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1부

D-29
화가 김환기는 김광섭 시인과 절친이었다고 해요. 김광섭 시인의 ‘저녁에’에 영감을 받아 이 작품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작품 제목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구요. 김광석 시인이 사망했다는 부고를 잘못 전해듣고 .. 그린 그림이라고 하네요. <지구의 짧은 역사>를 읽으며 이 작품도 계속 생각이 났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이 작품을 보면 점의 크기가 모두 조금씩 달라요. 그게 밤 하늘에 별이 반짝이는 것처럼 보여요. 별이 어떨때는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하는 느낌이 들기도 하잖아요..? 촛불도 흔들리면서 불빛이 커졌다 작아졌다 하는 것처럼요. 일렁이는 우리의 마음 같기도 하고요.
부고를 잘못 전한 분은 퍽 미안하고 민망했을 것 같은데, 그 덕에 새로운 작품이 세상에 태어났다니 왠지 고맙기도 하네요. 그림이 세포처럼 보이기도 해요. 과학 교과서에서 본 듯한, 어떤 생물의 세포를 에메랄드빛으로 염색해서 현미경으로 확대한 모습 같은 거요. 낯선 과학책을 읽으려고 나름대로 애를 쓰다 보니 네모가 미니쉘 민트맛이 아니라 염색한 세포로 보여서 보람차요. 시인님의 의도에선 한참 동떨어졌겠지만요….
저도 세포 같다고 생각했었어요. 과학교과서에서(아주 오래 전) 보기도 했고 직접 해보기도(대략 8년 전쯤) 했어요. 의외로 선명하게 보여서 놀랐더랬죠. 물론 세포 형태는 좀 달랐어요. 더 길쭉한 형태였어요. 양파 표피를 얇게 벗겨서 슬라이드에 올리고요. 염색도 했을 거예요. 보라색으로 보였던 것 같아요. 네모난 방처럼 보이기도 해요. 그 안에 흔들리는 각자의 존재가 들어가 있고요. 비슷한 듯 조금씩 다른..
말씀을 들으니 어렴풋이 기억나네요. 양파 표피를 벗겨 슬라이드에 올리고 보라색으로 염색해서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는 실험, 중학교 때였던 것 같아요. 그때는 그저 눈에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확대해서 볼 수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고 그 이상의 감흥은 없었어요. 평가라는 목적이 있긴 해도 부모와 사회가 돈을 들여서 현미경이며 실험 재료며 다 대령해 주고 선생님께서 하나부터 열까지 여쭙기만 하면 어떻게든 이해하도록 도와 주시면서 엄연히 살아 있는 세포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소중한 기회였는데요. 그런 거 다시 못 볼 어른이 될 줄 알았으면 더 눈여겨 관찰하고 뭐라도 더 느끼려고 노력했을까…를 잠깐 생각해 봤지만, 가슴에 손을 얹어 보니 역시 아닐 듯요. 이미 마주치는 어른마다 그 시절 다시 안 온다고 귀에 못이 박히도록 말씀하셨는데 그걸 귓등으로도 안 들었던 기억이 함께 떠올라서요. 대신 지금부터 새사람으로 거듭나야겠다고 세 시간짜리 다짐을 해 보아요. 이제는 생생한 양파 대신 모니터의 그림만 봐도 그때랑은 다른 무언가를 좀 더 생각할 수 있게 되었으니까… 어떻든 이제라도 괜찮을 거라고 생각할래요.
아 이게 카사블랑카의 대사였군요. 영화를 보지는 못했지만 얼핏 들어 알고 있던 유일한 대사가 “그대의 눈동자에 건배”였거든요. 명대사가 그것만 있는 게 아니었군요 ㅎㅎ
자신의 삶과 아이들의 삶에 비추어볼 때, 우리는 생물이 자란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 듯하다. 그 말은 맞지만, 석영 결정(수정quartz)도 자란다. 하지만 생물은 자랄 뿐 아니라, 번식도 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수가 불어난다. 또 생물은 환경으로부터 성장과 번식에 필요한 에너지와 물질을 흡수한다. 생물학자들은 이 과정을 물질대사라고 한다. 그리고 아주 중요한 점은 생명이 진화한다는 것이다. 수정은 일단 형성되면 다이아몬드로 진화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구 최초의 단순한 생물은 ‘수십억 년에 걸쳐서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라는 대담한 질문을 하는 종을 포함하여 엄청나게 다양한 종으로 진화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86,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지구 최초의 단순한 생물은 ‘수십억 년에 걸쳐서 우리가 어떻게 여기에 있는가’라는 대담한 질문을 하는 종을 포함하여 엄청나게 다양한 종으로 진화했다.” 저에게 남아있던 인류애는 바사삭 부서진 지 오래지만, 이런 문장을 볼 때면 새삼 인간이라는 존재가 경이롭게 느껴집니다.
