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D-29
산 자의 땅은 돌아가신 선조들의 영역에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두 영역은 서로 오갔으며, 축제 때와 나이 많은 남자가 죽었을 때는 특히 그랬다. 이런 이들이 선조와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남자의 일생은 자신의 조상에 점점 가까이 가는 일련의 통과의례였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45-146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2부까지 읽다보니 생각난 얘기인데, 현재 아프리카 대륙에서(특히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서) 가장 많은 신자를 가진 종교가 기독교라고 들었습니다. 과거에는 이슬람교였지만 최근들어 역전되었다고 하더군요. 세계에서 가장 큰 교회도 아프리카 국가에 있다고 하고요. 유럽에선 갈수록 쇠퇴하고 있다는 기독교가 아프리카에서 열광적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가 무엇인지, 생각해볼 만한 현상인 것 같습니다.
작가는 우무오피아로 대표되는 당시 19세기 아프리카 전통과 문화의 와해는 양쪽 모두에 원인이 있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이그보인들은 자신들의 내부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방관하거나, 아예 인지 자체를 못하고 있었고 서구 열강은 그 틈을 노리고 들어와 기존 사회의 전통을 빠르게 무너뜨렸음을 2장에서 함축적으로 보여준 느낌입니다. 물리적인 억압이나 지배가 아니라, 기독교의 교육과 보편적 평등의 믿음이라는 순기능의 가치가 오히려 이그보 사이에 빠르게 퍼져나가며 기존 가치를 위협하는 모습이 의미심장했는데요. 해와 바람이 나그네의 옷을 벗기는 옛날 우화가 생각났습니다. 시작은 오콩코와 우무오피아의 가혹함이었을지 몰라도 그 전복의 과정에서 가장 결정적인 전환점은 기독교의 포용이라는 게 참 아이러니 하네요. 치누아 아체베는 1975년에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장>을 인종차별적이라고 비판했는데요. 조지프 콘래드는 1900년대 사람이라 시기적으로 차이가 상당히 있기도 하거니와, <어둠의 심장>을 직접 읽어본 제 입장에서는 그렇게까지 인종차별적인 표현이 나오나 싶었습니다. 아마 주인공과 콘래드의 시선에서 봤을 때 아프리카의 오지에서 생활하는 현지부족들의 개화되지 않은 모습을 묘사한 문장을 말하는 것 같더군요. 개인적으로는 그래도 콘래드는 그 당시 사람으로서는 최대한 중립적인 시선을 유지하면서 오히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민낯을 표현하는데 노력한 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프리카 현지문화와 서구문명의 진입이라는 주제를 놓고 이 두 작가의 관점이 차이가 나는 게 흥미롭더라고요. 콘래드가 '문명화 된 서구가 가리고 있는 탐욕'을 고발하는데 비해, 치누아 아체베 작가는 두 문화가 각각 어떻게 전통을 무너뜨리는 방아쇠가 되었는지를 잔잔히 보여주거든요. 전자는 빽빽해서 속을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어두운 정글 밀림이 배경이라 작품이 내내 어두운데 비해, 후자는 전반적으로 아프리카 하면 떠오르는 밝고 높게 뜬 태양이 느껴지는 대비도 있고요.
어둠의 심장폴란드 태생이지만 영문학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작가의 반열에 오른 조지프 콘래드의 대표작. 시인이자 현재 가장 주목받는 영문학 번역가인 황유원이 ‘어둠의 심장’이란 좀 더 자연스러운 제목을 붙였고, 또한 오늘날의 독자들이 깊고 짙은 콘래드 문체의 숲을 부드럽게 통과할 수 있도록 새롭게 번역했다.
