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

D-29
여행사 입구에서 나는 23층으로 안내받았다. 변방 부서가 위치해 있는 곳이라 했다. 서운하지만 사실이었다. 지구는 잘 알려지지 않은, 우주 맨 끝의 후미진 곳에 자리하고 있으니.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17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그는 끝내 말을 마무리하지 못했다. 번쩍하고 쿵 소리가 나더니 먼지가 일었다. 곧 먼지가 가라앉자 나랑 이야기하던 아르드리트인은 온데간데없고, 바닥엔 거대한 구멍이 뚫려 있었다. 나는 돌처럼 굳어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1분이 채 지나기 전에 아르드리트인 몇 명이 작업복을 입고 들어오더니 구멍을 메우고 커다란 상자가 실린 작은 카트를 밀고 왔다. 그 상자를 풀자, 내 눈앞으로 손에 표를 든 담당자가 다시금 나타났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19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그럼 나는 어디 있나요?” “무슨 소리예요? 극장에 있으시잖아요. 괜찮으신가요?” “그럼 내가 스페어인가요?” “그렇죠.”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196,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알다시피 진화란 힘센 놈이 약한 놈을 대량으로 잡아먹는 학살, 또는 약한 놈이 센 놈 안에 숨어들어서 멸망시키는 기생, 둘 중 하나다.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초록빛 식물밖에 없는데, 그들은 태양의 자본을 바탕으로 자력껏 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살아 있는 모든 생명에게 광합성을 도입하고, 특히 이파리 달린 인간을 고안해 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213~21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렘 작가 본인의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육식에 대해 지적하는 또 다른 대목이죠. 렘 작가는 어쩌면 식물들의 자연경쟁까지는 알지 못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또는 인간이 가진 폭력성을 지적하려는 의도에서 쓰다 보니 나온 문장일 수도 있겠고요. 식물 중 '큰가시수련'이라는 수생식물이 있는데요. 이 식물의 잎을 들춰보면 물에 맞닿아있는 잎 아랫 부분은 사진처럼 엄청난 가시들이 가득합니다. 큰가시수련은 진흙에 있던 씨가 발아하며 성장하면서 물 위로 올라오는데 이때 원형 모양의 잎이 펼쳐지면서 아랫면의 가시가 주변의 다른 수생식물들을 관통하고 찌르며 자신의 잎의 무게로 짓눌러 버립니다. 수생식물이라 하더라도 보다 무거운 다른 식물에 깔려 물에 잠기고, 햇빛을 차단당하며, 몸이 관통되면 살아남을 수가 없죠. 큰가시수련이 왕성하게 활동하는 시기에는 세 번째 사진처럼 호수의 표면이 전부 덮여서 어떤 다른 식물들도 살아남지 못합니다. 심지어 물 아래에 있는 식물들도 햇빛이 차단되어 말라버리죠. BBC 영상 다큐의 일부가 올라와 있는데 궁금한 분들은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마치 수련을 외계에서 온 침략자나 괴물처럼 묘사하는 분위기에요.) 한 쪽에서는 조용히 소리도 없이 제거 당하는 쪽이 있고, 다른 한 쪽에서는 그 빈자리를 메워 번성하는 순환이 반복되고 있는거죠. 식물들의 생존경쟁도 절대 만만치 않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TWSF3df6jUs
