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D-29
3월엔 봄방학이 있어서 느낌 좋은 책 찾아보는 중이에요. 다른 모임에서 뵐게요. ^^
(236쪽) “두렵냐고? 나는 그자가 ‘자네’ 마을 사람들한테 하는 일엔 관심이 없네. 나는 그자와 그자의 말에 귀 기울이는 마을 사람들을 경멸하네. 선택하라면 난 혼자서라도 싸우는 걸 택하겠네.” 이 대목에서 오콩코가 절친 오비에리카와 자기 마을 사람들을 두고 ‘자네’ 마을 사람들이라고 표현하네요. 오콩코는 마을 사람 누구도 자신의 주장을 따르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고, 곧 다가올 마지막도 예견하고 있었나 봅니다. ‘겁쟁이인 마을 사람들’과 ‘강한 전사인 나’ 사이에 선을 긋고 벽을 치는 오콩코를 보며, 이미 붕괴된 공동체의 현실과 오콩코의 독선, 고립을 느낄 수 있었어요.
1) 치안판사의 점령과 지배의 방식은 어찌 보면 앞의 두 선교사들의 특징을 모두 취한 면모 같습니다. 처음 온 토마스 선교사는 최대한 현지 주민들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포용과 개방을 통해 마을에 스며들어 사람들의 호감을 얻었죠. 반면 뒤이어 온 선교사(반납해서 이름이 기억이 안나네요.)는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굽히지 않으며, 오히려 이를 우무오피아에 강요하고 주민들의 문화를 배려하지 않는 독단성을 보이죠. 치안판사는 겉으로 보기에는 온유한 관리이자 영국을 대표하는 법의 대리인으로서 점잖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오콩코와 같은 관리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지 않고, 그들을 대접하는 행동이나 말투죠. 하지만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위해서는 외부의 인원들을 불러들여 물리력을 대신 행사하게 합니다. 채찍과 당근을 모두 쓰는 사람 같다고 해야 할까요. 앞의 두 선교사가 우무오피아에 침투하기 위한 시도의 느낌이라면, 치안판사는 이제 벌어진 틈에 자리를 잡고 앉아 두 방법을 모두 휘두르며 마을을 쥐락펴락 하는 모습입니다. 선교사들은 방법은 다를지라도 모두 '종교적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면, 치안판사는 이제 지배자로서 상대를 물리적으로/정신적으로 복속시키기 위한 '수단을 가리지 않는 위정자'의 면모가 더 부각되네요. 그 실체를 점잖은 격식으로 가리고 있다는 점에서 교활한 인물 같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신사의 나라 대영제국'의 양면성을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요.
2) 저는 결말을 읽기 전까지는 은워예가 마을로 돌아와 아버지에게 복수하지 않을까 상상했어요. 물리적인 방식이 아니라, 선교사나 중간관리자 또는 서구에 협조하는 사람이 되어 우무오피아로 복귀해 마을의 전통을 해체하고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영향력과 기반도 무너뜨릴 것이라고 생각했거든요. 마지막에 아버지에게 얻어맞은 뒤 헤어질 때도 절대 우호적인 상황이 아니었으니까요. 자신의 선택에 정말로 만족하기 보다는, 자신이 소속감을 느끼지 못했고 오히려 자신이 죽을 수도 있었던 고향과 아버지에게 그대로 되갚아 주는 것을 목표로 살지 않았을까 싶네요. 왜냐면 저는 은워예가 오콩코가 보기에는 못마땅할지 몰라도 그도 또한 자기 아버지의 면이 어느 정도 담겨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오콩코는 아들이 유약한 할아버지를 닮았다고 불만이었지만 은워예가 정말 필요한 순간에는 자기 고집을 꺾지 않고 맞아 죽을 각오, 아버지-가족과 영영 단절할 각오로 교회로 간 걸 보며 이 아이도 내면에 불이 있다고 느꼈거든요. 오콩코가 우노카의 자유로움을 유약함과 무책임으로 보고 반발심을 느껴 정반대의 노선으로 삶을 살았듯이, 이번에는 은워예가 오콩코의 가혹함과 매정함에 질려 자신만의 길을 찾아가는 구도가 반복되는 게 보였습니다. 다만 우노카의 길도, 오콩코의 길도 아닌 제3의 길이죠. 3) 작품을 읽고 느낀 건, 전통의 우무오피아와 현대문명으로 대표되는 서구 문물 모두에 맹점이 있음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우무오피아는 세월에 걸쳐 관습이란 이름으로 누적된 전통이 어느 순간 차별과 제약의 정당화로 작동하는 모습이죠. 오콩코가 힘과 권력을 추구한 이유는, 우무오피아의 문화가 약자가 살아가기 어려운 사회이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터득한 생존기법 같습니다. 부족원으로서 오콩코를 사람들이 인정하는 이유는 오콩코라는 개인 그 자체가 아니라, 그의 지위와 오체(명성) 그리고 능력 때문이죠. 