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

D-29
또 우리집에는 아주 저명한 기계공도 방문을 했는데, 그는 시립 클리닉을 운영하고 있었다. 그가 말하기를, 드물기는 하지만 로봇들도 가끔 미치는 일이 있으며, 그들을 괴롭히는 최악의 증상은 스스로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증세라고 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118p,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올려주시는 페이지를 보니 다시 한 번 정주행을 하고 있으시군요 👍🏽
그러기에는 그의 어조가 너무 단호했다. 떠버리들은 이렇게 단호하지 않다. 그는 확고했다. 아무래도 광인이구나, 하고 나는 생각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4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그러니 상상해 보세요. 당장 당신이 외부로부터 어떤 소식을 듣지 못한다, 마치 당신의 뇌가 몸에서 분리된 것같이…… 하지만 계속 존재하고는 있다, 완벽한 생명력을 가지고 말이죠. 그럼 당신은 당연히 눈도 보이지 않고, 귀도 들리지 않는, 다르게 말하자면 이미 자기 육신이 아닌, 마비 상태가 되는 것이지요. 그러나 당신은 내면의 시선을 간직하고 있죠. 그 말은, 이성의 명료함, 생각의 민첩함을 가지고 당신은 자유롭게 심사숙고할 수 있으며, 상상력을 발전시킬 수도, 거기에 형태를 불어넣을 수도, 영혼 상태의 변화에 따라 희망이나 슬픔, 기쁨을 느낄 수도 있는…… 그러니까 이것이 제가 당신 책상 위에 놓은 영혼에게 주어진 것들입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5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나는 거의 속삭이며 물었다. "당신은…… 부인을 죽였습니까?" "저는 아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었죠." 그는 몸을 쭉 펴면서 대답했다. "그건 저희가 지금 얘기하는 문제와 하등 관련이 없습니다. 그건, 저와 제 아내 사이의 문제죠." 그는 손바닥을 상자 위에 얹었다. "그리고 저와 법정과 경찰 사이의 문제고요. 다른 얘기나 합시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5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모든 종교는 다 똑같습니다. 영생에 대한 약속, 죽음을 뛰어넘는 희망. 제가 그걸 주는 거죠, 티히 씨. 영원한 삶. 육체의 마지막 조각이 스러지고, 가루가 되어 사라질 때에도 존재할 수 있다는 확실성, 이 정도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60,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어딜 봐도 육체의 영생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모두들 육체는 등한시하고, 거의 입을 다물고 있는 수준이죠. 영혼, 영원히 존재하는 영혼, 그것만이 목적이고 희망이었던 것입니다. 육체에 반대되는 개념이자 대척점으로서의 영혼. 물리적 고통, 갑작스러운 질병의 위험과 노화로부터의 자유, 느릿느릿 진행되는 산화, 유기체라고 불리는, 점점 꺼져 가는 용광로에 불을 붙이는 투쟁으로부터의 자유. 아무도 이 세상이 지속되는 한, 육체의 영생에 관해서는 얘기한 바 없습니다. 해방되어야 하고 보존되어야 하는 것은 영혼뿐입니다. 나, 이 디캔터가 바로 그 영혼을 구한 것입니다. 영생을 위해, 영원히."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60~46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그러므로 디캔터, 당신은 인류가 사실 수천 년 동안 스스로에게 거짓말을 해 왔음을 증명했어요. 그 거짓을 부숴 버린 거죠……."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6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그 눈이 무엇을 보게 될까요?" 나는 물었다. 그는 대답하지 않았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6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머릿칼이 곤두서고 소름이 쫙 돋았습니다. 무無 속에서 의식은 그대로 남아 존재해야 한다니. 영원과 영생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게 하는 이야기였습니다.
저는 오늘 책을 완독했습니다. 남은 시간 동안은 인상 깊었던 일지 위주로 다시 읽어 보며 감상을 되새기려고 해요.
