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마지막 어린이의 바이올린 연주 솜씨가 마음에 들어서 그를 응원하기로 했다. 그리고 몇 년 뒤 이 선택으로 말미암아 일본에 원폭이 투하되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286,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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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그리곤 하다하다 안 되니 이토록 극심한 난맥에 빠진 문제의 해결과 책임을 과거의 이욘에게 떠넘겨버리는 것이 압권이죠. ㅎㅎ
은화
읽을 때는 몰랐는데 밥심님의 댓글을 보다 보니 인간들 본인이 세상사 문제들을 저질러 놓고는 잘된 일은 내 탓, 못한 일은 남 탓(신의 탓)으로 돌리며 변명하는 태도도 지적하는 것 같네요.
신의 이름으로, 종교적 명분으로, 더 나아가 각종 이데올로기나 이념과 온갖 대의를 수식어구로 끌고 와 세상을 어지럽히는 위정자들을 풍자한 것 같습니다 ㅎㅎ
온누리
소설이 1주차에 비하여 조금 더 난해해진 것 같기도 하고, 현실의 무언가를 비틀어서 묘사하는 것 같기도 하며, 그 '현실의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이야기 한다면 상당히 폭 넓게 많은 것을 말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지금은 이를 콕 집어서 정리를 못하고 있습니다.
'세풀카'는 같은 집단 내에서는 따로 설명이 필요없을 정도로 소속원 모두가 그 필요성과 당위성을 인식하고 동의하며 소속원의 행동기제로 역할하고 있는 사회적 규범을, 다른 집단에 소속된 외부인에게는 설명하거나 납득시킬 수 없는 경우를 묘사하고 풍자하는 것 같습니다.
예를 든다면, 최근 청소년들 사이에서 “개좋아”, “개잘해”, “개웃겨”처럼 ‘개’를 ‘매우’의 의미로 사용하는 표현이 널리 확산되었는데, 그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는 나이의 저에게 '매우'를 사용하지 않고 '개'를 사용하여야 하는 합당한 근거를 설명하거나, 부정적인 뉘앙스로 사용하는 '개'를 왜 긍정적인 뉘앙스로 사용하는지를 납득시킬 수 없는 것이 이런 경우에 해당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자는 철학적인 주제를 즐겨 다루면서 '상호 의사소통 및 이해의 불가능'을 주제로 하는 작품이 많다는 평이 있으므로, '세풀카'라는 묘사와 풍자가 서로 판이하게 다른 집단간의 소통과 공감을 위하여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는지는 불분명한 부분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은화
온누리님 의견 감사합니다. 열네 번째 여행의 초반 서술에서 이욘 티히가 백과사전을 펼쳐봐도 서로 물고 물리는 상호참조로 인해 정보를 찾지 못하는 장면이 있죠. 정보나 문서로 담을 수 없는 불문율 또는 문화나 사회현상을 의미하는 것 같기도 하네요.
옛날 사람들의 사진이나 기록물, 비디오나 영상을 보면서 그들의 생활상과 당시의 가치관을 이해한다고 하지만 우리는 그 사회가 남긴 극히 일부분의 단편만을 접하죠.
생각해보면 우리 모두 태어나서부터 온갖 규범과 문화와 가치를 접하고 또 그것들이 담긴 유무형의 물건이나 사건을 경험하지만 다 기록으로 남기지 못하잖아요? 어렸을 때 가지고 놀았던 장난감들, 읽었던 책과 교과서들, 거리에 돌아다니던 전단지, 신문, 만화영화와 광고들.. 그나마 이런 것들은 매체를 통해 인쇄되거나 방영되기라도 했지 사람과 사람이 직접 만나야만 발생하는 의사소통과 문화현상은 기록으로 남지 못하는 것들이 많죠. 그 당시에 유행했던 아이들간의 놀이, 유행어, 핸드폰이 없던 시절 약속시간에 모이던 방법 같은 것들..
