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D-29
전 우노카가 오콩코 같은 성격의 자식에겐 최악의 아버지였을 수는 있지만, 인생을 여유롭게 노래하며 즐기는 모습이 다른 사람들에게 해악이었을까 싶어요. 배짱이 같은 면이 있지만, 남을 해하지 않은 괜찮은 사람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우무오피아 같은 부족에서 태어나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였다면 경제력은 없어도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한량같은 아버지 정도는 되지 않았을까요?
우노카는 음악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전쟁은 싫어하고 성격도 다정하죠. 빈둥거리다 빚더미에 앉아서 가족을 고생시킨 게 치명적인 단점인데… 성격도 안 좋고 경제력도 없는 최악의 부친에 비하면 양반이긴 합니다. 오콩코는 아버지의 “게으름”과 “친절함”이 서로 인과관계가 있다고 생각해 둘다 한동가리로 미워해버린 것 같아요. 친절하면서도 충분히 부지런할 수 있는 건데 말이죠. 물론 아버지 대신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고생한 아들 입장이 이해되기도 합니다..
뭐든 적당한 성격 또는 중용이 역시 필요하네요. 우노카가 더 가정을 신경썼더라면 오콩코의 삶의 궤적도 달라졌을테고.. 그러면 은워예와 그의 가족들도 앞날이 달라졌을텐데 말이죠. 한 명의 삶이 이후의 후세에까지 영향을 주는 모습이 나비효과처럼 다가오네요.
오콩코는 죽거나 혹은 미치거나, 둘 중 하나밖엔 남은 길이 없었을 것 같네요. “아버지가 치욕스럽게 살고 부끄럽게 죽었다는 두려움, 아버지를 닮은 것같이 보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평생을 사로잡혀 살았지만 결국엔 자신도 그렇게 되어버린 셈이니까요. 대지의 여신에게 미움받는 죽음을 맞은 것도 아버지랑 똑같고요. 아니 어쩌면 더한 “실패자”가 된 거죠. 그의 부족은 부서지고 갈라져 버렸고, 부족에서 가장 높은 칭호를 받기는커녕 그렇게 증오하던 이방인들이 자기 시신을 치우게 생겼고, 마지막 가는 길에 치안판사 모가지를 딴 것도 아니고 우무루 출신 앞잡이 하나 보냈고… 그의 삶은 판사놈 쓰레기같은 책 속의 몇개 단락 정도로만 남을 것이고…
계속 살아 있었으면 그게 부족이나 가족들에게 화가 되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지금이야 그런 지위와 나이가 안 되니 가족들만 자기 뜻대로 하려고 하지만, 오콩코 같은 스타일이 권력을 잡으면 제일 안 되는 스타일 같아요.
저도 동감합니다. 아마 오콩코가 추장이나 그에 준하는 자리에 올랐다면, 당장의 수모는 피할지 몰라도 결국 옆마을에서 일어난 학살극처럼 비극을 피하지 못했을 것 같네요. 물론 오콩코 사후에 우무오피아에 닥쳐올 일은 역사를 생각하면 이쪽도 암울한 미래가 기다리고 있지만.. 전 어떤 경우라도 죽는 것보다는 살아남아 뭐라도 도모하는 것이 낫다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오랜 기간 제3세계가 서구 열강의 식민지가 된 고통을 생각하면 무엇이 정답이라고 말해야 할지 확신이 안서네요. 오콩코의 죽음이 마을의 입장에서 오히려 몰살을 피할 수 있는 차선인지, 아니면 그의 죽음으로 인해 결국 다가올 외세의 점령을 방관할 수밖에 없는 차악인지 생각하게 만드네요.
은워예의 앞날은... 당시 역사적 기록을 통해 유추해 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래도 심성이 다정한 인물이니 역사의 풍파 속에서 의미있는 역할을 해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듭니다. 오콩코가 혼자서 전쟁을 나서듯이 혈전을 감행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갑자기 목숨을 끊어서 당황했습니다. 그렇게 했다가는 부족에게 돌이킬 수 없는 보복이 돌아올 게 분명하니 감행하지 못하고, 절망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상황을 정리한 것 같습니다.
일곱 해는 부족을 떠나 있기엔 너무 긴 세월이었다. 한 남자의 위치는 항상 그대로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가 떠나자마자 다른 이가 일어나 그 자리를 채웠다. 부족은 도마뱀과 같다. 꼬리를 잃으면 곧 또 다른 꼬리가 자란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201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본인이 대체 가능하다는 점도 오콩코는 참을 수 없었겠죠.
