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

D-29
위의 대화에서 다 적지는 않았지만, 영상에서는 스타니스와프 렘의 가족들 중에서도 당시 희생된 사람들이 있었다고 지나가듯 언급되더라고요. 아마 작가 본인의 자서전에 이에 대한 내용이 나올듯한데 아쉽게도 국내에는 번역된 책이 없기도 하고, 위키피디아에도 이에 대한 정보는 나와있지 않네요. 렘은 대공황, 홀로코스트, 검열 등을 통해 자본주의, 파시즘, 공산주의의 모든 체제와 이데올로기가 각자 내포한 문제와 한계를 겪으면서 세상에 대해 비관적이고 냉소적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렘은 냉소가 아닌 작품과 유머를 통해 자신이 살던 시대를 극복하려고 노력했고요. 이전 모임에서 계속 봐왔지만 작가는 스릴러나 공포스런 분위기를 조성하는 재능도 아주 탁월하죠. 또한 얼마든지 암울하고 희망이 없는 내용을 묘사할 수도 있었을 겁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에서도 매우 어두운 분위기의 여행기들이 있지만, 이욘 티히의 우스꽝스러운 성격을 통해 작품 전반적으로 유머를 잃지 않고 있죠. 작가의 사진들을 찾아봤는데 진지한 표정들도 있지만, 인상이나 표정에서 은은한 유쾌함이 많이 느껴졌습니다. 아마 렘 작가 본인은 사적으로, 인간적으로는 대화하기 재밌는 분이 아니었을까 싶네요. 스타니스와프 렘의 작품 속 유머와 웃음은 두 가지 의미 같습니다. 세상이 돌아가는 모양새가 어처구니 없고 허탈하여 블랙유머와 헛웃음을 지으며 환멸을 느낄 때도 있지만, 그럼에도 아직 웃을만한 것들이 남아있는 게 우리가 사는 우주이고 웃을 수 있을 때 웃자는 약간의 낙관과 희망을 잃지 않고자 한 것 같아요.
어머나, 이렇게 똘똘이 스머프처럼 생기셨다니! 정말 똑똑한 분들은 눈빛을 보면 총명함이 깃들어 있더라고요.
"그런데 생각하면 할수록, 더 큰 공포에 사로잡혔습니다. 왜냐하면 자신에 대해 좋지 않은 감정을 가진 이웃이나 지인이 검은 로봇을 호출한다면 도저히 빠져나갈 수 없을 테니까요. 그러므로 자신이 먼저 행동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곧 한잠의 침묵을 깨는 비명들이 들려왔어요. 창문에서 삐죽 튀어나온 공포로 일그러진 얼굴들, 도스토이니들은 어둠을 향해서 절망적인 비명을 지르고, 길거리에서는 검은 로봇들의 수많은 발걸음 소리가 울렸죠. 아들은 아버지를 고발하고, 할아버지는 손자를 고발하고, 형제가 다른 형제를 고발하면서 하룻밤 사이에 수천 명의 도스토이니와 스피리트들은 이제 한 줌밖에 남지 않았어요."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46,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기계는 금속 입술을 열고서 나를 안으로 초대했다. "난 인디오타가 아닙니다." 나는 대답했다. 나는 그 자리에서 당장 도망쳐 나온 뒤 로켓으로 돌아오자마자 바로 조종간을 잡았다. 그러고는 무서운 속도로 하늘을 향해서 비상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48~34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스물 네번째 여행은 여태까지의 일지 중 가장 무섭네요. 끝에 가서는 희망적인 결말을 맞이했던 컴물압 사건과 비교하면 어둡고요. 더구나 주민들이 그들 스스로 사건의 진상을 다 알면서도 뛰어들었다는 점에서 기이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곧 이 괴물이, 식후에 우주복 차림으로 자기 로켓의 표면을 산책하던 어떤 여행자를 공격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왔다. 사실 이 얘기는 상당히 과장되었다. 소문 속의 여행자는(내가 잘 아는 사람이었다.) 우주복에 차를 쏟아서 잠시 말리려고 비상구에 걸어 놓았는데, 바로 그때 꿈틀대는 이상한 괴물이 날아와서 우주복을 빼앗아 간 것이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5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이 소식은 수많은 지식인들을 흥분시켰고, 이 사실을 누군가 일상어로 바꾸어 설명하자 더욱 그랬다. 즉 무르브라스는 자기 우주복에 감자 줄기를 묻혀 왔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5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학명으로 언급할 때만 해도 무언가 색다른 존재로 느껴졌지만, '감자'라는 것이 밝혀지자 독자의 인식도 그렇고 작중에서도 사람들이 흥분하는 묘사가 나오죠. 동일한 대상이라도 어떻게 명명하고 접근하냐에 따라 사람들은 이를 다르게 해석하고 받아들인다는 풍자 같습니다. 어쩌면 '있어 보이는 전문용어'에 대한 지적처럼 느껴지기도 했고요.
