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1부

D-29
스피츠베르겐의 석회암이 형성되던 시기에 그곳 해안을 걸었다면, 남세균을 비롯한 미생물들이 마치 청록색 담요처럼 조간대의 꼭대기까지 빽빽하게 뒤덮고 있는 광경을 보았을 것이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100,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청록색 담요’라는 표현이 따뜻하게 느껴졌어요. 담요는 따뜻하게 하기 위해 덮는 것이니까요. 앤드류 놀 박사님은 인간이 사용하는 물건이나 기준에 빚대어 과학적 현상을 표현하기 때문에 말씀하시는 내용들이 친근하게 다가옵니다. 눈이 조용히 많이 내릴 때 세상을 따뜻하게 덮어주는 이불 같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눈은 분명히 차가운 존재인데 포근하게 느껴지고요. 물론 과학적으로 보면 수증기(물)가 눈송이(얼음)으로 변화하면서 응고열을 내뿜기 때문에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기도 하지만요. 그런데 그것도 잠깐이죠. 눈이 내리기 직전이나 내리는 동안 잠깐 기온이 올라갈 수는 있지만 눈이 녹으면서 다시 추워집니다. 청록색 담요는 훨씬 오래 남아 있었네요. 그곳에서 계속 산소를 생성하면서 산소를 이용해서 살아갈 수 있는 생물들을 위한 환경을 조용히 만들어주고 있었어요.
청록색 담요라는 말은 딱 들어맞는 묘사인 것 같아요. 저는 이 부분에서 아주 촘촘한 초록색 이끼 덩어리를 상상해봤어요.
아.. 문득 스트로마톨라이트 담요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스트로마톨라이트 문양이 들어간 부드러운 담요요.. (그러고 보니 붉은 핑크빛의 커다란 장미 무늬로 채워진 극세사 담요가 떠오르네요. 장미가 사실적이지 않고 겹겹의 꽃잎 무늬를 표현한 덕분에 지금 생각하면 스트로마톨라이트와 비슷한 느낌이 ^^)
스트로마톨라이트를 ‘바위침대’, ‘바다의 침대’라고 부른다 하니, 담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네요! “어원을 살펴보면 라틴어 혹은 고대 그리스어에서 침대(bed), 매트리스(mattress), 층(層, stratum), 켜(layer) 등의 뜻을 가진 ‘스트로마(stroma)’에다 암석이라는 뜻을 가진 ‘리토스(lithos)’가 결합한 용어다. 어원에서 유추할 수 있는 것처럼, 얇은 층들이 겹겹이 쌓여 있는 암석을 말한다. 지질박물관에서는 쉽게 ‘바위침대’라고 설명한다. 생태 생물학에서는‘미생물의 침대’ 혹은 ‘미생물 화석’이라고 한다. 우리나라 일부 학자들은 바다에 깔린 생명체의 밑바닥이라는 뜻에서 ‘바다의 침대’라고도 부른다.”
와, 그럼 정말 극세사인 셈인가요!? 과학자가 되려면 작명 센스도 좋아야 하나 봐요. 좀 극단적으로 건조하게 보면 그냥 '세균 따위의 흔적'이라고 생각해서 말 그대로 '세균켜켜이쌓인흔적' 따위로 이름할 수도 있을 텐데, '세균 따위의 흔적'을 보고 어쩜 그리 포근한 이름을 지을 수 있는지요.
그러게 말이에요. 과학은 낭만과는 거리가 먼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어요.
서대문구자연사박물관 스트로마톨라이트 쪽에 있는 영상이에요. 수면이 야트막하고 물 속으로 들어가면 따뜻할 것 같아요. 염도가 높아서 스트로마톨라이트를 공격할 수 있는 다른 생명체가 접근하기 힘들다고 해요. 그래서 이렇게 스트로마톨라이트가 살아있는 거고요. 둥그스러운 형태 때문인지 평화로워 보입니다.
