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

D-29
목소리를 가다듬은 남자가 다가와 도끼를 치켜들자, 오콩코가 눈을 돌렸다. 내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단지가 떨어져 땅 위에 부서졌다. 오콩코가 이케메푸나에게 달려 나가자 “아빠, 사람들이 날 죽여요!”라는 외침이 들렸다. 두려움에 휩싸인 오콩코가 자신의 도끼를 빼 소년을 내리쳤다. 그는 자신이 나약하다고 여겨지는 것이 두려웠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76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꽃의요정 저도요. 이 장면 정말 충격이었어요.
‘할아버지 피가 너무 많은 거겠지.’ 오비에리카는 이렇게 생각했지만, 말하지는 않았다. 똑같은 생각이 오콩코에게도 떠올랐다. 하지만 그는 그 망령을 털어 내는 방법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아버지가 나약하고 실패자였다는 생각이 괴롭힐 때면, 자신의 힘과 성공을 생각함으로써 이를 몰아냈다. 지금도 그렇게 했다. 그는 가장 최근에 자신이 보여 준 용기를 마음속에 떠올렸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81-82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책 중간, 9장에서 나오는 오그반제에 대해 찾아봤습니다. 오그반제(Ogbanje) 또는 오반제로 불리며 말 자체의 뜻은 '왔다가 가버리는 아이'라고 해요. 나이지리아 남부에서 주로 많이 퍼져 있는 개념인데요. 이그보 사람들은 인간 세상과 개인의 삶에 영향을 주는 만신전 또는 신적 존재들이 주변에 가득하다고 믿습니다. 오그반제는 책의 설명처럼, 끊임없이 태어났다 죽기를 반복하며 가정과 어머니에게 슬픔을 가져다 주는 해로운 영입니다. 그러나 이런 믿음에는 사후세계와 현실이 서로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는 가치관을 담고 있기도 하답니다. 불멸의 존재와 필멸의 존재의 구분을 딱 자를 수 없으며, 저승과 이승,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너머의 것들은 서로 다양한 방식으로 결합되어 있고 연결되어 서로가 서로를 변화시킵니다. 그 다양한 흐름과 변화 중 인간에게 좋은 것들도 있고, 나쁜 것들도 있는데 그 중 한 현상이 오그반제인 셈이죠. 오그반제로 태어난 아이는 영적 세계와 아주 강하게 엮여 있기 때문에 독특한 분위기나 때론 기이하고 초인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요. 오그반제가 끼치는 해가 너무 심해지면 오그반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의사 겸 주술사인 디비아(dibia)를 부릅니다. (작중에도 나오죠.) 책에서는 마당에 파묻힌 이이우와(iyi-uwa)를 꺼내는 장면이 있죠. 이이우와는 오그반제 같은 영들이 현실세계에 계속 발 붙이고 살아가게 도와주는 일종의 말뚝이나 닻과 같다고 합니다. 이이우와는 돌일 수도 있고, 구슬이나 장신구 또는 토기일 수도 있고요. 이이우와를 찾아서 깨뜨리면 현실과의 유대가 끊어지고, 오그반제의 부활도 막히면서 아이는 정상적인 일반인의 삶을 살게 된다고 합니다. 사회문화적으로 이런 관습이 생겨난 이유는 영유아 사망이 자주 일어나던 일이었기에, 가족들이 아이의 죽음을 극복하고 희망을 찾아가는 의미라고 해요. 책에서도 종종 많은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던 다른 인물들이 나오죠. 여러 차례에 걸쳐 사고나 병으로 아이를 잃어야 하는 가정에서 비극이 반복되다 보면 슬픔에 빠져 정상적인 생각과 삶을 유지하기 어려워지죠. 오그반제 관습은 아이의 죽음을 악령이라는 외부 요소로 돌리고, 그 근원인 이이우와를 찾아 없애면 이번 아이 또는 다음에 태어날 아이는 건강히 살아남을 것이라는 희망을 불어넣는 의식인 겁니다. 따라서 이이우와를 파내는 장면은 괴이하거나 두려운 파묘와도 같은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의 관심과 희망 그리고 의지가 다시 모이고 샘솟는 치유의 과정인거죠. https://www.oriire.com/article/ogbanje#comments-section
에진마가 자신의 어머니를 엄마라고 부르지 않고 '에퀘베'라고 일일히 이름을 부르던 이유는, 에진마가 일반적인 아이가 아니라는 점 즉 여러모로 비범함을 드러냄과 동시에 오그반제임을 보여주는 장치였군요.