저는 인간이 가진 위대한 능력 중 하나가 자신을 객관화하여 볼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물론 매 순간 그렇게 하기가 쉽지 않고 모든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죠. 루시가 두 발로 섰다는 건 그런 의미가 아닐까 생각해보기도 했어요. 두 발만 땅에 닿고 상체를 지면과 더 멀어지면서 눈을 포함한 머리는 지면에서 가장 멀리 떨어지게 되었죠. 그림에서도 시점이 있는데 '조감도'라는 것 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는 시점을 말하잖아요. 대상을 가까운 곳에서 관찰할 때와 멀리 떨어져서 관찰할 때 보이는 것이 다르고 생각을 달리 하게 될 거예요. 공간을 확장하면서 시간까지 거슬러 생각하게 된 것도 인간이 가진 독특한 면모인 듯 하고요.
지표면은 공 모양이므로, 쪼개져서 흩어진 초대륙 조각들은 훗날 충돌하고 달라붙으면서 다시 하나가 될 것이다. 이 과정은 윌슨 주기Wilson Cycle를 이룬다. 윌슨 주기란 이 역사, 즉 초대륙이 쪼개져서 흩어졌다가 다시 모이는 양상이 시간이 흐르면서 반복된다는 것으로 처음 깨달은 캐나다 지질학자 J. 투조 윌슨의 이름을 땄다. 지난 25억 년 동안 초대륙이 5번 형성되었다는 증거가 있다. 그리고 판게아처럼 그 초대륙들은 쪼개지는 운명을 맞이했다. 애팔래치아산맥, 스칸디나비아 칼레도니아산맥, 우랄산맥은 모두 고대 대륙들 사이에 충돌의 산물이며,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에 걸쳐 있는 범아프리카Pan-African 습곡대는 더 이전 초대륙 융합의 산물이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73-74쪽,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75쪽) “처진 지구조(sag tectonics)”에 관해 제미나이에게 물어보았습니다. > Sag tectonics(처진 지구조 이론)는 현대 지질학의 정설인 '판 구조론(Plate Tectonics)'이 확립되기 전, 혹은 판 구조론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초기 지구(시생대)의 지각 변동을 설명하기 위해 등장한 이론입니다. 쉽게 말해, 지각판이 옆으로 움직이며 부딪히는 것이 아니라, 지각의 무게나 밀도 차이로 인해 수직으로 가라앉으며(sagging) 지형이 만들어졌다는 핵심 아이디어를 담고 있습니다. 1. 핵심 원리: "무거우면 가라앉는다" 판 구조론이 '수평 이동'에 주목한다면, Sag tectonics는 '수직 운동'에 집중합니다. • 밀도 불균형: 초기 지구는 지금보다 훨씬 뜨거웠고 지각이 얇았습니다. 이때 상대적으로 무거운 암석(염기성 암석 등)이 가벼운 암석(화강암질 지각) 위에 놓이게 되면 불균형이 생깁니다. • 침강(Sagging): 무거운 상부 지각이 중력의 영향으로 하부의 말랑말랑한 맨틀이나 연약한 지각 속으로 서서히 가라앉습니다. • 이 과정에서 거대한 분지나 '처진' 형태의 구조가 만들어지며, 여기에 퇴적물이 쌓이거나 변성 작용이 일어납니다. 2. 왜 시생대(Archean) 연구에 중요한가? 현재의 판 구조론은 단단한 '판'이 존재해야 성립하지만, 약 25억 년 전보다 더 오래된 초기 지구는 판이 형성되기 전이거나 매우 불안정한 상태였습니다. • 그린스톤 벨트(Greenstone Belts): 고대 지괴(Craton)에서 발견되는 독특한 지질 구조입니다. 과학자들은 이 구조가 판의 충돌보다는 지각이 수직으로 처지면서 만들어진 Sag tectonics의 결과물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 돔-앤-키어 구조(Dome-and-keel): 가벼운 화강암은 위로 솟고(Dome), 무거운 암석은 아래로 처지는(Keel) 모양이 나타나는데, 이는 수직적 이동의 대표적인 증거로 꼽힙니다. 요약하자면, Sag tectonics는 "지구가 충분히 식어 단단한 판이 만들어지기 전, 뜨겁고 말랑했던 초기 지각이 중력 때문에 아래로 처지면서 변형되었다"는 이론입니다. 오늘날에는 판 구조론이 지배적이지만, 아주 먼 과거의 지구 역사를 이해하는 데에는 여전히 중요한 퍼즐 조각으로 다뤄집니다.
sag tectonics 가 궁금했는데 올려주신 내용을 보니 이해가 잘 되네요. 판 구조론이 원활하게 작동하기 전 초기 지구의 판이 형성되는 부분에 대해 이해할 수 있어요.
