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이 있읍니다.
간난 할멈 매장한 후 먹다 남은 음식들을 여기저기 뿌렸다 라는 묘사가 나오는데요, 이것은 이 시대의 일반적인 풍습입니까? 아니면 이 지방만의 풍습일까요? 뭣 때문에 그렇게 뿌리고 갔는지도 알려주셨으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리고 그 장례 때 장례 노래를 김무토? (일본판에서는 서꿈털이라고 번역되어 있어서 맞는지 자신이 없지만) 가 부른다고 나오는데 어떤 노래인지, 같은 노래가 아니더라도 장례 때 불리는 예절한 노래를 YouTube나 그런 매체에서 들을 수 없을까요? 이것도 아시는 분이 계시면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올해는 토지를 읽읍시다.
D-29
치즈루

보보스
이건 요즘에도 종종 있는데
주로 산에 있는 신들이 흠향하고
산에 있는 작은 동물들이 먹으라는 의미로 봐야겠죠.
보통 '고시레'하면서 저런 행위를 하는데
요즘에는 보통 무덤을 납골당으로 하니까 저런 일은 있을 수 없고
예전처럼 산에 무덤이 있는 경우에는 요즘도 저렇게 하긴 합니다.

Olafsson
간난할멈의 장례는 2권에 나오는데 앞소리를 한 사람(=노래를 부른 사람)은 서서방(서씨 성을 쓰는 결혼한 남자)이에요. 왜 목청 좋고 아내를 끔찍히 아끼는 분. 상여를 메고 집을 나와 묘소로 가는 여정에 부르는 노래를 '상여소리'라고 하고요, 책에 나온 '어하넘 어하넘,,,'으로 시작하는 노래는 상여소리중에 전라남도 진도 지방의 '진도만가'라고 합니다. 유튜브에서 '진도만가' '상여소리' 검색해보세요. https://youtu.be/pygQm6ZU5Io?si=PyuZv6jw5zXF5euQ
https://terms.naver.com/entry.naver?cid=51944&docId=2660969&categoryId=54919
치즈루님 질문 덕에 책을 더 깊이 보게되어서 감사드려요.

익용이
서씨할배 성함은 '서금돌'입니당ㅋㅋ

보보스
1부가 60년대에서 시작해서
마지막 5부 00년대로 마무리되는 걸로 알아요.
70년대 동아일보에서
강간당한 딸과 강간범을 결혼시키는 판결이 일종의 명판결(?)같이 나옵니다.
당시 시대상황을 보여주는 거지만
제 생각으로는 아마도 두 사람 집안이 알고 있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그게 아니면 딸이 '강간당했다', 당시 시대말로 하면 '정조를 잃었다'라고 주장하고
그래서 무마를 했는데
아무튼 그런 시대가 불과 70년대라는 거죠.
이걸 감안해야 잘 읽혀지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치즈루
보보스님, Olafsson님, 익용이님 감사합니다.
덕분에 그 장면을 생생하게 제 머리 속에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서금돌! 일본어판으로는 徐クムトル(서꿈털)로 나오니까 거의 발음 그대로군요.
クムトル이 한글로 철자가 어떻 게 되는지 몰라서 AI한테 물어봤더니
박경리작가의 "토지" 일어판에서 徐クムトル로 나오는 인물은 원서에선 김무토입니다, 라고 그랬어요.
그래서 이상하다 싶으면서 저렇게 여쭤보았습니다.
진도만가 소리 들으면서 다시 한 번 감사의 말씀 드리겠습니다.

잎새별
“ 머루덩굴의 집념과 최치수의 집념에는 얼마만한 거리가 있는 것일까. 귀녀의 집념이 머루덩굴을 닮았다면 치수의 집념은 덩굴에 휘감기면서 하늘로 뻗으며 제자리를 양보하지 않으려는 소나무의 의지를 닮았다 할 수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