오콩코가 의사와 함께 이이우와를 파내는 과정에서 화가 나서 자신의 딸에게 '아칼로골리'라고 일갈하는 부분이 있죠. 아칼로골리는 이그보의 말 Akala와 Ogoli의 합성어로 Akala는 표식이나 흔적을 뜻하며 Ogoli는 게으른 자, 놀고먹는 자, 아무짝에 쓸모없는 놈이라는 말이래요. 아칼로골리는 사람을 쫓아다니며 삶을 힘들게 하고 고난을 가져오는 사악하고 악의에 찬 영적 존재라고 합니다. 사람이 자살을 하거나, 처형을 당하거나, 원인불명의 병으로 죽는 등 불행하게 또는 자연스럽지 않은 이유로 사망할 경우 이를 '오누이퀘(onwu ike)'라고 부르는데요. 오누이퀘로 죽은 자들은 조상들이 묻힌 곳에 매장할 수 없고, 책에서 나오듯 악령의 숲에 버려집니다. 이렇게 죽은 시신들은 영혼이 사후세계로 내려가지 못하는데 이는 곧 마을 사람들의 선조가 되지 못한다는 뜻이며, 또한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날 기회가 막히는 것이기도 해요. 결국 갈 곳이 없어진 영혼들은 땅 위를 배회하는데 이들 중 일부는 악의를 품어 악령이 됩니다. 아칼로골리는 악령 중 하나고요. 이그보 사람들은 영들이 토양이나 흙을 매우 싫어하기 때문에 땅 위를 걷지 않고 공중에 떠다닌다고 믿었답니다. 그래서 악령을 퇴치해야 할 때는 흙을 던지거나 또는 깃든 물건을 묻어버렸다고 해요. 첨부된 사진은 1910년대에 이그보로 추정되는 사람이 아칼로골리를 상징하는 야자꽃 부적을 묻는 모습을 찍은 겁니다. https://ozikoro.com/akalogoli-ward-off-evil-spirits-in-igbo-rituals-and-belief-systems/
9장을 읽으면서 아칼로골리가 궁금해 찾아보려고 했는데, 이렇게 상세히 알려주셔서 감사해요. 그러고보니 @은화 님 말씀처럼 오콩코의 아버지 우노카도 병 때문에 악령의 숲에 버려졌었죠. 4장에서는 안식주에 남자가 죽으면 땅에 묻지 않고 악령의 숲에 버린다는 얘기가 나왔었고요.
우노카는 불운한 사람이었다. 자신의 개인 신, 치가 좋지 않아 불운이 무덤까지, 사실 그는 무덤도 없었으니까 죽음까지 따라갔다. 그는 대지의 여신이 가장 혐오하는 일인 종양으로 죽었다. 위나 사지에 종양이 생긴 사람은 집 안에서 죽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럴 경우 악령의 숲으로 옮겨 죽도록 했다. 어떤 고집쟁이는 집으로 기어 들어오기도 해, 다시 숲으로 옮겨져 나무에 묶이는 신세가 되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종양은 대지에 대한 모욕으로, 환자는 대지 아래 묻힐 수 없었다. 따라서 가매장과 최종매장 모두 허용되지 않았으므로, 땅 위에서 썩어 갈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우노카의 운명이었다. 사람들이 그를 숲으로 들고 가기 전에, 그는 피리를 챙겼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28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그들은 이런 시기에 남자가 죽으면 땅에 묻지 않고 악령의 숲에 버리지. 하지만 그네들이 고수하는 이런 관습은 현명치 못한 나쁜 관습이네. 그네들은 많은 남자와 여자를 묻지 않고 내다 버리는데, 그 결과 어떻게 되었는가? 그네 부족엔 배가 고파 산 사람을 괴롭히며 떠도는 악령들로 가득하지 않은가.”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44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정말, 에퀘피의 열 아이들 중 아홉이 죽었다는 얘기도 그렇고, 영유아들이 얼마나 많이 죽었으면 오그반제와 이이우와 같은 관습이 생겼을까요.
13장에서 에제우두의 장례를 치를 때 대포를 쏜다는 문장이 궁금해서 찾아봤습니다. 제가 아는 그 대포인가 했는데 땅에 묻어두고 폭죽처럼 쏘는 거였네요. 지금도 이그보 사람들은 주요행사 때는 포를 쏘나 봅니다. https://youtu.be/ckrT95nro1E?si=6K-Jum_5eYTp3GIX
폭죽이 대포였군요! 감사합니다.
