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의 로녹대학 입학사진의 깔끔한 사진을 보면 사고무친의 그가 부담이 되는 학비를 벌기 위해 이렇게 많은 일을 했다는 사실이 잘 믿기지 않네요. 원래 성정이 자존심이 강하고 고집이 있어 자신의 상황이나 감정을 잘 표현하지 않는 사람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1. <김규식과 그의 시대> (1)
D-29

거북별85

stella15
아, 정말 가족적인 학교겠네요. 그럼 잊지 못하죠. 요즘엔 서울 살다 지방으로 이사를 가면서 폐교 위기의 학교가 구제를 받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군요. 그래봐야 몇명 되지도 않지만 정말 아기자기하게 잘 가르치나 보더군요. 저 같이 학교 부적응자가 차라리 그런데서 공부했으면 좋았을텐데. 역시 애교심은 학교가 큰데선 별로 없고 작아야 생기는 것 같아요.

거북별85
@stella15 님 의견에 동감합니다
요즘 저출산에 지방 폐교들도 늘어나는데 로녹대학처럼 해외든 우리나라든 우수한 인재들을 유치해서 같이 공부할 방법들도 같이 고민해보면 좋겠어요~^^

YG
읽다 보면, 이런 게 필요하실 것 같아서 제미나이랑 같이 만들어 봤어요. 참고하세요.
김규식을 중심으로 해방 전후기에 중요한 역할을 했던 이승만, 김구, 여운형, 조소앙, 송병준 그리고 김일성 등의 1910년 강제 병합 당시, 삼일운동 당시, 해방 당시의 나이와 생몰 연도를 정리했습니다.

YG


거북별85
오!! 연도별 정리 넘 감사합니다!!
그런데 1919년 김일성 7세는 재미있네요~~~ ^^ 김일성은 20세기 후반까지 살아있었는데도 다른 분들에 비해 너무 어려서 깜짝 놀랐네요~
조카분의 시원하게 활강하는 모습이 너무 멋집니다!!👏👏👏 정말 노력한다고 다 이루어지지는 않는데 너무 축하드려요~ 아직 어린 학생인데 인터뷰 보면 어떤 시간들을 버텨내고 보냈을까 가슴이 먹먹해지네요~~환하게 웃는 모습도 너무 예뻐요 ~^^

stella15
오, 흥미롭네요!

향팔
오, 감사합니다. 방금 책을 읽다가 “이승만이 청년 외교관으로 이름을 얻게 된 1905년…”이라는 대목(181쪽)에서 이승만의 당시 나이가 감이 안 와 YG님 표를 바로 열어보았어요. 30세였군요 ㅎㅎ 이렇게 보니까 너무 편하네요. 킵해두고 요긴하게 잘 보겠습니다.

향팔
“ 또한 박장현은 이승만이 청년 외교관으로 이름을 얻게 된 1905년 시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면담외교를 국내에 대대적으로 홍보한 주역이기도 했다. 박장현은 이승만이 윤병구와 함께 시오도어 루스벨트 대통령과 면담하고 루스벨트의 호의로 포츠머스강화회담 ‘방청권’을 얻었지만 주미대리공사 김윤정이 국가를 배신·매국함으로써 기회가 무산되었다는 기사를 『황성신문』에 투고했다. 이를 통해 고종이나 대신들은 물론 외교관들도 한국 독립 유지를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지 못했는데, 의기남아(義氣男兒) 이승만이 청년 외교관으로 한국을 지키려 노력했다는 신화가 만들어지게 되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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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1896년 11월에는 박희병이 로녹대학에 신입생으로 입학했다. 박희병은 일명 박장현으로 미주 독립운동 지도자 박용만의 숙부이다. 그를 통해 박용만이 미주로 유학길에 올랐고, 박장현이 네브래스카에서 운영하던 한인노동주선소를 기반으로 박용만이 소년병학교를 설립했다. 박용만은 이승만·정순만과 함께 한성감옥에서 이름이 ‘만’자로 끝나는 삼만결의형제가 된 것으로 유명했다.
[…]
김규식과 박용만은 1917년 대동단결선언 당시 함께 서명자로 이름을 올렸으며, 1919년 김규식이 파리강화회의 대표로 파견되는 시점에 접촉하려고 노력했던 미주의 유일한 인물이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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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G
모두 감사합니다. 사실, 조카 뒷바라지 하느라 그 집 식구도 모두 고생이 많았는데 이렇게 성과가 있어서 다행이다, 이런 마음도 있어요. 능력 있고, 노력해도 잘 안 되는 일도 많지 않습니까; 웃픈 사연이 많은데, 그건 나~중에 우리 정말 오프 호프라도 하게 되면 그때 썰 풀게요. 하하하! ( @stella15 님, 예전에 궁금해하셨던 영풍문고 뒷담화까지 함께!)

