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 몬테크리스토 백작 읽느라 이욘 티히 씨를 못 읽고 있는데, 이런 매력적인 이야기가 뒤에 숨어 있었다니!
제가 너무 좋아하는 스타일이에요. 꿈도 희망도 없다!
[함께 읽는 SF소설] 10.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 스타니스와프 렘
D-29

꽃의요정
화제로 지정된 대화

은화
3주차까지 읽은 일지에 대해 얘기해보겠습니다.
1) 스물 네번째 여행에서 인디오타들은 자유질서정립기가 자신들의 자유의지를 존중하고 있으며, 인디오타에게 유익한 결정만 권고하고, 의견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에 기계에게는 잘못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이 주장에 동의하시나요?
2) 스물 다섯번째 여행에서는 여러 우주의 기이한 현상이나 외계를 소개합니다. 이 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가 무엇같나요?
3) 스물 여덟번째 여행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이욘 티히의 선조는 누구였나요? 이욘 티히가 항해를 계속 하기로 마음먹은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은화
1) 스물 네번째 여행은 여러 현상과 사회에 대한 지적이 느껴졌는데요. 자유를 중요시 하면서도, 공장과 생산수단을 가진 계층과 그들의 과잉생산으로 인한 혼란을 볼 때 서구권 또는 자본주의 세계를 풍자한 것 같습니다. 작가가 살아있을 적 대공황이 일어났기에 자신의 경험과 주관을 반영한 게 아닐까 생각도 들고요.
또 다른 면에서 보면,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구성원들이 사회문제의 해결에 있어 수단과 절차에만 의존하는 현상을 비판했다는 감상입니다. 인디오타들은 행성에 등장한 새로운 현상을 자유 질서 정립기에게 다 떠넘기죠. 모든 구성원의 자유를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는다는 대원칙 때문에 도스티이니들의 공장에 물건이 쌓여있음에도 스피리트는 이를 사회에 분배하도록 중재하거나 개입하지 않아 티라우들의 빈곤을 사실상 방관합니다.
두리나우는 발명가와 정립기에게 권한을 모두 위임하면서 복잡한 문제를 고민해야 할 사유의 과정도, 결정에 따른 책임을 질 부담도 모두 손쉽게 내려놓죠. 신기술을 통해 사회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기술중심적 사고에 대한 비판도 일부 담겨있습니다.
도덕이나 윤리, 정치철학에서 '각자의 자유를 어디까지 보장해야 하는가?'는 자주 나오는 주제죠. 이상적인 답변은 타인의 자유를 해하지 않는 선에서 상호합의를 통해 자유를 조절해야 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쉽지 않죠.
모두가 자신의 욕망과 바람을 추구할 권리가 있다는 말은 곧 누구의 권리도 건드릴 수 없다는 말과 같지 않을까요?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자 우리는 법을 만들었지만 법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인위적 수단에 불과합니다. 법의 정의가 도덕의 정의와 항상 일치하지 않듯, 법이 사회의 모든 영역을 다 포괄하지는 못하죠.
자유 질서 정립기가 인디오타의 권리와 자유에 개입하지 않고, 해결책을 강요하지 않았다는 것은 표면적으로만 맞는 말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인디오타들이 권리와 자유를 기계에 손쉽게 넘겨버림으로써 비극을 초래했다고 봅니다. 자유와 질서의 의미와 중대성을 실감하고 구성원들이 함께 논의하기 보다는, 법과 기술이라는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인 정의에 집착한 것이죠. 법과 정의 모두 인간을 위해서 생긴 것인데 어떻게 객관적이고 가치중립적일 수 있을까요.
스물 네번째 이야기는 '자유의 의미에 대한 고민'이 없는 세상을 다룬 디스토피아입니다. 겉보기에는 아름다운 자연과, 눈부신 건축이 있으며, 자유와 질서를 존중하는 이상적인 사회죠. 하지만 그것들은 눈속임에 불과한 장식물입니다. 갈수록 복잡해지고 방대해지는 법령들과, 이해하기 어려운 기술들은 과연 우리가 스스로의 세상을 통제하고 있기는 한 지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민주주의 사회가 모든 것을 법과 기술로 '해결해야 한다는' 결과와 목적 중심의 사고로 향하고 있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게 만드네요.

