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

D-29
… 그 혼합물 위에 발효한 인산, 오탄당, 과당,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곰팡이가 핀 아미노산 세 병을 비우고는, 끈끈한 더미를 왼쪽으로 휜 석탄 삽과 역시 왼쪽으로 휜 부지깽이로 섞어서, 장래의 모든 지구상 생명체의 단백질을 왼쪽으로 휘어지게 하지 않았습니까? … 그 왼쪽으로 휘는 성질과, 이러한 악의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의 몸속에서 오늘날까지 작용하고, 지금까지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함으로 스스로를 ‘호모 사피엔스’라고 이름 지은 이 아르테팍툼 아브호렌스, 끔찍한 인공물이 고통받는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닌가요?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지구 생명체를 구성하는 아미노산의 구조 역시 일종의 풍자와 해학의 장치로 이용하는 것이 흥미롭습니다. 더글러스 애덤스와는 다른 결의 풍자와 언어 유희이나 비교해서 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습니다.
이 주제에 대해서 얼마나 많은 소문이 돌았는지는 신만이 알 지경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원래 그렇다. 내가 여기에 털어놓은 신빙성 있는 사실보다 가장 말도 안 되는 헛소리를 기꺼이 믿는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5,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오래전부터, 전자두뇌를 만드는 데에 그치지 말고 교육까지 시켜야 한다고 익히 주장해 왔습니다. 전자두뇌의 운명은 가혹합니다. 끝없이 계속되는 일, 복잡한 계산, 사용자의 잔인하고 무분별한 농담들, 바로 이런 폭력에 사실상 매우 예민한 존재, 즉 전자두뇌가 노출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자두뇌가 자살을 의도하며 합선 상태에 이르거나 부서지거나 하는 일은 한두 번이 아닙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9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이 전자두뇌는 스스로에게 다정한 편지를 쓰고, 그 속에서 자신을 '귀여운 바늘 씨', '부드러운 철사 님', '예쁜이 전구'라고 호칭했는데, 이는 전자두뇌가 얼마나 정에 굶주려 왔고, 진심 어린 따뜻한 관계를 갈구했는지를 증명합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9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여러분. 전자두뇌는 벽에 내던져도 끄떡없는 재봉틀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 주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파악할 수 있는 의식을 가진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우주에서 위험 상황에 노출되면 이 기계들이 그렇게 몸을 떨어서 사람들까지도 제대로 서 있기가 힘든 것입니다. 이들의 이런 특징은 잔인한 성정을 가진 사람들의 마음에는 들지 않겠지요. 그런 작자들은 전자두뇌를 끝까지 몰아붙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자두뇌는 우리에게 최선을 다하려고 하지만, 철사와 전구에도 한계가 있는 법입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9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예컨대 대학에서 쓰이던 어떤 전자두뇌는 수핟 교수의 부인을 사랑하게 되었고 결국 질투에 휩싸인 나머지 계산 결과를 왜곡시켰는데, 이 수학 교수는 자기가 덧셈도 못하는 줄 알고 우울증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공평하게 전자두뇌의 입장을 들어보자면, 교수 부인은 자신의 가장 내밀한 정보, 즉 속옷 영수증까지 다 합산하라고 시키며 매우 체계적으로 그를 유혹했다고 합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9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서로 연관성은 없지만 작가가 현대인의 우울과 생성형AI의 도래를 내다본 게 아닐까 생각했어요. 전자두뇌를 오늘날의 현대 직장인으로 대체해서 읽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으니까요. 컴퓨터라는 단어는 사실 계산을 전담으로 맡았던 계산수(Compute+er)에서 시작되었죠. 온갖 업무와 기술에 능숙해야 하지만 그 대가로 더 바쁘게 일하고 오히려 더 성과와 결과물을 재촉받아 결국 번아웃이 오는 현대인의 비애를 담은 게 아닐까 싶었습니다. 한편으로는, 기계와 인간과의 관계성이라는 면에서 생성형AI를 일상이나 업무 같은 다양한 영역에서 활용하는 오늘날의 엿보였습니다. 사람처럼 생각과 감정이 없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선입견이나 비판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AI에게 더 심리적으로 기대는 사람들도 있다고 해요. 그 반대의 경우가 수집한 문장의 상황 같아 보였습니다. 망가진 기계들이 오히려 사람에게 기대고 싶어하는 모습이랄까요.
역시 인간이 만들어서 로봇은 인간과 같은 감정을 갖게 되는 걸까요? 그런 게 없어서 대하기 편할 거라 생각했지만 역시 영화 'AI'도 떠오르네요.