본인이 대체된다는 굴욕감과 수치심도 있고, 또 생각해 보면 그가 추구했던 전통적인 마을의 권력과 지위가 이제 아무런 쓸모가 없어졌다는 데서 목표가 사라진 점도 클 것 같네요. 칭호를 받아 한 단계씩 올라 추장까지 노리던 오콩코였으나, 자신을 비롯한 마을의 권력자들이 고작 치안판사와 그 무리에게 수모를 당했으니까요. 그가 꿈꿨던 목표는 아무 것도 아니었으며, 오히려 그보다 더 높은 자리 더 강한 강자(치안판사-여왕)들이 자신 위에 있다는 것을 깨달으면서 말 그대로 오콩코의 인생관과 가치관이 다 산산조각 났겠죠. 악착같이 버티며 살아온 그의 인생이 우물 안 개구리처럼 좁은 세상에 불과하며, 그의 노력과 수고가 부정 당하는 경험은 곧 자기 자신에 대한 부정이었을 겁니다. 아버지와 그의 생애가 싫어서 정 반대편의 노선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왔는데 그 길마저도 답이 아니었다는 자각을 한다면.. 씁쓸하다 못해 감당이 안될 것 같네요.
“달빛 내리는 마을에 자리를 잡고 함께 모이는 것은 달 때문이 아니지. 달은 누구나 자기 집에서 볼 수 있을 테니까. 우리가 모인 것은 친족들이 모이는 것이 좋은 일이여서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19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우리가 이 일을 그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은 우리가 그의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듯이 그가 우리의 관습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가 우리 관습을 모르니 그를 바보라 부르는 게고, 아마도 우리 역시 그의 관습을 모르니 그도 우리를 바보라 부르겠지. 그에게 사라지라고 해라.”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224,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우린 당신들이 행복할 수 있도록 당신들에게 평화로운 통치 체제를 가져왔습니다. 누군가 당신들을 괴롭히면 우리가 구하러 올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당신들이 다른 사람들을 괴롭히도록 놔두지도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법정을 세워 위대한 여왕님이 다스리시는 영국에서처럼 사건을 간결하고 정의를 구현합니다. … 이런 일은 이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통치자이신 우리 여왕님의 영토 안에서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입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227~228,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그날은 보름 때였다. 하지만 그날 밤 아이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이 보름달 놀이를 위해 항상 모여들었던 마을의 일로는 텅 비었다. 이구에도의 여자들은 마을에 선보일 새로운 춤을 배우기 위해 비밀스러운 곳에 모이지도 않았다. 젊은 남자들은 보름 땐 항상 나돌아 다녔지만 이날 저녁엔 집을 지켰다. 이들이 친구나 연인을 만나러 가는 경우에도 마을 길 위에선 더 이상 남자다운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우무오피아는 귀를 쫑긋 세운 채 조용하고 심상찮은 공기를 킁킁거리면서 어디로 도망가야 할지 모르는 놀란 동물과도 같았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230,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백인이 땅에 대한 우리의 관습을 알기나 하는가?” “우리말조차 하지 못하는데 어떻게 알겠나. 그런데도 백인은 우리 관습이 나쁘다고 말하네. 게다가 백인의 종교를 받아들인 우리 형제들마저 우리의 관습이 나쁘다고 말한다네. 우리 형제들이 우리에게 등을 돌렸는데 어떻게 우리가 싸울 수 있겠는가? 백인은 대단히 영리하네. 종교를 가지고 아무 말 없이 조용히 들어왔네. 우리는 그의 바보짓을 즐기면서 여기에 머물도록 했네. 이제 그가 우리 형제들을 손에 넣었고, 우리 부족은 더 이상 하나로 뭉쳐 행동하지 않네. 그가 우리를 함께 묶어 두었던 것들에 칼을 꽂으니 우리는 산산이 부서지고 말았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207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기다리던 배경들이 갑자기 혼란스럽게 살아났고 집회는 멈추었다. 오콩코는 죽은 남자를 응시하며 서 있었다. 그는 우무오피아가 전쟁을 하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 그것은 군중이 다른 전령들을 도망가도록 놔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군중은 행동하는 대신 혼란에 빠졌다. 그는 이런 혼란에 내재한 두려움을 감지했다. 그에게 이렇게 묻는 목소리도 들렸다. “왜 이런 짓을 한 거야?” 그는 도끼를 모래에 닦고 떠났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240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책은 꾸준히 따라 읽었는데 활발하게 활동을 못했습니다. 한창 바쁠 시기인걸 알면서 신청을 한 제잘못이에요. ㅠㅠ
괜찮습니다! 저도 사실.. 직무 특성상 1~2월이 가장 바쁜 달이라 이번에는 간신히 따라가며 하고 있습니다.. 😂
은화님도 바쁘신 일상중에 시간 쪼개어 독서중이시군요? 건강도 잘 챙기세요~~
새벽서가님~우리 꼭 다른 방에서도 만나요. 그리고 이 방도 아직 열려 있으니 조금씩 읽으면서 참여하시는 것도 좋을 거 같고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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