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D-29
우노카는 맛있는 음식과 끈끈한 우정을 좋아했으며, 우기가 끝나고 매일 아침 눈부시도록 아름다운 해가 뜨는 바로 이 계절을 사랑했다. 이 계절엔 북쪽에서 시원하고 건조한 하마탄이 불어 내려오기 때문에 덥지도 않았다. 어떤 해에는 하마탄이 매우 심했고 온통 짙은 안개가 가득했다. 그러면 노인들과 어린이들은 통나무 화로에 둘러앉아 불을 쪼였다. 우노카는 이 모든 것을 사랑했고, 건기와 함께 돌아오는 첫 솔개들을 사랑했으며, 아이들은 이들을 맞이하는 노래를 불렀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13,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이 대목 묘사가 아름다워요.
저도 이 부분이 좋더라구요~ㅎㅎ 그 뒷 부분은 어려움이 다가오는 내용들이었지만요!
안식주가 지나자 모든 남자들과 그 가족들은 수풀을 베고 새로운 밭을 일구기 시작했다. 벤 수풀은 말려 태웠다.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면 솔개들이 사방에서 날아와 불붙은 수풀 더미 위를 배회하며 말없는 작별 인사를 했다. 솔개는 우기가 다가오면 날아갔다가 건기가 될 때 돌아왔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44,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묘한 풍경이 눈에 그려지는 듯 해서 문장을 가져와봤습니다. 얌이 도대체 뭔가 궁금해서 위에 올려주신 얌에 대한 설명도 읽어보고 검색도 해보니, 특이한 작물이네요. 얌은 껍질이 약하고 조금만 상처가 나도 썩기 때문에 요즘도 수확할 때 기계를 쓰기 어렵고 조심조심 수작업을 해야한다네요. 기계가 없는 건 아니지만 소농 가구에서 사서 쓰기엔 비싸다고 하는군요. 얌 축제도 있네요. 나이지라아에서 매년 8말 9초에 우기가 끝나고 수확을 한 다음 ‘새 얌 축제’라는 걸 한다고 합니다. 일종의 추수감사제네요. 이 축제도 이보족을 중심으로 열리지만 거의 모든 부족이 여러 방식으로 축제를 하나 봅니다. https://en.wikipedia.org/wiki/New_Yam_Festivals_in_Nigeria https://punchng.com/enugu-festival-showcases-african-heritage
책 앞 장에 기재되어 있던 시가 생각나더라고요. 새가 점점 원을 크게 그리며 동심원에서 멀어지는 모습을 부서진다고 표현한 시였던 것 같은데 말이죠.
아, 그러네요! 예이츠의 시라고 써있네요. "돌고 돌아 더욱 넓은 동심원을 그려 나가 매는 주인의 말을 들을 수 없고,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고, 중심은 힘을 잃어, 그저 혼돈만이 세상에 풀어헤쳐진다." - W. B. 예이츠, 「재림」
예이츠의 시 「재림」 전문을 찾아보았습니다. 이런 시네요. (짧아서 다행입니다. ^^;) 번역은 아래 링크에서 가져왔습니다. https://www.bukacademy.com/17843 “재림” 점점 넓게 소용돌이치며 돌고 도는 매는 매 부리는 자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만사가 산산조각나면, 중심이 지탱 못하여, 순전한 무질서가 세상에 풀려난다. 핏빛의 흐릿한 물결이 풀려나, 곳곳에서 순수의 의식(儀式)이 익사한다. 최선은 모든 신념을 잃고, 최악이 강렬한 격정으로 가득 찬다. 필시 어떤 계시가 임박한 것이다. 필시 재림(再臨)이 임박한 것이다. 재림! 이 말을 뱉어내기가 무섭게 한 거대형상이 세계령(世界靈)에서 생겨나 내 눈을 어지럽힌다. 사막 모래밭 어딘가에서 사자(獅子)몸통에 사람의 머리, 태양처럼 무표정하고 무자비한 눈빛의 한 형체가 둔감한 허벅지를 움직이고, 성난 사막 새들의 그림자들이 그 몸통을 휘휘 어지럽게 맴돈다. 다시 암흑이 내린다. 한데 이제야 흔들리는 한 요람 때문에 돌처럼 잠든 스무 세기(世紀)가 괴로운 악몽에 시달리게 되었음을 알았거늘, 또 어떤 험악한 짐승이, 마침내 때가 되어, 태어나려고 베들레헴 향하여 몸을 굽히나? - 김천봉 옮김 The Second Coming Turning and turning in the widening gyre The falcon cannot hear the falconer; Things fall apart; the centre cannot hold; Mere anarchy is loosed upon the world, The blood-dimmed tide is loosed, and everywhere The ceremony of innocence is drowned; The best lack all conviction, while the worst Are full of passionate intensity. Surely some revelation is at hand; Surely the Second Coming is at hand. The Second Coming! Hardly are those words out When a vast image out of Spiritus Mundi