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

D-29
1)우주와 지구의 역사를 이렇게 다각도로 짬뽕해서 그럴듯하게 SF 관점으로 엮을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조금 정신없었지만 그럴듯하고 심지어 유쾌하고 재밌다니! 2)1회용 혹은 인스턴트처럼 쉽게 쓰고 버려지는 것에 대해 떠올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괜찮은 걸까? 왠지 모를 찜찜함이 남았습니다. 세풀카는 사실 정확히 짐작조차 못했는데요. 뭔가 요상한 생명체? 2세를 뜻하는 것 아닐까요? 3)누구였더라도 불완전한 듯 만들어졌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완전과 불완전의 정의는 각자 달라 질거란 생각에 완전함이 가능할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구의 역사와 사탄의 이야기를 엮어 SF로 재창조한 독특함에 재밌게 읽었습니다. 4)외계적 아니 우주적 관점에서 인간이 얼마나 작은 존재인지 느꼈던 여행이었습니다. 우리에겐 절실하고 기본 규범과도 같은 규칙과 교리가 외계적 관점에선 전혀 달라지거나 다른 관점으로 받아들이는 상황들이 놀라웠습니다. 소중하게 여기는 물건인 주머니칼이 자신을 떠난 적이 없고 계속 자신이 갖고 있었다는 관점이 결국 소중한 것은 자신 안에 있다는 뜻 아닐까요? 돌고 돌아 결국 소중한 것은 내 안에 있다.
2세라는 상상이 재밌네요 😀 일지에서도 아르드리트인들이 부모와 자녀들이 존재하는 것으로 나오죠. 이들이 가진 고도화 된 생명 복제 기술을 생각하면 굳이 유성생식의 방법을 사용하지 않을 것 같기도 하고요. 부모 개체들이 가진 특질만을 모아 자녀를 인위적으로 만드는 걸 세풀카라고 상상하면.. 아르드리트 주민들이 왜 이욘 티히의 말에 혼절하는지 이해가 되네요 ㅎㅎ
"한 결합이 끊겨도 다른 결합이 생겨나죠. 이렇게 없어진 것들이 재생되는 까닭은 음식과 음료의 섭취, 그리고 호흡을 하기 때문이지요. 이 모든 것을 신진대사라고 하고요. 그러므로 몇 년 전 당신의 몸을 구성하고 있던 원소는 벌써 당신 몸을 떠나서 먼 곳을 돌아다니고 있죠. 변하지 않는 것은 유기체의 전체적 구조와 부분들의 공통적 짜임뿐입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22~32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우체통과 비슷하게 생긴 작은 문이 달린 기계는 공원에도, 길거리에도, 어디에나 서 있어서 수시로 체험할 수 있었다. 적절한 시각에 자명종을 맞추는 일만 기억하면 되었다. 정신없는 이들은 가끔 이것을 깜빡하고, 기계 속에서 영원한 휴식을 취하게 되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25,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이마 한가운데 입이 붙어 있고, 귀는 수염 난 턱 아래 양쪽에 쌍으로 달려 있었고, 눈은 열 개인 데다 볼은 빨갰지만, 나처럼 온갖 희한한 생명체들을 다 만나 본 우주 여행자에게 이들은 인간이라고 착각할 만큼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2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어떤 똑똑한 발명가가 '새로운 기계'들을 발명했는데, 너무나 완벽해서 이 기계들은 일말의 어떤 감독도 필요 없이 홀로 일할 수 있었죠. 그것이 재난의 시작이었습니다. 공장에 이 '새로운 기계'들이 등장하자마자 티라우들은 즉시 일자리를 잃었어요."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30~33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1950년대 소설임에도 오늘날의 고민, 사회현상과 아주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는 게 눈에 들어오네요. 자동화, 분업화, 디지털화, AI의 대체가 화두가 되는 현대사회를 미리 보고 온 것만 같은..
요새 나온 SF 작품들보다 훨씬 세련됩니다. 이 분이야말로 외계인 아니면 진짜 미래에서 온 거 같아요.