서호주의 필바라 지괴Pilbara Craton에 'sag tectonics'의 흔적이 있어서 과학자들이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스트로마톨라이트도 있고 호상철광층도 있고요.. 지구의 오랜 역사를 비밀스럽게 간직한 곳이네요.
인간이 채굴하는 철의 90퍼센트는 호상철광이다. 호상철광은 20억 년 전 광합성을 하는 생명체에 의해 생성되어 바다 밑바닥에 쌓이며 철광석 층을 만들었다. 대체 어떤 생명체가? 시아노 박테리아! 또 시아노 박테리아다! 산소부터 하늘, 오존층을 만들더니 이번에는 철광석까지……! 정말 대단한 녀석 아닌가.
서호주 탐험가를 위한 과학 안내서 - 지구 태초의 모습을 찾아 떠나다 p.124, 조진호 지음
“시아노 박테리아! 또 시아노 박테리아다!” ㅎㅎㅎ 재밌습니다.
오, 이 책 그림도 좋고 재밌을 것 같습니다. 소개 감사합니다! 이미 가득 차서 범람 중인 읽을책 바구니에 킵! ㅋㅋㅋ
머릿속이 어지러워 유흥을 즐길 기분이 아니었지만 말콤 박사와 좀 더 어울리기로 했다. 그는 호주의 한 대학교에서 고생물학을 연구하는 교수였다. 송 대장이 말콤은 고생물학의 세계적인 권위자라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한국으로 돌아와 몇 년 후 우연히 영국의 BBC 자연 다큐멘터리를 보다가 말콤을 발견했다. '와~진짜 유명인이었네.' 말콤 박사는 초기 지구의 생물체를 추적, 연구하고 있다. 서호주는 30억 년 전 형성된 지층이 고스란히 노출된 곳이 많고, 인구밀도가 희소한 탓에 대부분의 지역이 원시 상태로 보존돼 있다. 고생물학자에게 이보다 좋은 환경은 없을 것이다. 말콤은 샤크만에서 북쪽으로 800킬로미터 떨어진 필바라에서 고대에서 생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를 찾고 있었다. 수십억 년 전에도 오늘날과 같은 구조의 스트로마톨라이트가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 필바라에서는 산화철이 층층이 쌓인 해양 지각이 종종 발견된다. 그는 그 지층의 오묘한 무늬가 초기 지구에서 생성된 스트로마톨라이트의 구조라고 주장한다. 물론 논란은 많다. 무늬가 비슷하다고 해서 그것이 오늘날의 스트로마톨라이트와 같을까? 말콤은 검사를 위해 지층의 시료를 채취해 자신의 연구실로 가져가 정밀한 측정기로 시료의 물질을 분석한다. 물질에서 시료가 생물의 흔적임을 믿을 만한 과학적 결과가 도출되면, 그 흔적이 얼마나 오래전의 것인지 연구한다.
서호주 탐험가를 위한 과학 안내서 - 지구 태초의 모습을 찾아 떠나다 pp.155~156, 조진호 지음
복잡한 뵈프 부르기뇽 요리법을 시청자들에게 소개할 때와 똑같은 유쾌한 목소리로 줄리아는 “원시 수프” 요리법을 알려주었다. 이 단순한 화학물질들의 혼합액에서 생명이 출현했다고 여겨진다. 생명의 “요리법”이 있다는 개념은 단순해 보이긴 하지만, 생명의 복잡성을 구성 부분으로 해체하여 생명 분자를 살펴볼 때 도움이 된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87,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In the same delightful voice with which she guided viewers through the intricacies of Boeuf Bourguignon, Julia presented a recipe for "primordial soup," the mix of simple chemicals from which life is thought to have emerged. The idea that there is a "recipe" for life is admittedly simplistic, but it gains traction when we break the complexity of organisms down into their component parts, the molecules of life.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원시 수프 primordial soup : 생명체가 만들어졌는지에 대해 설명해 주는 유력한 가설 보글보글 끓이는 이미지가 떠올라서 수프soup라고 표현한 것이 재미있어요. 한국식으로 표현하면 죽 같은 느낌일까요? 원시 대기에 있었던 분자들도 필요하지만 결정적으로 에너지(번개, 화산활동, 자외선 등)가 필요했다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수프가 조리되는 동안 화학적인 변화가 일어나 새로운 요리인 아미노산(유기물)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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