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걸상 '벽돌 책' 함께 읽기] #31. <김규식과 그의 시대> (1)

D-29
@밥심 하지만 정작 역사학계 내부에서는 오히려 불편한 반응인가 봅니다. 한 역사학자(노관범 선생님)께서 개인 페이스북에 전체 공개로 2025년 12월 10일에 코멘트하신 내용입니다. * 일전에 역사학계를 비판하는 어떤 게시글을 읽었다. 한국 역사학자의 책이 올해의 출판물에 하나도 선정되지 못했다는데 이를 안따깝게 생각한 글쓴이가 아마도 평소 누적된 자기 감정을 폭발한 결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역사학계의 폐습이라고 생각하는 문제를 직설했다. 즉 역사학계는 동료의 역사책을 읽지 않거나 읽는다 하더라도 비평가의 안목이 없이 그저 사료 이용이 적절하고 사료 해석이 정확한지 이런 문제에나 관심이 있기 때문에 역사책의 가치를 잘 드러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한국 역사학계는 역사책을 한국 사회에 제대로 알리지도 못하고 있고 나아가 한국 사회에서 올해의 출판물을 심사할 사람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나는 역사학계에 속하는 사람이기 때문에 이러한 비판은 곧 나를 비판하는 소리로 들렸다. 그래서 스스로를 돌아보는 계기도 되었다. 그러나 취지를 이해하더라도 논법에 공감하지 않는다. 글쓴이는 역사 연구자와 역사 저술가, 역사 연구자와 역사 비평가를 혼동하여 마치 저술가와 비평가가 곧 역사 연구자의 도달처인 듯이 가정하고 있는데 이것은 문제이다. 역사 연구자는 사료를 탐구하고 입론을 세워 궁극적으로 역사를 쓰는 사람이기에 그 본령은 사료의 역사적 이해에 있으며 그 목적은 시대의 적실한 초상에 있다. 사료 읽기와 시대 쓰기가 역사학적 성취의 관건이다. 역사 저술, 역사 비평은 역사학을 하지 않는 작가나 평론가도 재능을 발휘할 수 있고 이들도 리뷰 연구를 통해 역사 이야기를 매력적으로 창작하거나 비평할 수 있다. 이들의 창작과 비평에도 역사 인식을 위한 훌륭한 영감과 통찰이 적지 않다. 그러나 역사 연구는 본질적으로 서사 게임이나 언어 게임이 아니며 혹여 사료 탐구가 부족한 리뷰 연구가 양자의 혼동을 조장하지 않나 반성이 필요하다. 책을 잘 읽어주는 사람보다 더 귀한 것은 사료를 잘 읽어주는 사람이며 시대를 잘 헤아리는 사람이다. 원문을 장악하지 못해 번역문에 의존하면서 점점 사료에 대한 발언을 하지 못하게 되고 특정 주제로 파편화되면서 점점 시대에 대한 발언을 하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온다면? 미래를 향한 진정한 근심은 여기에 있다. 역사학의 양대 정체성을 형성하는 사료와 시대에 관한 역사학의 사유 전통, 그 핍진한 물음의 역사는 그러나 한국 역사학계에 내재해 있다고 본다. 아직 충분히 스스로를 학술화하지 못해서 그렇지 이것은 필시 역사학의 학문사를 통해 규명될 일이겠다. 사료 이해와 시대 인식의 시각에서 20세기 한국 사학사, 또는 한국 역사학의 사학사상사가 절실하게 요망된다. 혹시 역사학회의 정기적인 회고와 전망, 반 백 년 이상 중단되지 않은 전통의 기록들을 모두 통독하고 이를 위한 재료를 찾아도 좋을지 모르겠다. 華而不實. 저술과 비평은 華, 거기에 사료와 시대의 實이 없다면 칼럼니스트의 부화한 문장과 다르지 않다. 사료 이해는 사실과 서사의 경계, 시대 인식은 역사주의와 현재주의의 경계 지점이다. 서사주의와 현재주의의 언어 게임은 작가와 평론가의 즐거움으로 남겨주어도 좋다. 끝으로 역사학자 김용섭에 대한 비평은 진중하게 드러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 김용섭 역사학의 빛과 그림자는 연구자의 자세로 그의 당일 공부를 그의 시대 속에서 인식하는 과정에서 의미가 드러난다. 주희의 당일 공부의 이해 없는 주자학 세태를 비판한 김창협의 혜안은 오늘날에도 경청할 가치가 있다. 김용섭의 역사 연구를 역사 담론 또는 역사 철학으로 승화해서 비평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현재의 역사 담론과 역사 철학의 華에 가려진 본래 역사 연구의 實을 찾아 그 의미를 헤아리는 일이다. 달리 말해 김용섭 역사학의 지성사적 인식이다. 모름지기 역사 비평가의 길에 안주하지 않고 역사 연구자의 길을 걸어갈 생각이라면 부화한 담론이 아니라 자득의 실공을 추구해야 할 것이다.