은화
2) 스물 다섯번째 여행은 체험의 가치를 말하는 내용으로 읽었어요. 감자의 일화가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데요. 우주 여행자들을 습격한 정체가 감자라는 것이 알려지자 이를 두고 온갖 철학자와 이론가들이 달라붙어 논쟁을 하는 대목은 실체를 알지 못하면서 이론과 추측만으로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 대한 비판 같습니다.
354~356쪽에 걸쳐 여러 분파들이 감자 사건에 대한 자신들의 정의와 의견을 내놓는데 각 문단의 마지막을 보면 이렇게 끝납니다.
- 의미론자: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이 모든 문제는, 한마디로 실상 존재하지 않는 문제인 것이다."
- 신실증주의자: "그리고 의심의 여지가 전혀 없는 진짜 결과, 0=0임을 증명해냈다."
- 신학자: "그러므로 바티칸의 의견을 기다려 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 신칸트주의자: "거꾸로 감자가 인간을 찰 수 있다는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 우를리판 교수: "아무것도 없습니다."
장황하게 설명하는 것 같지만 결국 이들은 감자가 왜 우주에 있는지, 어떻게 우주인을 공격할 수 있게 된건지, 그 감자가 어떻게 생겼는지 등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밝혀낸 게 없죠. 아주 당연한 사실을 말하거나, 자신의 의견을 유보하거나, 그냥 의미가 없다는 허무한 결과만을 제시합니다. 반면 타란토가 교수는 이론을 내세우기 전에 본인이 직접 운석 근처로 가 감자를 잡아오고 분석하여 실체를 알아내죠.
독자의 입장에서도 타란토가 교수의 시도가 더 이해하기 쉽고 와 닿았듯, 무언가를 직접 경험하지 않고 대상이나 사건을 말하는 것은 무의미함을 말하는 것 같습니다.

은화
3) 티히의 선조들이 워낙 하나같이 개성이 강하고 다사다난한 인물들이라 오히려 상대적으로 평범한(?) 행복한 인생을 살았던 펠릭스 티히가 인상 깊습니다. 어쩌면 여기서 나온 티히의 가족들은 그가 알던 실제 가족들의 모습을 일부 투영한 것일 수도 있겠고, 또는 그가 원하던 다른 삶의 모습이거나 렘 작가의 다른 일면이나 소망을 담았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참고로 펠릭스(Felix)는 '행운' 또는 '풍요'를 뜻하는 라틴어라고 합니다. 어쩌면 렘 작가는 자신이 부유하거나 성공한 인생을 살았다면 어땠을까 상상하며 이 인물을 묘사한 게 아닐까 싶었어요.
스물 여덟번째 여행은 처음에는 일반적인 가계도에 대한 서술로 시작되지만 점차 뒤로 갈수록 내용이 초현실적인 방향으로 변해가죠. 뒷부분의 기록에서는 이게 과연 정말 우주 여행 중에 일어난 중력과 시간의 이상 현상인지, 아니면 단순한 환상이나 정신의 착각인지, 둘이 뒤섞여 있는지도 감히 안 잡히죠. 그래서 이욘 티히도 자신이 읽은 아버지의 기록이 진실인지를 의심합니다.
재미있는 건, 책을 읽는 독자가 책 밖에서 이야기의 진위를 의심하는 심리 → 이욘 티히가 아버지의 이야기를 의심하는 구도 → 자기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건지 모르겠는 아버지의 구도로 반복하여 되풀이 되죠. <이욘 티히의 우주일지>라는 가상의 이야기 안에 진위를 확신할 수 없는 활극이 펼쳐집니다.
이런 상황에서 티히의 아버지에게 일어났던 일이 가짜인지 진짜인지 여부를 가리는 게 과연 중요할까요? 티히와 그의 아버지 중 누가, 어디서 어디까지가 진짜냐 가짜냐를 정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요? 티히가 그런 고민에 빠지듯 독자도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이 무의미한 상태가 됩니다. 다만 차이라면 티히는 우리와 달리 우주를 여행하는 중이고, 자신도 환각이나 조작된 경험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닌지 자기의 존재와 정체성을 의심하죠.
티히가 자신이 인지하고 있는 주변 감각 세계와 자아가 허구가 아님을 깨닫는 과정은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를 살짝 비튼 패러디 같습니다. 우주와 중력의 이상현상이 인간의 인식과 시공간에 감각을 왜곡시킬 수 있어도 자아와 생각하는 자신에 대한 인지만큼은 변하지 않고 남아있죠.
