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 빌리의 노래, 가난조차 잊혀지는 곳

D-29
암코는 꼼꼼한 설계로 명성을 얻었다. 채드 베리는 저서『남부 이주자, 북부 망명자』에서 "1950년대까지 마이애미밸리 지역의 '4대' 고용주는 신시내티의 프록터앤드겜블, 해밀턴의 챔피언페이퍼앤드파이버, 미들타운의 암코스틸, 데이턴의 내셔널캐시레지스터였으며, 이 기업들이 평화로운 노사 관계를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이주자로 출발한 직원들의 가족과 친구들을 '고용한' 덕분이었다. 일례로 미들타운의 인랜드컨테이너의 급여 대상자 명단을 보면 켄터키 출신 직원이 220명 있었는데, 그중 117명이 울프 카운티 출신이었다"고 밝혔다. 1980년대 노사 관계가 악화했을 때도 암코와 그 유사한 기업들의 노사 관계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02,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가와사키스틸과의 합병은 불편한 진실을 담고 있었다. 세계화 된 시대에서 미국의 제조업은 살아남기 어려워졌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03,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그러나 제철소 노동자를 꿈꾸는 애들은 없었다. 미들타운의 지리적 위치 때문에 대학 교육을 받은 학부모가 거의 없었던 루스벨트초등학교에도 생산직과 그 일자리가 가져다줄 모양새 좋은 중산층의 삶을 꿈꾸는 학생은 없었다. 우리는 암코에 취직하면 다행일 거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암코의 존재를 그저 당연하게 여겼을 뿐이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04,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미들타운 같은 곳에 사는 사람들은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그러나 미들타운을 돌아다녀보면, 젊은이의 30퍼센트가 주당 20시간 미만으로 일하는 동네인데도 자신이 게으르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사람을 단 한 명도 만나지 못할 것이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08,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집 밖에는 총을 든 채 담배를 피우는 할모가 있었고 집 안에는 새로 생긴 법적 아버지가 있는 희한한 가정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는 행복했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17,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할모와 할보는 내게 싸움의 기본 규칙을 확실히 일러줬다. "절대 먼저 싸움을 걸어서는 안 돼. 하지만 누가 싸움을 걸어온다면 반드시 끝장을 내야 한다. 원래는 절대 안 되지만 상대방이 가족을 모욕한다면 싸움을 시작해도 괜찮을 거야."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20~121,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언제나 그랬듯 할모는 싸움도 경험을 통해 배우도록 했다. 할모는 한 번도 내게 손찌검을 한 적이 없었지만(아마도 본인이 겪었던 끔찍한 과거 때문이었으리라), 내가 주먹으로 얼굴 부위를 맞으면 어떤 느낌이 드는지를 물었을 때는 망설임 없이 직접 시범을 보여줬다. 할모의 손이 재빠르게 날아와 내 뺨을 정통으로 가격했다. "어떠냐? 그렇게 아프지는 않지?"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21,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정말 그랬다. 얼굴을 맞았는데도 내가 상상했던 것만큼 끔찍하게 아프지는 않았다. 이것이 할모가 가르쳐준 가장 중요한 싸움의 기술이었다. '제대로 때릴 줄 아는 사람이 휘두르는 주먹이 아니라면 얼굴도 맞을 만하다. 피하다가 때릴 기회를 놓치는 것보다는 얼굴을 한 대 맞는 게 낫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22,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할모는 소파로 향했다. 할모가 평소에 앉아서 범죄 수사 드라마 <범죄전담반>을 시청하고 성경을 읽고 잠을 자기도 하는 소파였다. 주방과 거실을 나누는 좁은 통로에 서 있던 나는, 차에서 할모가 엄마에게 안전하게 운전하라고 명령할 때부터 계속 궁금했던 질문을 했다. "할모, 신이 정말 우리를 사랑해요?" 할모는 고개를 떨구고 나를 껴안더니 꺽꺽 울기 시작했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51,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아빠의 집은 신경에 거슬릴 정도로 평온했다. 아빠가 셰릴 아주머니와 다툴 때는 있었어도 서로 언성을 높이는 일은 거의 없었고, 엄마 집에서는 예삿일이었던 무지막지한 모욕이 오가는 일도 결코 없었다. 주변에는 술을 마시는 친구들은 물론이고 그런 분위기를 즐기는 친구들조차 없었다. 체벌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었지만, 절대 지나친 벌을 주거나 언어폭력을 행사하지 않았다. 체계적으로 체벌을 했고, 결코 개인적인 분노를 담는 법이 없었다. 남동생과 여동생은 대중가요나 R등급 영화 없이도 아주 즐겁게 살고 있었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61,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문화적으로 보수적인 남부 출신의 개신교도를 향한 고정관념은 사실과 다를 때가 많지만, 종교적인 면에서 아빠는 그런 고정관념대로 살았다. 개신교도들은 신앙생활에 집착하기로 유명했으나, 집에 돌아와 생활하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아빠보다는 할모와 더 비슷했다. 신앙심은 아주 깊었지만, 어떤 교회 공동체에도 속해 있지 않았다. 실제로 내가 아는 보수 개신교도 중에서 규칙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은 우리 아빠와 아빠의 가족들뿐이었다. 