와, 이걸 두고 피터 고프리스미스가 “수백 개의 거대한 버섯” 같다고 한 거군요! 둥글둥글 덩어리가 햇빛과 바다의 푸르름을 담요삼아 고즈넉이 누워 쉬는 것 같아요.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의 스트로마톨라이트 사진입니다. ————— Intertidal Stromatolites in Shark Bay, Australia A cross-section of these stromatolites reveals characteristic banding, while a scanning election micrograph shows cyanobacteria trapping the sediment that forms stromatolites. Mary Parriah/ Smithsonian Institution ————— Stromatolite MODERN SHARK BAY, AUSTRALIA This calcium carbonate structure from Shark Bay, Australia, forms when mats of microbes grow in undisturbed warm, shallow waters. ————— Stromatolite LATE MESOPROTEROZOIC GLACIER NATIONAL PARK, MONTANA Ancient stromatolites (sedimentary fossils) were widespread because their habitat was undisturbed by predators.
오늘날 해안의 암초는 조류와 공생하면서 겉뼈대를 형성하는 동물이 주로 만든다. 산호초가 그렇다. 그러나 동물이 산호초로 지구를 장식하기 오래전에는 미생물 건축가들이 그 일을 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100,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이런 환경 - 고대 지구에서처럼 - 에서는 덮개처럼 뒤덮은 미생물 공동체가 퇴적물을 가두고 접착시키면서 층층이 쌓여 바윗덩어리를 만들어 간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101,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생물은 흔적을 남기네요. ‘아름다운 사람은 머문 자리도 아름답습니다’라는 공중화장실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문구도 생각납니다. 사람은 지구에 어떤 흔적을 남기게 될까요? 일단 플라스틱은 확실히 많이 남길 것 같아요. 지금도 계속 생산되고 있는 플라스틱.. 소비자가 플라스틱 용기를 조금 덜 쓰고 열심히 분리배출해서 버린다고 해서 지구상에 생산되고 있는 플라스틱의 양이 줄어들지는 않죠. 각종 자원을 채굴하느라 지구 여기저기에 구멍도 내고 있고요.
먼훗날 인류 멸종 후 외계인이 방문해서 지구 역사를 연구하게 되면, 지구는 닭이 지배하는 행성이었다는 결론을 내릴 거라고 하더라고요. 치킨 닭뼈 화석이 어마어마하게 많을 거라서요…. 현재 인간들이 매년 도축하는 닭이 무려 600억 마리라고 합니다.
정말 그럴 수 있겠네요. 아침식사로 누군가로부터 받았던(한국인이라면 한 두 장 정도는 다 가지고 있다는) 쿠폰을 이용해서 별다방에서 샌드위치와 오늘의 커피를 먹고 있는데 샌드위치에 닭이 들어있는 건 아닌지 들처보게되네요. ㅎㅎ
작년 8월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서 ‘인류세’에 관한 기획 전시를 관람했어요. 그 중 일부 ‘닭 뼈’에 대해 다룬 전시 내용이 있었어요. 인류세의 대표화석, 닭 뼈 The Representative Fossil of the Anthropocene: Chicken Bones 인류세는 어떤 화석을 남기게 될까요? 전세계적으로 소비되고 있는 ‘닭 뼈’가 지표 화석이 될 가능성이 큽니다. 2022년 기준 전 세계 닭 수는 약 265억 6천 마리이며, 전 세계 80억 명 인구의 1사람당 3마리 이상에 달합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23년 우리나라 1인당 닭 소비량은 2003년보다 두 배 증가한 20마리입니다. 닭은 사육하는데 많은 공간이 필요하지 않고, 빠르게 자라는 동물 중 하나로 인류의 주요 단백질 공급원입니다. 그러나 조류인플루엔자 발생 시 살처분하고 매립하는 방법으로 지구 전역에서 화석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한승태 작가가 쓴 노동 에세이 <고기로 태어나서>가 떠오르네요. 작가가 직접 산란계 농장, 육계 농장, 돼지 농장, 개 농장 등의 현장에서 일하면서 겪은 이야기를 기록했는데, 정말 충격적이더라고요. 축산동물의 지옥같은 현실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어서 읽기가 너무 괴롭지만 그만큼 훌륭한 책이었어요. 동물들이 겪는 극한의 고통과 축산업의 현실을 고발하면서도, 먹고살기 위해 그 현장에서 ‘공범’이 되어야만 하는 노동자들을 동물들과 비슷한 비중으로 다루고 있다는 점이 특별했어요.