티히라는 인간의 의식은 지금 확실하게 느껴지고 존재하는 대상이므로 티히는 진짜입니다. 그렇다면 그가 존재하기 위해서는 생물학적으로 그를 낳은 부모가 있어야 하죠. 그리고 그 부모들도 존재하기 위해서는 선조들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그의 부모와 조상들도 모두 진짜이며, 그의 아버지가 남긴 일지도 허구가 아니고, 티히 자신의 여정도 착각이 아니게 되죠.
이 일화는 존재함(有)은 그 자체로 어떤 식으로든 결과를 남기지만, 존재하지 않으면(無) 아무것도 남기지 못함을 말하는데요. 삶 또는 존재의 이유는 '존재함 그 자체'라는 메시지 같습니다. 티히가 자신이 왜 망망대해 같은 우주를 매번 여행하고 있는지, 그 여행에서 무엇을 얻고자 하는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 삶의 진실성을 의심하죠. 그러다 결국 조상들 덕에 자신이 이 자리에 있다고 깨닫는 것은 그런 의미 같습니다.
이욘 티히는 태어났기에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분투하고 살아남은 조상들의 대를 이어 '우주를 탐험하는 여행자'가 될 수 있었던 거죠. 삶의 이유를 거창한 곳에서 찾으려고 들거나, 의미가 없다고 좌절하기 보다는 우리 각자가 겪고 있는 인생은 그 자체로 목적이며 이유라는 작가의 조언이 느껴졌습니다.
밥심
의견 제시가 조금 늦었네요.
1) 24th 여행: 345쪽에서 자유질서정립기가 한 말이 인디오타들의 행동을 좌우하는 결정적 구속 같습니다. '만약 누군가가 자신의 이웃이나 형제, 지인, 아니면 어떤 가까운 자든 나의 질서에 편입시키고자 하는 자는, 검은 로보을 부르면 된다. 그러면 명령에 따라 그를 무지개역으로 데려갈 것이다. 이게 전부다.' 자유의지 존중은 개뿔, 이 말을 듣고 어느 인디오타든 두려움에 떨지 않겠습니까. 결국 행동으로 나섰고요. 의견을 강요하지 않았다고 하지만 강요한 셈이죠.
2) 25th 여행: 렘이 장편에서도 꾸준히 이야기했던 바, 자신의 기준으로 세상을 보려하지 마라, 그 이야기를 또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구의 생명이 우리와 같다고 해서 우주 어딘가의 생명이 우리처럼 생겼으리라 생각마라, 자신이 만든 좁은 틀에 갇혀살지 말아라, 타인의 다름을 인정하라...
3) 28th 여행: 워낙 정신없게 선조들을 소개해놓아서 누가 누군지 잘 기억도 안 납니다. ㅎㅎ 다만, 383쪽의 이 문장이 인상깊었기에 싣습니다. '이 조상님으로부터 시작해서 우리 가문은 몇 세기에 걸쳐 재능 있고, 내성적이며, 독창적 사유를 하는, 가끔 좀 기이한 행동을 하고, 한 번 정해 놓은 목적을 고집스럽게 좇는 종류의 사람들을 배출했다.' 아주 매력적인 티히 가문 사람들의 특성이죠?

