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과학도서] 천천히 곱씹으며 느리게 읽기 <지구의 짧은 역사> 1부

D-29
지질학자에게 성지가 있다면, 시카포인트Siccar Point가 거기라고 할 수 있다.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동쪽 해안에 있는 바위투성이 곶이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57,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1788년 배로 이곳을 둘러본 허턴은 자신이 스코틀랜드 언덕에서 추론한 역동설이 옳았음을 확인했고, 시카포인트에 뚜렷이 드러나 있는 역사가 펼쳐지려면 엄청난 세월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허턴의 동료인 존 플레이페어John Playfair는 훗날 이렇게 썼다. "시간의 심연을 그렇게 멀리까지 들여다보고 있자니, 어질어질해지는 듯했다." 허턴은 시카포인트 암석의 연대를 알 방법이 전혀 없었지만, 우리는 수직으로 뻗은 지층이 4억 4,000만 년 전~4억 3,000만 년 전인 실루리아기에 퇴적되었고, 그 위에 쌓인 사암은 약 6,000만 년 뒤인 데본기에 쌓였다는 것을 안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58,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As Hutton's companion John Playfair remembered it years later, "The mind seemed to grow giddy by looking so far into the abyss of time."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58쪽에서 설명한 시카포인트의 형성 과정을 이해하기 쉽게 그림으로 그려놓은, 제임스 허튼에 대해 쓴 게시물이 있어 링크하고 그림은 별도로 사진으로도 올립니다. http://topclass.chosun.com/news/articleView.html?idxno=10260 그리고 같은 지형을 보고도 여전히 성경의 논리로 시간의 심연을 인정하지 않는 유사과학단체인 한국창조과학회의 주장도 링크합니다. 현대의 기술로 암석의 나이를 몇 억년으로 측정할 수 있다는 사실은 쏙 빼놓고 하고 싶은 말만 하고 있죠. https://creation.kr/Geology/?bmode=view&idx=15693113
시카포인트 부정합면을 사진에 표시해놓은 걸 보니 눈에 확 들어옵니다.
아래 링크도 함께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시카 포인트 위에 사람들이 서 있네요. ^^ https://geologylearn.blogspot.com/2017/01/siccar-point-worlds-most-important.html?m=1&utm_source=Pinterest&utm_medium=organic
허턴은 그렇게 많은 암석이 퇴적물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과거 "세계들의 연속성", 즉 서식 가능한 지구를 유지하기 위해서 설계된 것처럼 보이는 체계의 증거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그가 남긴 말은 아마도 지질학에서 가장 유명한 문장일 것이다. "따라서 현재까지 우리가 조사한 것의 결론은 태초의 흔적도, 종말을 예견할 가능성도 찾지 못했다는 것이다." 앨런 매커디와 도널드 B. 매킨타이어의 글에 따르면, "허턴의 반대자들은 마치 허턴이...... 태초도 없었고 종말도 없으리라고 주장한 것처럼 그의 말을 왜곡했다." 허턴은 아주 곤란하게도 무신론자라는 의심을 받았다. 그러나 허턴에게는 지구가 파괴될 운명이라는 생각이 더 이단처럼 보였고, 자애로운 하느님의 뜻과 배치되는 듯했다. 왕립학회의 일로 기분이 상한 예순 살의 허턴은 사람들을 설득하려면 더 많은 증거를 찾아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리고 증거를 모으려면 암석으로 돌아가야 했을 것이다. 허턴은 자신이 수집한 표본을 "하느님이 손수 쓴 하느님의 책"이라고 불렀다.
깊은 시간으로부터 - 발아래에 새겨진 수백만 년에 대하여 p.56, 헬렌 고든 지음, 김정은 옮김
깊은 시간으로부터 - 발아래에 새겨진 수백만 년에 대하여작가이자 기자, 편집자로서 수많은 매체에 과학과 관련된 글을 기고해온 저자 헬렌 고든은 이 책에서 지구의 시간을 엿볼 수 있는 곳들을 직접 탐험하고 그곳의 전문가들과 대화하면서 독자들을 깊은 시간의 현장으로 이끈다.
