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규식은 1913년 중국에 도착한 이래 자신이 몸담았던 독립운동 그룹의 노선과 관성에 익숙했으며, 그에 의지했다.
제1차 세계대전의 종료와 파리강화회의 개막이라는 새로운 정세의 전개가 그의 파리강화회의 대표행을 결정지었으나, 그는 여전히 구래의 관성에 익숙했고 그에 의지했다.
새로운 동력, 새로운 에너지, 새로운 인물들과의 관계는 아직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다. 그러나 김규식은 곧 자신이 공식적으로 신한청년당과 한국인을 대표하는 것임을 자각했다. 때문에 김규식은 곧바로 신한청년당 명의의 청원서•비망록을 제출했다.
4월 이후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소식이 전해지자, 김규식은 이제 신한청년당이라는 협소한 정당의 대표가 아니라 임시정부라는 정부의 대표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그에게는 하나의 대표성과 정체성이 아니라 계속 변화하는 대표성과 정체성이 부여되었던 것이다. ”
『[세트] 김규식과 그의 시대 1~3 세트 - 전3권』 194, 정병준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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