고기로 태어나서 - 닭, 돼지, 개와 인간의 경계에서 기록하다작가 한승태가 한국 식용 동물 농장 열 곳에서 일하고 생활하며 자기 자신과 그곳에서 함께한 사람들 그리고 함께한 닭, 돼지, 개 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다. 노동에세이이자 ‘맛있는’ 고기(닭, 돼지, 개)와 ‘힘쓰는’ 고기(사람)의 경계에 놓인 비망록이다.
<돼지 이야기>라는 그림책도 생각납니다.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32934370 '돼지도 인간도… 생명의 무게는 같아요' https://www.hankookilbo.com/news/article/201607222189548334
아, 추천해주신 그림책 보려면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어요. 저는 사람이 죽어나가는 스토리는 참 잘 보는데 말이죠…(응?)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을 때도 너무 괴로웠지만 그래도 눈을 부릅뜨고 봤어요. 불편하고, 피하고 싶고, 계속 모르는 채로 살고 싶은 얘기일수록 더 보아야 하고 알아야 할 때가 있는 거니까요. 2010년 구제역 참사는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어요. 그때 돼지 생매장 장면을 매체를 통해서 보고 너무 충격을 받아서 친구랑 심각하게 얘기를 했거든요. 근본적인 원인을 따지고보면 이게 다 육류의 대량소비, 밀집사육, 즉 우리가 고기를 너무 많이 먹어서 이렇게 된 거라고, 우리 이제 진짜 고기 먹지 말자고 둘이서 약속을 했지요. 그러고 저녁에 집에 갔는데 그날따라 웬일로 엄마가 소고기를 굽고 계셨고 저는 그만 그 향에 홀려서 결심이고 약속이고 뭐고 바로 제껴버리고 양껏 먹어버렸던 웃프고 창피한 기억이…. 그후로도 여러 번 채식을 시도했었지만 전부 얼마 못 가고 실패했어요. 전략적 단계별 시도도 여지없이 실패!! <고기로 태어나서>를 읽고 난 뒤에 가장 길게 육류를 끊은 적 있지만 시간이 지나니 도루묵 되더라고요. 지금은 사람이랑 같이 살질 않으니 채식에 대한 방해(?)가 없는데도, 육류를 줄이는 것까지는 되는데 끊는 건 어렵더라고요. 남의살이 맛있다고 아무 생각없이 과하게 먹지 말자, 줄이면서 살자! 생각하면서 살고는 있는데…
사람은 책을 통해서 간접경험을 하긴 하지만 역시 가장 강렬한 경험은 직접 경험이겠죠. 그림책을 그린 작가님이 직접 현장을 가서 보고 여러 과정을 거치신 것 같더라고요. 오래전 출판사 대표님이 제가 다니던 도서관에 강의를 오셨고 그때 우연히 알게 된 거 같아요.(역시 기억이 가물가물 ㅠ ) 이후에 지방에서 우연히 양계장을 지나칠 때면 소스라치게 놀라며 애써 외면하려고 했어요. 그때문인지 계란은 동물복지가 적혀 있는 제품 위주로 사려고 하고요. 아무래도 평소 자신이 생각하는 만큼 우리의 일상에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채식을 해야한다는 생각까지는 못미치고 있어요. 똑같은 고기 부위이지만 마트에서 사느냐 정육점에서 사느냐..에 따라 고기질이 다른 걸 많이 느끼는데요. 각 판매처마다 고기를 가져오는 곳이 다르기 때문이겠죠. 사람도 거주하는 공간이 저마다 다른 것처럼 돼지나 소도 사육되는 환경이 다 다를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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