약 2억 9,000만 년 전 ~ 2억 5,200만 년 전에 살았던 글로솝테리스Glossopteris의 나뭇잎 화석은 아프리카 남부, 남아메리카, 인도, 호주에서만 발견되었다(나중에 남극대륙에서도 발견되었다). 남반구 지질학자들에게는 이 식물이 지금은 사라진 육교를 통해서 대륙 사이로 이주했다는 전통적인 설명이나 대륙이 이동한다는 설명이나 터무니없어 보인다는 점에서는 별 다를 바 없어 보였다. 물론 고정론자들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여러 대학교에서 저명한 교수로 있었기에, 암석만을 쳐다보고 있는 남반구의 가난한 이들의 견해를 그냥 무시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61,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이 책을 읽으면서 존 맥피의 <이전 세계의 연대기>와 빌 브라이슨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참고하고 있는데, 저의 경우는 <거의 모든 것의 역사>가 더 도움이 됩니다. 맥피의 책은 진입장벽이 있더라구요, 어느 정도 지질학과 미국 땅에 대한 선행 지식이 있어야 즐길 수 있겠어요. 전 아직 내공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사실 <지구의 짧은 역사>에 나온 내용은 학창시절에 지리학과 지구과학, 화학, 생물, 물리에서 대부분 배운 내용들인데 그 때는 시험용으로 공부를 해서 재미도 못느꼈고 어떤 학설이 나온 배경이나 과정같은 흥미진진한 이야기들도 건너뛰고해서 한 마디로 지루했는데 시험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독서라 그런지 재미가 있네요.
저도 오늘 <거의 모든 것의 역사>를 도서관에서 대여했어요. 최근 판은 이미 대여중이라 2020년 판으로요. 천천히 읽기는 읽는 사람마다 와닿는 부분이 다를 수 있어요. 자신에게 울림을 주는 방향으로 계속 찾아가는 가운데 스스로 반짝이고 변화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이 초상화들이 그려질 무렵, 마흔한 살이었던 허턴은 누이들과 함께 살기 위해서 에든버러로 돌아왔다. 그의 이름과 연관된 추문은 수그러들었고, 그의 재정적인 전망도 개선되었다. 몇 해 전에 그와 그의 오랜 친구인 제임스 데이비는 에든버러의 굴뚝 청소부들이 모은 검댕으로 살암모니악sal ammoniac, 즉 암모늄염과 염화수소를 만드는 방법을 고안했다. 살암모니악은 허턴의 시대에는 염색업에 이용되었고, 황동과 주석으로 하는 작업에도 활용되었다. 그전까지 살암모니악은 전량 이집트에서 수입되었는데, 이것을 직접 만듦으로써 허턴과 데이비의 사업은 드디어 짭짤한 수입을 내게 되었다. 마침내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농사를 지어야 하는 삶에서 해방된 허턴은 자신이 사는 도시에 스코틀랜드 계몽주의라는 지적인 분위기가 한창 무르익고 있음을 발견했다. 당시 그의 친구들과 동시대인들의 명단을 보면, 마치 위인 목록을 읽는 것처럼 데이비드 흄, 존 플레이페어, 애덤 스미스, 조지프 블랙, 제임스 와트, 시인 겸 작사가인 로버트 번스 같은 이름이 가득하다. 허턴은 스미스와 함께 오이스터 클럽Oyster Club이라는 신사들의 사교모임을 만들었다. 백스터의 글에 따르면, 술은 보르도산 적포도주가 선택되었고 "신사들은 식후에 마신 주량에 따라서 두 병 술꾼이나 세 병 술꾼으로 분류되었다."
깊은 시간으로부터 - 발아래에 새겨진 수백만 년에 대하여 pp.54~55, 헬렌 고든 지음, 김정은 옮김
헨리 레이번 Sir Henry Raeburn 이 그린 허턴James Hutton의 초상화입니다. 스코틀랜드 국립 미술관에 있어요. https://www.nationalgalleries.org/art-and-artists/2808
에딘버러에 있는 동안 제임스는 많은 친구를 사귀었는데, 특히 이산화탄소를 발견한 화학자 조셉 블랙이나 유명한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와 친하게 지냈다. 이 세 사람은 오이스터 클럽을 결성해 일주일마다 모여 저녁식사를 하면서 다양한 주제를 놓고 토론하거나 야외 답사도 갔다. 친근한 분위기 속에서 학문적인 토론이 가능했으며, 허튼은 과학에 대한 모든 것을 닥치는 대로 읽어나갔다. 주변을 산책하는 동안 제임스는 그가 걷고 있는 땅이 항상 그대로였던 것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1783년에 그는 에딘버러 왕립학회의 전신이 되는 모임에도 참가했다. 지질학에 대한 관심이 깊어질수록 그를 스코틀랜드, 잉글랜드, 웨일즈 등지를 돌아다니며 암석과 지층과 지형을 관찰하고, 자료를 수집하며 지구 역사에 대한 단서들을 찾아 지질과학의 방향을 바꿀 이론을 만들어나갔다.
