의도한 게 아닐까 싶더라고요. 본인 손에 피는 안묻히면서 더러운 일은 남들에게 맡기고 본인은 점잖은 권력자인 척 뒤로 빠져있던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저도 그렇게 생각했어요.
사람이 “예.”라고 말하면 자신의 치 또한 “예.”라고 한다는 어르신들의 말은 사실이 아니었다. 여기에 자신이 “예.”라고 해도 치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55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누구에게 좋다는 것인가? 좋은 사람은 어느 누구도 없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60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사실이 아닌 얘기란 없는 것이지." 우첸두가 말했다. "세상엔 이것이다 하는 끝은 없는 법이어서, 어떤 종족에게 좋은 것이 다른 종족에게는 싫은 것이 되지. 우리에겐 문둥이가 있지. 백인들이 자신들과 비슷한 사람들이 사는 땅으로 가는 중에 길을 잃어 여기로 잘못 흘러든 거겠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67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한번은 어머니 솔개가 딸에게 먹이를 가져오라 심부름을 시켰지. 딸이 가서, 오리 새끼를 가지고 돌아왔네. ‘잘했다.’ 어머니 솔개가 딸에게 말했지. ‘그런데, 네가 내려가 새끼를 낚아채자 어미 오리가 뭐라 말하더냐?’ ‘아무 말도 하지 않았어요. 그냥 걸어가던데요.’ 어린 솔개가 말했지. 그러자 ‘오리 새끼를 돌려주어야겠다. 그런 침묵 뒤엔 불길한 뭔가가 있지.’ 라고 어머니 솔개가 말했지. 그래서 딸 솔개는 오리 새끼를 돌려주고 대신 병아리를 가져왔지. ‘병아리 어머니가 어떻게 하더냐?’ 라고 어머니 솔개가 물었다. ‘울고 소리를 지르며 내게 욕을 했어요.’ 라고 아이 솔개가 대답했지. ‘그렇다면 병아리를 먹어도 되겠구나.’ 라고 어머니가 말했지. ‘소리를 지르는 사람은 무서울 게 전혀 없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66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산 자의 땅은 돌아가신 선조들의 영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두 영역은 서로 오갔으며, 축제 때와 나이 많은 남자가 죽었을 때는 특히 그랬다. 이런 이들이 선조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자의 일생은 자신의 조상에 점점 가까이 가는 일련의 통과의례였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45-146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2부까지 읽다보니 생각난 얘기인데,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서(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진 종교가 기독교라고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이슬람교였지만 최근들어 역전되었다고 하더군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도 아프리카 국가에 있다고 하고요. 유럽에선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는 기독교가 아프리카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만한 현상인 것 같습니다.
작가는 우무오피아로 대표되는 당시 19세기 아프리카 전통과 문화의 와해는 양쪽 모두에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이그보인들은 자신들의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방관하거나, 아예 인지 자체를 못하고 있었고 서구 열강은 그 틈을 노리고 들어와 기존 사회의 전통을 빠르게 무너뜨렸음을 2장에서 함축적으로 보여준 느낌입니다. 물리적인 억압이나 지배가 아니라, 기독교의 교육과 보편적 평등의 믿음이라는 순기능의 가치가 오히려 이그보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가며 기존 가치를 위협하는 모습이 의미심장했는데요. 해와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옛날 우화가 생각났습니다. 시작은 오콩코와 우무오피아의 가혹함이었을지 몰라도 그 전복의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기독교의 포용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 하네요. 치누아 아체베는 1975년에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을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했는데요. 조지프 콘래드는 1900년대 사람이라 시기적으로 차이가 상당히 있기도 하거니와, <어둠의 심장>을 직접 읽어본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인종차별적인 표현이 나오나 싶었습니다. 아마 주인공과 콘래드의 시선에서 봤을 때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생활하는 현지부족들의 개화되지 않은 모습을 묘사한 문장을 말하는 것 같더군요.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콘래드는 그 당시 사람으로서는 최대한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민낯을 표현하는데 노력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 현지문화와 서구문명의 진입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 두 작가의 관점이 차이가 나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콘래드가 '문명화 된 서구가 가리고 있는 탐욕'을 고발하는데 비해, 치누아 아체베 작가는 두 문화가 각각 어떻게 전통을 무너뜨리는 방아쇠가 되었는지를 잔잔히 보여주거든요. 전자는 빽빽해서 속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두운 정글 밀림이 배경이라 작품이 내내 어두운데 비해, 후자는 전반적으로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밝고 높게 뜬 태양이 느껴지는 대비도 있고요.