저도 완독했는데 ‘회고록’에 실린 소설들은 다들 만만치 않은 내용이라 생각을 좀 더 하게 만들고 자료를 찾아보게 하네요. 정리가 조금 되면 감상을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어느덧 책의 끝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마지막 주차의 내용은 앞의 일지들과는 달리 매우 진중하고 무거우며 어두운 내용들이 많았는데요. 작가가 그 무거움 속에서 던지고자 하는 메세지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1) '이욘 티히의 회상' 그리고 '디아고라스 박사'의 내용 중 가장 어두웠거나 또는 기괴하거나 무섭게 느껴지던 내용은 어떤 것이었나요? 2) 티히와 지금 마주보고 앉아 있는 '자줄 교수'를 원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니면 복제본이라고 생각하시나요? 3) 디아고라스 박사는 마지막에 왜 갑자기 돌연 태도를 바꾸고는 티히를 자신의 연구소에서 내쫓았을까요? 4)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를 읽고 느낀 점이나 감상을 자유롭게 적어주세요.
1) 다른 내용들은 심오하긴 해도 소름이 끼치지는 않았지만 디캔터 교수의 일화는 읽으면서 두 번 소름이 돋았습니다. 463쪽에서 한 번, 그리고 마지막 결말의 티히의 독백을 읽고 나서 한 번. "그 눈이 무엇을 보게 될까요?" 나는 물었다. - p.463 영혼에게 눈을 달아줬는데 그것이 수정 안에서 보게 될 광경.. 만일 지구와 우주가 사라진 순간에도 영혼은 불멸로 남아있게 된다면, 영원한 무無 밖에 없고 자신의 의식만 남는 상황을 생각하면 숨이 막히는 기분이었습니다. 죽음이 아직 두렵게 느껴지기 때문에 영생 또는 장수하는 삶을 자주 상상하곤 합니다. 어릴 때는 부모님을 따라 뭔지도 모르고 교회에 가면 유치부나 초등부에서 동화 같이 그림이 그려진 성경 교재를 줬는데요. 산타 할아버지 같이 생긴 야훼가 순백의 커튼 같은 옷을 입은 채 하늘에 떠있고 끝없이 펼쳐진 푸른 초원에는 동식물들이 돌아다니고, 한 켠에 예수가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는 모습이었죠. 그때는 그게 사후세계인가 보다 생각하고 믿었습니다. 사춘기가 되니 죽음 이후에 대한 생각도 자주 하게 됐는데요. 한 번은 천국에는 그러면 현실처럼 온갖 산해진미와 유흥거리가 가득한지 물어봤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의 즐거움, 재미있는 놀이와 게임과 영화를 볼 때의 여운, 주말에 실컷 자고 일어났을 때의 개운한 아침시간 등등.. 어릴 때 교회에서 보여준 이미지들은 아이들의 이해를 돕기 위한 환상이지 실제로 천국은 육신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므로 감각적 즐거움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답이 돌아왔고요. '그러면 그게 왜 천국이지?'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때부터 의문이 들었고 관성적으로, 타성적으로, 친구나 부모 때문에 다니던 교회에 대해서도 생각이 돌아서는 계기였습니다. 감각적 즐거움도 엄연히 인간의 행복의 일부인데 그것들이 전혀 없다면 어떻게 천국이 행복한 곳이라는 건지 이해가 안되었거든요. 영혼의 즐거움과 충만함이 가득하므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느끼는 행복과 다르다지만 영혼의 즐거움이 무슨 말인지도 이해를 못했고요. 밤에 자려고 누웠다가 죽음에 대해 고민하는 날들도 점점 늘었고요. 사후세계도 없고, 환생이나 윤회도 없고, 영혼도 없다면 '나'는 죽은 뒤 숨도 못 쉬고, 아무 것도 보고 듣고 맛보지도 못하며, 자기 자신에 대한 인지도 못하잖아요? 