천재들의 과학노트 4 - 과학사, 밖으로 뛰쳐나온 지구과학자들 p.62, 캐서린 쿨렌 지음, 좌용주 옮김
로키산맥이나 알프스산맥의 위압적인 봉우리를 더 자세히 들여다보면, 지구 역사의 또 다른 측면이 눈에 들어온다. 봉우리의 뾰족뾰족한 모양은 퇴적으로 형성된 것이 아니다. 정반대로 침색을 통해 조각된 것이다. 암석을 깎아내는 이 물리적, 화학적 과정은 암석이 본래 지녔던 이야기를 지워버린다. 지구는 한 손으로는 자신의 역사를 쓰면서 다른 손으로는 쓴 역사를 지운다. 그리고 시간을 거슬러 올라갈수록, 지우는 손이 더 바쁘게 움직인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p 031~032,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저는 이 책의 문학적 표현이 좋아요. 지구가 더 감성적 생명체처럼 느껴진달까요...
맞아요. '손'으로 지운다는 표현이 그러네요. 그 다음 문단의 '유아기infancy'라는 표현도 그렇고요. 'erasure gains the upper hand.' 부분은 '지우는 손이 더 바쁘게 움직인다'라고 번역가가 의역을 하셨지만요.
Earth writes its history with one hand and erases it with the other, and as we go further back in time, erasure gains the upper hand.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19세기와 20세기 초의 지질학자들이 지구의 지도를 작성해 갈수록 허턴이 말한 융기와 침식의 주기가 되풀이되어 왔다는 사실이 더 명백해졌다. 그런데 알프스산맥 같은 곳을 전문가의 눈으로 보자 산비탈에 단층과 습곡 같은 것들이 있었다. 수직 운동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의미였다. 암석은 옆으로도 움직이는 것이 분명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58-60쪽,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베게너는 많은 청소년이 그렇듯이, 비가 오는 날 지구본을 들여다보면서 상상의 날개를 펼치던 중에 대서양을 닫을 수 있다면, 브라질의 코처럼 튀어나온 부분이 서아프리카의 움푹 들어간 부위와 딱 들어맞고, 북아메리카 동부가 사하라 지역과 딱 들어맞는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혹시 대륙이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지표면에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이따금 서로 부딪쳐서 산맥을 솟아오르게 하는 것이 아닐까? 해저 분지는 예전에 붙어 있던 땅덩어리들이 떨어져 나간 흔적이 아닐까?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60쪽,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북아메리카와 유럽의 저명한 지구과학자들은 대륙이 해저 분지를 펼치면서 움직일 수 있는 작동 원리를 생각해낼 수 없었기에, 베게너의 개념을 거부했다. 그들은 훗날 ‘고정론자fixist’라고 불리게 되었다. 반면에 남반구의 지질학자들은 베게너의 개념을 좀 더 환영하는 쪽이었다. 그들은 베게너의 대륙들이 기하학적으로 서로 잘 들어맞는다는 개념을 받아들였을 뿐 아니라, 대서양 양편의 지질학적 특성이 과거에 양쪽이 붙어 있었음을 시사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화석들도 그러했다. 예를 들어, 약 2억 9,000만 년 전~2억 5,200만 년 전에 살았던 글로솝테리스의 나뭇잎 화석은 아프리카 남부, 남아메리카, 인도, 호주에서만 발견되었다(나중에 남극대륙에서도 발견되었다). […] 물론 고정론자들은 유럽과 북아메리카의 여러 대학교에서 저명한 교수로 있었기에, 암석만을 쳐다보고 있는 남반구의 가난한 이들의 견해를 그냥 무시했다.
지구의 짧은 역사 - 한 권으로 읽는 하버드 자연사 강의 60-61쪽, 앤드루 H. 놀 지음, 이한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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