하지만 거기에는 이에 마음이 사로잡힌 한 젊은이가 있었다. 이름은 은워예로 오콩코의 장남이었다. 그를 사로잡은 것은 삼위일체의 이상한 논리가 아니었다. 그는 그것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새로운 종교의 시, 뼛속으로 느껴지는 어떤 것이 그를 사로잡았다. 어둠과 공포 속에 앉아 있는 형제들에 대한 찬송은 이 젊은 영혼을 괴롭혀 온 막연히 계속되는 의문에 답하는 것 같았다. 숲 속에서 울고 있는 쌍둥이와 죽은 이케메푸나에 대한 문제였다. 찬송이 그의 목마른 영혼에 쏟아지자 마음 깊숙이 어떤 위안을 느꼈다. 찬송의 노랫말은 헐떡이는 대지의 메마른 입술에 언 빗방울이 떨어져 녹는 것 같았다. 은워예의 어린 마음은 어찌할 바를 몰랐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171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이 부분 정말 몰입되더라고요. 울고 있는 쌍둥이와 죽은 이케메푸나...
찬송을 하나님을 위해 찬양하는 목적외엔 절대 감정적으로 듣지 말라고 교회에서 듣고 자랐는데 음악을 어찌 감정없이 들을 수 있을까란 생각도 했어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제자인 2/20일부터 일정상 3부와 결말이 포함되어 있기에 대화나 문장수집에서 내용이 언급될 수 있습니다. 아직 작품을 읽고 계신 분들은 들어올 때 유념해주세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느덧 마지막 3부 일정입니다. 내용이 짧고 다소 직선적인 느낌이 들지만 잔잔했던 1부에 비해 2부부터 시작하여 이야기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것이 제목 그대로 '산산이 부서져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는데요. 3부의 짧으면서도 강렬한 결말을 함께 얘기하겠습니다. 1) 3부에 나온 치안판사를 보며 어떤 인물이라고 느끼셨나요? 2) 은워예의 앞날은 어떨 것으로 상상하시나요? 자신의 선택에 만족하여 자신의 길을 그대로 이어갈 것 같나요? 아니면 스스로의 선택을 후회할 것 같은가요? 3) 작품의 결말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콩코의 선택이 이해가 되거나 공감이 되셨나요? 본인이 오콩코의 상황이었더라면 어떤 결단을 내렸을 것 같나요?
1) 은화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교활한 인물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야만인을 기다리며'와는 좀 대조되는 인물이면서 정형화된 제국주의의 권력자?이기도 하고요. '야만인을 기다리'에서는 치안판사마저도 영국의 장군인지에겐 참 하찮은 존재였던 걸로 기억합니다. 인간은 본인이 최고의 지위를 누릴 수 있는 장소에서 어떻게 행동하느냐가 그 인간의 진정한 모습이라 생각하는데, 제가 생각하는 가장 전형적인 중간 권력자의 모습이었어요. 2) 전 은워예가 치누아 아체베 작가 자신의 페르소나 같은 존재라 생각했어요. 아마 후회 보다는 '합리화된 자기만족'을 하며 별볼일 없이 살다 별볼일없이 죽을 것 같습니다. 현재 상황에서 탈출해 다른 사회에 가더라도 본인의 의지가 확고하지 않으면 그 사회에서도 부유할 수 밖에 없잖아요. 은웨예가 탈출까지는 성공했지만, 완전한 탈출이 아닌 원래 사회와 서구 제국주의에 걸친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3) 너무 급작스러운 결말이라 마지막 페이지 앞쪽을 몇 번이나 다시 읽었어요. 그야말로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진 듯했어요. 하지만, 오콩코의 성격으로 미루어 봤을 때 굴욕적인 유배도 다시는 하고 싶지 않고, 이번엔 왠지 유배에서 끝날 것 같지 않은 상황에서 그런 선택은 그야말로 '어쩔 수 없다'였던 것 같습니다.
저도 은워예가 치누아 아체베의 어린 시절 모습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어머니와 이케메푸나가 들려주는 민담을 좋아하고, 예술적 감수성이 풍부했던 할아버지 우노카를 닮은 모습들을 보면서요. 은워예도 아마 작가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오.. 신선한 해석이네요. 두 분처럼 작가와 연관지어서 생각해보지는 않았네요. 그러고 보니 이 책이 주는 시선이 왠지 우노카와 은워예에 대해 은근히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특히 우노카는 책임감 없는 가장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음에도 자유로운 인물로 그리고 있죠.
