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1부

D-29
저도 오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도서관에서 대여했어요. 최근 판은 이미 대여중이라 2020년 판으로요. 천천히 읽기는 읽는 사람마다 와닿는 부분이 다를 수 있어요. 자신에게 울림을 주는 방향으로 계속 찾아가는 가운데 스스로 반짝이고 변화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초상화들이 그려질 무렵, 마흔한 살이었던 허턴은 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에든버러로 돌아왔다. 그의 이름과 연관된 추문은 수그러들었고, 그의 재정적인 전망도 개선되었다. 몇 해 전에 그와 그의 오랜 친구인 제임스 데이비는 에든버러의 굴뚝 청소부들이 모은 검댕으로 살암모니악sal ammoniac, 즉 암모늄염과 염화수소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다. 살암모니악은 허턴의 시대에는 염색업에 이용되었고, 황동과 주석으로 하는 작업에도 활용되었다. 그전까지 살암모니악은 전량 이집트에서 수입되었는데, 이것을 직접 만듦으로써 허턴과 데이비의 사업은 드디어 짭짤한 수입을 내게 되었다. 마침내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삶에서 해방된 허턴은 자신이 사는 도시에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는 지적인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음을 발견했다. 당시 그의 친구들과 동시대인들의 명단을 보면, 마치 위인 목록을 읽는 것처럼 데이비드 흄, 존 플레이페어, 애덤 스미스, 조지프 블랙, 제임스 와트, 시인 겸 작사가인 로버트 번스 같은 이름이 가득하다. 허턴은 스미스와 함께 오이스터 클럽Oyster Club이라는 신사들의 사교모임을 만들었다. 백스터의 글에 따르면, 술은 보르도산 적포도주가 선택되었고 "신사들은 식후에 마신 주량에 따라서 두 병 술꾼이나 세 병 술꾼으로 분류되었다."
깊은 시간으로부터 - 발아래에 새겨진 수백만 년에 대하여 pp.54~55, 헬렌 고든 지음, 김정은 옮김
헨리 레이번 Sir Henry Raeburn 이 그린 허턴James Hutton의 초상화입니다.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에 있어요. https://www.nationalgalleries.org/art-and-artists/2808
에딘버러에 있는 동안 제임스는 많은 친구를 사귀었는데, 특히 이산화탄소를 발견한 화학자 조셉 블랙이나 유명한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와 친하게 지냈다. 이 세 사람은 오이스터 클럽을 결성해 일주일마다 모여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거나 야외 답사도 갔다.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학문적인 토론이 가능했으며, 허튼은 과학에 대한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주변을 산책하는 동안 제임스는 그가 걷고 있는 땅이 항상 그대로였던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783년에 그는 에딘버러 왕립학회의 전신이 되는 모임에도 참가했다. 지질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수록 그를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즈 등지를 돌아다니며 암석과 지층과 지형을 관찰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지구 역사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 지질과학의 방향을 바꿀 이론을 만들어나갔다.
천재들의 과학노트 4 - 과학사, 밖으로 뛰쳐나온 지구과학자들 p.62, 캐서린 쿨렌 지음, 좌용주 옮김
로키산맥이나 알프스산맥의 위압적인 봉우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구 역사의 또 다른 측면이 눈에 들어온다. 봉우리의 뾰족뾰족한 모양은 퇴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정반대로 침색을 통해 조각된 것이다. 암석을 깎아내는 이 물리적, 화학적 과정은 암석이 본래 지녔던 이야기를 지워버린다. 지구는 한 손으로는 자신의 역사를 쓰면서 다른 손으로는 쓴 역사를 지운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지우는 손이 더 바쁘게 움직인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 031~032,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저는 이 책의 문학적 표현이 좋아요. 지구가 더 감성적 생명체처럼 느껴진달까요...
맞아요. '손'으로 지운다는 표현이 그러네요. 그 다음 문단의 '유아기infancy'라는 표현도 그렇고요. 'erasure gains the upper hand.' 부분은 '지우는 손이 더 바쁘게 움직인다'라고 번역가가 의역을 하셨지만요.
Earth writes its history with one hand and erases it with the other, and as we go further back in time, erasure gains the upper hand.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지질학자들이 지구의 지도를 작성해 갈수록 허턴이 말한 융기와 침식의 주기가 되풀이되어 왔다는 사실이 더 명백해졌다. 그런데 알프스산맥 같은 곳을 전문가의 눈으로 보자 산비탈에 단층과 습곡 같은 것들이 있었다. 수직 운동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암석은 옆으로도 움직이는 것이 분명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58-60쪽,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베게너는 많은 청소년이 그렇듯이, 비가 오는 날 지구본을 들여다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치던 중에 대서양을 닫을 수 있다면, 브라질의 코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서아프리카의 움푹 들어간 부위와 딱 들어맞고, 북아메리카 동부가 사하라 지역과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혹시 대륙이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표면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이따금 서로 부딪쳐서 산맥을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해저 분지는 예전에 붙어 있던 땅덩어리들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아닐까?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60쪽,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저명한 지구과학자들은 대륙이 해저 분지를 펼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작동 원리를 생각해낼 수 없었기에, 베게너의 개념을 거부했다. 그들은 훗날 ‘고정론자fixist’라고 불리게 되었다. 반면에 남반구의 지질학자들은 베게너의 개념을 좀 더 환영하는 쪽이었다. 그들은 베게너의 대륙들이 기하학적으로 서로 잘 들어맞는다는 개념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대서양 양편의 지질학적 특성이 과거에 양쪽이 붙어 있었음을 시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화석들도 그러했다. 예를 들어, 약 2억 9,000만 년 전~2억 5,200만 년 전에 살았던 글로솝테리스의 나뭇잎 화석은 아프리카 남부, 남아메리카, 인도, 호주에서만 발견되었다(나중에 남극대륙에서도 발견되었다). […] 물론 고정론자들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여러 대학교에서 저명한 교수로 있었기에, 암석만을 쳐다보고 있는 남반구의 가난한 이들의 견해를 그냥 무시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60-61쪽,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2025년 9월에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에서 찍은 글로솝테리스Glossopteris 화석 사진입니다. 왼쪽은 South Africa, 오른쪽은 Australia 에서 발견된 것이에요.
