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생명의 기원 시나리오를 비교했기 때문에 '물질대사 우선' 시나리오와 '복제자 우선' 시나리오 사이의 선택 문제로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복제되는 분자와 에너지를 사용하는 물질대사 과정, 두 가지 모두 필요하다. 세부적인 과정은 여러 다른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나는 비전문가의 입장에서 항상 '물질대사 우선' 접근법에 끌렸고, '복제자 우선' 관점은 과학사학자 이블린 폭스 켈러Evelyn Fox Keller가 "유전자의 세기"라고 부른 20세기의 집착에서 비롯되었으리라는 의심을 품어 왔다. 하지만 복제자 기반 관점이 유전자 중심적 사고방식의 반영이라고 해도 그것이 옳지 않다는 결론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물질대사, 즉 에너지를 사용하는 화학적 순환은 복제를 중심으로 발달했을 수도 있다. 물질대사 시스템이 먼저 나타난 뒤 RNA나 DNA 같은 분자를 만들어 냈고, 이 분자들이 세포의 '기억 장치'처럼 작동하면서 자신의 조직 구조를 시간이 흘러도 존속시킬 수 있었다는 시나리오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말이다.
달리 생각하면 어쩌면 그 두 활동은 처음부터 함께 묶여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물질대사와 복제, 이 두 가지 특징이 함께 묶인 꾸러미를 얻게 되었다. 우리가 '생명'이라 부르는 것은 보통 에너지를 사용해 질서를 유지하는 것과 낡은 생명체에서 새로운 생명체를 만들어 내는 이 두 가지 현상을 모두 포함한다. 여전히 이 두 활동은 분리될 수 있다. 예컨대, 바이러스는 다른 생명체의 물질대사를 활용해 번식하는 유전 물질의 꾸러미이며, 스스로는 어떠한 물질대사 활동도 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바이러스는 살아 있을까? 바이러스는 생명체의 보편적인 조건 중 일부만 갖추고 있으며, 이것이 그들을 살아 있다고 하기에 충분한지는 논쟁할 대상이 아니다. 생명을 날카롭고 명확한 범주로 보는 아이디어는 점진적 단계와 회색 지대의 사례들을 받아들이는 관점으로 대체되었다. ”
『생명의 여정 - 생물은 어떻게 자연세계를 형성해 왔을까』 pp.31~32, 피터 고프리스미스 지음, 이송찬 옮김

생명의 여정 - 생물은 어떻게 자연세계를 형성해 왔을까지구는 생명이 만들어낸 작품이다. 38억 년 전 작은 남세균이 광합성으로 내뿜은 산소는 행성 전체의 대기를 바꾸어놓았고, 식물의 뿌리는 지형을 재설계했으며, 동물은 의식을 통해 이 세계를 변화시켜왔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부터 딛고 선 땅까지, 모든 것은 수많은 생명체가 남긴 흔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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