자신이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다는 것 조차도 인지할 수 없는 생각을 하니까 아찔하고 공허감이 밀려오는 기분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사람에 따라서는 종교와 사후세계에 오히려 더 매달리는 유형도 있겠지만, 저는 '몇천 년 뒤에 태어나서 노화나 죽음을 걱정할 필요가 없는 시대에 태어났으면 좋았을텐데' 라는 의미없는 한탄(?)을 하기도 했어요. 이제는 과거에 비해서는 나이도 들었고, 하루의 삶에 집중하다 보니 죽음에 대해 고민할 시간이 없지만 여전히 마음 한 편에 두려움이 남아있긴 했습니다. 그러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영원과 영생'이 죽음보다 오히려 더 가혹할 수 있다는 말이 조금은 이해됐습니다. 죽음에 대해 우리가 두려워하는 이유는 거창한 종교적 사유나 삶의 사명감 때문이 아니라, 현재와 감각세계를 유지하고 싶은 지극히 사소한 이유라는 티히의 말도 와 닿았고요. 우리가 영원을 꿈꾸는 이유가 사소한 이유에서라면, 사실 영원이란 개념은 우리의 상상만큼 거창하거나 숭고하지 않고 오히려 하찮은 것일 수 있겠다고 느꼈습니다. 작가는 죽음과 영원이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하고 싶었나 봐요. 어느 쪽이든 물질과 세계와 육체는 유한하여 버틸 수 없으므로 '나' 자신이 느낄 수 있는 감각적 즐거움과 관계에서 오는 희노애락도 유지될 수 없죠. 둘 다 결과가 동일하다면 차라리 '나'에 대한 인지마저 사라지는 죽음이 '영원한 감옥 속에 갇혀있어야 하는' 영생보다 나을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죽음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게 해준 렘 작가님에게 감사함을 느꼈어요.
2) 복제본으로 생각하고 읽었지만 눈 앞의 자줄 교수가 진짜라고 생각하고 읽어도 재밌어서 둘 모두에게 여지를 남기는 게 좋았습니다. 복제본이 더 우월한 것을 알았기에 그냥 놔둘 수 없어서 살인을 저질렀을 수도 있겠다 싶어서요. 이 회상록은 생명복제의 기술이 현실에 적용되는 순간 둘의 가치나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이 무의미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자줄 교수의 실험대상이었던 동물들은 원본/복제본 모두 가리지 않고 박제되어 버렸죠. 자줄 교수에게는 자기의 실험체 중 누가 원본이고 복제본인지는 중요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는 그저 자신의 기술과 지식을 증명할 수 있는지만이 최대 관심사였죠. 작가가 계속 반복하여 말하고 있는 소재와 주제의식을 생각해 보면 '진짜'라는 개념은 상황과 정의에 따라 뒤바뀔 수 있다는 연장선 같습니다. 티히도, 독자인 우리도 자줄 교수를 보고 두려워하는 이유는 그의 정체보다도 그런 실험과 행동을 아무렇지 않게 저지른 '의도'가 더 끔찍하게 느껴져서죠. 자줄 교수의 원본도, 그의 복제본도 똑같이 서로가 서로를 죽일 생각을 품었다면 그들은 정말로 '완벽하게 동일한' 거울 같은 한쌍이었을 겁니다. 그런 존재가 하나도 아니고 둘이 세상에 존재한다면.. 그게 더 무서운 결과겠죠. 그들 중 한 명만 살아남은 것이 오히려 사회의 입장에서는 다행(?)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가짜'가 아니라 그 구분조차도 의식하지 않고 '결과만을 생각하는 차가운 목적의식'이라는 지적으로 느꼈습니다. 3) 디아고라스의 대사를 들어보면 그는 정말로 인간의 관념과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지능'을 꿈꾼 과학자입니다. 지능을 떠올릴 때 우리는 스스로 인간이기에 인간중심의 관점에서 지능을 정의하죠. 