바이블벨트의 중심지에서도 적극적인 교회 출석률은 사실 꽤 낮은 편이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62~163,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결국 아빠는 신에게 친권 포기가 나를 위한 최선의 선택이라는 세 가지 계시를 내려달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뚜렷한 계시를 받은 탓에, 나는 1년도 알고 지내지 않은 밥 아저씨의 수양아들이 됐던 것이다. 아빠가 거짓말을 했으리라고 생각하지 않고 힘들게 내린 결정이었다는 걸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자기 자식의 운명을 신의 계시에 맡긴다는 발상은 결코 이해되지 않는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66,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그 또한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았다. 아빠가 날 걱정했었다는 사실을 아는 것만으로도 어릴 때 겪었던 아픈 기억이 많이 지워졌다. 이렇게 저렇게 따져보더라도 나는 아빠와 아빠가 다니는 교회가 좋았다. 교회라는 조직이 좋았던 건지, 아니면 그저 아빠에게 중요한 가치를 함께 나누고 싶었던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아마 둘 다였을 것이다), 나는 헌신적인 개종자가 됐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66,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복음주의 신학에 깊이 빠져들수록 점점 사회의 여러 분야를 맹목적으로 불신하도록 강요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진화론과 빅뱅이론은 이해가 아닌 맞서야 할 이론이 됐고, 내가 들었던 설교의 대부분은 다른 기독교인을 비난하는 내용이었다. 신학적으로 다투기 위한 선을 그어놓고,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단순히 성서 해석이 틀렸다고 지적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 그들을 기독교 정신에 어긋나는 사람들로 몰아갔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68,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나는 댄 이모부를 누구보다 존경했으나, 이모부가 믿는 천주교에서 진화론을 인정한다는 말을 듣자 그 존경심에 불신이 파고들었다. 내 안에 새롭게 싹튼 믿음이 이교도를 경계하게 만든 것이다. 아무리 좋은 친구라도 성경 구절을 나와 다르게 해석하면, 내게 나쁜 영향을 미치는 친구가 됐다. 할모의 종교관과 빌 클린턴을 향한 호감이 동일 선상에 있었으므로, 당시의 내게는 할모마저 타락한 사람이었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68,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10대의 어린 나이로 내가 무엇을 믿고 또 왜 믿는지 처음으로 진지하게 생각해보니, '진정한' 기독교인들이 궁지에 몰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크리스마스 전쟁'이라는 말이 있는데, 내가 알기로는 주로 미국시민자유연합ACLU 활동가들이 성탄 장식을 하는 작은 마을을 고소하면서 생긴 말이다. 나는 기독교인들이 여러모로 박해를 당한 내용을 묘사한 데이비드 림보의『박해』라는 책을 읽었다. 인터넷은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 똥칠을 한 작품을 주제로 열린 뉴욕의 미술 전시회 관련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가 박해받는 소수가 된 것 같았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69,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진정한 기독교인이라고 할 수 없는 기독교인, 청년들을 세뇌하는 세속주의자, 우리의 믿음을 모욕하는 미술 전시회, 엘리트에 의해 이루어지는 박해에 관한 모든 논란은 세상을 무섭고 낯선 곳으로 만들었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69,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엄마는 자기 혼자서만 슬퍼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엄마가 봤을 때 엄마와 할모 사이에는 특별한 유대감이 형성돼 있었으므로 위 이모는 슬퍼할 자격이 없었다.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우리 아버지가 아니라 엄마의 아버지였으므로 린지 누나와 나는 그 두 사람 틈에 낄 수조차 없었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89,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난동을 부리기 1년 전에 엄마는 인라인스케이트를 타고 응급실을 가로질러 다니다가 미들타운 병원에서 해고당했다. 그때는 엄마가 밥 아저씨와 이혼한 충격으로 이상한 행동을 한다고 생각했다. 마찬가지로 할모가 엄마를 두고 '술에 절었다'고 표현하는 것도 아무 말이나 뱉기 좋아하는 사람의 입에서 나온 의미없는 말인 줄만 알았지, 실제로 더 나빠지는 현실을 꼬집은 말인 줄은 몰랐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91,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가난에 허덕이던 골창의 삶에서부터 할보의 폭력까지, 위 이모의 10대 결혼부터 엄마의 전과 기록까지, 할보는 일흔 살이 되도록 거의 일평생 위기를 해결하며 살아왔다. 그리고 비슷한 연배의 노인들이 은퇴의 단맛을 즐기고 있을 때 할모에게는 돌봐야 할 10대 손주가 둘이나 딸려 있었다.
힐빌리의 노래 - 위기의 가정과 문화에 대한 회고 p.192, J. D. 밴스 지음, 김보람 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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