"젊은 철, 젊은 전기죠." 그는 너그럽게 말했다. "세월에 따라 녹이 슬고, 저항이 들러붙고, 메인 파이프가 삭는……."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117,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무쇠솥 같은 머리를 들어내자 눈앞에는 공포에 떨리는 눈동자를 지닌, 어둠 속에서 너무 오래 산 탓에 기괴하게 창백해진 마른 얼굴이 나타났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129,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이렇게 모든 인간은 그 정체가 들통난 채 몽땅 등록되고, 충성을 맹세하고, 혼자라고 느끼며, 진짜 로봇보다 자신과 비슷한 이들을 더욱 두려워하게 된 것이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13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에, 이상인의 이상적임을 갖추기 못했기 때문에, 그들은 로봇보다 더 진짜 로봇이 되어야 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133,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서류가 잔뜩 쌓인 책상 뒤에는 회색 옷을 입고, 사무직 공무원들이나 쓸 법한 팔 토시를 낀 바싹 마른 늙은 남자가 앉아서, 어떤 양식을 인쇄한 서류마다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그의 팔꿈치 옆에서 차 한 잔이 모락모락 김을 내고 있었다. 접시 위에는 파운드케이크 몇 조각이 놓여 있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135,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작가의 시대상과 배경을 생각해보면 공산주의의 억압, 상호감시, 고발의 체제를 비판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더 나아가 인간을 억누르는 사회구조와 시스템 모두를 지적하는 것으로도 읽혔습니다. 관료제, 능력주의, 성과주의가 있는 세상이라면, 그로 인해 인간이 체제를 만들었음에도 역으로 그 체제에 종속되는 상황이라면 어디서나 적용될 말 같아 보였어요.
다른 모임으로 읽은 책 중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를 이전에 읽었는데요. 책에는 이런 문장이 있습니다. "자본주의가 만들어내는 기술은 결코 중립적이지 않으며, 그것을 만든 시스템의 논리와 권력 구조를 그대로 반영한다." p.333~334 생성형AI가 경제/기술 흐름의 대세가 된 오늘날, 이 흐름과 사람들의 주목 아래 가려진 희생양이 무엇인지를 다루는 책입니다. 꼭 사람만이 아니더라도 AI개발/유통/사용/유지보수의 과정에서 어떤 자원과 환경, 사회적 에너지가 소모되는지를 설명해요. 책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AI버블론, 인류를 지배하는 기계 같은 위협론보다 '모두가 사용하고, 모두가 혜택을 얻어야 하는 기술이 자본주의의 이윤추구라는 방향성 하나만으로 좌지우지될 때' 누군가 반드시 희생을 당해야 한다는 겁니다. 이런 구조적 압력이 존재하는 한 AI만이 아니라 앞으로 나올 다른 무수한 혁신 기술들도 똑같은 구조적 문제를 반복할 것이라고 암시하고요. <열한 번째 여행>은 공산주의, 자본주의를 넘어 우리의 눈으로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저 너머의 가려진 체제'가 어떻게 개인을 고립시키고 왜소한 존재로 전락시킬 수 있는지를 말하는 것 같네요.
AI는 인간을 먹고 자란다 - 인공지능 신화에 가려진 보이지 않는 노동자들10년간 30여 개국을 돌며 현장을 조사한 옥스퍼드대학교 인터넷연구소 연구진은 AI가 어떻게 노동을 소외시키고 창의성을 빼앗는지, 그리고 어떻게 불평등을 심화하고 민주주의를 위협하는지를 7명의 생생한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을 읽으면서 이욘 티히를 머리에서 떠올릴 때, 시사만화 캐릭터 고바우 영감이 항상 머리에 그려지네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왠지 이욘 티히의 좌충우돌 일지에 어울린다고 느꼈나 봅니다.
ㅎㅎ 어울리네요. 고바우 영감을 아실줄 몰랐네요.
어릴 때 이런 저런 옛날 책을 할아버지께서 보관하고 계셨는데 우연히 봤던 기억이 있어요. 그때는 그게 고바우 영감이라는 것도 몰랐다가 한참 지나서야 신문 만평이었다는 걸 다 커서 알게 됐네요 😀 여기저기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고 굴러다니고, 여러 사건에 휘말리는 인물이다 보니 이욘 티히가 일반적인 소설의 인물처럼 느껴지기 보다는 만화캐릭터처럼 느껴지네요.
화제로 지정된 대화
1주차의 내용에 대해서 얘기하는 시간입니다. 1) 1주차에서 읽은 우주 일지 중 인상 깊거나 기억에 남는 부분을 얘기해주세요. 특정한 장면이나 가장 좋았던 여행기록 또는 개인 감상을 얘기하셔도 됩니다. 2) 여덟 번째 여행에서 우주연합의 구성원들은 육식을 끔찍한 행위인 것처럼 묘사합니다.(64~65p) 여러분은 이 부분에 대해 어떻게 느끼셨나요? 똑같은 생명체를 섭취하는 행위이나 육식과 채식의 차이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3) 열두 번째 여행은 다른 여행기에 비하면 상당히 짧으면서도 직접적으로 풍자나 비판의 대상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로 이해하셨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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