다른 생명의 지능을 언급할 때도 인간과 오랫동안 교류하고, 우리가 친숙하게 느끼는 영장류나 포유류 중 일부에 대해서만 떠올리고요. 이런 현상은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다른 지능'의 종류와 개념이 지구를 벗어나지 않는 한계도 작용합니다. 인공지능과 로봇의 개발 현황을 보면 우리에게 익숙한 이미지와 외형, 행동방식이 적용되어 있죠. 사람을 상당부분 또는 일부분 닮은 이족보행에 상반신과 하반신이 있고 사람과 유사한 머리가 달려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을 인지하고 상호작용하는 수단이 몸과 지성이기에 로봇에게도 이를 투영하죠. 설령 모양이 다르다 하더라도 주변의 동물에서 볼 수 있는 형태가 적용됩니다. 그리곤 이런 지능과 로봇의 쓰임새는 몇몇 특정한 상황을 위해 제한적이 방향으로 목적이 부여됩니다. 산업현장에서 쓰거나, 가사노동을 돕거나, 인간과 소통하기 위한 용도. 하지만 자연의 동식물과 인간은 지금의 모습과 기능을 갖추는데 어떤 목적의식이 작용한 적이 없습니다. 자연은 의도하지도 않고, 어떤 인위적 힘을 가하지도 않죠. 스스로 존재할 뿐인 무목적의 환경을 제공하고 생물들은 그곳에서 생존을 위해 분화합니다. 목적과 쓰임새가 없기 때문에 오히려 생명은 매우 다양한 형태로 그 복잡성을 만들어낼 수 있었죠. 인간이 만들어 낸 인공물이나 상품, 기계들은 어떨까요? 초기에는 시행착오와 다양한 시도의 과정이 존재하겠지만, 도구로서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느냐 아니냐의 기준으로 인해 기능이 굳어집니다. 기능을 가장 효과적이고 효율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형태를 갖추어야 하므로 그것들의 외형은 대동소이 하게 됩니다. 결국 성능의 차이는 존재할 지 몰라도, 인공물은 목적을 넘어서는 형태로는 존재하지 못하죠. 디아고라스 박사의 표현으로 "에니악을 만들어 봤자, 거기서는 더 신속한 바보 계산기들이 나올 뿐이죠." 박사는 현재의 인공 '지능'이란 우리가 원하는 방향대로, 우리가 투영하고 싶은 형태가 반영되어 있을 뿐인 조형물에 불과하다고 봅니다. 무수한 가능성의 여지가 있음에도 인간이 그것들을 스스로의 기준으로 제약을 걸어두고 있다고 본 것이죠. 인간의 지능은 오직 인간의 육체와 뇌, 척추, 신경기관, 오감을 통해서만 작동할 수 있을 뿐 우리와 구성요소부터 다르기 때문에 인공의 지능이 '인간과 같은 지능'이 되어야 할 이유가 없습니다. 박사는 이 보이지 않는 자기검열의 희미한 장벽을 다 부수고 최대한 목적과 편견이 없는 백지의 상태에서 실험을 반복한 것 같고요. 그가 발명? 또는 개발?한 펑고이드는 이를 잘 적용한 결과처럼 보입니다. 전통적인 생명체의 유기물로 이루어져 있지 않으며, 일반적인 형태로 소통을 하지 않으니까요. 디아고라스가 정색한 이유를 전 두 가지로 봅니다. 하나는 자신의 존재 자체가 펑고이드의 작동에 의도치 않게 개입하고 의도가 적용되었다고 보아 실험을 망쳤다고 느껴 화난 것 같아요. 작품 후반에 보면 펑고이드는 모든 소통 수단이 막히자 디아고라스 박사의 몸을 통해 파동?으로 소통한 듯한 암시를 주죠. 디아고라스 박사가 무의식적으로 계속 구리 실린더에 몸이나 손을 가져다 댄 것은 박사도 스스로 인지하지 못했지만 펑고이드들이 그를 통제했거나, 또는 유도한 게 아닐까 싶습니다. 인간과 전혀 무관한, 인간성이 완전히 배제된 무언가를 만들었다고 확신했으나 이미 자신의 존재 자체가 그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준다면, 그가 생각한 실험의 방향성과 의도는 애초부터 불가능했다는 얘기 아닐까요. 또는 펑고이드가 디아고라스의 정신과 인격마저 교묘하게 조종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고요. 박사의 행동과 몸의 움직임을 자신들의 소통 수단으로 쓸 정도였다면, 박사가 '자아'와 '자유의지'라고 생각한 그의 행동과 선택도 과연 진짜 그의 생각이었을까요?