오, 정말 서로 비슷하게 생겼네요. 2억여 년 전에는 아프리카와 호주가 하나의 대륙으로 붙어 있었다는 증거로군요.
우리 눈으로 보면 정지되어 있는 암석이.. 아주 긴 시간 동안 움직인다는 것이 너무 너무 신기해요.
이런 상황은 제2차 세계대전 때 바뀌기 시작했다. 적군의 잠수함을 찾아내기 위해 고안된 음파 탐지기가 깊은 바다에 산과 골짜기가 가득하다는 사실을 보여주면서였다. 1950년대에 미국 과학자 브루스 히즌Bruce Heezen과 마리 타프Marie Tharp는 대서양 중앙해령을 발견했다. 북쪽의 아이슬란드(이 섬 자체도 해령의 일부다)에서 남극반도의 끝까지 뻗으면서 대서양 해저를 양분하는 거대한 산계였다. 그 뒤에 태평양, 인도양, 남극해에서도 비슷한 해령들이 발견되었다. 히즌과 타프가 대양의 물을 뺀 모습으로 그린 지구의 지도는 사람들의 관점을 영구히 바꾸었다(<그림2-2>). 바다 밑이 어떤 모습인지를 알게 되자, 우리 행성을 새로운 방식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점이 분명해졌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62,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그림2-2> 지도를 자세히 보고 싶어서 구글을 뒤적이다가, 미국 의회도서관 홈페이지에서 디지털 소장 자료를 찾았어요. 굉장히 고화질로 디지털화한 것 같아요. 지도 오른쪽 위의 버튼을 눌러서 전체 화면으로 아주 크게 확대해서 볼 수 있네요. https://www.loc.gov/resource/g9096c.ct003148/ 또 레딧에서 다른 해저 지도를 찾았어요. 이건 유라시아 대륙이 중심에 놓였네요. 영어를 잘 몰라서 한국어 번역으로 보니, 해리 헤스 & 마리 타프 두 분의 1950년대 자료를 바탕으로 그렸다는 것 같아요. 역시 그림을 클릭하면 크게 확대해 볼 수 있어요. 첫 번째 링크는 영어 원문, 두 번째 링크는 한국어 번역 사이트예요. (한국어 번역 사이트는 레딧에서 자체적으로 개발한 언어 모델을 써서 자동 번역된다는 모양인데, 번역 품질이 상당히 괜찮다는 평이 있다네요.) https://www.reddit.com/r/MapPorn/comments/k9z50h/a_map_of_the_ocean_floor_based_off_data_from/ https://www.reddit.com/r/MapPorn/comments/k9z50h/a_map_of_the_ocean_floor_based_off_data_from/?tl=ko
알려주신 링크를 통해 보니 해저의 산맥과 지표면의 산맥이 더욱 뚜렷하게 대조가 됩니다. 지표면의 산맥이 납작해 보일 정도에요. ^^
와, 감사합니다. 책에 실린 것보다 훨씬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네요.
마리 타프는 당시 여성이라는 이유로 탐사를 위해 배에 오르지도 못했다고 해요. 끝까지 해저 지형도를 만들어낸 집념이 대단한 것 같아요.
[모임 3주차] 2/15(일) ~ 2/21(토) 모임 3주차가 시작되었습니다. "p.63~p.89" 부분을 읽고 편안한 마음으로 이야기를 나누어요. ^^ '물리적 지구'를 읽다가 5일째 되는 날 즈음 '생물학적 지구'로 넘어갑니다. 1주차와 2주차 초반에는 광활한 우주의 시공간을 넘나드는 것처럼 상상력을 동원했어요. 물리적 지구로 넘어오니 우당탕탕 물리적 실체에 부딪히는 것 같은 현실감이 느껴집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긴 시간을 오가며 사유하는 지질학적 태도도 필요하고요. 책을 읽으며 새로운 것들을 알아가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르고 있는 세계가 더 넓고 깊다는 걸 느끼게 되어요. 함께 읽어가는 분들의 스스럼 없는 참여로 '지구의 짧은 역사' 이야기가 더욱 풍성해지는 것 같아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과 우리 자신에 대해 좀 더 찬찬히 생각해보는 3주차를 만들어 보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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