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피플 존

D-29
쿨함을 가장하고 있지만 사실 나는 무의미가 싫기 때문에, 그것을 견디기 힘들기 때문에 아주 작고 희미한 의미라도 찾아 헤매는 것이다. 읽고 씀으로써 가능한 일이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하니까.
작가가 혼잣말 하듯 하는 말은 나중에 더 설명을 들어야 이해가 가는 것도 많다. 아니면 영원히 모를 수도 있는 것이고.
나는 과거를 떠올리는 것만큼, 닥치지 않은 미래에 대한 걱정도 많다.
그러므로 내게 있어 글쓰기는, 직업인 동시에 인간으로 잘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기도 하다.
얼마나 뛰어난 글을 쓰는가도 물론 중요하지만, 글을 쓴다는 행위 자체가 지닌 의미를 잊지 않고 싶다.
사람들이 모두 글 쓰는 사람들이 되어 결론을 유예하며 지속적으로 퇴고하는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
그래도 우리 같은 부류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 믿는다.
나는 계속해서 절망을 말할 것이다. 인간의 어리석음과 탐욕과 편협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들 것이다. 이기심과 욕망과 비겁함에 대해 쓸 것이다.
나는 어둠을 말함으로써, 빛을 등짐으로써, 생을 긍정하는 글쓰기를 하고 있다고 믿는다. ......아닌가?
뭔가 인간과 현실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것을 계속 추구하는 글은 뭔가 나아가는데 힘이 없다. 그게 진실이 아닌 것 같아서 그런 것 같다.
임산부/임신부 이 둘을 정확히 구별하자. 임산부(姙産婦)는 ‘임부(=임신부, 아이를 밴 여자)’와 ‘산부(아이를 갓 낳은 여자)’를 아울러 이르는 말로 ‘임신부(姙娠婦)’와 구별해서 써야 한다. 지하철도 ‘임산부’를 ‘임신부’로 바로 잡아야 하는데, 영어로 pregnant woman이라고 쓰여 있고 배가 부른 여자가 앉아 있는 그림이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임산부’라는 용어가 제대로 사용되는 장소는 ‘임부’와 ‘산부’가 모두 왔다 갔다 하는 산부인과 병원 정도일 것이다. 흡연은 뱃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거나 아이에게 젖을 먹여야 하는 임산부에게는 절대적으로 금물이다. 나는 집으로 오는 지하철에서 임신부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지하철에 지원서를 접수했다? 이 표현은 틀린 표현이다. 접수는 ‘신청이나 신고 따위를 구두나 문서로 받는 것’의 뜻이기 때문이다. 받는 사람 입장에서만 ‘접수(接受)’를 쓸 수 있다. 지하철에선 ‘서류 접수’라고 쓸 수 있겠지만 신청서를 내는 지원자로서는 ‘서류를 제출했다’ 또는 ‘서류를 냈다’라고 표현해야 한다. 그러니 지하철 주최 측에서 써 붙인 ‘접수 창구’도 당연히 맞는 표현이다. 지하철은 마감 일자가 지났다며 서류의 접수를 거부했다.
천상 배우? ‘천상 배우, 천상 여자’ 이런 말을 곧잘 하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천생 배우, 천생 여자’라고 표현하는 게 맞는 표현이다. 천생(天生)은 ‘하늘로부터 타고남 또는 그런 바탕’을 뜻하기 때문이다. 김 씨가 아무리 남장을 했어도 생김새나 말하는 모습은 천생 여자였다.