stella15
ㅎㅎㅎ 이거 언젠가 될지 모르지만 오프 모임하시면 꼭 나가야겠군요! 알겠습니다.ㅋㅋ
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1권, 2권, 3권을 3월 30일까지 읽는 읽기표를 업데이트합니다.



YG
2권은 2월 23일 시작해서 3월 7일 마무리하니 2주 만에 독파하는 일정이네요! 다들 힘내서 세 권 완독해 봅시다.
밥심
‘한국은 다른 나라들과 매우 다르다. 유럽에서 왕들은 모두 행복하게 지낸다. 우리나라에서 왕은 절대군주로서 업무가 매우 많으며 너무 행사가 많아서 즐거움이 거의 없다(209쪽)’
윗 부분은 의화군이 미국 언론과 인터뷰한 내용인데 <몽유병자들>을 읽어보면 유럽의 황제들이 권력을 향유하기도 했지만 왕 노릇이 너무 힘들어서 괴로워하는 모습도 많이 나옵니다. ㅎㅎ 의화군이 실정을 잘 몰라 오해했던 것 같네요.

적륜재
박용만과 소년병학교에 대해서는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안형주, 지식산업사,2007)을 읽어보시면 1900년대 초반 미국 유학생들에 대해 좀 흥미로운 내용들이 있었습니다.

박용만과 한인소년병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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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적륜재 님, 감사합니다. 책을 읽다보니 박용만은 이승만과 의형제까지 맺은 사이인데 주석에선 ‘미대륙의 항일무장투쟁론자 박용만’이라는 제목이 눈에 띄어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찾아보니 노선의 차이로 갈등을 겪다 정적이 되었던 것이로군요.
알려주신 책의 소개글을 보니 박용만의 소년병학교는 한인이 해외에 최초로 세운 무관학교였네요. 유일한 선생도 이 학교 출신이고요. 이런 역사를 잘 모르고 살아왔어요. 책 읽어보겠습니다.

stella15
유일한 박사도요? 암튼 저도 이 책 읽고 싶네 요!

향팔
우리역사넷에 귀여운 자료가 있어 첨부해봅니다. 유일한 선생께서 1945년 50세 때 무려 OSS의 침투 작전 훈련에 참여하셨다니, 이 또한 몰랐던 사실이에요. 놀랍습니다.
https://contents.history.go.kr/mobile/eh/view.do?levelId=eh_n0920_0010
독립운동을 한 민족 기업가, 유일한(1895~1971)



stella15
와, 옛날에 50이면 거의 초로라고 할 수 있을텐데 침투 작전 훈련에 참여했다니 대단하네요. 근데 미국에 소년병학교가 있었다는 게 참 놀랍네요. 뭘 가르칠지 궁금하네요. 그래도 가급적 소년은 투입시키지 않는 것이 좋을 것 같은데.
암튼 향팔님도 찾기 천재여요. ㅎㅎ 그러고 보니 <유일한 평전>있었네요.

유일한 평전전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 유한양행 창업자, 한국 CEO와 경제학 박사들 이 가장 존경하는 기업가 유일한 평전. 유한양행의 창업자이자 기업인으로서의 유일한의 모습뿐만 아니라 그가 어린 시절 겪었던 일들과 또 당시의 사회배경까지 세세히 풀어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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