스타니스와프 렘은 그가 살아있을 적에 어떤 사회현상을 보고 이런 생각을 품은 건지 궁금하네요. 그래서 작가의 생애와 당시의 주요 과학/기술 사건들의 연도를 찾아봤는데요. - 1921년 : 렘 작가가 이 때 태어났습니다. - 1929년 : 작품에서도 언급되는 대공황이 이해 10월에 시작되고요. - 1939년~45년 : 2차 세계대전의 시작과 끝입니다. - 1941~1944년 : 폴란드가 나치 독일에 점령 되었을 때로 렘은 당시 자동차 수리와 용접 일을 했다고 해요. - 1945년 : 컴퓨터의 시초라고 할만한 '에니악'이 등장합니다. - 1946년 : 렘은 이때부터 소설과 시를 비롯한 작품활동을 시작합니다. - 1950년 : 인공지능 판별의 대표적 시험인 '튜링 테스트'가 앨런 튜링의 논문에 등장합니다. - 1951년 : 상용 컴퓨터 '유니박-1'이 나옵니다. (PC와는 다른, 공기관/기업용 컴퓨터라네요.) - 1957년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가 출간됩니다. - 1961년 : 유리 가가린은 역사 이래 최초로 우주공간에 진출한 인간이 됩니다. 또한 렘 작가의 대표작 <솔라리스>가 발행됩니다. - 1969년 : 인터넷의 전신이라고 할 수 있는 '아르파넷(ARPANET)'이 1969년 미국 4개 대학의 서버와 컴퓨터를 연결함으로서 탄생합니다. 또한 같은 해에 인류가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발을 딛습니다. - 1977년 : 우리가 일반적으로 머리에 떠올리는 개인용 PC의 시발점인 'Apple II' 모델이 출시됩니다. 책이 나온 연도를 고려하면 당시에는 아직 인터넷의 개념이 없었을 때죠. 그럼에도 스물네 번째 여행의 이야기는 2020년대에 대입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렘 작가는 과연 무엇을 내다본 걸까요. 컨베이어 벨트에서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던 공장의 기계화와 그로 인한 대공황을 겪으며 이런 상상을 한 걸까요? 점차 민간 사업으로 뻗어가는 컴퓨터의 유용성과 성능을 보며 기계의 확산과 자동화가 퍼진 미래를 추측했을까요? 그가 당시 고심하고 고뇌하던 시대의 흐름과 머리에 가득했을 상상력을 알고 싶어지네요.
작가님 본인이 이욘 티히였던 거 아니었나요? ㅎㅎ 그래서 2660년에서 1950년대로 와서 책 쓰시고 미래로 돌아가셨겠죠~~
스물네번째 여행은 AI와 AGI에 대한 기사들을 접하며 고민하는 것들이 담겨 있는 것 같아 더 흥미로운 것 같습니다. 이런 고민과 이야기를 그 예전부터 했다는 것도 놀랍습니다.
비극적인 유전적 요인 때문에 꼭 그렇게 해야만 한다면, 피투성이 희생물을 아무도 모르게, 깊은 굴속의 가장 컴컴한 구석에서, 고뇌와 양심의 가책, 절망과 언젠가는 이 끔찍하고 끝없는 범죄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바라는 희망을 가지고 섭취하는 것은 당연할 일입니다. 그러나 이 추악한 미치광이는 그렇게 행동하지 않습니다! 이미 생명잃은 몸뚱어리를 찌르고 끓이며 가지고 놀다가, 망자에 대한 식욕을 더욱더 돋우기 위해, 공공의 탐식장에서 팔짝팔짝 뛰는 동종의 헐벗은 암컷들 사이에서 섭취합니다.
제가 이런 존재인지 몰랐어요...ㅜ.ㅜ
렘 작가님 본인은 혹시 채식주의자였는지 물어보고 싶네요 😂 고기를 좋아하는 저로서는.. 가끔 비인도적이거나 불결한 환경에서 학대당하는 동물들이 불쌍해서 마음 한구석이 불편한 자신과, 모른척하고 그냥 맛 좋은 고기를 먹고싶은 자아 사이에서 항상 후자가 이기네요.
"이 프로젝트를 추진하고자 두리나우에 다변화된 위원회를 설치했지만, 위원회가 아무리 애원하고 부탁해도 결과는 나오지 않았어요. 도스토이니들은 새 기계들이 티라우들보다 더 싸게 먹히고 빨리 일한다며, 이런 생산 방법이야말로 자기들이 원하는 바라고 말했죠."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33~33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개헌 프로젝트도 있었는데, 공장 주인들의 수입 일부분을 티라우들에게 주자는 것이었지요. 하지만 이 프로젝트도 망하고 말았어요. 왜냐하면 대스피리트인 놀라브가 주장한 것처럼, 이런 식으로 생계를 유지할 수 있게끔 분배하는 조치는 티라우들의 도덕심을 파괴하고 사기를 떨어뜨린다는 것이었죠."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3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간간이 국내나 해외에서 언급되는 '기본소득제'가 떠오르는 부분이었습니다. 인간 역사에서 다양한 사상가와 철학자, 정치인들이 복지나 유토피아의 개념으로서 비슷한 내용들을 얘기해왔지만 지금 시대에 읽으니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네요.
옷! 저도 그 부분 라벨링 했는데! 그 전에는 AI에 대한 이야기도 나와서, '작가 미래인설(꽃의요정피셜)'에 신빙성이 한층 더해집니다. ^^
'나, 자유 질서 정립기는 당신들의 흐물흐물한, 힘없는 몸뚱어리를 튼튼하고 아름답고 지속 가능한 형태로 바꾸었다. 그러고 나서는 보기 좋게, 대칭을 맞추고 질서 정연한 패턴에 따라 구성함으로써 이 행성에 절대적 질서를 구현…….'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4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당신들 몸뚱어리가 얼마나 엉망으로 만들어졌는지, 말단은 이리저리 튀어나와 있고, 또 당신들 중 누구는 크고, 어떤 이는 작고, 어떤 이는 뚱뚱하고, 또 다른 이는 마르고...움직임도 완전히 혼돈 상태다. 가만 서 있다가, 정신을 못 차리고 무슨 꽃, 구름 따위를 쳐다 봤다가, 아무 목적도 없이 숲을 헤매고, 이 모든 것에서 수학적 조화라곤 찾아볼 수 없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343p,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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