Troubles my sight: somewhere in sands of the desert A shape with lion body and the head of a man, A gaze blank and pitiless as the sun, Is moving its slow thighs, while all about it Reel shadows of the indignant desert birds. The darkness drops again; but now I know That twenty centuries of stony sleep Were vexed to nightmare by a rocking cradle, And what rough beast, its hour come round at last, Slouches towards Bethlehem to be born? https://en.wikipedia.org/wiki/The_Second_Coming_(poem)
어떤 심정과 상황을 상정하고 시인이 작품을 써내려갔을지 궁금하네요. 아마도 본인이 보기에 흐트러지고 해이해지며, 중심점 없이 흩어지는 세상에 대한 한탄이나 비관의 심정을 담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만사가 산산조각나면, 중심이 지탱 못하여, 순전한 무질서가 세상에 풀려난다.' 아마 다들 한 번쯤 무언가를 가지고 놀거나, 험하게 장난 치다가 그런 경험이 있을 거에요. 뭔가를 세게 휘두르거나 던지다가 그 회전의 힘과 관성의 균형을 어느 순간 놓쳐서 본인이 비틀거리거나, 물건을 놓치거나, 끈이 끊어지는 때 말이죠. 첫 시작은 분명 아주 작고 안정적인 원의 회전이었지만 언제부터인지 구분할 수 없는 시점부터 가해지는 힘과 기존의 힘을 구분할 수 없는 지점... 어떤 안 좋은 상황이나 위기의 순간도 첫 시작은 사소한 일이지만 그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그 자체가 하나의 힘이 되어 불가항력의 존재가 되는 순간... '최선은 모든 신념을 잃고, 최악이 강렬한 격정으로 가득 찬다.' 상황을 붙잡거나 통제하려던, 통제하고 있다고 믿었던 신념과 확신은 조금씩 자신감을 잃어가고 걱정과 불안이 들어차면서 원인과 결과가 계속 되풀이 되는 악순환을 말하는 것 같네요. W. B. 예이츠는 1865년에 태어나 1939년에 사망했는데 이 시는 1919년에 썼다고 합니다. 그리고 1차 세계대전은 1914년~1918년까지였고요. <재림>의 영제는 'The Second Coming'인데 어쩌면 그는 2차 세계대전으로 향하는 시대의 불안감과 전운을 이미 느끼고 있었던 게 아닐까요?
이제 은워예는 친어머니나 다른 어머니들이 장작을 팬다거나 곡식을 빻는 일 같이 집 안에서 가장 어렵고 남자다운 일을 시키는 경우를 무엇보다도 좋아했다. 동생들이 이런 심부름을 전하러 오면 은워예는 귀찮다는 시늉을 하면서 여자와 여자들의 한계에 대해 큰 소리로 불평하곤 했다. 오콩코는 내심 아들의 발전이 흐뭇했고, 그것이 이케메푸나 덕분인 것을 익히 알고 있었다. 그는 은워예가 강건한 청년으로 커 나가 아비가 죽고 없을 때 집안을 다스릴 능력을 갖추길 바랐다. 또한 집안이 더욱 번창해 조상님께 바칠 음식이 가득한 곳간을 갖길 바랐다. 그래서 은워예가 여자들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는 것을 들을 때마다 항상 기분이 좋았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66~67,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그는 자신이 나약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7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우리 부족이 오조 칭호를 계속 높이 평가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 생각하네. 자네가 말하는 다른 부족에선, 오조가 너무 낮아져 모든 거지들이 다 오조라네." "농담 삼아 한 얘길세, 아바메와 아닌타에서도 오조 칭호의 가치가 두 조가비보다 못하다네. 모든 남자가 칭호 줄을 발목에 차고 다니고, 도둑질을 해도 칭호를 잃지 않는다네." "오조라는 이름을 정말 더럽힌 게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8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이 백묵만큼이나 하얗다는 백인들의 이야기 같군요." 오비에리카가 말했다. 그는 백묵 하나를 들어 보였다. 모든 남자가 자신의 오비에 두는 것으로 콜라 열매를 먹은 숫자를 바닥에 적기 위해 사용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 얘기가 그 백인들은 발가락이 없다던데요."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91,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발가락이 없다는 게 무슨 말인가 했는데 백인들이 신발을 신은 모습을 말하는 것 같네요.