은화
“ "저것이 그들의 운명이죠." 코르코란 교수가 차분하게 말했습니다. "그들의 운명, 그들의 세상, 그들의 접근할 수 있고, 그들이 알 수 있는 모든 것. 저 안에는 인간이 가장 풍성하게 감각할 수 있는, 약 100조에서 120조 정도의 전자로 기록된 자극소들이 들어 있습니다. 만약 저 통의 뚜껑을 열어 보시더라도, 셀룰로이드 위에 흰 곰팡이처럼 지그재그 무늬가 그어진, 번쩍거리는 테이프밖에 보지 못하실 겁니다. 하지만 바로 그것이, 티히 씨, 적도의 뜨거운 밤이고, 파도 소리이며, 사과와 배의 맛, 휘몰아치는 눈보라, 벽난로를 피워 놓고 가족 들과 함께 보낸 저녁, 난파선의 뱃전에서 울리는 소리, 병의 발작적 고통, 산봉우리와 공동묘지, 그리고 어른거리는 환영이에요! 티히, 저 안에는 전 세계가 들어 있어요!"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30~431,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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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저 통 속에 들어 있는 것은 당신이 살고 있는 이 세상과 같습니다!"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32,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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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그렇다면, 도대체 제 상자들이 어떻게 자기가 상자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는 말입니까, 바보 양반? 당신에게 이 세상이 진짜이고 유일한 것처럼, 그들에게 저 상자는 진짜이고 유일한 것입니다. 전자두뇌에 전달되는 내용만이 그들의 전부입니다……. 저 통 속에 그들의 세상이 있는 거죠, 티히."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3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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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그는 자기 세상을 연구하지만, 절대로, 당신도 짐작하고 있듯이, 절대로 스스로의 세상이 가짜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소. 그는 자신의 시간과 노력을 실상 통 속에 감겨 있는 테이프의 기호를 후벼 파는 데 쓰고 있다는 사실을, 그의 손과 발과 눈의 감각, 시력을 상실하고 있는 상황조차 전자두뇌가 적당히 잘 골라 놓은 만들어 낸 환상이라는 점을 전혀 모르고 있죠. 그가 이 사실을 알려면 자신의 무쇠상자 밖으로 나가야 하는데, 그건 자기 밖으로 나오는 일이고, 그리고 자기 머리가 아닌 다른 무언가로 사고해야 하는 것이니, 마치 당신이 촉각과 시각을 쓰지 않고서 저 차갑고 무거운 상자의 존재를 알아내야 하듯 불가능한 일입니다."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35~436,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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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그리고 그가 자신의 말과 달리 사실 그들의 인생에 엄청나게 참견하고 싶어 함을, 자기가 만들어 낸 그 세상 깊숙이 들어가고 싶어 함을, 심지어 그 안에서 구원을 요청하는 누군가를 구하고 싶어 함을, 저는 느꼈습니다. (…) 그러나 저는, 그가 절대로 그런 일을 하지 않으리라고 확신합니다. 그는 그런 유혹에 저항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신이 되고 싶어 하니까요. 우리가 아는 유일한 신성이란, 인간의 모든 행위, 인간의 모든 범죄에 대해서 침묵으로 찬성하는 신이지 않습니까. 그리고 무쇠 상자들을 대물림된 반항의 대가는, 그들끼리 완전히 이성적으로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스스로 생각하는 것밖에 없겠지요. 그러면 코르코란은 아무 말 없이 웃으면서 또다시 겹겹의 문을 닫고 방을 나설 테죠. 이제 텅 빈 실험실에서는 마치 죽어 가는 파리의 신음 소리 같은 희미한 전류의 흐름만이 울리고 있을 것입니다. ”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p.443~444,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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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철학적 사유로 자주 나오는 '통 속의 뇌'를 말하는 일화 같습니다. 자아와 인식에 대한 문제를 넘어 렘 작가는 이런 통 속의 뇌가 액자형태로 반복된다면 결국 신이란 존재하지 않거나, 신이 있다고 해도 그는 우리의 기대나 예상만큼 전능한 존재가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네요.


borori
1)너무 놀라웠습니다. 완벽한 순응으로 저항 없는 사회인가? 의문과 함께 그 답변들에 더욱 놀랐습니다. 개인은 사라진 사회 같았달까요? 결국 완벽한 방식을 찾았다는 기계의 행동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 결과물을 보고 완벽한 균형이란 있을 수 없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더라구요.
2)불타는 행성 노 교수의 확고한 신념을 들으며 오히려 인류의 확고한 편견이 떠올랐습니다. 어딘가에 있을 지성의 정체에 대한 단호한 신념과 그로 인한 편견이 열린 추측을 방해하는 현상이 눈에 띄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도 절대 아냐 그럴리없어의 추측 속 진실을 멀리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었습 니다.
3)우주에서 해적질이라니 나쁜 놈이란 생각 뒤에 얼마나 외로웠는지가 느껴졌습니다. 아니면 생명체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진 건가? 하는 행동에 관한 동의는 아니지만 심정적 이해가 살짝 느껴졌습니다. 망망대해보다 더 깊은 우주에서 느끼는 고립감에 대해 생각이 자연스레 떠올랐습니다.
마지막 티히의 이야기에서 작가님의 개그 포인트가 느껴졌는데요. 무(無)가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 티히가 우주여행을 계속한다는 생각과 함께 실은 이 책은 소설이므로 그래도 렘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완전한 무는 아니기도 한 재밌는 상황으로 읽히기도 했습니다. 개구쟁이 렘 ㅎㅎ

은화
뜨거운 행성의 불? 용암? 생명들을 보고 생각난 작품이 있는데요. 아서 C. 클라크의 단편집에 실린 작품 중 <내부의 불꽃 The Fires Within>이 있습니다. 지구의 지각 아래 구성과 형상을 확인하기 위해 초음파 장비로 실험을 하던 영국의 핸콕 교수는 어느 날 이상한 현상을 감지하는데요.
