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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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적 사유로 자주 나오는 '통 속의 뇌'를 말하는 일화 같습니다. 자아와 인식에 대한 문제를 넘어 렘 작가는 이런 통 속의 뇌가 액자형태로 반복된다면 결국 신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신이 있다고 해도 그는 우리의 기대나 예상만큼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네요.
1)너무 놀라웠습니다. 완벽한 순응으로 저항 없는 사회인가? 의문과 함께 그 답변들에 더욱 놀랐습니다. 개인은 사라진 사회 같았달까요? 결국 완벽한 방식을 찾았다는 기계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물을 보고 완벽한 균형이란 있을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2)불타는 행성 노 교수의 확고한 신념을 들으며 오히려 인류의 확고한 편견이 떠올랐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지성의 정체에 대한 단호한 신념과 그로 인한 편견이 열린 추측을 방해하는 현상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절대 아냐 그럴리없어의 추측 속 진실을 멀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니다. 3)우주에서 해적질이라니 나쁜 놈이란 생각 뒤에 얼마나 외로웠는지가 느껴졌습니다. 아니면 생명체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건가? 하는 행동에 관한 동의는 아니지만 심정적 이해가 살짝 느껴졌습니다. 망망대해보다 더 깊은 우주에서 느끼는 고립감에 대해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마지막 티히의 이야기에서 작가님의 개그 포인트가 느껴졌는데요. 무(無)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티히가 우주여행을 계속한다는 생각과 함께 실은 이 책은 소설이므로 그래도 렘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완전한 무는 아니기도 한 재밌는 상황으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개구쟁이 렘 ㅎㅎ
뜨거운 행성의 불? 용암? 생명들을 보고 생각난 작품이 있는데요. 아서 C. 클라크의 단편집에 실린 작품 중 <내부의 불꽃 The Fires Within>이 있습니다. 지구의 지각 아래 구성과 형상을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 장비로 실험을 하던 영국의 핸콕 교수는 어느 날 이상한 현상을 감지하는데요. 지하 24km를 넘어 맨틀 층에 도달하자 음파 장비 화면에 알 수 없는 점과 격자들이 나타납니다. 어지간한 도시 규모의 인공적인 직선과 곡선이 음파의 반사를 통해 시각화해서 보인 거죠. 핸콕 교수는 그 정도 깊이의 액화 불꽃 속에서 자연적으로 그런 구조물이 생길 수는 없기에 생명의 작품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일 생명이 있다면 기압과 온도가 너무나 높기 때문에 일반적인 생명들처럼 외부의 껍질이나 껍데기, 피부조직이 있지 않고 굉장히 옅으며 희멀건 안개같은 존재여야 할 것이라고 추측해요. 그리고 이 단편소설의 끝은 시점과 장면을 바꿔, 맨틀 속에서 사는 문명의 두 과학자로 옮겨갑니다. 이들은 지표면의 인간들이 음파 장비를 통해 자신들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두 과학자 중 한 명이 농담으로 만일 우리가 지상으로 올라간다면 저 위의 존재들은 큰 충격을 받을 거라고 농담을 건네며 마무리됩니다. 렘 작가의 작품과 아서 클라크의 작품 중 어느 것이 더 먼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거울에 비춘듯 대비되는 두 작품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아서 클라크 1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생애에 쓴 모든 단편을 담은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년 첫 작품 '유선 전송'에서부터 1999년 과학 소설 최초로 「네이처」에 수록된 '이웃을 교화하자'에 이르기까지 현대 과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래학자이자 SF계의 거장 아서 클라크의 단편 104편을 한데 모았다. 전집은 총 4권이며, <1937-1950>에는 초기 작품들을 실었다.
