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D-29
사람들은 나이에 걸맞게 존경을 받지만, 업적 또한 존경의 대상이었다. 노인들이 이야기하길, 어린이도 손을 씻으면 왕과 함께 식사할 수 있는 것이었다. 오콩코는 분명 자신의 손을 깨끗이 씻었고 그래서 왕과 어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17,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손을 씻는다는 말의 의미가 흥미로운 문장인데요. 우리나라에서는 '손을 씻었다'라는 말은 문장 그대로의 뜻을 넘어 부정적인 사건이나 일에 개입이나 관여/관심을 끊는다는 의미로 쓰죠. 책의 문장은 단순히 부정함, 실패, 더러움을 털어낸다는 뜻을 넘어 높은 지위에 오르려는 자의 의지도 담긴 것 같네요.
하지만 그는 평생 어떤 두려움 속에 살았는데, 그것은 실패와 유약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것은 악과 변덕스러운 신 그리고 주술에 대한 두려움, 숲에 대한 두려움, 잔혹함으로 눈이 벌건 자연의 힘에 대한 두려움보다도 한층 더 컸고 뿌리가 깊었다. 그 두려움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의 것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 즉 그가 아버지를 닮은 것같이 보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22,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그래서 오콩코는 아버지 우노카가 사랑했던 모든 것을 증오하는 감정에 지배받게 되었다. 그 하나가 친절함이었고, 또 다른 하나가 게으름이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23,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이 문장을 저도 보면서 유약함에 대한 두려움에 대해서 시대와 지역을 막론해서 그 이유가 무엇일지 궁금해졌어요
오콩코의 두려움이 현실적? 현대적?인 고민이라서 이질적이면서도 공감이 잘 되었어요. 1장의 경우, 오콩코와 그가 사는 마을에서 일어나는 일이 중심인지라 그가 느낀 '실패에 대한 부담감'이 아프리카에서는 굉장히 낯선 고민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도 오늘날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은 면이라 오콩코가 더 가깝게 다가왔습니다.
오콩코에겐 많은 젊은이들이 인생에서 흔히 갖는 정도의 출발점도 없었다. 그는 아버지로부터 곳간 하나 물려받지 못했다. 물려받을 곳간이 없었던 것이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2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수확이 좋고 나쁜 건 본인의 팔에 달린 것. 우노카 자네의 도끼질이나 괭이질이 매가리 없다는 것은 온 마을이 아는 사실이고. 이웃들이 숲을 개간하려 도끼를 들고 나설 때, 자네는 수풀 하나 나지 않아 편하기만 한 쓸모없는 땅에 얌을 심었지. 다른 사람들은 땅을 일구기 위해 강을 일곱이나 건너는데, 자네는 집에만 남아 가망 없는 땅을 위해 제사를 지냈지. 이제 돌아가 남자답게 일하게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28,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더디고 고통스러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신들린 사람처럼 혼신을 다했다. 참으로 그는 아버지가 치욕스럽게 살고 부끄럽게 죽었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29,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그는 평생 어떤 두려움 속에 살았는데, 그것은 실패와 유약함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중략... 그 두려움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내면의 것이었다. 그것은 스스로에 대한 두려움, 즉 그가 아버지를 닮은 것같이 보이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이었다.
모두들 박장대소했는데, 오콩코만은 예외였다. 그가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노인은 격언에서 뼈다귀가 언급되면 항상 불안해한다는 속담과 같은 이치였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3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저는 일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높은 뽕나무에서 땅으로 뛰어내린 도마뱀은 아무도 칭찬을 안 하면 스스로라도 칭찬한다고 말하지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32,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어머니와 여동생들도 열심히 일했지만, 어떻든 그들은 여자의 작물인 코코얌이나 콩, 카사바를 짓는 정도였다. 농작물의 왕인 얌은 남자의 작물이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34,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책 중간중간 '콜라 열매'가 나오는데, 현지어로는 Cola 또는 Kola라고 한다네요. 그리고 우리가 아는 그 코카콜라 펩시콜라의 어원이기도 합니다. 애틀랜타인 존 펨버턴이 남미의 코카나무의 잎과, 아프리카의 콜라열매 추출물에 단 맛과 탄산수를 섞어 약품으로 팔기 시작한 그 콜라인 거죠. 콜라 열매는 카페인이 들어있는데 훗날 대중음료가 되면서 이 열매의 향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보고 레시피에는 빠지게 되었다고 해요. 코카나무 잎 성분은 그대로 지금도 들어가는데 우리가 아는 '코카인' 성분도 잎에 있기 때문에 코카인을 완전히 제거하고 넣는다는군요. 아프리카에서는 열매의 카페인이 주는 자극 효과 때문에 열매 과육을 먹거나 또는 씹으면서 물만 빨아 먹고 뱉는 식으로 주로 섭취한다고 해요. 책에서 콜라를 대접하거나, 콜라 열매를 깨는 것을 권하는 장면이 나오죠. 이는 서아프리카나 이그보 족에게는 의식의 일부라고 합니다. 크고 작은 행사나 집에 손님이 왔을 때 그를 환영한다는 의미로 콜라 열매를 내오는데, 콜라 열매가 없으면 주인이 이유를 설명하거나 사과를 해야 한다고 하고요.