저도 이 감자 부분에서 한참 웃었어요. 파괴하려는 방법도 웃겼고요. 왜 감자 덩굴?을 선택했는지도 궁금합니다. ^^
저도 감자라고?!! 빵 터졌어요. 바다생물 중에 하나를 떠올리고 있었거든요. 🤣
전 떠올리지조차 못하고 있는데, 생뚱맞게 감자가 나타나서 무슨 괴생명체처럼 행동하는 걸 보고 첨엔 황당했다가...나중엔 웃겼다 했네요. 스타니스와프 렘 작가님 넘나 제 이상형
감자는 원래 유럽에서 기괴한 악마의 식물로 여겨졌다고 해요. 16세기에 남미에서 유럽으로 넘어왔어도 한동안 유럽인들은 감자를 취급도 안했다죠.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148XX48700028 여러가지 이유가 있는데 1) 식용법을 제대로 몰라 싹이 난 감자를 먹었다가 탈이 난 사람들이 있었고, 싹이 돋은 감자는 보기에도 상당히 기괴하죠. 2) 성경에서는 '식물'을 씨가 맺히는 채소와 과일로 여겼는데 감자는 씨가 없이 그냥 다시 잘라서 묻어도 자랍니다. 종교적 사고가 지배적이었던 당시에 감자는 정상적인 신의 식물이 아니었던 거죠. (창세기 1장 29절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 식물이 되리라") 3) 위의 이유들로 사람들이 기피하면서 돼지, 소, 말에게 사료로 주거나 극빈층만 먹다 보니 사람들의 인식이 안좋아지는 악순환이 반복되었고요. 감자가 사람들에게 퍼지는 데는 두 왕의 역할이 컸는데요. 프러시아의 프리드리히와 프랑스의 루이 16세였습니다. 프리드리히는 감자의 효용을 보고 사람들이 감자를 먹게끔 하기 위한 꾀를 내요. 독일에서 전해지는 일화로는 프리드리히가 자신의 식탁에 무조건 감자 요리 하나 이상을 매일 올리라고 합니다. 왕이 직접 감자를 요리로 먹으니 동물 사료로나 인식하던 사람들이 호기심을 갖게 되죠. 그 다음에는 왕과 귀족만 감자를 먹을 수 있다고 칙령을 선포하고, 자신의 직할 영지와 공터에 감자를 심은 뒤 근위병들에게 지키게 합니다. 이런 조치를 보자 점차 일반 백성들은 감자가 사실 엄청 귀하고 맛있는 식재료인 줄 알고 몰래 감자를 훔쳐갑니다. 물론 프리드리히는 애초에 의도한 작전이었기 때문에 농민들이 훔쳐가게 놔두고요. 그 결과 프러시아는 당시 유럽국가들 중 가장 먼저 식용작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후 루이 16세도 신하의 권유를 받아들여 비슷한 조치를 취하면서 프랑스도 마찬가지로 감자가 모두의 식탁에 오릅니다. 남미 원주민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식량이자 구황작물로 감자를 먹었지만 유럽인들은 자신들의 인식과 관념 때문에 같은 감자를 두고도 다른 취급을 한 거죠. 렘 작가가 감자를 쓴 것도 이런 맥락이지 않을까 싶었어요. 😀
이 글을 읽고나니 프리드리히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사실 전 감자돌이였어요. 어렸을 때 학교 도시락 반찬으로 어머니께서 늘 감자볶음을 해주셨거든요. 그런데 그렇게 먹었는데도 안 질립니다. 지금도 감자볶음 포함 감자 요리는 뭐든 맛있게 잘 먹어요. 렘이 감자를 공포의 대상으로 써먹어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유쾌하기도 했습니다. 이욘 티히 만큼 이름이 자주 등장하던 타란토가 교수의 본격적인 우주 대활극을 읽는 맛도 아주 좋았습니다.