그리고 갑자기, 아주 작은 점들이 화면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철로 이루어진 지구의 핵을 최초로 보게 되는가 보다 하고 몸을 앞으로 기대었습니다.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스캐너가 크게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희미한 격자무늬가 화면에 나타났던 겁니다.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 p.155, 아서 C. 클라크 지음, 심봉주 옮김
"여러 이론을 시도해 봤지만, 결국 하나로 돌아오더군요. 저 아래는 아마도 8000~9000기압은 된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그 온도는 바위를 녹일 정도로 높고요. 그러나 사실상 물질은 거의 빈 공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저 아래에 생명체가 있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유기체는 아니겠지만, 밀도가 너무 높아서 전자껍질이 없거나 거의 날아가 버린 물질을 기반으로 기초로 살아간다면요. 제 말을 이해하시겠어요? 그런 생물에게는 24킬로미터 아래에 존재하는 바위란 물처럼 아무런 방해물도 되지 않을 것이며, 저희나 저희가 사는 세상은 유령처럼 모두 희멀건 존재들일 것입니다."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 p.156, 아서 C. 클라크 지음, 심봉주 옮김
저는 물고기가 물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눈부신 바위들 속에 길을 내는 생명체들과 그들이 돌아다니는 거리, 건물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간이 살아가는 온도와 기압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들이 아니라 저희가 기형적인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거의 모든 물질이 수천 혹은 수백만 도의 온도에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 p.157, 아서 C. 클라크 지음, 심봉주 옮김
오오 흥미롭습니다~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우주선에 건달들이 타고 있었는데, 훗날 별이끼 밀매로 모든 기록을 말소당한 두 명의 건달들, 그 은하계 악당들의 이름이 신(神)과 주(主)는 아니었습니까?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74p,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주여....ㅜ.ㅜ
또 우리집에는 아주 저명한 기계공도 방문을 했는데, 그는 시립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드물기는 하지만 로봇들도 가끔 미치는 일이 있으며, 그들을 괴롭히는 최악의 증상은 스스로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증세라고 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118p,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올려주시는 페이지를 보니 다시 한 번 정주행을 하고 있으시군요 👍🏽
그러기에는 그의 어조가 너무 단호했다. 떠버리들은 이렇게 단호하지 않다. 그는 확고했다. 아무래도 광인이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4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그러니 상상해 보세요. 당장 당신이 외부로부터 어떤 소식을 듣지 못한다, 마치 당신의 뇌가 몸에서 분리된 것같이…… 하지만 계속 존재하고는 있다, 완벽한 생명력을 가지고 말이죠. 그럼 당신은 당연히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다르게 말하자면 이미 자기 육신이 아닌, 마비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당신은 내면의 시선을 간직하고 있죠. 그 말은, 이성의 명료함, 생각의 민첩함을 가지고 당신은 자유롭게 심사숙고할 수 있으며,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도, 거기에 형태를 불어넣을 수도, 영혼 상태의 변화에 따라 희망이나 슬픔, 기쁨을 느낄 수도 있는…… 그러니까 이것이 제가 당신 책상 위에 놓은 영혼에게 주어진 것들입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5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나는 거의 속삭이며 물었다. "당신은…… 부인을 죽였습니까?" "저는 아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죠." 그는 몸을 쭉 펴면서 대답했다. "그건 저희가 지금 얘기하는 문제와 하등 관련이 없습니다. 그건, 저와 제 아내 사이의 문제죠." 그는 손바닥을 상자 위에 얹었다. "그리고 저와 법정과 경찰 사이의 문제고요. 다른 얘기나 합시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5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모든 종교는 다 똑같습니다. 영생에 대한 약속, 죽음을 뛰어넘는 희망. 제가 그걸 주는 거죠, 티히 씨. 영원한 삶. 육체의 마지막 조각이 스러지고, 가루가 되어 사라질 때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실성,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6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어딜 봐도 육체의 영생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육체는 등한시하고, 거의 입을 다물고 있는 수준이죠. 영혼,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 그것만이 목적이고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육체에 반대되는 개념이자 대척점으로서의 영혼. 물리적 고통, 갑작스러운 질병의 위험과 노화로부터의 자유, 느릿느릿 진행되는 산화, 유기체라고 불리는, 점점 꺼져 가는 용광로에 불을 붙이는 투쟁으로부터의 자유. 아무도 이 세상이 지속되는 한, 육체의 영생에 관해서는 얘기한 바 없습니다. 해방되어야 하고 보존되어야 하는 것은 영혼뿐입니다. 나, 이 디캔터가 바로 그 영혼을 구한 것입니다. 영생을 위해, 영원히."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60~46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그러므로 디캔터, 당신은 인류가 사실 수천 년 동안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 왔음을 증명했어요. 그 거짓을 부숴 버린 거죠……."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6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그 눈이 무엇을 보게 될까요?" 나는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6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머릿칼이 곤두서고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무無 속에서 의식은 그대로 남아 존재해야 한다니. 영원과 영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오늘 책을 완독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은 인상 깊었던 일지 위주로 다시 읽어 보며 감상을 되새기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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