전 우노카가 오콩코 같은 성격의 자식에겐 최악의 아버지였을 수는 있지만, 인생을 여유롭게 노래하며 즐기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이었을까 싶어요. 배짱이 같은 면이 있지만, 남을 해하지 않은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우무오피아 같은 부족에서 태어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였다면 경제력은 없어도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한량같은 아버지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요?
우노카는 음악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전쟁은 싫어하고 성격도 다정하죠. 빈둥거리다 빚더미에 앉아서 가족을 고생시킨 게 치명적인 단점인데… 성격도 안 좋고 경제력도 없는 최악의 부친에 비하면 양반이긴 합니다. 오콩코는 아버지의 “게으름”과 “친절함”이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둘다 한동가리로 미워해버린 것 같아요. 친절하면서도 충분히 부지런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물론 아버지 대신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고생한 아들 입장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뭐든 적당한 성격 또는 중용이 역시 필요하네요. 우노카가 더 가정을 신경썼더라면 오콩코의 삶의 궤적도 달라졌을테고.. 그러면 은워예와 그의 가족들도 앞날이 달라졌을텐데 말이죠. 한 명의 삶이 이후의 후세에까지 영향을 주는 모습이 나비효과처럼 다가오네요.
오콩코는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둘 중 하나밖엔 남은 길이 없었을 것 같네요. “아버지가 치욕스럽게 살고 부끄럽게 죽었다는 두려움, 아버지를 닮은 것같이 보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평생을 사로잡혀 살았지만 결국엔 자신도 그렇게 되어버린 셈이니까요. 대지의 여신에게 미움받는 죽음을 맞은 것도 아버지랑 똑같고요. 아니 어쩌면 더한 “실패자”가 된 거죠. 그의 부족은 부서지고 갈라져 버렸고, 부족에서 가장 높은 칭호를 받기는커녕 그렇게 증오하던 이방인들이 자기 시신을 치우게 생겼고, 마지막 가는 길에 치안판사 모가지를 딴 것도 아니고 우무루 출신 앞잡이 하나 보냈고… 그의 삶은 판사놈 쓰레기같은 책 속의 몇개 단락 정도로만 남을 것이고…
계속 살아 있었으면 그게 부족이나 가족들에게 화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이야 그런 지위와 나이가 안 되니 가족들만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지만, 오콩코 같은 스타일이 권력을 잡으면 제일 안 되는 스타일 같아요.
저도 동감합니다. 아마 오콩코가 추장이나 그에 준하는 자리에 올랐다면, 당장의 수모는 피할지 몰라도 결국 옆마을에서 일어난 학살극처럼 비극을 피하지 못했을 것 같네요. 물론 오콩코 사후에 우무오피아에 닥쳐올 일은 역사를 생각하면 이쪽도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만.. 전 어떤 경우라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남아 뭐라도 도모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제3세계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된 고통을 생각하면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해야 할지 확신이 안서네요. 오콩코의 죽음이 마을의 입장에서 오히려 몰살을 피할 수 있는 차선인지, 아니면 그의 죽음으로 인해 결국 다가올 외세의 점령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차악인지 생각하게 만드네요.
은워예의 앞날은... 당시 역사적 기록을 통해 유추해 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심성이 다정한 인물이니 역사의 풍파 속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듭니다. 오콩코가 혼자서 전쟁을 나서듯이 혈전을 감행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목숨을 끊어서 당황했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보복이 돌아올 게 분명하니 감행하지 못하고, 절망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상황을 정리한 것 같습니다.
일곱 해는 부족을 떠나 있기엔 너무 긴 세월이었다. 한 남자의 위치는 항상 그대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떠나자마자 다른 이가 일어나 그 자리를 채웠다. 부족은 도마뱀과 같다. 꼬리를 잃으면 곧 또 다른 꼬리가 자란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201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본인이 대체 가능하다는 점도 오콩코는 참을 수 없었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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