이그보 족의 콜라 열매 의식은 아래와 같다고 합니다.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세부적인 절차나 방법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1) 일행이 집에 방문하면 주인은 접시에 콜라를 담아 손님측의 대표가 되는 이에게 건넵니다. 2) 손님측 대표는 받은 접시를 자신들의 일행 중 최연장자에게 보여줍니다. 3) 최연장자는 주인이 대접한 콜라 접시를 보았다는 의미로 오른손을 접시에 갖다 댑니다. 이후 다음 연장자에게 건네는 식으로 반복됩니다. 4) 접시가 다 돌면 손님측 대표는 주인에게 콜라 접시를 돌려줍니다. 5) 주인은 접시의 콜라 중 열매 하나를 집어들어 "콜라 열매가 집에 오면, 어디에서 왔는지를 말한다네."라고 외치며 건네줍니다. 6) 이후 모인 사람들 중 최연장자가 오른손에 콜라 열매를 들고 축복을 내립니다. 축복의 말은 이렇다는데요. "그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든 간에, 소원을 이루기를 빕니다." 7) 축복이 끝나면 최연장자 본인 또는 지목한 다른 사람이 열매를 깨뜨리고, 자신들이 방문한 목적을 설명한 뒤 깨뜨린 열매 조각을 나눠줍니다. 이 때 콜라 열매를 깨뜨리는 의미는, 열매가 더 많이 더 잘게 여러 조각으로 쪼개질수록 손님과 집주인 모두에게 평안과 복이 그만큼 많이 찾아온다는 기원을 뜻한대요. 행위나 양상은 전혀 다르지만 저는 부럼이 떠오르더라고요. 책의 29p에 "우리 모두 잘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고, 건강과 자식들, 좋은 수확과 행복을 빕니다. 모두들 이루고자 하시는 소원을 이루시고 나 역시 그렇게 되도록 빕니다." 라는 말은 단순한 인사말을 넘어 이그보 부족들이 반드시 치뤄야 하는 사회적 의식이자 서로의 안녕을 비는 더 무게감 있는 말인 셈이죠. ※ 예외적으로, 콜라 열매가 너무 딱딱하여 딱 두 쪽으로만 쪼개지면 불길한 의미로 받아들여지기에 이그보 족들은 더 부드럽고 잘 쪼개지는 붉거나 보랏빛을 띄는 품종을 주로 쓴다고 합니다. 회색깔의 다른 품종도 있는데 이 콜라 열매는 단단해서 두 개로 쪼개지는 경우가 잦다고 해요. https://www.igboguide.org/HT-chapter8.htm
미리 알고 읽으니 도움이 되었습니다 ^- ^ )/
오늘 독서를 시작했어요. 1장에서 우노카와 오코예가 “콜라 열매를 깨는 영예”를 서로에게 양보하는 장면을 읽으며 이 관습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는데, 상세하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으악! 저도 완전 까먹고 있다가 내일부터 후다닥 읽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전 콜라 열매를 옥타비아 버틀러 작가님의 '와일드시드'에서 읽고 알았어요. 그 책에서만 그런 건지 고대에 그랬던 건지 모르겠지만, 콜라열매와 동양의 '마'와 비슷한 얌을 주식으로 먹더라고요. 오! 아래 읽다 보니 @향팔 님과 @은화 님이 자세히 찾아 주셨네요~
열매를 가지고 이런 인사 의식을 한다는 게 새롭습니다. 설명을 해주져서 이런 의식이 있다는 걸 알게 됐네요! 마치 손님을 앉혀놓고 차를 대접하는 것과 같은 느낌이 듭니다. '다도'처럼 '콜라도'라고 해야할 것만 같습니다.
콜라가 식물 이름이었군요! 열매가 아주 크네요. 처음엔 음료가 아니라 약품으로 팔았다니 의외입니다. 마시면 정신이 번쩍 들었을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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