4)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를 누군가에게 설명하거나 추천할 때 한 단어로 정리하라면 저는 '좀 더 냉소와 유머가 첨가된 어린왕자'로 말하고 싶어요. 작가 특유의 유머 감각이 일지마다 묻어나오면서도 동시에 그가 풍자하고 비판하려는 대상들에 대한 지적이 같이 담겨 있으니까요. 로켓을 타고 이 행성 저 행성을 오가며 벌어지는 사건들은 어린왕자가 조금 더 속물적이고 삶에 찌들면(?) 저렇지 않을까 생각이 계속 맴돌았습니다. 다만 어린아이들도 읽기 좋은 어린왕자와 달리 이쪽은 좀 더 풍자의 맛이 강해서 어른을 위한 어린왕자라고 느꼈어요. 렘 작가 본인이 티히의 입을 빌어 자신의 관심사와 세상 여러 사안에 대한 사견과 입장을 정리한 에세이 같다는 생각도 듭니다. 생명복제, 이념대립, 전체주의, 자본주의, 자유와 질서, 인공지능, 가상세계, 인식론, 빅뱅과 천지창조, 영혼에 이르기까지 과학과 종교와 철학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여정은 정말로 삼라만상을 품은 '우주 일지'가 적절한 제목이었고요. 앞서 모임의 <솔라리스>와 <우주 순양함 무적호>가 특정한 주제에 대해 작가가 더 깊이 파고들어 우리에게 고민을 던지는 느낌이라면, 이번 작품은 뷔페처럼 다양한 영역을 맛보며 작가의 단편적인 생각들을 독자가 주워 담는 느낌이었습니다. 그 덕에 페이지 속 이욘 티히를 보면서도 책장 너머에 '인간 렘'이 어떤 고민을 담아 책을 썼고, 그가 어떤 사유와 입장을 했는지 시대를 넘어 접할 수 있었고요. 그래서일까요. 가상의 티히가 남긴 이야기임에도 렘 작가가 책상 어딘가에 올려둔 묵직한 일기를 보고 온 것만 같습니다. 렘의 작품을 감상하고 싶다면 다른 소설들을 추천하겠지만, 인간 렘을 감상하고 싶다면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를 읽어보라고 추천하려고요. 😀
<이욘 티히의 회고록> 다섯 편 에피소드에 회고 대상으로 등장하는 인물 이름과 제가 선정해본 각 이야기의 키워드를 우선 정리해봤습니다. 회상1: 코르코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 회상2: 디캔터, 영혼과 영원 회상3: 자줄, 호문쿨루스 회상4: 몰테리스, 시간여행자의 노화 디아고라스 박사: 디아고라스, 의식없는 지능
회고록을 읽고 나서 생각난건데 회상 1,2,3은 인간의 각 구성 요소를 복제한 게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코르코란 - 의식의 복제 디캔터 - 영혼의 복제 자줄 - 육체의 복제
<이욘 티히의 회고록>의 회상1은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를 소재로 쓴 이야기로 보입니다. 모나드라는 것은 우주를 구성하는 비물질적이자 정신적인 실체로서 물리적 실체인 원자와는 다른 것으로 라이프니츠가 제안한 개념입니다. 모나드의 가장 큰 특징은 모나드는 외부에서 영향을 받지 않고 내부의 것도 외부로 나갈 수 없는 독립적인 실체로서 흔히 창문이 없다고 하죠. 회상1에서 코르코란이 만든 상자의 세계와 비슷하죠? 게다가 모나드는 신이 이미 최선의 세계를 만들어둔 것으로서 자율의지에 의한 선택도 결국은 신이 만들어놓은 세계 안에서 미리 정해진 조화에 맞추어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하죠. 회상1에서 코르코란은 신이 되고 싶어했는데, 한마디로 라이프니츠의 모나드를 만들었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회상2에서는 영원하지 않은 영혼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육체는 영원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육체가 멸해도 사라지지 않는 별개의 영혼을 꿈꿉니다. 