정보통신의 시대에 '백과'사전이라며 자부하지만 결국 세상의 모든 가치와 모습을 담아내지 못하며, 불분명한 일부의 사실과 데이터만이 남아 상호참조의 오류로 남는 현상을 통해 작가는 정보사회가 가진 한계를 비꼰 것 같기도 합니다. 세풀카가 무엇인지는 결국 엔테로피아에 가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무언가라는 점에서, 직접 경험하고 체험하는 노력이나 태도 없이 매체를 통해서 현상과 대상을 간접적으로 접한 뒤 '이해했다'고 착각하는 태도를 풍자하는 의도도 있을 것 같네요.
은화
“ 그는 확신을 가지고서 지구의 대부분은 차갑고, 거의 0도에 가까운 매우 깊은 물로 뒤덮여 있으며, 무려 빙하까지 떠다닌다고 했다. 남극과 북극뿐 아니라 이를 둘러싼 지역에도 역시 끔찍한 추위가 계속되며, 반년 동안 쉼 없이 밤만이 이어진다고 덧붙였다. 그래서 천문학 기구로 들여다볼 수 있듯이 육지는, 따뜻한 지방조차 1년 중 여러 달 동안 눈이라는 얼어붙은 수증기에 둘러싸이며, 이 눈은 산과 들판 위에도 두껍게 쌓인다. 지구의 커다란 달은 조석을 일으키는데, 이것은 파괴적 침식 작용을 일으킨다. 가장 성능 좋은 망원경을 통해서 본다면, 이 지구가 얼마나 자주 구름층에, 그 어둠 속에 휩싸이는지 알 수 있다. 대기층에서는 무서운 회오리바람, 태풍과 폭풍우가 휘몰아치고 있으며, 이 모든 사실을 종합해 볼 때, 지구에서는 어떠한 형태의 생명도 불가능하단다.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297~298,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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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손님분, 죄송합니다만, 저희가 환대해 드렸는데 너무한 행동 아닙니까? 이렇게 공식적으로 환영하고 축하하며, 존경의 표시를 보였으면 됐지요. 대학 입학 시험 자리에 영예롭게 초대받으신 것도 모자라, 이제 당신을 위해서 우리가 교육 과정을 모조리 바꿔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까?"
"하지만…… 지구에는 생명들이 살고 있어요……." 나는 혼란한 상태로 내뱉었다.
시험관은 마치 내가 그 자리에 없다는 듯 말했다. "만약 그렇다면, 그건 자연의 돌연변이겠죠."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29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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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왜냐하면 육체적 접촉을 죄악이라고 들었기 때문이랍니다. 너무나 구원을 원해서 모두들 서원하고 정결을 유지한다는군요! 2000년 동안 교회는 일상의 삶보다 영혼의 구원이 더 중요하다고 설파해 왔지만, 지금까지 그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이는 아무도 없었어요, 하느님 맙소사! 이 아르페투자인들은 모두들 소명을 느끼고 무더기로 수도원에 들어오고 있어요. 저마다 모범적으로 규율을 지키고 기도를 올리고 단식을 하고 육신을 괴롭히며 정죄하죠. 그러는 동안 공업은 쇠퇴하고 농업도 무너지고 굶주림이 만연해서 행성 전체가 다 죽게 생겼어요. 여기에 대해서도 바티칸에 보고했지만 언제나처럼 대답은 침묵뿐……."
"다른 행성에 믿음을 전파하기란 상당히 위험한 일이 될 수도 있겠군요……."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0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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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죄송하지만, 무슨 방법을요?"
"이를테면, 우주에서 그 부분을 종이로 가려 놓고, 그곳의 존재를 부정하는 것이죠. 그러나 전혀 도움이 되지 않았어요. 요즘 바티칸에서는 신앙을 수호하고자 십자군을 조직한다는 얘기가 돌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거기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는데요?"