지하 24km를 넘어 맨틀 층에 도달하자 음파 장비 화면에 알 수 없는 점과 격자들이 나타납니다. 어지간한 도시 규모의 인공적인 직선과 곡선이 음파의 반사를 통해 시각화해서 보인 거죠. 핸콕 교수는 그 정도 깊이의 액화 불꽃 속에서 자연적으로 그런 구조물이 생길 수는 없기에 생명의 작품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만일 생명이 있다면 기압과 온도가 너무나 높기 때문에 일반적인 생명들처럼 외부의 껍질이나 껍데기, 피부조직이 있지 않고 굉장히 옅으며 희멀건 안개같은 존재여야 할 것이라고 추측해요.
그리고 이 단편소설의 끝은 시점과 장면을 바꿔, 맨틀 속에서 사는 문명의 두 과학자로 옮겨갑니다. 이들은 지표면의 인간들이 음파 장비를 통해 자신들을 발견했다는 사실을 알아냅니다. 두 과학자 중 한 명이 농담으로 만일 우리가 지상으로 올라간다면 저 위의 존재들은 큰 충격을 받을 거라고 농담을 건네며 마무리됩니다.
렘 작가의 작품과 아서 클라크의 작품 중 어느 것이 더 먼저 나왔는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거울에 비춘듯 대비되는 두 작품의 모습이 떠올랐어요.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아서 클라크 1주기를 맞이하여 그의 생애에 쓴 모든 단편을 담은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년 첫 작품 '유선 전송'에서부터 1999년 과학 소설 최초로 「네이처」에 수록된 '이웃을 교화하자'에 이르기까지 현대 과학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미래학자이자 SF계의 거장 아서 클라크의 단편 104편을 한데 모았다. 전집은 총 4권이며, <1937-1950>에는 초기 작품들을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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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그리고 갑자기, 아주 작은 점들이 화면에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철로 이루어진 지구의 핵을 최초로 보게 되는가 보다 하고 몸을 앞으로 기대었습니다. 답답할 정도로 느리게 스캐너가 크게 방향을 바꿨습니다. 그리고 다시, 또다시……. (…)
완벽한 대칭을 이루는 희미한 격자무늬가 화면에 나타났던 겁니다. ”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 p.155, 아서 C. 클라크 지음, 심봉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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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여러 이론을 시도해 봤지만, 결국 하나로 돌아오더군요. 저 아래는 아마도 8000~9000기압은 된다는 걸 우리는 압니다. 그리고 그 온도는 바위를 녹일 정도로 높고요. 그러나 사실상 물질은 거의 빈 공간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가령 저 아래에 생명체가 있다면 어떨까요. 당연히 유기체는 아니겠지만, 밀도가 너무 높아서 전자껍질이 없거나 거의 날아가 버린 물질을 기반으로 기초로 살아간다면요. 제 말을 이해하시겠어요? 그런 생물에게는 24킬로미터 아래에 존재하는 바위란 물처럼 아무런 방해물도 되지 않을 것이며, 저희나 저희가 사는 세상은 유령처럼 모두 희멀건 존재들일 것입니다." ”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 p.156, 아서 C. 클라크 지음, 심봉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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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화
“ 저는 물고기가 물에서 수영하는 것처럼 눈부신 바위들 속에 길을 내는 생명체들과 그들이 돌아다니는 거리, 건물들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놀라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인간이 살아가는 온도와 기압이 얼마나 제한적인지를 떠올렸습니다. 그들이 아니라 저희가 기형적인 존재입니다. 왜냐하면 우주의 거의 모든 물질이 수천 혹은 수백만 도의 온도에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아서 클라크 단편 전집 1937-1950』 p.157, 아서 C. 클라크 지음, 심봉주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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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rori
오오 흥미롭습니다~ 꼭 읽어봐야겠습니다.

꽃의요정
우주선에 건달들이 타고 있었는데, 훗날 별이끼 밀매로 모든 기록을 말소당한 두 명의 건달들, 그 은하계 악당들의 이름이 신(神)과 주(主)는 아니었습니까?
『이욘 티히의 우주 일지』 74p, 스타니스와프 렘 지음, 이지원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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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의요정
주여....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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