이 말은 즉, 영혼은 영원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는 뜻이죠. 렘은 이를 극단으로 밀어부쳐 그래 영혼이 영원하다고 치자, 아무런 것도 할 수 없는 상태에서 영혼으로 영원이 존재하는 것도 좋겠냐는 질문을 던진 것으로 보입니다. 당연히 그런 영원은 지옥이겠죠? 회상3에서 등장하는 호문쿨루스 개념을 처음 들었을 때는 실소를 금할 수 없었는데, 가만 생각해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습니다. 정액을 확대해보면 거기에 이미 인간의 모습을 한 아주 작은 생명체인 호문쿨루스가 있으며 이것이 자라 인간이 된다는 이론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했다고 하죠. 정자와 난자가 만나 세포 분열하면서 인간이 되는 것이 아니라 원래부터 조그만 인간이 존재했다라는, 어찌 보면 충분히 생각할 수 있는 논리죠. 전, 이욘 티히 앞에서 살아있던 자줄이 복제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본은 알코올통에 빠져 있고요. 복제품은 원본을 능가할 가능성이 충분하며 그럴 경우 원본을 대체하지 않을 이유가 없죠. 렘은 그런 세상을 상상해본 것 같습니다. 회상4의 이야기를 듣고 전 아차 했어요. 그 동안 많은 시간여행 콘텐츠를 접하며 정작 시간여행자는 나이를 먹지도 줄지도 않고 그대로인 상황 전제에 대해서 별 의심을 품지 않았기 때문이죠. 렘 자신도 다른 이야기에서는 시간 여행자의 나이가 변하지 않는 상황을 그대로 적용했으면서도 비단 회상4에서는 시간여행자가 노화로 미래에 나타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들어 그동안 무시했던 전제의 부당함을 딱 꼬집어 말하는 심술을 부렸네요. ㅎㅎ 디아고라스 박사가 만든 장치는 결국 의식없는 지능이 가능하다는 증거입니다. 기계는 고통이 뭔지도 모르면서 아픈 척합니다. 지금 인공지능이 딱 그렇게 하고 있죠. 감정이란 것을 모르면서 인간들의 슬픔과 기쁨을 위로하는 채팅을 합니다. 원리는 모르면서 답을 냅니다. 인공지능에 대한 상상과 부작용에 대한 우려는 렘의 소설에서도 다루듯이 이미 1960년대, 1970년대에도 충분히 있었다는 증거가 디아고라스 박사 이야기죠. 오히려 그 당시 상상했던 인공지능보다 우리 시대 인공지능은 우수하지 못합니다. 아직도 멀었다는 뜻이죠. 하지만, 지난 몇 년 전에 비하면 비약적인 발전을 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라 현대철학은 인공지능의 윤리 등 렘이 걱정했던 문제들을 사유하는데 많은 노력을 들이고 있다고 합니다. <이욘 티히의 회고록>이 다루고 있는 주요 개념을 간단하게 써봐도 이렇게 글이 길어지니 제대로 토론하자고 치면 한도 끝도 없을 듯 합니다. 거의 60년 전에 지금 현안인 이슈들을 다룬 소설을 멋지게 써냈다는 점에서 감탄했습니다. 장편과는 다른 맛으로 단편들도 매우 흥미로웠습니다. @은화 님이 만들어주신 렘 삼부작 독서 모임이 이제 끝나가네요. 좋은 기회 주셔서 정말 감사드려요. 렘의 세계에 빠져든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적어주신 모나드라는 개념을 찾아봤는데 물질의 구성과 기원으로서의 이론이라기보다는 추상적인 관념이라 쉽게 와닿지는 않네요. 그래도 흥미롭습니다. 예정된 질서의 틀 안에서 개별적인 개체들이 자유롭게 이동하고 변형되는 자율성은 있지만 조화 안에서 움직인다는 개념... 