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1부

D-29
대륙 이동의 수수께끼를 풀 단초를 대양에서 찾았다는 것이 .. 놀랍습니다. 생각지도 못한 곳에 답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느끼게 해줍니다.
결정적인 증거는 지자기였다. 자철석magnetite이라는, 의미를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철산화물 광물처럼 자기장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광물은 결정화가 일어날 때 지구 자기장을 따라 배열한다. 그래서 형성될 당시 자기장이 어느 쪽을 향하고 있었는지를 고스란히 기록한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64,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인간적인 표현이긴하지만 지구도 어떤식으로든 (한편으로는 아무나 쉽게 알아차릴수없게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ㅎㅎ) 자신의 생애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 같아요. 인간이 그걸 다 알아채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더 필요할까요?
지구는 꽤 정직하게 자신의 생애를 기록하는 것 같아요. 사실 사람도 일생 동안 살아온 과정이 몸에 남잖아요. 화장을 하고 머리를 손질하거나 가발을 쓰고 심지어는 시술을 해서 세월의 흔적을 감추려 하지만. 얼굴과 손의 주름이라던가.. 혈관의 건강이라던가.. 그리고 DNA도 변화하는 걸로 알고 있어요. 지구는 인간보다 훨씬 거대하니까 광범위하니까.. 우리가 파악하기가 쉽지는 않겠죠. 하지만 인간이 자신에게 익숙한 시공간을 넘어 지구의 기록을 읽어내고 있는 것도 놀라워요. 맞아요. 지구는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 자신의 기록을 관리하고 있어요. 지구의 역사서는 책장이 찢어지고 표지가 날아간 것처럼 자신의 기록을 감추기도 하고 지우기도 하는 것 같아요. 때로는 다른 책의 표지를 덮어놓고 원래 기록을 위장하기도 하고요.
지구 자기장이 수십만 년마다 180도 방향을 바꾼다는 사실도, 그 흔적을 고스란히 기록하는 자철석도 너무 신기합니다. 그 오랜 세월 동안 지구가 새겨온 지각 생성의 타임라인을 읽어낼 줄 아는 과학자들도 대단하네요.
이 대목에서 호기심이 생겨요. 그럼 수십만 년 전 인류를 비롯한 생명체는 남북이 반대인 세상에 살았고, 그중 어느 세대는 지구 자기장이 180도 바뀌는 기간 또는 순간을 경험했다는 말일까요? 그때의 존재들은 자기장이 바뀌는 느낌을 느꼈을까요? 수십만 년 후에 다시 자기장이 180도 바뀔 때에도 인류가 자기장의 영향을 받는 기계 같은 걸 쓰고 있다면 엄청난 혼란에 빠지지 않을까요? 자기장의 방향이 오랫동안 천천히 바뀌는지 한순간에 확 바뀌는지, 아니면 지금도 한창 바뀌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요. 만약 짧은 사이에 바뀐다면, 그때까지 이유나 대처법을 마련하지 못한다면 말예요. 혹시 이런 게 밝혀지면 SF 작가님들 소설 쓰시는 데 도움이 되지 않을까요? 한편 인류가 탄생한 이래 수많은 사람이 시카포인트나 수월봉이나 플래티런스를 수없이 지나다니며 봤을 텐데, 거기서 지구의 역사를 읽어낸 사람이 얼마 없었다는 게 신기해요. 과학자들이 존경스러워요. 웹툰 '미생'에서 바둑 기사인 주인공 장그래가 바둑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듯, 음악가는 음악으로, 과학자는 과학으로 세상의 이치를 깨닫는 걸까요? 물론 그 분야에서도 일정 수준 이상 통달하지 않으면 쉽게 보이진 않겠지만요. 무언가 한 분야에 통달해서 그것으로 세상 이치를 깨달을 수 있으면 좋겠어요. 진리는 통한다는 말이 사실이라면, 어떤 분야로든 깨닫는 이치는 결국 같으려나오?
