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규식의 부인 김순애가 대한애국부인회 멤버였다는 것을 알게되어 검색하던 중, 오현주 라는 친일파에 대해 보게되었는데. 정말 분통터지네요. 동지들을 죽음의 위험을 몰아넣고 본인은 엄청난 부를 쌓고 천수를 누렸더군요.
https://h21.hani.co.kr/arti/culture/culture_general/44882.html
[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1. <김규식과 그의 시대> (1)
D-29

오구오구
aida
독립의 희망을 놓으면(그럴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냥 조용히 살일이지.. 스스로 동지를 팔아넘기고 부를 쌓다니.. 분노가 치미네요.. 여러번 등장하는 독실한 기독교라는 수식어와는 어울리지 않는 사건을 어찌 생각해할지 가끔 난감하네요. 그 개인의 몫이니...쩝...
이번 책을 통해 선교사분들의 지원 덕에 교육을 받고 특히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할 수 있었던 힘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지만요.

꽃의요정
저도 저렇게 변할 바에는 외국으로 도망가겠어요...이것도 넘 비겁하죠?
aida
압제 상황 에서 두려움에 도망가는 건.. 비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저도 용기를 낼 수 있었을지는 확신이 전혀 없거든요...

stella15
참, 드라마에나 나올 법한 인물이군요. 영화 <밀양>도 생각나고. 그런 사람 어디든 꼭 있죠. 역사는 승리자만을 기록한다지만 신앙으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한 사람은 막상 얼마 안 되죠. 교회가 오히려 앞장 서서 신사참배하기도 한걸요. 그거 반대하다 순교한 사람도 있고요.

향팔
“ 이상과 같이 청원서를 종합하면, (1) 정의, 인도, 자유 등으로 대표되는 1차 대전 승리의 정신과 그에 끼친 미국과 윌슨 대통령을 향한 찬사와 기대, (2) 일본이 전제주의, 군벌주의, 관료주의, 제국주의에 기초해 한반도를 발판으로 한 대륙 확장 정책을 펴는 데 대한 경고, (3) 일본 점령하의 한국 상황을 정신적, 정치적, 경제적 측면에서 설명, (4) 한국인의 독립투쟁 의지와 이에 대한 미국의 지원 요청 등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한국이 독립할 필요성을 세계의 대세, 인도·정의, 한국인의 자유의지 등 보편성에서 구하면서, 한편으로 일본의 대륙 침략 정책에 기초한 아시아의 갈등 가능성과 일본 통치하 한국의 참혹한 현실을 부각시킴으로써 한국 독립에 대한 미국의 동정과 후원을 요청한 것이다.
구체적으로 윌슨이 한국 독립 성취를 위해 어떤 도움을 줄 것인지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다. “독립 청원”이라는 구상이 갖는 근본 적 한계다. 미국의 선의와 후원에 기대고, 한미수호조약에 의지해서 독립을 회복하겠다는 노선이 본질적으로 가지고 있는 막다른 골목 같은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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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그런데 3·1운동 발발 이후 『매일신보』는 「민족자결주의의 오해」라는 대표적인 논설을 게재했다. 이 논설은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대한 오 해가 만연하다며, 이는 패전국에 해당하는 것이지 승전국이나 중립국에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라고 거칠게 비판했다. 미국이 인디언, 하와이, 필리핀의 자치나 독립을 허용하지 않고, 영국도 인도 등 식민지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기에, 일본도 ‘동조동근’(同祖同根)으로 내지와 상호 분리할 수 없는 조선을 포기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아마 이 기사는 일본정부 차원의 대응책이었던 것으로 보이는데, 샌프란시스코에서 간행되는 일본계 신문 『일미보』(日米報) 역시 같은 시기 민족자결주의가 전 세계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제국, 러시아 서부 영토에 “역사적 민족이 자치운동을 행하는 방면”에만 적용되며, 일본 식민지에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보도했기 때문이다.*
*「논설: 일미보 기자는 색안경을 꼈는가? 한인더러 역사가 없다고 = 아메리카 홍인종 같다고」, 『신한민보』 (1919.3.6).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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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또한 이승만, 안창호, 김헌식 등 재미 한인 지도자들이 동경과 서울의 여론 주도층에 영향을 끼쳤지만, 실제로 파리강화회의에 대표를 파견한 것은 상해 청년들이 조직한 신한청년당이었다. 한국의 유력자이자 저명인사였던 윤치호는 파리강화회의의 적격자로 많은 사람의 권유를 받았지만 독립운동을 냉소적인 태도로 비난하는 데 그쳤던 반면, 무명의 여운형은 크레인을 만나 청원서를 전달하고, 신한청년당을 조직해 김규식을 대표로 파리에 도달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나아가 김규식은 전력을 다해 파리강화회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경주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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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신한청년당 창당이 조직적 측면에서 상해 독립운동 진영의 세대 교체·재편을 의미한다면, 사상적 측면에서는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파리강화회의를 향한 기대와 함께 새로운 사조인 사회주의 사상에 대한 관심을 제고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신한청년당이 주장한 사회개조와 세계대동은 박은식 등의 한국적 대동사상뿐 아니라 당시 세계개조의 이념적 동력이던 사회주의·공산주의를 지향하는 의미였다고 판단된다.
『신한청년』 지면상으로 나타난 세계의 대세는 ‘국제연맹의 외교노선’과 ‘러시아혁명 이후의 사회주의·공산주의적 지향’이라는 2가지 노선이었으며, 그중에서도 후자에 대한 관심과 강조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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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팔
“ 신한청년당이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제출하며, 그 대표가 파리강화회의에 파견되었다는 점은 3·1운동기 한국인들이 의지할 수 있는 독립운동의 근거와 정당성이 되었다. 뒤이어 신한청년당 핵심당원들은 국내·일본·만주·노령에서 김규식의 파리강화회의 파견을 후원하기 위한 선전·모금 활동을 열렬히 펼침으로써 국내외에서 2·8만세운동과 3·1운동이 폭발할 수 있는 기폭제를 제공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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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제로 지정된 대화