어둠의 심장폴란드 태생이지만 영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 조지프 콘래드의 대표작. 시인이자 현재 가장 주목받는 영문학 번역가인 황유원이 ‘어둠의 심장’이란 좀 더 자연스러운 제목을 붙였고, 또한 오늘날의 독자들이 깊고 짙은 콘래드 문체의 숲을 부드럽게 통과할 수 있도록 새롭게 번역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에 마음이 사로잡힌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름은 은워예로 오콩코의 장남이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삼위일체의 이상한 논리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새로운 종교의 시, 뼛속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이 그를 사로잡았다. 어둠과 공포 속에 앉아 있는 형제들에 대한 찬송은 이 젊은 영혼을 괴롭혀 온 막연히 계속되는 의문에 답하는 것 같았다. 숲 속에서 울고 있는 쌍둥이와 죽은 이케메푸나에 대한 문제였다. 찬송이 그의 목마른 영혼에 쏟아지자 마음 깊숙이 어떤 위안을 느꼈다. 찬송의 노랫말은 헐떡이는 대지의 메마른 입술에 언 빗방울이 떨어져 녹는 것 같았다. 은워예의 어린 마음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71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이 부분 정말 몰입되더라고요. 울고 있는 쌍둥이와 죽은 이케메푸나...
찬송을 하나님을 위해 찬양하는 목적외엔 절대 감정적으로 듣지 말라고 교회에서 듣고 자랐는데 음악을 어찌 감정없이 들을 수 있을까란 생각도 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제자인 2/20일부터 일정상 3부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기에 대화나 문장수집에서 내용이 언급될 수 있습니다. 아직 작품을 읽고 계신 분들은 들어올 때 유념해주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느덧 마지막 3부 일정입니다. 내용이 짧고 다소 직선적인 느낌이 들지만 잔잔했던 1부에 비해 2부부터 시작하여 이야기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제목 그대로 '산산이 부서져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는데요. 3부의 짧으면서도 강렬한 결말을 함께 얘기하겠습니다. 1) 3부에 나온 치안판사를 보며 어떤 인물이라고 느끼셨나요? 2) 은워예의 앞날은 어떨 것으로 상상하시나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여 자신의 길을 그대로 이어갈 것 같나요? 아니면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할 것 같은가요? 3) 작품의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콩코의 선택이 이해가 되거나 공감이 되셨나요? 본인이 오콩코의 상황이었더라면 어떤 결단을 내렸을 것 같나요?
1) 은화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교활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야만인을 기다리며'와는 좀 대조되는 인물이면서 정형화된 제국주의의 권력자?이기도 하고요. '야만인을 기다리'에서는 치안판사마저도 영국의 장군인지에겐 참 하찮은 존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인간은 본인이 최고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장소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그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라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전형적인 중간 권력자의 모습이었어요. 2) 전 은워예가 치누아 아체베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라 생각했어요. 아마 후회 보다는 '합리화된 자기만족'을 하며 별볼일 없이 살다 별볼일없이 죽을 것 같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탈출해 다른 사회에 가더라도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그 사회에서도 부유할 수 밖에 없잖아요. 은웨예가 탈출까지는 성공했지만, 완전한 탈출이 아닌 원래 사회와 서구 제국주의에 걸친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3) 너무 급작스러운 결말이라 마지막 페이지 앞쪽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어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 듯했어요. 하지만, 오콩코의 성격으로 미루어 봤을 때 굴욕적인 유배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고, 이번엔 왠지 유배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선택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다'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은워예가 치누아 아체베의 어린 시절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머니와 이케메푸나가 들려주는 민담을 좋아하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할아버지 우노카를 닮은 모습들을 보면서요. 은워예도 아마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 신선한 해석이네요. 두 분처럼 작가와 연관지어서 생각해보지는 않았네요. 그러고 보니 이 책이 주는 시선이 왠지 우노카와 은워예에 대해 은근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우노카는 책임감 없는 가장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음에도 자유로운 인물로 그리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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