<스무번 째 여행>은 짧은 에피소드에 태양계 및 인류 역사를 포괄하고 실제 인물들을 유사 이름으로 등장시켜 축약했기에 관련 자료들을 찾기 시작하면 너무 많을 듯 하여 엄두가 안 나네요. 그렇다고 그냥 가기엔 섭섭하니 그 중에서 261쪽에 나오는 보스라는 사람이 그렸다는 ‘쾌락의 정원’ 사진 올립니다. 소설에서 말한 12인승 시간 여행 버스가 그림 어디에 있는지 찾아보시죠. 히에로니무스 보스가 1500년경에 그렸다는 이 그림은 현대의 초현실주의 그림과 유사한 느낌을 주는 독특하고 유명한 그림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2주차의 내용에 대해서 얘기해보겠습니다. 1) 2주차 독서 내용 중 흥미로웠던 부분이나 감상을 공유해주세요. 2) 열네 번째 여행에서 엔테로피아 행성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나요? 사물과 환경은 물론 생명도 온전히 복제할 수 있는 그들의 기술과 이것이 일상화 된 풍경을 어떻게 보셨나요? 여러분은 '세풀카'가 무엇일 거라고 상상하며 읽으셨나요? 3) 열여덟 번째 여행의 끝에서 이욘 티히는 자신의 부주의로 인해 세상을 더 낫게 만들지 못했다며 자책합니다. 여러분은 그의 견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의도하지 않았을지라도 이욘 티히 또한 불완전한 세계를 만든 또 다른 공범일까요? 4) 스물 두번째 여행에서 이욘 티히는 주머니칼을 찾아 헤메면서 다른 외계행성들의 상이한 가치관과 도덕관을 접하게 됩니다. 그러다 이야기의 끝자락에서 사실 내내 주머니칼은 자신의 안에 있었음을 알게 되죠. 이번 일지에서 주머니칼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2) 열네 번째 여행은 일지의 분위기가 내내 가볍고 유쾌하게 그려지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떤 부자연스러움이 느껴졌습니다. 그 이유는 엔테로피아 주민들이 재난, 죽음을 앞두고도 아무렇지 않게 행동하는 태도 때문인 것 같고요. 물건이나 건축물 외에도 살아있는 생명체조차 정확히 동일하게, 이전의 기억과 인지력을 유지한 상태로 복제하는 장면을 일상적이고 당연한 기술로 묘사하고 있죠. 렘 작가는 기술의 혜택이나 문명의 이기가 때에 따라, 배경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다르게 받아 들여짐을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이전의 개체와 동일하게 분자구조만이 아니라 정신과 기억까지 유지할 수 있다고 하여 동일한 존재로 봐야 하는지는 복제/클론기술의 가장 큰 쟁점이자 담론이죠. 그 담론에 대한 사회적 합의의 단계를 이미 다 지난 문명에 산다는 건 어떤 모습일지를 상상을 통해 미리 접하는 느낌입니다. 그런데 그 '당연함'의 정도가 너무나 만연하여 작품을 읽는 독자는 오히려 그 문화에 자연스레 융화되기 보다는 이욘 티히와 똑같이 어떤 이질적인 감정을 느끼죠. 가령 연극을 감상하는 극장에서 아르드리트인들은 누군가가 운석에 맞아 죽는 사건보다, 주변 관객의 소음으로 몰입이 방해받는 것에 더 흥분하고 분노하죠. 쿠르델을 사냥하는 대목도 이런 어색함이 아주 살짝 스쳐 지나가는데요. 아르드리트인이나 방문자들은 언제든 사고가 나더라도 대체할 수 있지만, 행성의 토착생명체들은 관광을 위해 사냥 당하더라도 다시 되살리지 않는 듯 합니다. 한 쪽에서는 같은 행성의 거주자들이 일상과 업무 중에 죽어도 그러든 말든 자신들의 관심사에만 집중하고, 다른 쪽에서는 한 때 그들과 공존했던 동물들이 관광 목적으로 내장이 터져 죽어야 합니다. 이런 속성들로 볼 때, 엔테로피아는 기술은 발전했지만 생명의 가치가 그와 반비례하여 희석된 사회를 풍자하는 모습으로 보였어요. 진짜와 복제물의 물리적 속성과 정체성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동일해지면서 오히려 원본의 가치도 그만큼 떨어진 세상으로 느껴졌어요. 가벼운 유머와 이국적인 도시의 풍경, 여행의 산뜻함으로 가리고 있지만 생명보다 유희와 즐거움이 더 중요한 사회가 섬뜩하게 다가오네요. 그 섬뜩함을 일반적인 관광객의 시선으로 다소 가볍게 풀어내는 분위기가 감상 포인트 같습니다. 관광지로서의 도시와, 관광상품에 가려진 빈부격차나 사회문제가 뒤엉켜 공존하는 현대사회를 묘사한 것 같기도 하고요.