개인으로 치환하면 운명론과 자유의지론을 대립시키기 보다는 둘 모두를 포괄하는 설명 같고요. 운명이나 숙명 또는 미래에 대해 평소 가지고 있던 모호한 제 상상과도 비슷하게 느꼈습니다. 각자가 내리는 크고 작은 결정이 미래의 물줄기를 조금씩 바꾸지만 큰 흐름과 전체로서의 거시적인 운명은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개인의 운명은 자신이 태어난 국가나 인종, 시대의 제약이나 한계를 분명 적용받으니까요. 하지만 또 그런 제약과 혜택 안에서 매번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할지는 본인에게도 선택권이 있고요. 마치 상한선과 하한선이 정해져 있고 그 폭 안에서는 자유롭게 이동하고 진동하는 원자가 운명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도 했습니다. 코르코란 박사의 회상록은 독자가 읽을 때 해석할 여지를 많이 남겨놓은 것 같더라고요. 통 속의 뇌, 시뮬레이션 이론, 자유의지, 신의 개입 등 여러 철학과 인식은, 종교의 영역을 아우르기에 더 그런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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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순피수꾼이름없는 여자의 여덟가지 인생왕과 사는 남자
🎁 여러분의 활발한 독서 생활을 응원하며 그믐이 선물을 드려요.
[인생책 5문 5답] , [싱글 챌린지] 완수자에게 선물을 드립니다
나의 인생책을 소개합니다
[인생책 5문5답] 42. 힐링구 북클럽[인생책 5문5답] 43. 노동이 달리 보인 순간[인생책 5문5답] 44. Why I write
우리 입말에 딱 붙는 한국 희곡 낭독해요!
<플.플.땡> 2. 당신이 잃어버린 것플레이플레이땡땡땡
편견을 넘어 진실로: 흑인문화 깊이 읽기
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6.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 치누아 아체베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5.대항해시대의 일본인 노예, 루시우 데 소우사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4.아이티 혁명사, 로런트 듀보이스노예제, 아프리카, 흑인문화를 따라 - 03.니그로, W. E. B. 듀보이스
The Joy of Story, 다산북스
필연적 혼자의 시대를 살아가며 같이 읽고 생각 나누기[다산북스/책 증정] 박주희 아트 디렉터의 <뉴욕의 감각>을 저자&편집자와 같이 읽어요![다산북스/책 증정] 『공부라는 세계』를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다산북스/책 증정] 『악은 성실하다』를 저자 & 편집자와 함께 읽어요!
도리의 "혼자 읽어볼게요"
김홍의 <말뚝들> 혼자 읽어볼게요.박완서 작가님의 <그 많던 싱아~>, <그 산이 정말~> 혼자 읽어볼게요.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1> 혼자 읽어볼게요.마거릿 애트우드의 <고양이 눈2>도 혼자 읽어볼게요.
유쾌한 낙천주의, 앤디 위어
[소설로 읽는 기후위기・인류세 - 우리는 왜·어떤 다른 세상을 꿈꾸는가?] 1회차-마션[밀리의 서재로 📙 읽기] 9. 프로젝트 헤일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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