"뭐, 나쁠 건 없겠죠. 만약 그들의 행성을 폭파하고, 도시를 파괴하고, 책들을 태워 버리고, 그들의 발을 묶어 버리면, 어쩌면 이웃 사랑의 가르침을 전파할 수도 있겠지만, 도대체 그 십자군을 누가 이끌고 간다는 말입니까? 멤누그족? 아르페투자족? 헛웃음이 다 나올 지경이군요, 걱정만 되고요!"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1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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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심
이욘 티히가 인간에게 털이 아닌 식물의 잎을 주려고 했 는데 방해에 의해 실패했다는 이야기를 읽으면서 비슷한 상상을 하는 사람들이 많구나 생각했어요. 육식에 실망한 후 광합성작용만으로 살겠다는 목표로 연구를 해서 자신의 몸을 나무로 변하게 만드는데 성공한 사람에 대한 짧은 소설을 제가 몇 년 전에 재미로 써본적이 있거든요. 읽어보진 못했지만 장강명 작가님도 비슷한 소재로 소설을 쓴 적이 있다고 하셨고요. 몰라서 그렇지 프로든 아마추어든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이런 이야기를 상상하고 글로도 쓰고 그랬을 것 같아요.
은화
장르와 내용이 전혀 다른 작품이긴 하지만 가즈오 이시구로의 <남아 있는 나날>에도 그런 비슷한 내용이 있었던 게 기억나네요. 사람들이 모두 나무가 되어 지상에 뿌리가 박혀 움직이지 못한 다면 어떤 갈등도 야기하지 못할 거라며 농담을 주고받는 대사였어요. 렘 작가는 본인이 살아가던 시대가 냉전시기다보니 평화와 갈등에 대한 고민이 더 많았을테고요.
borori
1)우주와 지구의 역사를 이렇게 다각도로 짬뽕해서 그럴듯하게 SF 관점으로 엮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조금 정신없었지만 그럴듯하고 심지어 유쾌하고 재밌다니!
2)1회용 혹은 인스턴트처럼 쉽게 쓰고 버려지는 것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았습니다.
세풀카는 사실 정확히 짐작조차 못했는데요. 뭔가 요상한 생명체? 2세를 뜻하는 것 아닐까요?
3)누구였더라도 불완전한 듯 만들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완전과 불완전의 정의는 각자 달라 질거란 생각에 완전함이 가능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구의 역사와 사탄의 이야기를 엮어 SF로 재창조한 독특함에 재밌게 읽었습니다.
4)외계적 아니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꼈던 여행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절실하고 기본 규범과도 같은 규칙과 교리가 외계적 관점에선 전혀 달라지거나 다른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상황들이 놀라웠습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인 주머니칼이 자신을 떠난 적이 없고 계속 자신이 갖고 있었다는 관점이 결국 소중한 것은 자신 안에 있다는 뜻 아닐까요? 돌고 돌아 결국 소중한 것은 내 안에 있다.