어느 집단에서나 한 개인이 이런 이야기하면 다른 개인은 저런 이야기를 하고 한 그룹이 이렇다고 주장하면 또 다른 그룹은 저렇다고 주장하잖아요. 비단 역사학계만이 그런 건 아니겠죠. 다만, 그런 논쟁이 바탕이 되어 발전적 방향으로 집단이 움직이면 그 집단은 융성하는 것이고 개싸움으로 번지면 쇠퇴하는 거겠죠. 아무튼 화두는 던져졌으니 역사학계가 잘 처신해서 저 같은 대중들은 양질의 역사서를 재밌게 읽을 수 있게 되고 동시에 역사학자들은 탁월한 연구 수행과 학술서를 쓸 수 있게되면 좋겠습니다.
워낙 역사의 지식이 없다보니, 최태성 <역사의 쓸모> 같은 대중 역사 책도 아주 감명 깊게 읽었고, 저희 모임에서 다루는 역사 책처럼 전문적인 책들도 많은 생각할 거리를 주어서 아주 독서가 즐겁습니다. 이런 좋은 책들을 읽는 사람들이 없다는 안타까움...점점더 책을 보지 않게 되는 시대다 보니... 더 이런 논쟁이 더 아프게 다가오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3.1절이 낀 이번 주말에는 5장 1절 '파리 도착 직후 제출한 청원서들'을 읽습니다. 241쪽부터 272쪽까지입니다. 김규식이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어떤 활동을 했는지를 자세히 서술한 대목입니다. 3월 2일 월요일까지 김규식의 파리에서의 고군분투가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교과서에서 한두 줄로 읽었던 '김규식의 파리 강화 회의' 참석의 디테일을 알게 되는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이 있습니다.
화제로 지정된 대화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모임 방은 오늘(2월 28일) 자정으로 닫고 곧바로 두 번째 모임 방으로 넘어갑니다. 아래 링크로 들어오시면 됩니다. https://www.gmeum.com/gather/detail/3402
김규식은 1913년 중국에 도착한 이래 자신이 몸담았던 독립운동 그룹의 노선과 관성에 익숙했으며, 그에 의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파리강화회의 개막이라는 새로운 정세의 전개가 그의 파리강화회의 대표행을 결정지었으나, 그는 여전히 구래의 관성에 익숙했고 그에 의지했다. 새로운 동력,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인물들과의 관계는 아직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김규식은 곧 자신이 공식적으로 신한청년당과 한국인을 대표하는 것임을 자각했다. 때문에 김규식은 곧바로 신한청년당 명의의 청원서•비망록을 제출했다. 4월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소식이 전해지자, 김규식은 이제 신한청년당이라는 협소한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임시정부라는 정부의 대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하나의 대표성과 정체성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대표성과 정체성이 부여되었던 것이다.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194, 정병준 지음
이번 책이 어렵지 않고 잘 읽히는데 .... 이리저리 모르는걸 찾다보니 시간이 많이 필요하네요. 일정을 맞추느라 병행 독서가 불가 수준입니다. ...ㅎ 주말내내 진도 따라갈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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