클론과 복제기술로 인한 생명의 가치에 대한 과학소설 중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가 있습니다. 과거 제 모임에서 읽어본 분들도 있을 텐데요. 가까운 근미래에 지구의 자연재해와 기후변화로 문명이 붕괴하자, 살아남은 공동체들이 인류의 명맥을 잇고자 클론 기술에 손을 대는 내용입니다. 자연적인 유성생식과 임신-출산-양육이라는 기나긴 과정이 필요한 인간과 달리, 필요에 따라 복제되는 클론들은 줄어드는 인류의 빈 자리를 점점 메워가고 그로 인해 두 세력의 갈등이 커지는데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복제 기술의 발전으로 보다 빠르고, 보다 많은 클론을 단시간에 만들어낼수록 클론들에게 부작용이 나타나게 됩니다. 책을 읽다 보면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가는데요. 수프나 국물 요리에 물을 부으면 빠르게 양을 늘릴 수는 있어도, 간과 농도가 희석되어 버리죠. 마찬가지로, 겉으로 보기에는 동일한 인간일지라도 인간의 생산과 성장의 방법이 간결해지고 기계화될수록 인간 개개인의 가치는 옅어지는가? 를 고민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클론 기술과 생명의 가치, 인류가 사라지고 복원되는 자연의 먹먹한 아름다움을 느끼고 싶은 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노래하던 새들도 지금은 사라지고아작 출판사 독자들의 복간 투표 1위를 차지한 작품으로, 1977년 휴고상과 로커스상, 주피터상 최우수 장편상 수상작이다. 재난 이후의 인간 생활과 심리 등에 주목하는 일종의 '포스트-홀로코스트 SF' 소설인데, 원폭과 인간복제 등의 익숙한 소재를 다루면서도 개인의 감정을 충실하게 묘사하였다.
추가적으로, 저는 세풀카가 어떤 성적인 관습이나 문화 현상으로 이해됐는데요. 공적인 자리에서 다들 언급하기를 꺼려하고, 배우자를 데리고 온다는 점, 은밀한 속성을 볼 때 이쪽이 가장 가까워 보였습니다. 제 생각에는.. 세풀카와 세풀카리아는 어쩌면 아르드리트인들의 성별을 뒤바꾸는 행위 그리고 이를 도와주는 어떤 도구가 아닐까 싶어요. 초반에 이욘 티히가 행성에 도착하며 시내를 구경할 때, 지나가던 공무원처럼 보이는 아르드리트인들의 대화에서 남자를 변환시킨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책의 묘사를 보면 아르드리트인들의 신체는 매우 자유자재로 구부리고, 투명한 젤리 같은 재질로 느껴지는데 신체 내부의 특성도 바꿀 수 있는 몸일 것 같더군요. 많지는 않지만 일부 동물들은 암수의 자웅 성별을 전환할 수 있다는데 이들도 그렇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3) 비록 이욘 티히와 라즈그와즈 박사는 자신들이 세상의 현재 모습을 자초했다고 자책할지 몰라도, 그들의 실험과정에 개입한 혼돈과 불합리 또한 세상이 만들어지기 위한 필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시간 여행의 '닫힌 고리'의 문제상 어차피 피할 수 없는 문제이기도 하지만, 티히가 꿈꾸던 완전한 세상은 이론적으로만 존재할 수 있는 개념의 영역이기에 '현실'에 구현할 수 없었을 겁니다. 악이 없으면 선이 존재할 수 없고, 카오스가 없이는 코스모스가 만들어질 수 없는 것과 같은 이치겠죠. 우리가 살아가는 우주가 미시적인 세계와 거시적인 세계의 '일탈'로 만들어졌다면 그 일탈 또한 전체적인 관점에서는 필요한 '불규칙'일 겁니다. 이욘 티히와 라즈그와즈라는, 일탈로 만들어진 우주 속의 인간들이 빅뱅을 만들어낼 결심을 하지 않았다면 작품 속의 우주는 태어날 수 없었겠죠. 불완전한 이들의 실패한 실험은 비록 실패했을지라도 결과물을 남김으로써 현재의 우주를 만들어 냈고, 그 안에서 지구와 사람과 문명이 존재하게 되었으니까요. 반면, '논리적이고 완벽한 우주'는 애초에 빅뱅 실험을 시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세상이 존재한 적이 없으니 실험을 할 이욘 티히도 없죠. 