그녀의 깊어 가는 절망은 아이들에게 지어 준 이름들에 표현되었다. 그 가운데 하나는 애처로운 외침인 온움비코, 즉 “죽음이여, 그대에게 애원합니다.”였다. 하지만 죽음은 이를 무시하였다. 온움비코는 열다섯 달 만에 죽고 말았다. 다음은 여자 아이 오조에메나, 즉 “다시는 그런 일이 없길.”이었다. 아이는 열한 달 만에 죽었고, 이후 두 아이도 마찬가지였다. 그러자 에퀘피는 반항적이 되었고 다음 아이를 온우마, “죽음이 좋을 대로 하시겠지”라고 불렀다. 그리고 죽음은 그렇게 했다.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94-95쪽, 치누아 아체베 지음, 조규형 옮김
질문입니다. 102p에 도마뱀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데, 전 잘 이해가 안 되네요. ㅜ.ㅜ 무슨 의미일까요?
아.. 저는 그 우화를 이렇게 이해했어요. 야채를 익히면 숨이 죽어 부피가 줄어든다. (도마뱀은 이 사실을 몰랐다.) 도마뱀이 야채 일곱 바구니를 구해와 요리해 달라고 어머니에게 줬는데, 다 된 요리를 받아보니 세 바구니 분량밖에 안 나왔다. 음식의 양이 줄은 걸 보고 화가 난 도마뱀은 (어머니가 자기 야채를 빼돌린 줄 알고?) 어머니를 해쳤다. (얘는 성격이 아주 성급하고 폭력적이었다.) 도마뱀이 다시 야채 일곱 바구니를 가지고 와서 직접 요리를 했는데, 전과 똑같이 세 바구니 분량밖에 안 나왔다. 이를 본 도마뱀은 (죄없는 어머니를 해친 죄를 뒤늦게 후회하며) 죽고 말았다. (스스로 죽음을 택했다.)
저도 대충은 그렇게 이해를 했는데.....전체 이야기와 관계가 있을까요? 재독임에도 내용이 너무 새로워, 저 답지 않게 이번에는 좀 진지하게 읽고 있습니다.
저 도마뱀 성질을 보건대 왠지 오콩코 같지 않은가요. 모녀간에 야채 요리를 하다가 얘깃거리가 된 우화일 뿐이지만, 뭔가 상징적이고 복선이 깔려 있는 듯합니다.
오콩코가 안식주에 부인을 때렸을 때 무당이 찾아와서 네가 부인을 때리는 잘못을 범해서 대지의 여신을 모욕했기 때문에 우리 부족은 다 멸망하고 말 거라고 경고했고, 오콩코가 아들처럼 좋아했던 이케메푸나를 죽였을 때 친구 오비에리카도 네가 저지른 일은 대지의 여신께서 일가를 멸족시킬 수 있는 행동이라고 말했죠. 뭔가 무서운 일이 점점 더 벌어질 것 같아서 불안불안 합니다.
그러니까요. 찬찬히 생각하지 않고, 보이는 결과에 따라 꼴리는 대로 마구 행동해 버리는 모습이 많이 닮았네요. 여러 복선들이 나중에 어떻게 모일지 기대됩니다.
대출 일정 때문에 책을 먼저 반납했는데, 102p 도마뱀의 우화가 어떤 건지 기억을 못했다가 @향팔 님 설명 덕에 이제 생각이 났네요 ㅎㅎ 저는 도마뱀이 욕망이 너무 강하거나, 또는 성격이 너무 급하여 자기 자신의 화를 주체 못해 홱 꼬꾸라진거라고 이해했어요. 물고기들 중에서도 물 밖에 나오자마자 금방 죽는 생선들이 있는 것처럼.. 책 전체적으로 도마뱀에 대한 비유나 우화가 간간이 나오는데 주로 보이는 성질이 대부분 오콩코와 닮아있죠. 1) 생존력이 강하고 악착같으며 (위기 상황에서 꼬리를 자르고 도망침) 2) 자부심이 높고 (남들이 칭찬을 안하면 자기 스스로를 칭찬) 3) 성격이 급하고 욕망이 많은 (야채가 줄어드는 걸 보고 남을 해하고 화내다 못해 졸도) 오콩코가 현실에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원동력이 좋은 의미든, 나쁜 의미든 그의 원기왕성한 투쟁의식과 욕심 덕이지만 또 이로 인해 가장 가깝게 지내야 할 주변 사람들을 그르치는 양면성을 모두 보여주는 것 같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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