은화
2세라는 상상이 재밌네요 😀 일지에서도 아르드리트인들이 부모와 자녀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오죠. 이 들이 가진 고도화 된 생명 복제 기술을 생각하면 굳이 유성생식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부모 개체들이 가진 특질만을 모아 자녀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걸 세풀카라고 상상하면.. 아르드리트 주민들이 왜 이욘 티히의 말에 혼절하는지 이해가 되네요 ㅎㅎ
은화
“ "한 결합이 끊겨도 다른 결합이 생겨나죠. 이렇게 없어진 것들이 재생되는 까닭은 음식과 음료의 섭취, 그리고 호흡을 하기 때문이지요. 이 모든 것을 신진대사라고 하고요. 그러므로 몇 년 전 당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원소는 벌써 당신 몸을 떠나서 먼 곳을 돌아다니고 있죠. 변하지 않는 것은 유기체의 전체적 구조와 부분들의 공통적 짜임뿐입니다."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22~32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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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우체통과 비슷하게 생긴 작은 문이 달린 기계는 공원에도, 길거리에도, 어디에나 서 있어서 수시로 체험할 수 있었다. 적절한 시각에 자명종을 맞추는 일만 기억하면 되었다. 정신없는 이들은 가끔 이것을 깜빡하고, 기계 속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25,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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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이마 한가운데 입이 붙어 있고, 귀는 수염 난 턱 아래 양쪽에 쌍으로 달려 있었고, 눈은 열 개인 데다 볼은 빨갰지만, 나처럼 온갖 희한한 생명체들을 다 만 나 본 우주 여행자에게 이들은 인간이라고 착각할 만큼 친근하게 느껴졌다.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2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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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어떤 똑똑한 발명가가 '새로운 기계'들을 발명했는데, 너무나 완벽해서 이 기계들은 일말의 어떤 감독도 필요 없이 홀로 일할 수 있었죠. 그것이 재난의 시작이었습니다. 공장에 이 '새로운 기계'들이 등장하자마자 티라우들은 즉시 일자리를 잃었어요."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30~33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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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1950년대 소설임에도 오늘날의 고민, 사회현상과 아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오네요. 자동화, 분업화, 디지털화, AI의 대체가 화두가 되는 현대사회를 미리 보고 온 것만 같은..
꽃의요정
요새 나온 SF 작품들보다 훨씬 세련됩니다. 이 분이야말로 외계인 아니면 진짜 미래에서 온 거 같아요.
은화
스타니스와프 렘은 그가 살아있을 적에 어떤 사회현상을 보고 이런 생각을 품은 건지 궁금하네요. 그래서 작가의 생애와 당시의 주요 과학/기술 사건들의 연도를 찾아봤는데요.
- 1921년 : 렘 작가가 이 때 태어났습니다.
- 1929년 : 작품에서도 언급되는 대공황이 이해 10월에 시작되고요.
- 1939년~45년 : 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끝입니다.
- 1941~1944년 :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 점령 되었을 때로 렘은 당시 자동차 수리와 용접 일을 했다고 해요.
- 1945년 : 컴퓨터의 시초라고 할만한 '에니악'이 등장합니다.
- 1946년 : 렘은 이때부터 소설과 시를 비롯한 작품활동을 시작합니다.
- 1950년 : 인공지능 판별의 대표적 시험인 '튜링 테스트'가 앨런 튜링의 논문에 등장합니다.
- 1951년 : 상용 컴퓨터 '유니박-1'이 나옵니다. (PC와는 다른, 공기관/기업용 컴퓨터라네요.)
- 1957년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가 출간됩니다.
- 1961년 : 유리 가가린은 역사 이래 최초로 우주공간에 진출한 인간이 됩니다. 또한 렘 작가의 대표작 <솔라리스>가 발행됩니다.
- 1969년 : 인터넷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파넷(ARPANET)'이 1969년 미국 4개 대학의 서버와 컴퓨터를 연결함으로서 탄생합니다. 또한 같은 해에 인류가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발을 딛습니다.
- 1977년 : 우리가 일반적으로 머리에 떠올리는 개인용 PC의 시발점인 'Apple II' 모델이 출시됩니다.
책이 나온 연도를 고려하면 당시에는 아직 인터넷의 개념이 없었을 때죠. 그럼에도 스물네 번째 여행의 이야기는 2020년대에 대입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렘 작가는 과연 무엇을 내다본 걸까요. 컨베이어 벨트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던 공장의 기계화와 그로 인한 대공황을 겪으며 이런 상상을 한 걸까요? 점차 민간 사업으로 뻗어가는 컴퓨터의 유용성과 성능을 보며 기계의 확산과 자동화가 퍼진 미래를 추측했을까요? 그가 당시 고심하고 고뇌하던 시대의 흐름과 머리에 가득했을 상상력을 알고 싶어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