특정 시대의 생물 멸종이 자기장 변화와 관련있다는 주장이 있답니다. 인류는 약 5천년 전에 나침반을 만들었으니 북쪽 방향이 매년 미세하게 바뀌는 것을 그때부터 알았을지도 모르겠네요. 하지만 수십 만년간 북극과 남극이 역전되는 현상은 없었으니 인류가 커다란 충격을 받아들일 기회는 아직 없었고요.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는데 사용하는 gps는 자기장과 관련없기에 설사 남극과 북극이 자성이 바뀌어도 내비게이션 키고 운전하는데는 문제가 없겠습니다. 하지만 백업용으로 자기장 기반 북극 위치도 사용하므로 꾸준히 오차 수정을 하는 시스템이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카포인트를 지질학의 탄생지라고 부르는 이유가 그때까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지구가 성경에서 말하듯 몇 천년의 나이밖에 먹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가 위에서 링크했던 창조과학회 주장을 참고하시죠. 그게 상식이었던 거죠. 대부분의 과학적 발견은 상식을 의심하는 회의적인 사람들에 의해 이루어지는 것 같아요. 제임스 허턴이 그런 사람이었던거죠. “어라? 이런 암석이 만들어지려면 굉장히 긴 시간이 필요하겠는데?” 오랜 고민에 빠져있던 허턴에게 깨달음의 순간이.. 전 지구 역사 약 45억년이 오히려 짧게 느껴져요. 옛날에는 1원짜리 동전이 많았거든요. 1원부터 45억원을 상상하는게 별로 어렵지 않잖아요. 요즘은 서울에도 100억원짜리 아파트가 있을 정도니까요. 그렇게 생각하면 45억년이 지금의 지구를 만들어내기엔 너무 짧아보이는 거죠. 물론 대부분의 발전은 선형함수 형태가 아니라 지수함수 형태로 이루어지니 최근에 급발진하고 있음을 감안하더라도요. 정말 생각할수록 저의 존재를 포함한 모든게 기적 그 자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참 신기함으로 가득한 것 같아요. 워낙 좁게 살아서 모든 것이 신기해 보이는지도 모르겠지만요. 세상에 '창조과학'이라는 것이 있는 줄, 그리고 그것을 믿는 사람들이 모여 저처럼 순진하게 평범한 과학만 믿는 사람을 그토록 진지한 어조로 설득하고 있는 줄 몰랐어요. 옳고 그름을 떠나서 어떤 사실을 그토록 창조적으로 해석할 수 있고, 또 그 해석을 믿음으로 승화해 설파할 수 있는 사람들이 신기해 보여요. 한편으로 저 또한 어떤 부분에서 누군가에게 신기해 보일 만한 믿음으로 신기해 보일 만한 언행을 하고 있으려나 싶기도 하고요. 시카포인트는 저들끼리 어리석게 복작이는 생명들을 그저 한없이 귀엽고 안쓰럽게 바라보고 있지 않을까 상상해 보네요. 찰나에 머무르는 작은 생명들이 저마다 어떻게 믿든 우주의 진실은 언제나 그 자체로 덤덤하게 존재하겠죠? 내비게이션은, 생각해 보니 그렇군요. GPS의 개념을 똑 부러지게는 몰라도 내비게이션이 인공위성 신호를 받는다는 정도로는 알고 있었는데… 하지만 백업용으로 자기장 기반 북극 위치도 사용하는 줄은 몰랐어요. 백만 년 뒤에는 내비게이션 화면 구석에 표시하는 나침반도 위아래가 바뀌려나요? 심각한 길치이자 방향치인데 내비게이션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될 만큼 찰나만 살 수 있어서 안심이에요. 자기장이 변화해서 끔찍하게 죽진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되고요. 전 세월이든 돈이든 억이라는 단위가 아득하기만 해요. 지금 세상이 변하는 속도도 아찔한데, 계속 지수함수의 추세가 이어진다면 정신이 하나도 없을 것 같아요. 10의 마이너스 몇 제곱인지 하는 작은 입자들이 부딪고 어울려 우주를 만들고, 그 정신 없는 와중에 온갖 입자의 무작위 조합 가운데 하나로 지구가 생기고 내가 생겨났다는 것도 기적 같아요.