애초에 '존재할 수 없는 우주'인 무無의 공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존재함(有) 은 존재함으로 인해 자신의 가치를 매순간 증명하고 시도할 수 있죠. 하지만 존재하지 않음(無)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무언가를 증명하고 시도할 수 없습니다. 작가가 시간 여행의 패러독스를 연결지어 빅뱅우주론과 창조론을 결합시켜 악惡과 비합리가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것도 이런 이유 같습니다. 이미 빅뱅의 순간부터 세상은 불완전함의 싹을 품고 나타났지만, 그로 인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고 존재할 수 있게 되죠. 온갖 부정한 악마 같은 존재들이 티히의 순수한 의도를 왜곡하고 무너뜨렸지만, 역설적이게도 이들의 악행이 개입되었기에 인간은 이파리만 달린 식물의 모양이 아니고 머리카락을 가진 채 살아갈 수 있게 되었죠. 선은 선대로, 악은 악대로 부정하지 않고 현재의 모습대로 살아가되 자신의 가치를 매순간 증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렘 작가는 말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가능하지도 않은 완벽과 온전함에 전념하고 끙끙대기 보다는 비록 불완전할지라도 현재의 자신과 세계를 포용하라는 말 아닐까요. * 티히가 실험 마지막에 집중력을 잃고 관심을 놓기 시작한 게 정작 하찮고 별 볼일 없는 모기들 때문에 일어난 일임을 생각해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만드는데 가장 크게 기여한 건 모기 덕(?) 같네요.
4) 스무 번째 여행은 지식을 가진 사람들의 편협함에 대해 풍자하는 일화로 읽혔습니다. 이야기의 끝에 라치몬 신부와 종교에 대한 얘기로 마무리되기 때문에 종교의 맹목성을 지적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일지의 앞부분에는 안드리고나인들의 과학적인 사고와 별개로 그들의 닫힌 사고관이 나오죠. 과학과 종교는 서로 대척점에 있는 것 같지만, 둘 모두 세상을 이해하는 기준을 넘어 맹신하게 되면 오히려 생각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극과 극은 서로 통한다는 말처럼요. 안드리고나인들은 생명이 없다고 확신하는 행성에서 직접 찾아온 외계인이 있음에도 기존의 믿음과 과학관, 교육체계를 바꾸는 것이 두려워(또는 번거로워) 현실을 부정하죠. 또한 라치몬 신부와 교황청은 자신들의 전도와 포교활동이 더이상 통하지 못하는 외계의 우주를 설득의 대상으로 보기보다는 '존재하지 않는 우주'로 치부하고 지도에서 가려버립니다. 라치몬 신부는 우주의 여러 문명들이 '절대적 진리'인 종교와 교리를 두고도 얼마나 다르게 받아들일 수 있는지 다른 사례들을 직접 겪어봤음에도 자신의 방법을 고민하기 보다는 상대를 존재하지 않거나, 정복해야 할 이교도로 치부해버리죠. 개인적으로 이 여행이 마음에 들었던 건, 흔한 종교비판 소재의 뻔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었으나 과학적 사고가 가진 맹점과 한계도 같이 균형있게 다루었다는 점이에요. 일방적으로 과학과 기술의 입장에서 종교를 비논리적/비합리적이라고 비판만 하지 않고 거울로 비춰보듯 반대편의 문제도 조명하죠. 지식과 논리가 사고를 확장하기 보다는 오히려 호기심과 자유로운 생각을 가로막는 또 다른 장애물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좋았습니다. 이욘 티히가 내내 찾아다니던 주머니칼은 '약간의 개방성과 열린 마음'에 대한 상징 같아요. 안드리고나에서도, 라치몬 신부에게서도 찾을 수 없던 주머니칼이 정작 그의 옷 안에 내내 들어있었던 상황은 과학이나 종교에만 의지하기 보다는 우리 각자가 가지고 있는 내면의 자질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외부의 시선과 관점이 아닌, 자신의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말로 이해됐어요.