YG
오늘 2월 26일 목요일은 3장 2절 '포르토스호의 김규식, 파리강화회의 청원 초안을 준비'와 3절 '김규식의 부동하는 대표성'을 읽습니다. 178쪽부터 198쪽까지입니다.
드디어, 파리로 떠나는 김규식과 파리에 도착했을 때, 막상 올 것이라 기대했던 이승만 등이 오지 못하면서 혼자서 한민족을 대표해야 하는 그의 정체성 변화를 짚고 있습니다. 포르토스호의 표를 구하게 된 사정과 항해 중의 네트워킹에 감탄하고, 생각해 보면 파리에 도착했을 때 얼마나 막막했을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읽은 부분이었어요.
aida
“ 정육수는 신해혁명 이후 1912년 원세개 암살을 시도한 바 있으며, 1914~1917년간 근공검학으로 프랑스 파리에 유학해 법학석사 학위를 받은 최초의 여성 변호사였다. 파리강화외의 중국대표단 중 유일한 여성이었으 며, 파리강화회의에서 중국 여성을 대변하는 역할을 부여받았다. 파리강화회의에서 북경정부 대표로 구성된 중국대표단이 일본에 21개조를 양보하는 조약에 서명하려 하자, 6월 27일 중국 유학생을 동원해 중국 수석 육징상을 막아서며 반대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 정육수의 배표를 양보받아 김규식이 파리행에 오르게 된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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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이 분을 검색하게 되더라구요. "정위슈". 최초 최초 최초라는 수식어가 여러번 붙는 선구자였지만 말년을 고통스럽게 보내셨다고 하네요
aida
“ 오래된 대표성.정체성이 신규식 중심의 비밀결사인 동제사의 회원이라는 관성이었다면, 새로운 대표성.정체성은 신한청년당으로 표현되는 여운형.장덕수.조동호 중심의 새로운 동력이었다. 파리로 떠나는 김규식은 두 개의 조화되지 않은 정체성 사이에서 부동하고 있었다. (…)
신한청년당은 3.1운동과 그 이후 과정에서 상해 독립 운동의 중심으로 부각하였으며, 임시정부의 견인차이자 중추를 형성했다. 확실한 세대교체이자 세력교체였다. 그 속에서 김규식의 위상과 입장도 전환되어 가고 있었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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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오늘 분량은 좀 짧고 복습하는 내용도 많아서 술술 읽혔습니다.
1차대전 종전후 3개월이 결정적 시기네요. 여운형이 그 기회를 놓치지 않고 윌슨에게 청원서를 쓰고 김규식을 대표로 보내는 추진성과 김규식은 주어진 짧은 기간에 할 수 있는 모든 준비를 하였다는 점이 이 3개월간을 세밀하게 들여다보면 서 경의를 품게 됩니다. 이 짧은 기간의 결정적 활동들이 3.1운동과 임시정부까지 이어지는 토대가 된다는 점에서 불을 지피는 시기였네요.
그 와중에 결혼도 했는데.. 바로 김순애는 국내 잠입을, 김규식은 파리로 향하면서 헤어지고 배에서 쓴 편지에 부인을 그리워 하는 내용은 없는 건가요? 부록을 봐도 없어서 개인사는 없었던 건지 줄임처리 된 건지 궁금해지더라구요... ㅎㅎ
위에 적륜재님이 공유해주신 윌슨의 '민족자결호' 그림에 탑승 여권 확인은 커녕 존재조차 않은데 편지는 다 검열하고 영국 외무성에 보관까지 되어 있다니요. 강대국 끼리의 정치적 수단으로 쓰였으리라 생각하니 씁쓸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YG
@aida 아, 저도 그 생각했어요. 이 와중에 웬 결혼? 위장 결혼인가? 하하하!

향팔
사진 한 장으로 결혼식을 갈음한 모양이에요. 번갯불에 콩 궈먹듯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독립운동가들의 결합이라 그런 것인갑네요


향팔
“ 1918년 11월 강화가 성립되었을 때, 파리에 가기로 결정했으며 평화회의에서 세계 앞에서 한국의 실정을 최소한 호소하거나 폭로하기로 결정했다. (중략) 천진에서 출발해 남경으로 가서 [1919년] 1월 19일 [김순애와] 결혼했으며 (중략) 즉시 상해로 가서 파리행 여행을 준비했다. (중략) 1919년 2월 1일 프랑스 우편선 포르토스(Porthos)호를 타고 파리를 향해 상해를 떠났으며 3월 13일에 도착했다. 한국에서 3·1운동이 실행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 직후 통신 및 연락 두절로 인해 그동안 4월 2일까지 파리에 어떤 뉴스도 알려지지 않았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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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da
우어 사진이 있었군요! 이 시대의 사진이 주는 여운이 참 좋습니다. 결혼사진 같지 않고 기념사진 같다는 느낌도 들고,, 화려하지 않는 복식에서도 품 격도 묻어나네요.

stella15
@aida 김규식 멋있네요. 김순애도 미인은 아니지만 빠지는 인물은 아닌데 서로 바빠서 부부의 정 같은 게 없을 수도 있죠. 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서로 사진으로 보고 결혼들을 했다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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