악플은 별거 아니다 미식가도 아니면서 요리사한테 실제 맛있는 걸 알면서도 그냥 무심코 음식 못한다고 말하거나, 노래에 미친 사람한테 원래 음악엔 관심도 없고 음치에다가 막귀이면서도 아무 생각 없이 음악이 별로라고 말하거나 글 쓰는 사람한테 글은 일 년에 한 번 어쩌다 읽는, 그의 전(前) 작품들에 대해 알지도 못하고 단 한 줄도 읽은 적이 없지만 이 글은 뭔가 분명 잘 쓴 것 같은데 자신이 이해를 못 하고 단지 그래 마음에 안 들어서 못 썼다고 말하면 그걸 만든 사람들은 상처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 말 자체보다, 자신이 그걸 너무 좋아해 거의 목숨을 거는 수준이면 더 그렇다. 사랑하기 때문에 아픈 것이다. 그렇지만 자신이 그걸 안 할 것도 아니고 아니 그런다고 못할 것도 아니고 계속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니까 이런 걸 귀담아들을 필요는 없다. 물론 귀담아 안 들으려고 해도 자신이 사랑하는 것에 대한 그래도 평(評)은 평이니까 안 들리지 않을 것이지만. 실은 그런 말이 심각하거나 중요한 건 절대 아니다. 음식도, 음악도, 글도 자신의 어떤 혼(魂)이 들어가 예사 것은 아니기에 절대 범상한 작품은 아니다. 그건 자기가 낳은 자식에 비견할 만하다. 자식이 어디 예사롭고 범상하던가. 그런 건 더 좋고 나은 것을 만들기 위한 아주 작은 시련(걸림돌)이라고, 오히려 발판(디딤돌)이라고 생각해 계속 내가 하는 일에 열정을 쏟을 일이다. 실은 또 누구에게 보여주려는 것보다 자신이 좋아서 하는 경우엔 더더욱 그렇다. 그러니 남의 말에 그렇게 신경 쓸 일도 아니다. 나는 그런 평가에 아랑곳없이 계속 만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인간은 다신 내 작품을 접할 일도 없을 것이다. 그런 인간은 여기에 다신 안 온다. 아니 올 수 없다. 그냥 지나가던 개가 심심해 짖은 거니까. 그렇게 한 걸 기억조차 못 한다. 유행가 제목처럼 원래 ‘아픈 만큼 성숙해지는’ 법이다.
자연법칙 전엔 술을 먹어도 세상모르게 자고 일어나면 푹 쉬었기 때문에 뭔가 기분이 날아갈 것처럼 좋았다. 그러나 지금은 생전 그런 기분과 느낌은 좀처럼 생기지 않는다. 아련한 그런 느낌은 절대로. 역시 몸을 자연이 괴롭히며 죽으라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삶의 질을 떨어뜨려 삶에 대한 의욕을 꺾는 것 같다. 이런 게 자연법칙이리라. 때가 되었으면 죽으라는 변화다. 새것이 오게 낡은 것은 이제 제발 꺼지라는.
휴게소 사장님은 바지런하고 손이 빨랐다.
"씨발,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심하게 아픈 적이 있는데 초등학교 때, 한 3학년 정도 되었을 것이다. 겨울방학 내내 아랫목에만 누워 지냈다. 공부 안 해도 되는 아까운 겨울방학을 누워만 지내는 것이 너무 억울했다. 아프기 전엔 나는 동네 친구들과 놀기를 그렇게 좋아했는데 친구들이 “태식아~, 놀자!” 하고 찾아와도 그들을 그냥 돌려보낼 수밖에 없었다. 아주 나중에, 손금볼 줄 아는 어느 신비한 여자가 내 손바닥을 유심히 보더니, “언제 되게 아픈 적 있지요?” 하는 것이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 참 용하다고 했는데, 그게 손금에 새겨질 정도로 나는 그때 아주 심하게 앓았다. 먹으면 다 토했다. 아프면 식구들이 그때부터 잘해주고 맛있는 걸 내게 양보해 아픈 게 좋았는데, 그땐 너무 심하게 오래 아파 정말이지 지긋지긋했다. 엄마는 어디서 구했는지 맛있는 것만 내게 내밀었다. 그걸 먹을 수 없다는 게 이상했지만 할 수 없었다. 동생들은 내가 부러운 눈치였다. 자기들도 아팠으면 하고 바라는 것 같았다. 한번은 설핏 잠이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천장에 쥐가 오줌을 싸서 생긴 무늬가 괴물처럼 보이면서 내게 달려들어 기겁했는데 그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나는 어둠의 나락(奈落)으로 끝없이 떨어졌다. 먹지 못하고 토하기만 하니까 기력이 쇠(衰)해 헛것이 자꾸 보인 것이다.
"사람이 있는 데가 속세야." 고시생은 가끔 도통한 사람처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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