써 놓고 보니 스무 번째가 아니라 스물 두번째 여행이었군요. 일정을 착각했네요;
나중에 창조력을 십분 발휘하지 못했다고 혹시 비난할까 봐, 나는 이 홉사(호모 퍼펙투스 사피엔스) 프로젝트에 있어서만큼은 충분한 자율권을 보장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256,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Homo Perfectus Sapiens의 앞글자만 따면 HOPESA가 되는데 앞의 HOPE가 '희망'의 영단어인게 아직까지는 그래도 믿음을 잃지 않은 이욘 티히의 심리를 나타내는 것 같네요.
아무런 질서도 논리도 없이 온갖 요소들을 결합했으므로, 하나하나가 기괴하기 짝이 없었다. 어떤 놈들에게는 네발 위쪽에 근육을 부여하고, 어떤 놈들은 꼬리만 달아 놓고, 어떤 것들에게는 가루를 뿌리고 어떤 견본엔 두꺼운 뼈를 넣더니 다른 견본엔 되는대로 뿔이나 발톱, 호스, 파이프, 빨판을 붙여 놓았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25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https://youtu.be/Ye2ABYCNjYs?si=W6nfZf5Xpq4c5O8B https://youtu.be/KBzlkPS7ZUw?si=PaCMPQ6Mw9Ao22it 아마도 캄브리아기의 온갖 괴상해보이는 생물들의 등장을 말하는 것 같네요. 첫번째 사진은 할루키게니아로, 처음 화석이 나왔을 때는 마치 환각에 빠졌을 때나 볼법한 모양새로 인해 저런 이름이 붙었습니다. 당시에는 어디가 위이고 아래인지, 앞가 뒤과 어디인지조차 알 수 없었다고 해요. 두번째 사진은 베툴리콜리아로 지금도 이 동물의 분류는 명확하지 않다고 합니다. 보는 것처럼 물고기 같으면서도 물고기는 아니고(꼬리 지느러미 외에는 아가미나 양옆에 지느러미가 없어요), 갑각류나 절지동물처럼 몸에 구분되는 갑피가 있는데, 척삭(척추와 유사한 기관)이 달려 있으며, 눈이 없습니다. 부리 같은 입이 있으나 무언가를 찌르거나, 베어물거나, 집는 용도가 아니라서 사냥을 했는지 아닌지조차도 불확실하다고 해요. 학자들은 아마도 플랑크톤 같은 걸 걸러먹거나 또는 다른 퇴적물이나 침전물을 섭취하지 않았을까 추측합니다. 책에 나오듯 인간의 기준에서는 '반미학적인 비구상 형식주의가 판을 치던' 캄브리아기는 마치 의도적으로 생물을 어디까지 뒤틀수 있을지 자연이 실험한 듯한 생물들이 가득하네요.
나는 그에게 "지성을 가진 물속 생명체는 절대 안 돼!"라고 말했다. 결국 돌고래는 상당히 커다란 두뇌와 함께 그 상태 그대로 남게 되었고, 우리는 위기 상황에 빠지고 말았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26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267p의 A.돈나이는 '아도나이', 히브리어로 '나의 주님'으로 과거 유대인들이 유일신 야훼의 이름을 인간의 입으로 직접 부르지 않고자 대신 택한 단어라고 하네요.
돈나이의 주장에 따르면, 신은 개념으로서 전혀 해롭지 않다, 거기다 우리들에게 도움이 된다, 이를테면 프로젝트의 결정은 신의 결정이므로 아무도 눈치챌 수 없는 것이다. 즉 사람들은 신을 이해할 수 없기 때문에 아무것도 트집 잡지 못할 터다. 또한 누군가 시간을 조작하며 역사에 끼어들었다는 의심조차 하지 않으리라.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26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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