저도 감자를 좋아해요. 감자 반찬은 어지간해서는 다 먹고요. 감자샌드위치, 매쉬드포테이토, 감자조림, 감자볶음, 감자국 등등. 고구마에 비하면 맛이 담백하고 두드러지지 않아 어느 요리나 반찬에 들어가도 어색하지 않죠. 어느 문화권이나 주식이 되는 탄수화물은 다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 자체로는 별 맛이 없지만 다른 반찬이나 요리를 곁들여 많이 먹을 수 있게 해주는.. 다만 전 포근한 감자 느낌을 좋아해서 덜 익히거나 아삭하게 씹히는 건 싫더라고요 ㅎㅎ
감자가 이렇게나 심오한 존재였다니... 근데 프레드리히 왕이 우리나라의 옛날 이야기에 나오는 꿀단지 숨겨놓고 혼자 드시던 서당 훈장님 같으시네요. 애들한텐 그거 먹으면 죽는다고 하고~ㅎㅎ 전 구황작물은 잘 먹지 않지만(목 막히는 음식 거절) 건강에는 좋아서 먹으려고 노력하는데, 역시 동물들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인간들 몸에도 좋은 거 같아요~ 인간이 먹는 거 동물이 잘못 먹으면 큰일나지만요.
호오~ 유럽의 감자에게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알수록 신기하고 더욱 재밌는 거 같습니다. 새로운 것에는 베타적일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또 한 번 들었습니다.
타란토가 교수의 입장에서 보자면 어떠한 연구자라도, 이토록 완벽한 설명을 제시하고 난 뒤에는 스스로 만족해서 더 이상 연구를 진행하지 않으리라. 그러나 타란토가 교수는 최소한 단 하나의 '감자 맹수'를 포획할 때까지 연구를 중단할 생각이 없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5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여기에서 그는 '모든 위대한 발상은 힘을 바탕에 두어야 한다'고 썼는데, 설득과 논쟁보다 세계관을 더 제대로 보호하는 것은, 수많은 역사적 예시가 증명하듯, 바로 무력이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39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가족은 존재했다. 가족이 나에게 이 세상을, 아무도 탐구하지 않았던 우주의 끝을 향한 이 비행 역시 믿도록 했다! 이 모든 것은, 나의 조상님들, 당신들 덕분에 가능했다! 나는 곧 이렇게 적은 종이 한 장을 빈 산소통에 넣어서 선체 밖의 암흑 속으로 던지리라, 검은 심연 속으로 헤엄쳐 가도록, 왜냐하면 나비가레 네체세 에스트, 그러므로 나는 항해한다, 몇 년 전부터 계속…….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1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우주일지 파트를 다 읽고 회고록 파트로 들어가면서 우주 일지와 회고록의 차이가 뭘까 싶었는데 회고록은 주로 한 인물에 대한 기억을 서술하는 방식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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