오콩코가 아내를 때리는 장면들이 자주 나오는데... 아주 불편합니다.ㅠ 중도하차할 정도는 아니지만요. 오콩코와 아버지의 관계에 대해서는 이해가 되고 심지어 어느 정도 공감도 되지만, 별 시덥잖은 이유로 가정폭력을 휘두르는 오콩코에게 호감이나 연민을 느끼기는 어렵네요. 다른 분들은 이런 장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저도 불편해하면서 읽고 있어요. 여자가 하나의 소유물로 여겨지는 문화가 있는 것 같아요.
저도 이해하기 어렵네요. 권위가 있다면 폭력을 휘두를 필요가 없을 것 같거든요. 오히려 권위가 없다고 느끼고 있거나, 현재 가지고 있는 권위를 잃을까 두려워하는 오콩코의 깊은 두려움 때문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을에서 특히 오콩코가 심한 것 같습니다. 안식주 기간에도 난리를 피운. -,-
사람은 자신에게 가장 부족하고 결핍을 느끼는 욕망에 집착한다고 하죠. 오콩코는 힘(권력, 경제력, 물리적 힘 등)을 원하고 약한 존재가 되지 않고자 끊임없이 자신을 몰아세우는 인물로 느꼈습니다. 약자멸시의 성향이 강하기 때문에 주변인은 물론 심지어 자기 자신 안의 약한 모습조차도 혐오하고 있고요. 그런 인물이기 때문에 심지어 자신의 가족일지라도 권력과 힘의 우선관계를 나누는 것 같네요. 역할의 차이를 우월의 차이로 오해하고 있기도 하고요. 다른 마을 사람들의 가정에서도 일반적인 일인지는 2부까지 읽었지만 잘 모르겠어요. 이야기 자체가 오콩코와 그의 가족에만 딱 초점을 맞추고 있다보니 주변에 대한 묘사가 별로 안 나와서요. 시대적 배경상 남녀차별의 인식이 전반적으로 존재했을 수는 있어도 오콩코와 그의 집안이 유독 심하게 드러나는 경우가 아닐까 추측해봅니다. 책을 더 읽다 보니 느낀 게, 오콩코의 무자비함과 힘에 대한 갈망은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겪고 느꼈어야 할 감정적 포용이나 인정의 순간을 경험하지 못해 형성된 비뚤어진 보상심리 같아요. 그의 아버지는 자유로운 영혼이었을지는 몰라도, 제대로 된 가장 역할을 하지는 못한 것으로 추측되는데 오콩코는 청소년기나 청년기에 아들이자 남성으로서 인정받을 계기가 부족했을 겁니다. 오로지 자신이 보고 배울 수 있는 건 자기 자신 외에는 없던 거죠. 32p의 "높은 뽕나무에서 땅으로 뛰어내린 도마뱀은 아무도 칭찬을 안 하면 스스로라도 칭찬한다고 말하지요."가 책을 읽을 수록 오콩코가 느낀 인생의 심리를 압축한 문장으로 다가왔거든요. 자연스러운 감정의 수용과 표출을 성장하면서 겪어보지 못했기에, 가장이 되고 가정을 이루어서도 자신의 아내와 아이들에게 '올바른' 가족애와 권위를 보여주지 못하고 폭력(힘)으로 드러내는 것 같습니다. 힘을 추구하고 인정받고자 하지만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만 얻어왔다 보니 남에게 베풀거나 아량을 보이는 데서 얻는 힘에는 무지한 것 아닐까요. 통솔력과 권위, 리더십에 대해 책에서 읽은 문장이 있는데요. "내게 해병대는 통솔력이란 부하들을 쥐 잡듯 잡음으로써가 아니라 그들의 존경을 받음으로써 생긴다는 사실과, 내가 어떻게 해야 그런 존경을 받을 수 있는지를 가르쳐 준 곳이다." 오콩코는 힘(권력)과 강함의 다양한 속성 중 외면적인 요소, 자기중심적인 요소에만 집중할 뿐 타인으로부터의 인정에서도 온다는 점에는 무지한 것 같습니다.
오콩코는 헛기침을 하더니 북소리에 맞춰 발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소리는 어린 시절부터 항상 그랬듯이 그를 흥분시켰다. 정복하고 이기려는 욕구 속에 그는 몸을 떨었 다. 마치 여자를 탐하는 욕구와도 같았다. "씨름에 늦겠어요." 에진마가 어머니에게 말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p.56,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Ezinma was an only child and the center of her mother's world. ... Ezinma did not call her mother Nne like all children. She called her by her name, Ekwefi, as her father and other grown-up people did. The relationship between them was not only that of mother and child. There was something in it like the companishionship of equals, which was strengthened by such little conspiracies as eating eggs in the bedroom.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76-77,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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