오콩코는 자신을 구성원으로서 인정해주는 그 가치들이 사라져 약점이 다시 드러나 이전과 같은 상태로 굴러 떨어져 '무존재'가 되는 것이 두려웠을 겁니다. 기독교와 서구 문명은 우무오피아가 가지고 있던 내부적인 문제의 틈을 파고듭니다. 의외로 작품에 나온 백인 선교사들은 생각보다 직접적인 개입을 하지 않죠. 마을과 교회의 갈등은 대부분 광신도와 끄나풀들이 부추깁니다. 전통과 공동체의 해체가 반드시 외부적인 요인 때문만은 아닌거죠. 기존의 문화와 관습이 포용하지 못하며, 보듬지 못하는 부조리가 순기능보다 커질 때 사회는 분열됩니다. 오콩코는 누구보다도 자기 자신이 추구하던 가치, 또한 마을의 전통적 가치에 매달리고 이를 수호했음에도 오히려 마을사람들과 기존의 신들은 그를 외면하듯 방관합니다. 사람들은 오콩코의 의견에 시큰둥하고, 치와 전통 신들의 기세는 저물어가고 있죠. 열렬히 매달리고 달려갈수록 오히려 오콩코의 몸과 마음은 조각이 나기 시작합니다. 오콩코가 모닥불을 보며 재만이 남는다고 느낀 감상도 이와 비슷한데요. 불이 맹렬할수록 땔감이 더 빨리 타버리듯, 오콩코는 높이 치솟아 올랐지만 그만큼 추락도 깊어졌죠. 오콩코는 서구문명과 변해가는 마을에 적응하기에는 전통적이고 반동적인 인물이지만, 그렇다고 기존의 마을 사람들을 이끌어 가기에는 또 너무 가혹하고 권위적인 인물입니다. 오콩코는 본인이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중간자가 되었고, 설령 자신이 전령을 죽이더라도 앞으로도 이 마을에는 변화가 없는 재 같은 사람들 밖에 없다고 봤을 거에요. 그의 표현법으로는 '여자가 되어가는' 마을일 겁니다. 오콩코는 자신이 그런 곳에서 계속 살아남아 봐야 평생 부적응자로 머물거나, 또는 자기 자신마저 그런 여자로 변하리라고 생각했겠죠. 오콩코는 전령을 내리치는 순간 자신 안의 마지막 나약함을 함께 베어냅니다. 이전에 이케메푸나를 도끼로 내려칠 때는 두려움에 떨었던 그였지만 전령을 죽이는 순간의 그는 어떤 약한 모습도 보이지 않죠. 어찌 보면 해탈한 듯한 인상도 줍니다. 마을에 대한 미련이 없어져서 일까요. 그동안의 모든 재물과 권력과 힘과 욕망, 가족의 무의미함을 느끼고 다 내려놓는 모습.. 미련이 없기에 집착이 없고 집착이 없기에 두려움도 없어진 모습.. 마을 사람들은 자살한 그를 불명예스러운 인간으로 보겠지만, 오콩코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마지막 순간에 명예로운 죽음을 택했다고 봅니다. 전사를 산산조각 낼 수 있는 권리는 오직 전사에게만 있으니까요.
오콩코를 보면 볼수록 이카로스가 떠오르더라고요. 태양을 높이 쫓다 추락한 이카로스처럼, 한평생 불처럼 맹렬하게 타오르다 자기 자신마저 태운 오콩코가 겹쳐보이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다음 책은 치누아 아체베의 <더 이상 평안은 없다>입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는 서구 문물이 아프리카에 손을 뻗치던 시대가 배경이었다면, 이 작품에서는 이미 현대화가 많이 진행된 나이지리아가 배경인데요. 영국에서 유학을 하고 돌아온 '오비'는 자신의 지식과 교육을 바탕으로 고국에 헌신하겠다는 꿈을 안고 돌아옵니다. 하지만 너무나 많이 변해버린 고향의 실태를 보고 오비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게 과연 무엇인지 고뇌하는 내용입니다.
더 이상 평안은 없다'아프리카 현대 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작가 치누아 아체베의 대표작. 격동하는 사회 속에서 타락해 가는 나이지리아 지식인 청년의 모습을 통해 물질적인 현대 사회에서 소외되는 비극적 인간상을 그린다. 나이지리아 국가상을 받았으며,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신의 화살>과 함께 '아프리카 3부작'으로 불린다.
다음 책도 재밌겠어요! 이번 독서도 잘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다음 모임에서 뵐게요 :D
얼른 신청하러 가야겠어요~~ 붕붕~~ 올려주신 책 내용도 재미있을 거 같네요!
저는 3분의 1지점까지 따라가다가 멈추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모임에 참가한 덕분에, 나누시는 글들 읽으면서 이 소설에 대해서 미리 생각해볼 수 있었어요. 어느 정도 입문이 돼서, 나중에 혼자 읽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새로운 교회들이 주변 마을들에 세워졌고 이와 함께 학교들도 세워졌다. 맨 처음부터 종교와 교육은 손을 잡고 왔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213p,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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