하나씩 알아갈 수록 더 신기하게 느껴지는 것들이 많아지는 것 같아요.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할수록 상대가 더 신기하게 보일 것 같아요. 찰나에 머무는 생명이 (상대적으로 영원에 가깝게 느껴지는) 우주의 진실을 알기 위해 노력한다는 것도 신기하고요. 세상이 변하는 속도는 점점 더 빠른 걸 추구하는데.. 천천히 가는 법을 점점 잊어버리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천천히 가고 싶어도 갈 수 없어지는 지도 모르겠어요. 행간과 공백을 느끼고 감상하는 마음의 여유가 점점 사라지는 건 아닌지 두려워요. 그 어느 틈에서 나라는 존재가 생겨난 기적에도 감사하게 되고.. 내가 숨쉬고 있는 찰나와 같은 순간이 곧 사라질 것이기에 더없이 소중하다는 생각도 들어요.
제임스 허턴은 당대의 다양한 분야의 지식인들과 활발한 교류를 했고.. 여러 분야를 섭렵한 사람이라 .. 이치를 통달하는 눈이 열렸는지도 모르겠어요. 당시 세계관을 뛰어넘어 생각하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을텐데.. 대부분의 선각자들이 그렇듯 고독함은 필연이었을 거 같고요. 다양한 분야를 통해 결과적으로 한 지점에 이를 수도 있고 한 분야를 깊이 파다 보면 다른 분야와 자연스럽게 연결되기도 할 것 같아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라는 말에서처럼 인간은 자유를 갈망하는지도요.
지구가 점점 커지지 않는 한(커지고 있지 않다), 해령에서 새 지각이 형성된다면 다른 어디엔가에서는 오래된 지각이 사라져야 한다. 지각의 무덤은 섭입대다. 섭입대는 한 지각판이 다른 지각판 밑으로 가라앉으면서 지각의 암석을 원래 기원했던 맨틀로 돌려보내는 곳으로, 지각판의 가장자리를 따라 뻗어 있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 065,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탄생과 소멸은 깊은 바다속에서도 일어나고 있군요. 눈에 안보이지만 이런 거대한 사건들이 지구 어딘가에서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습니다. 마치 어떤 계획된 시간표에 맞춰 움직이는 느낌도 들고요.
‘지각의 무덤’이라는 표현도 문학적이네요. 지각의 탄생과 소멸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지각이 생명체처럼 보이게 만들어요.
제주의 수월봉은 제주에 갈 때마다 들러보려했지만 문제는 같이 제주에 가는 사람들이 별로 가고 싶어하지 않는다는 겁니다. 지질학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곳이고 멋있어 라고 꼬셔도 잘 안 넘어가요. ㅎㅎ 아마도 제주엔 그곳 말고도 갈 데가 많아서 그런가봐요. 아무래도 제주에 혼자 갈 때나 한 번 노려봐야겠어요.
제주에 가신다면 혼자 조용히 들러보셔도 좋을 것 같습니다. ^^ <문경수의 제주 과학 탐험> 이라는 책이 있는데 예전에 대출해놓고 제대로 못 본 것 같아요. 다시 찾아 봐야겠어요. 제주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나.. 지질학적으로 중요한 곳이 많은 것 같아요. 비교적 최근에는 주상절리가 인상적이어서 열심히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있어요. 초등학교 때는 용암동굴을 지나갔는데.. 아마도 만장굴인 것 같아요. (너무 오래 전 일이라..)
제주도는 여러 번 가봤지만.. 몇 십 년 전 제일 처음 갔을 때 인상이 가장 강렬했어요. 지금처럼 관광지로 널리 알려지고 개발되기 전이었기 때문에 더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겨울이었는데.. 눈이 스티로폼 알맹이처럼 동글동글하게 굴러 떨어지는 게 너무 신기했어요. 제주의 흙 색도 홍시처럼 주황빛이 감돌아서 생경했고요. 그 흙을 옷감 염색에도 쓴다고 했어요. 제주도 식당에서 먹은 된장찌개 맛은 평소 먹던 맛과 달라서 놀라기도 했죠.
오늘 빵집에서 본 감태 휘낭시에. 제주도 같다고 하긴 그렇지만 제주도가 떠올랐어요. 화산같이 생겼어요. ^^
와, 우리 표지 그림이 떠올라요. 해저 화산이라면 마그마가 바다 향을 머금은 짭짤한 맛이라 해도 개연성을 납득하겠어요.
도서관에서 표지를 벗겨놓아서 예쁜 표지를 볼 수가 없어요 ㅠㅠ
아, 저희 표지 그림의 원본을, 앞에서 ifrain님이 인터넷에서 찾아 주셨어요! https://www.gmeum.com/meet/3329?talkId=2490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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